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로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배우 박한근은 올해 6월까지 뮤지컬 ‘광염 소나타’에서 ‘J’역으로 열연을 펼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자타공인의 실력파 배우인 그의 다음 행보는 놀랍게도 무대 위가 아닌 무대 뒤. 작년에 공연 제작사 네버엔딩 플레이에서 개최한 리딩 쇼케이스 ‘넵플릭스-데뷔를 대비하라’에서 큰 호응을 받았던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의 정식 초연의 연출이 그의 다음 ‘배역’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뮤지컬로 극화한 이 작품은, 등장인물 전원이 여성 캐스트라는 것과 함께 공연을 진두지휘하는 연출이 배우인 박한근이라는 사실로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배우로서는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로 정평이 난 그이지만 연출은 전혀 다른 영역. 하지만 공연이 올라가고 팬들의 불안은 자연스럽게 박수로 바뀌었다.
원작을 잘 살린 대본과 훌륭한 음악. 아름다운 세트.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출까지. 전원 여성 캐스트라는 파격적인 시도는 오히려 장점이 되어 돌아왔다. 박새힘, 송영미 등 쇼케이스부터 함께했던 배우들은 물론, 새로 합류한 배우들까지 기대 이상의 열연을 펼치며 ‘성’이 세운 관념적 경계를 허물고 오롯이 작품에 몰입하게 만든다.
관객들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는 이 뮤지컬에 대해, 지난 14일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뮤지컬을 완성한 ‘연출 박한근’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하일러’를 꿈꿨던 ‘한스’
문화포커스(이하 ‘문’) : 성공적인 연출 입봉 축하드립니다.
박한근(이하 ‘박’) : 감사합니다.
문 : 최근까지 배우로서 좋은 작품도 많이 하셨지만, 오늘은 ‘연출 박한근’에 집중해서 인터뷰를 가져 보려고 해요. 첫 연출을 하시면서 ‘수레바퀴 아래서’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고전 작품을 극화한 것이다 보니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박 : 어떻게 말씀드릴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릴까요?(웃음) 사실 ‘네버엔딩 플레이’의 오세혁, 최종혁 대표가 이 작품을 연출해 보라고 권유했어요. 작년에 리딩 쇼케이스를 하는데, ‘너 연출에 관심 있다며, 한 번 해볼래?’하구요. 저야 좋은 기회를 줘서 고마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이건 TMI인데 사실은 제가 연출을 좀 더 공부해야 될 것 같아서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세혁이가 ‘무슨 유학을 가. 그냥 하면서 배워. 그리고 너는 더 이상 공부할 게 없어. 잘하잖아.’ 그 말에 한번 해볼까?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 쇼케이스를 너무 감사하게도 관객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쇼케이스 끝난 당일날 밥 먹는 자리에서 ‘이거 내년에 본공 갑니다’하고 본공연을 결정해 주셨어요.
문 : 놀랍네요. 예전부터 연출을 하고 싶어 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데뷔 초 인터뷰를 보면 영화 연출을 지망하셨다가 연기를 시작하게 되신 거로 알고 있고요. 연출에 대해서도 전에 유학을 준비하신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서 저는 (오랜 기간) 준비된 연출이라고 생각했어요.
박 : 아니요. 준비된 건 아니고. 개인적인 얘기지만 코로나 이후로 참 많이 모두가 다 힘들어했잖아요. 작품도 많이 엎어지고 뭐 취소되고 밀리고. 그 팬더믹 이후로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지금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2의 박한근의 인생이, 그리고 또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시기가. 마침 또 저도 작품이 몇 개가 취소되면서 굉장히 긴 공백이 생겼는데 지금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준비를 좀 했던 것 같아요.
문 : ‘수레바퀴 아래서’ 같은 경우에는 헤르만 헤세의 청소년기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데요. 연출님도 혹시 비슷한 경험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연출님의 경우에는 특히 특성화고등학교인 서울외국어고등학교 출신이시기도 해서.
박 : 아이고.
문 : (웃음) 특히 ‘한스’와 비슷한 환경이셨는데, 혹시 당시의 비슷한 경험이 있으셨을지 궁금해요.
박 : 사실 과거를 떠올려 보자면 저는 한스였던 것 같아요. 규칙과 규율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그냥 이게 당연한 거니까. 부모님이 그렇게 시켜주신 게 나를 억압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정확히 한스였지 않았을까. 제 옆에는 사실 하일러는 없었어요. 대신에 한스만 한 100명 있는 거예요 한스만. 근데 우리끼리 너무 즐거운 거야. 학생들끼리 맨날 운동하고 뭐 축구하고 농구하고. 물론 공부하는 학교였지만 가끔 피시방도 가고 가끔 당구장도 가고.
