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유난히 음악이 많이 들렸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신시아 에리보가 출연한 뮤지컬 영화 <위키드>, 틈새 장르를 노린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스>, 밥 딜런의 생애를 그린 팀시 샬라메 주연의 <어 컴플리트 언노운>까지, 음악을 앞세운 작품들이 나란히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작품상’이라는 영예는 코미디 영화 <아노라>의 몫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오스카 역사상 ‘작품상’을 수상한 뮤지컬 영화는 과연 몇 편일까?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에 따르면, 지금까지 총 10편의 뮤지컬 영화가 ‘작품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작품은 단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다. 이 영화는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10관왕에 오르며 지금도 깨지지 않은 기록을 남겼다. 특히 리타 모레노는 이 작품으로 라틴계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오스카의 역사를 바꿨다.
뒤를 잇는 대표작으로는 줄리 앤드류스 주연의 <사운드 오브 뮤직>(1965), 조지 거슈윈 음악을 기반으로 한 <파리의 미국인>(1951), 그리고 가장 최근에 수상한 뮤지컬 영화인 <시카고>(2002)가 있다.
1960년대는 뮤지컬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특히 강세를 보이던 시기였다. 1965년엔 <마이 페어 레이디>가 <메리 포핀스>를 제치고 작품상을 차지했고, 1969년엔 <올리버!>가 <퍼니 걸>을 꺾었다. 하지만 이후 약 30년간, 뮤지컬 영화는 계속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수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헬로, 돌리!>(1969), <지붕 위의 바이올린>(1971), <캐버렛>(1972), <미녀와 야수>(1991), <물랑 루즈>(2001) 등 여러 뮤지컬 영화가 후보에 올랐거나 주목받았지만, 트로피를 들어 올리진 못했다.
특히 <라라랜드>(2016)는 발표 착오로 ‘작품상 수상작’으로 잘못 호명되는 역사적인 해프닝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비록 상은 <문라이트>에게 돌아갔지만, 엠마 스톤은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작품의 품격을 지켰다. <레미제라블>(2012)도 작품상은 놓쳤지만, 앤 해서웨이가 판틴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등 3관왕을 차지했다.
또한 <드림걸즈>(2006)는 가장 많은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작품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하는 이례적인 사례를 남겼다. 클래식 뮤지컬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싱잉 인 더 레인>(1952)도 마찬가지로, 오늘날까지 회자되지만 ‘작품상’ 후보조차 되지 못했던 대표적인 작품이다.
2025년 시상식 오프닝 무대에서는 뮤지컬 팬들을 위한 화려한 무대가 펼쳐졌다. 아리아나 그란데는 <오즈의 마법사>의 ‘Over the Rainbow’를, 이어서 <더 위즈>의 ‘Home’을 부른 뒤, 신시아 에리보가 <위키드>의 ‘Defying Gravity’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 작품 모두 ‘작품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뮤지컬 팬들의 기대와 열광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는 유독 뮤지컬 영화에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댔다. 이는 단순히 장르적 편견일까, 아니면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의 균형에 대한 고민일까.
결국, 상이 전부는 아니다. 오스카 트로피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 영화의 가치가 낮아지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화려한 쇼의 역사 속에서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어떻게 사랑받고 어떻게 밀려났는지를 돌아보는 일은 충분히 의미 있다.
언젠가 또 한 편의 뮤지컬 영화가 <시카고> 이후 20년 넘게 이어져온 공백을 깰 날이 올까. 이번 <위키드>의 불발은 아쉽지만, 뮤지컬 영화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