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극장 문화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West End에서 공연을 할 때, ‘in the West End’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on the West End’가 맞을까?” 무대에 오르기 전, 혹은 티켓을 예매할 때조차 이 표현 하나로 헷갈림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치 언어의 사소한 구별처럼 보이지만, 이 표현은 실제로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적 차이를 반영하는 중요한 언어적 선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답은 단 하나 — “in the West End”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West End는 런던 중심부의 공연 예술 구역, 즉 하나의 ‘지리적 지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on Soho” 혹은 “on Kensington”이라고 말하지 않듯, “on the West End”라고 표현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West End는 단일 거리(street)가 아니라 다수의 극장이 밀집한 구역, 즉 공연 예술의 허브로 자리 잡은 ‘문화 지구’이기 때문이다.
이 혼란의 원인은 대부분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비롯된다. 미국에서는 브로드웨이를 언급할 때 “on Broadway”라고 표현한다. 이때의 Broadway는 단지 하나의 긴 거리이며, 주요 극장들이 해당 거리 또는 주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on”이라는 전치사가 쓰인다. 뉴욕의 극장가는 브로드웨이 거리 자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반면, 런던의 West End는 거리 이상의 개념으로, 공연장이 집중된 중심 업무 지구 및 상업 지구 전체를 포괄한다.
특히 미국인들이 “on the West End”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익숙한 “on Broadway”라는 표현 방식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다. 그러나 두 도시의 공연 지형과 공간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언어 표현도 달라져야 한다. West End는 거리(street)가 아니라 구역(district)이므로, 정확히는 “in the West End”라고 해야만 맞는 말이 된다.
이처럼 단어 하나에도 그 도시만의 역사와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 앞으로 런던 공연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혹은 웨스트엔드 뮤지컬을 소개할 때, “in the West End”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올바르다. 공연은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지만, 올바른 언어는 무대 밖에서 그 문화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