그렇게 그냥 뭔가 스트레스는 그쪽으로 풀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무언가 어딘가를 뛰쳐나가려고 뭔가를 하는 친구들은 없었어요. 대신에 그걸 견디지 못하고 전학을 가는 친구들은 몇몇 봤던 것 같아요.
문 : 저는 솔직히 한근 연출님이 하일러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박 : 아니요. 저는 정말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교육권 안에 들어있는 학생이었어요. 성적도 항상 중위권에서 그냥 이리로 가지도 저리로 가지도 않는. 튀지도 않고 사고 친 적도 없고. (그런) 저는 지극히 한스가 아니었나(생각해요). 그런데 좀 그 와중에도 가끔 하일러를 꿈꿨나 봐요. 하일러는 이제 시를 쓰기를 원했고 저는 무언가를 연출해서 만들기를 원했고. 그래서 이런 메시지를 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헤르만이 전한 ‘억압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의 메시지. 그리고 박한근이 만든 ‘수레바퀴 아래서’
문 : 최근에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 대학로에 많이 올라오고 있어요. 헤르만 헤세의 어떤 부분이 요즘 관객들, 그리고 공연 제작자들에게 작품을 다시 보게 만드는지 궁금해요.
박 : 저도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다 읽어본 건 아니지만, 그 소설들을 읽어봤을 때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는 ‘나를 찾아가는 그 과정과 그 시간.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인 것 같아요. 그리고 자전적인 이야기도 많아요. 저희 수레바퀴도 마찬가지구요.
저희 작가님도 말씀하셨었는데 작품에서 ‘자기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메시지를 좀 주고 싶었어요. 마침 또 요즘 시기가 일상으로 복귀가 좀 가능해졌잖아요. 이 상황에서 이 나라의, 또 이 작은 대학로 안에서 헤르만 헤세가 전해주는 메시지, ‘억압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과연 관객분들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생각했죠.)
우리 모두가 다 사회라는, 학교라는, 또 가족이라는 그런 분류 안에서 우리도 모르게 항상 억압되고 틀에 박히게 되고, 규칙에 쌓여있어요. 심지어는 코로나 때문에 너무 큰 자유를 박탈당했고. 그러다 보니 관객분들이 이런 메시지를 좀 많이 원하시지 않았을까? 아니 원했다기보다는 이런 메시지에 많이 공감해 주시지 않았을까? 그래서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이 지금 이렇게 많이 나오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문 : 숨겨진 관객들의 니즈를 찾아낸 거군요.
박 :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또 딱 맞아떨어지네요.
문 : 헤세의 원작의 경우 다 남자 캐릭터의 이야기고, 뮤지컬에서도 ‘소년’이라고 지칭하지만, 실제 배우들은 여자배우들로 공연이 올라가고 있어요.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희 나름대로 생각한 게 있긴 한데….
박 : 먼저 듣고 싶어요. 아니요. 먼저 들을래요. 먼저 듣고 답을 얘기해 드릴게요.
문 : 음, 메시지가 더 명확해진다고 해야 되나요? 대중들에게 성별과 시대에 따른 고정관념으로 갖춰진 게 있는데, 당시 역사적인 상황에 포커스가 가는 대신 여배우들이 연기함으로써 (배역들 간의 ) 관계 그 자체나 극이 주는 메시지에 더 집중되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박 : 그렇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다만) 기자님 말씀하신 거는 어떻게 보면 결과론적인 얘기인 것 같아요. 여자들로 하면 메시지가 더 확실해지고 관객분들이 더 좋아할 거야, 라는 생각은 하진 않았어요. 원래는 이 작품이 2년 전부터 개발이 되던 건데, 그때는 ‘한스’라는 제목으로 남자 배우들로 전막 쇼케이스를 했었거든요. 근데 저희가 리딩을 준비하면서 많은 스태프분들과 대표님이 여자 배우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주셨어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노래를 들었을 때 여자 배우에게 더 잘 어울릴 거 같았거든요. 그 대신 쇼케이스 때는 교장 선생님만 남자로 남겨뒀어요. 음악적으로 베이스가 깔리면 안정감이 좀 있으니까요. 그렇게 남자 배우 한 명으로 쇼케이스를 진행했고, 본공연을 올릴 때는 이 ‘교장’ 캐스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죠. 근데 이제 작가님과 작곡가님이 여자 배우로 가는 걸 원하셨어요. 그래서 중저음이 좋은 여배우들로 캐스팅하게 됐죠.
