2024년, 브로드웨이는 진정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대형 신작 뮤지컬과 연극이 동시에 호평을 받으며, 21세기 브로드웨이의 미래를 제시한 한 해였다. 미국 공연 전문 매체 TheaterMania의 수석 평론가인 Zachary Stewart가 선정한 올해의 베스트 5작품을 소개한다.
5위. Stereophonic – 음악으로 완성된 연극의 정수

2024년 토니상 ‘최우수 연극상’ 수상작. 데이비드 애드즈미(David Adjmi)가 쓴 이 작품은 1970년대 록 밴드의 레코딩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한다. 어느새 톱스타가 된 밴드가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1년 넘게 새 앨범을 제작하는 과정을 그리며, Fleetwood Mac을 연상시키는 구성으로 현실감이 극대화된다.
윌 버틀러(Will Butler)의 음악은 1977년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법한 사운드로 재현되며, 연출가 다니엘 아우킨(Daniel Aukin)의 세심한 디렉팅과 배우들의 몰입도 높은 연기가 빛난다. 무대와 의상 디자인도 탁월하며, 저작권 논란을 넘어서 작품성 자체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4위. Death Becomes Her – “블링블링하고 악랄한” 브로드웨이

1992년 동명의 영화를 무대에 옮긴 화려한 코미디 뮤지컬. 영생의 약을 마신 두 여성이 육체적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경쟁을 벌이는 이야기다. 브로드웨이 특유의 ‘글리터+비꼬기’ 스타일이 진하게 묻어난다.
줄리아 매티슨과 노엘 캐리(Julia Mattison & Noel Carey)의 작곡은 전통적인 브로드웨이 사운드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넘치고, 대본은 블랙 코미디 특유의 위트로 가득하다. 주연 배우 메건 힐티(Megan Hilty)와 제니퍼 시마드(Jennifer Simard)의 대결 구도는 1000편의 Real Housewives 에피소드를 한 무대에 올린 듯한 에너지를 자랑한다.
3위. Water for Elephants – 서커스와 서사의 환상적 융합

대공황 시기의 미국을 배경으로, 서커스 기차와 함께 떠나는 여정을 그린 뮤지컬. 거대한 무대 장치 대신 바퀴 달린 플랫폼을 조립해 기차로 구현한 무대는 상상력과 감동을 자극한다.
서커스를 그리는 뮤지컬은 종종 있었지만, 이처럼 서사와 기술이 긴밀히 엮인 작품은 드물다. 제시카 스톤(Jessica Stone)의 연출과 공동 안무가인 제시 롭(Jesse Robb), 샤나 캐럴(Shana Carroll)의 창의성은 놀라울 정도다. 여기에 정교한 동물 퍼펫(레이 웻모어, JR 굿맨, 카밀 라바르 제작)이 무대를 생명감으로 가득 채운다.
2위. Oh, Mary! – 코미디의 진화, 브로드웨이를 찌르다

콜 에스콜라(Cole Escola)의 파격적 코미디 연극. 링컨 대통령의 부인인 메리 토드 링컨을 무대 위에 끌어올린 이 작품은 역사적 인물을 풍자하며 브로드웨이 코미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에스콜라 본인이 메리 역을 연기하며 선보인 광기 어린 퍼포먼스는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화려한 세트 없이도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할리우드 스타 캐스팅 없이도 작품성과 입소문만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이 작품은 앞으로 브로드웨이가 걸어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1위. Maybe Happy Ending – “작지만 깊은 울림”

윌 애런슨(Will Aronson)과 휴 박(Hue Park)의 섬세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이 뮤지컬은 사랑과 상실, 기억을 다룬 감성적 서사로 관객의 눈시울을 적셨다.
주인공은 쓸모없어진 로봇 클레어(헬렌 J 션)와 올리버(대런 크리스). 인간과의 관계가 끝난 후, 두 로봇은 서로를 통해 감정을 배우며 사랑을 알아간다. 뮤지컬 넘버는 재즈를 기반으로 작곡되었고, 데즈 듀런(Dez Duron)의 연주는 라트 팩 시절을 연상케 한다.
무대 연출은 Parade 리바이벌을 맡았던 마이클 아든(Michael Arden)이 담당. 디지털 기술과 감성적 스토리텔링이 조화를 이루며, 올해 브로드웨이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내년 토니상 유력 후보로도 손꼽힌다.
2024년, 브로드웨이는 ‘실험’과 ‘진화’로 응답했다
화려한 스타 캐스팅에 의존하기보다는 서사와 연기, 음악의 힘으로 감동을 선사한 2024년 브로드웨이.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예술의 경계를 넓힌 올해의 무대들은, 앞으로의 브로드웨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Zachary Stewart가 전한 이 다섯 작품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극장이라는 공간의 본질적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