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말리>는 한때 화려한 아역 스타였지만, 현재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18살 말리가 과거로 돌아가 인형 ‘레비’의 몸으로 11살의 자신을 만나는 이야기다. 어른들의 기대와 바람에 맞춰 살아가던 말리는,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한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토끼 인형 레비에게만 나누며 버텨온 인물이다.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레비와 다시 마주하면서, 말리가 외면해왔던 기억과 감정의 문이 서서히 열린다.

어린 시절의 말리는 세상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던 아이였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아역 스타로 살아가며 그는 늘 더 나은 답을 요구받았고,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질문보다 어른들의 기대에 맞춰 움직이게 된다. 결국 말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을 지나 기억을 잃고, 특별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평범한 삶’ 속으로 돌아온다. <말리>는 질문을 잃어버린 인물이 아니라, 답을 찾다 스스로를 놓쳐버린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관객에게 조용한 공감을 건넨다.

이 작품의 주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관통하는 넘버는 ‘내 자리가 F열 3번이라면’이다. 무대 위에서 말리는 ‘중앙도, 조명도 닿지 않는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가장 앞도, 가장 빛나는 곳도 아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자신의 자리. 이 넘버는 성공과 중심을 향해 달려왔던 말리의 과거와, 지금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맞닿는 지점이다.
“누가 뭐라든 뭐라 하든 그대로 그냥 달려가면 돼”라는 가사는 더 이상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서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로 확장되며, 무대 위 말리를 넘어 어른이 된 관객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말리가 오래도록 곁에 두었던 토끼 인형 레비는 이 넘버의 정서를 더욱 단단하게 받쳐준다. 레비는 말리가 유일하게 솔직해질 수 있었던 대상이자, 어린 시절 자신이 머물렀던 자리의 증거다. 인형 레비의 몸으로 과거에 돌아간 말리는 11살의 자신을 마주하며, 더 잘해야 했던 이유와 그로 인해 놓쳐버린 마음을 다시 바라본다. 이 과정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재인식의 여정으로 완성된다.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던 말리가 도달하는 ‘옥상 정원’ 장면은 작품의 정서적 정점이다. 가장 높은 곳이지만 가장 외로운 공간에서 벌어지는 뜻밖의 사건은, 말리가 과거와 현재를 잇고 다시 나아갈 용기를 얻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다. 이때 울려 퍼지는 음악은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말리가 스스로의 속도로 걸어가도록 조용히 등을 밀어준다.

성인 말리 역은 뮤지컬 배우 김주연, 아이돌 출신의 루나, 박수빈이 맡아 각기 다른 결의 말리를 완성한다. 김주연은 내면의 균열을 섬세하게 쌓아 올리며 말리의 공백을 깊이 있게 표현하고, 루나는 절제된 감정선 속에서 상처 이후의 불안을 차분히 드러낸다. 박수빈은 담담하지만 단단한 연기로, 평범함 속에 숨겨진 말리의 갈등을 또 하나의 얼굴로 보여준다.

어린 말리 역에는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애니>의 김소율, <레미제라블>로 무대 경험을 쌓은 김아진, 그리고 이번 <말리>로 데뷔한 박세윤이 참여해 무대를 빈틈없이 채운다. 세 배우는 각기 다른 에너지로 어린 말리의 호기심과 불안을 생생하게 구현하며, 레비와의 관계를 통해 말리의 서사를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성인 말리와 어린 말리가 한 무대 위에서 교차하는 순간들은 작품의 메시지를 가장 선명하게 전달한다.
<말리>는 2018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개발을 시작해 제15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창작 뮤지컬상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후 영미권 개발 프로그램에 선정돼 2023년 뉴욕에서 두 차례 낭독 공연을 선보이며, 이 작품이 지닌 보편적 정서와 글로벌 확장성을 확인시켰다.
뮤지컬 <말리>는 기억을 되찾는 이야기이자, 자신의 자리를 다시 정의하는 이야기다. 꼭 중앙이 아니어도,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작품. ‘내 자리가 F열 3번이라면’이 남긴 한 줄의 가사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관객의 마음에 오래 머문다. “그대로 그냥 달려가면 된다”는 이 단순한 문장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모든 어른 말리들에게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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