그리고 중요한 건 ‘소년’이라는 단어의 사용인데. 사실 저는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소년’이 남자 학생만을 ‘소년’이라고 하지 않아요.
문 : 아, ‘청소년’.
박 : 네, 맞아요. 청소년. 청소년은 어린 남자 학생만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잖아요. 그냥 모든 학생들을 포함하는 단어죠.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건 이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남자 학생들의 힘듦도 아니고 여자 학생들의 힘듦도 아니에요. 제도권 안에 억압되어 있는 그 모든 학생들을 통틀어서, 그리고 심지어 더 나아가서 우리들 우리도 이제 사회라는 억압 안에 존재하잖아요. 이 아이들을 보면서 과거에 나도 그랬지를 느껴보셨을 거고. 지금의 나도 어떨까를 생각했으면 좋겠다라는 게 목적이었어요. 그래서 단순히 성별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단어가 소년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그대로 소년으로 가는 거를 적극적으로 오케이를 했죠.
근데 생각해 보면 이제 여성 배우로 캐스팅을 바꿨다고 해서 소녀로 바꾸면 딱 소녀로 국한이 되는 느낌이 좀 들거든요. 저는 아예 성별과 이런 걸 다 떠나서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외침을 전달해 주고 싶어서 소년이라는 단어를 끝까지 썼던 것 같습니다.
문 : 근데 너무 좋았어요. 저는 그래서. 이게 남자나 여자의 이야기가 아닌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굉장히 강하게 들었어요.
박 : 맞아요. 정확했어요. 저도 회의하면서 ‘청소년’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청소년’은? ‘청소녀’가 있어? 아니잖아. 하구요. 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 :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같습니다.
박 : (웃음)
문 : 자화자찬하셔도 돼요. 진짜 좋은 선택이었어요.
박 : 부끄럽습니다.
문 : 그러고 보면 이번 작품인 ‘수레바퀴 아래서’는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 어떤 부분을 취사선택할지에도 고민이 많으셨을 거 같아요. 결말의 경우도 어떻게 보면 좀 희망적인, 이프(If)의 느낌으로 열어주시면서 끝나기도 하는데. 원작의 비극적 결말을 좋아하는 팬들은 아쉬워할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박 : 우선 창작자들 회의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과연 이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들려주고 싶은가’ 였어요. 그 결론이 ‘자유를 향해, 세상을 향해 뛰쳐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였고, 통일시켰어요. 그리고 소설 상으로는 3막일 거예요.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의 뒷 이야기가 되게 길거든요. 거기서 결국 또 비극적인 결말을 맺고. 예전 대본엔 그 내용이 있었어요. “우리 뒤에 있는 이야기를 다 뺍시다. 뒤에 거 다 빼고 딱 여기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끝냅시다.”(했죠.)
하지만 중요한 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자유를 향해, 세상을 향해 뛰쳐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 자유가 죽음이 되면 안 되잖아요. 그러면 이 작품을 통해 본 학생들이 그럼 나도 자유를 찾아갈래. 그럼 큰일 나잖아요.
(그걸 위해) 절대적으로 작품 안에서 죽음 이야기를 걷어내는 게 저희의 가장 큰 목적이었어요. 뒷 이야기를 빼고, 여기서 떠나가는 이야기를 하되 죽음이 자유가 돼선 안 된다. 그래서 죽음이란 단어를 가사 안에서 싹 뺐구요. 대신에 원작을 훼손하진 말아야 하니까요. 그러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죽은 거야 산 거야 뭐야'(가 된거죠.) 그걸 원한 거예요. 무책임하게 둔 게 아니라요.
어떤 분들은 이 이야기의 결말이 ‘죽음’이라고 생각하시지만 그분들도 그렇게 말씀하시거든요. ‘하지만 희망적인 밝은 느낌이 보였다. 그게 좋다.’라고요. 그리고 어떤 분들은 ‘죽은 거라고? 떠난 거 아니에요? 자유를 향해서?’라고 말씀하시는데 또 그렇게 보시면 더 좋은 것 같아요.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상황에서 극화를 시킬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좀 많이 가지고 와서, 약간 희망적으로 보일 수 있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문 : 원작도 그렇지만, 작품에서 한스랑 하일러 관계가 단순히 우정이라고 하기에는 그 이상의 뭔가 있는 느낌이에요. 그런 감정들의 수위, 그러니까 선을 어디까지로 생각을 하고 또 그런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기 위해서 어떤 부분에 많이 신경을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박 : 우선 안무적으로 이현정 감독님께 많이 여쭤봤어요. 현정이 누나가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이고 의미있는 움직임을 많이 만들어주셨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연기하는 배우들한테 제일 많이 물어봤던 것 같아요. 여기서 제가 주의해야 할 거는, 이게 동성애로 보이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는데, 동성애로 국한되면 어쩔 수 없이 소수의 이야기가 되니까요. 하지만 설사 그렇게 보인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그분들도 우리니까.
