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웨스트엔드에는 수십 개의 유명 극장이 모여 있다. 하지만 배우와 무대 스태프, 관객들 모두에게 각기 다른 ‘최애 극장’이 존재한다. 때로는 첫사랑 같은 공연을 관람했던 공간일 수도 있고, 오랜 친구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일 수도 있다. 혹은 단순히 편리한 위치나 쾌적한 화장실 덕분일 수도 있다.

최근 공식 런던 극장 티켓 부스가 재출범하는 행사장에서, 여러 웨스트엔드 스타들을 만나 그들의 마음속 ‘최애 극장’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각자 특별한 이유로 극장을 사랑하고, 그 감정은 공연 현장의 열기만큼이나 진솔하고 다채로웠다.
“첫 무대의 떨림, 그 극장에서 시작했죠” – Mazz Murray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에포닌 역으로 큰 사랑을 받은 배우 마즈 머레이는 로얄 코트 극장을 최애 장소로 꼽았다. “내 첫 무대가 바로 이곳이었어요. 그때의 긴장과 설렘은 아직도 잊을 수 없죠.”라고 말했다.
로얄 코트 극장은 웨스트엔드 중심지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인디 연극과 신진 작가들의 실험적 작품을 선보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머레이는 “작은 공간에서 관객과 숨결을 맞추는 경험이 그 어떤 대극장보다 소중하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관객과 가장 가까운 무대, 이곳이 진짜 집 같아요” – Victoria Hamilton-Barritt
뮤지컬 <프렌즈> 출연으로 잘 알려진 빅토리아 해밀턴-배릿은 세인트 제임스 극장을 자신의 ‘영혼의 안식처’라 칭했다. “이 극장은 무대와 관객석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매 공연이 특별한 순간으로 느껴져요.” 특히 그녀는 “첫 커튼콜을 이 극장에서 경험했을 때, 그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세인트 제임스 극장은 1830년대 개관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해밀턴-배릿은 “역사적인 벽돌과 목재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연기에 더 깊이를 준다”고 덧붙였다.
“좋은 화장실, 지하철 역과의 접근성, 이게 다 중요하죠” – Zoe Birkett
<원스>와 <레 미제라블> 등에서 활약한 조 비르켓은 극장을 고르는 또 다른 기준으로 ‘편리함’을 꼽았다. “뭘 해도 런던은 걸어 다니기 좋지만, 공연 전후에 좋은 화장실과 가까운 지하철역이 있으면 정말 행복해요.” 그녀가 꼽은 극장은 피콕 극장이다.
피콕 극장은 피카딜리 서커스 근처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나고, 개관 이래 현대적인 시설로 꾸준히 리노베이션을 거듭해왔다. 비르켓은 “이곳에서 공연하면 배우도, 관객도 편안한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준 곳” – Orfeh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무대를 오가며 활약하는 오르페는 더 도리안 극장을 ‘최애’로 꼽았다. “이 극장은 작지만 완벽한 음향과 조명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무대 위 모든 순간을 빛나게 해줘요.” 그녀는 “배우로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더 도리안 극장은 최근 몇 년간 신작 뮤지컬과 연극들의 시험 무대 역할을 하며 독특한 명성을 쌓아왔다. 오르페는 “이곳에서의 경험이 내 경력에 큰 자양분이 됐다”고 회상했다.
스타들이 전하는 ‘최애 극장’의 의미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배우들은 공연장의 크기, 위치, 시설뿐 아니라 그곳에서 쌓인 추억과 감정이 극장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입을 모았다. 단순히 ‘무대가 서는 공간’을 넘어, 배우에게는 연기의 영감을 주는 성소(聖所)이자, 관객에게는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하는 신성한 장소라는 것이다.
한 배우는 “내가 사랑하는 극장은 무대 위에서 내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게 만드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배우는 “그곳에 서면, 모든 관객이 내 가족처럼 느껴져 매번 특별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