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과 전통이 만나 새로워진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국립창극단의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이 지난 7일 기자들 앞에 처음으로 공개 되었다. 단 네 장면만의 시연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베니스의 상인들’만이 가진 매력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의 큰 무대를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대형 세트와 국립창극단 멤버들의 멋진 앙상블. 100퍼센트의 작창 된 새로운 소리들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음악의 조화는 짜릿했다.
이번 ‘베니스의 상인들’을 올리는 데에 앞서 작가 김은성은 “오랜만에 베니스의 상인을 다시 읽어보니 처음 보았을 때와 감상이 달랐다.”며 당시 시대적 상황에 맞춰 녹아든 인종차별적 내용이나 종교적인 색채를 지우고, 현대에 맞추어 각색했다. 유태인 고리대금업자였던 샤일록은 베니스에서 3대째 부를 쌓아온 이른바 ‘재벌 3세’로, 안토니오는 그런 샤일록에 맞서는 상인조합의 리더로 새롭게 태어났다.
먼저 첫번째 선을 선보인 1막 4장, ‘샤일록의 덫에 걸린 안토니오’는 안토니오 역의 유태평양과 샤일록 역의 김준수, 바사니오 역의 김수인 등 주요 캐스트들이 전부 등장하며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와, 각 인물들 간의 서사적 구조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젊고 패기 넘치는 유태평양이 노련한 대자본가 샤일록의 덫에 걸려드는 장면. 3천 더컷을 빌려주는 담보로 ‘상인조합의 권리’를 담보로 삼자는 샤일록에게 안토니오는 격분하여 차라리 내 가슴살을 떼어가라고 하고, 샤일록은 이를 놓치지 않고 안토니오를 궁지로 몰아세운다.
원작보다 더욱 입체적으로 변한 인물들의 관계성과 이를 살리는 배우들의 연기가 압권인 장면.
다양한 매력이 넘치는 이 공연에서 시각적 즐거움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베니스와 신비의 섬 벨몬트를 눈앞에 가져온 듯 아름답지만 절제된 세트들과, 유럽식 양장과 한복의 매력을 모두 살린 의상들은 이 공연이 창극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베니스도, 벨몬트도 아닌 새로운 환상의 공간으로 이끈다. 국립창극단은 이를 보여주기 위해 두번째 장면으로 1막 5장 벨몬트로 출발하는 바사니오와, 1막 6장 청혼시험을 보는 바사니오를 연달아 선보였다.
곤돌라에 올라 벨몬트로가는 바사니오는 인어와 돌고래 등을 만나며 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마침내 당도한 벨몬트섬은 포샤의 옷에 수놓인 것과 같은 커다란 꽃나무가 중앙에 자리 잡아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최근 팬텀싱어 4에서 활약한 김수인의 바사니오와, 국립창극단의 간판이기도 한 민은경의 포샤가 선보이는 사랑스러운 연인 연기도 볼거리.
국립창극단이 마지막으로 선보인 것은 2막 13장 다시, 배가 나아간다!. 이 장면은 샤일록이 재판에 패배하며 최후를 맞는 장면과 연달아 이어졌다.
이번 ‘베니스의 상인들’에서 가장 놀라운 것을 꼽자면 김준수의 변신이다. 뛰어난 외모와 그보다 더 뛰어난 실력으로 판소리 아이돌,국악 프린스 등으로 불리는 김준수가 악역인 샤일록으로 변신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한 것도 사실. 기자 간담회 당시 한 기자는 당연히 김준수가 샤일록일줄 알았다며 연출인 이성열에서 캐스팅에 대해 질문할 정도였다.
당시 이성열 연출은 뱀같은 샤일록의 이미지가 김준수에게 잘 어울린다고 판단해 캐스팅했다고 밝혔고,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노련한 사업가의 모습을 능란하게 연기하던 그는 재판에서 모든 것을 잃고 처형을 당하게 되는 샤일록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으로 살수 있는 세상에 다시 태어나 만세를 누리겠다.’라며 절규한다. 이 장면에서 김준수의 소리와 연기는 국악인이자 배우인 그가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빌런인 샤일록이 퇴장한 뒤, 변호인으로 변장했던 포샤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바사니오와 재회하며 극은 축제로 변화한다. 바사니오와 포샤의 결혼식과 안토니오의 새로운 배가 출항하는 출항식이 함께 어우러지고, 이때 등장하는 6미터짜리 대형 범선은 한국적인 오색천이 묶여있다.
마지막으로 다같이 즐기는 한바탕의 축제로 장면 시연이 마무리 되었다.
한편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은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단 4일간 그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