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긴긴밤>은, 고립된 동물원에서 출발해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코뿔소와 펭귄의 여정을 통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는 작품이다. 원작 긴긴밤을 쓴 루리의 담백한 문장을 무대 언어로 옮긴 이 작품은 초연과 앵콜을 거치며 서사의 밀도를 차근히 다져왔고, 이번 시즌에서는 움직임 중심의 연출이 크게 강화됐다.

무대에서 가장 먼저 체감되는 변화는 안무다. 동물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동작들은 이전보다 훨씬 촘촘해졌고, 장면 전환 또한 끊임없이 흐른다. 배우들의 신체는 더 유연해졌고 군무의 완성도 역시 높아졌다. 다만 이 치밀함이 역설적으로 여백을 줄이기도 한다. 감정을 삼키며 관객에게 넘겨주던 정적의 순간들이 줄어들면서, 장면이 끝난 뒤 천천히 밀려오던 여운이 충분히 자리 잡기 전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버리는 인상이 남는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남겨두던 작품의 미덕이 조금 희석된 셈이다.

그럼에도 작품의 중심은 여전히 관계에 있다. 노든과 펭귄은 혈연도 종(種)도 다른 존재지만, 서로의 생존을 책임지는 순간부터 가족이 된다. 보호와 의존이 뒤섞인 관계는 시간이 흐르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으로 변한다. 특히 노든이 보여주는 조심스러운 돌봄은 부모의 형태를 띠고, 펭귄은 그 안에서 세상을 배운다. 이 서사는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 선택된 가족의 이야기다.
초연부터 재연까지 함께하며 캐릭터의 결을 축적해 온 ‘레전드 펭귄’ 설가은, 앵콜 시즌에 합류해 아역 배우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킨 최은영, 한예종 <긴긴밤> 리딩 공연에서 작품과 호흡을 맞춰온 최주은, 그리고 이번 시즌 새롭게 합류한 막내 펭귄 임하윤까지, 무대에서는 서로 다른 결의 펭귄들을 만날 수 있다. 같은 서사를 따라가면서도 각 배우가 만들어내는 온도와 성장의 속도가 달라, 관객은 매 회차마다 또 다른 성장기를 목격하게 된다.

작품의 정서는 결국 펭귄의 성장기로 수렴한다. 처음에는 두려움 속에서 노든 뒤에 숨던 존재가 점차 스스로 방향을 선택하고, 떠나는 법까지 배우게 된다. 바다를 향한 여정은 곧 보호받는 존재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존재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관객이 마지막 장면에서 느끼는 감정이 슬픔보다 성숙에 가까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등장인물 가운데 펭귄에게만 이름이 없다는 설정이다. 노든은 고유한 이름을 가진 개체로 남지만, 펭귄은 끝내 특정한 호칭을 얻지 않는다. 이는 그가 특정한 한 존재라기보다 ‘누군가의 아이’, ‘자라나는 존재’라는 보편성을 갖기 때문이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자신의 기억이나 관계를 투영한다. 이름이 없는 대신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순간, 이야기는 개인의 비극이 아닌 모두의 성장담으로 확장된다.

이번 시즌의 <긴긴밤>은 완성도를 높이는 대신 여백을 일부 포기한 공연이다. 감정의 잔향은 조금 줄었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더욱 선명해졌다. 결국 작품이 남기는 질문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살아가며, 또 어떻게 떠나보내는가. 이 단순한 질문이 여전히 긴 밤처럼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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