작가님께서도 너무 그런 방향으로 확 가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작품을 만들 때 ‘이런 액션은 어때?’하고 물어보고 배우들이 조금 ‘괜찮아요.’ 하면 넣고. 아니면 빼고.
리미트는, 딱 배우분들이 하기에 해봤던 동작. 혹은 해봤던 액션. 혹은 불편하지 않은 액션이면 오케이. 혹여나 그게 너무 한쪽으로만 해석되지 않게 우리가 표현을 해보자. 하지만 그 안에서도 너네들끼리가 예뻐 보였으면 좋겠다. 나는 그 너네 둘의 우정이 정말로 깊은 우정이었으면 좋겠다가 있었어요. 그래서 아마 아예 터치를 안 하는 거는 절대 안 될 것 같고 둘이 아름답게 우정으로서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게 저의 목표였죠.
문 : ‘수레바퀴 아래서’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요?
박 : 이게 옛날에 이런 거 생각했는데. 나중에 인터뷰 혹시나 하면 이런 질문 하면 이런 대답 해야지 하면서 대본 보면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이런 걸 찾아냈는데 다 까먹었어요. 너무 어렵네. 잠깐만요. 마지막에 대답해 드릴게요.
흔쾌히 도와준 절친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와 만든 무대. 많은 스탭과 함께하며 새롭게 알게 된 연출의 세계
문 : 이번엔 무대로 넘어와서, 무대 활용이나 조명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았어요. 전체적으로 무대 자체가 아치들이 크로스 되어서, 학교가 성당이면서도 새장 느낌도 드는 게 너무 좋더라구요. 그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걸 의도했고, 혹은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좀 더 봐주시면 좋겠다라든지요.
박 : 이게 참 연출을 하니까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무대를 처음 고민하면서 일단 고딕 양식이 필요했어요. 저희 무대 디자이너는 오필영 디자이너(대표작 : 데스노트, 베토벤)가 해주셨거든요. 제 친구이자, 저의 베프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디자이너잖아요. 필영이 사무실로 그냥 갔어요. ‘필영아 나 연출한다. 도와줘.’ 그랬더니 ‘무조건 해야지. 당연히 내가 해야지'(하고 말해줬어요.) 1~2시 연습이라면 한 11시쯤부터 맨날 필영이 사무실 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니 생각은 뭔데?’ 이렇게 계속 밥 먹으면서 얘기했어요. 고딕양식이 필요하고, 신학교의 모습이 분명 무대 위에서 보여야 된다. 조명적으로는 스테인글라스가 필요하다. 뭐 이런 걸 쫙 나열했어요. 그리고 ‘나는 새장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뭔가 갇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무대도 돔으로 이렇게 위에서 찍어 누르잖아요. 배우들이 앉아 있으면 그 애를 위에서 가두는 거거든요. 마침 저희 조연출이 좋은 이미지를 가져다줬어요.두오모 성당 같은 돔 사진이었는데, 그걸 오필영 디자이너에게 전달했어요. 작업을 하면서도 돔의 살(지지대) 부분에 조명을 심으면 새장이 되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정말 작은 소극장이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만족스럽고 좋아해 주실 수 있는 무대가 나온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해요.
박 : 조명적으로 또 다른 얘기를 하면 이게 색깔마다 다 이유가 있거든요. 자유를 찾아가는 색을 초록색으로 잡았어요. 여름방학 한스의 여름 방학에 낚시하러 가도 돼요? 하면서 이제 숲으로 들어가잖아요. 그때 조명이 초록색이 되면서 아 한스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저렇게 혼자 뗏목 위에서 낚시를 하던 숲과 강이었구나. 거기서 바라보던 하늘이었고요. 그래서 하일러 가방도 초록색이고 마지막에 하일러가 뛰쳐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시를 읽잖아요. 그 시를 쓴 종이가 초록색이에요.
문 : 그래서 반딧불도 초록색인 건가요?
박 : 네, 맞아요. 반딧불도 연한 초록색이에요. 그래서 이제 그런 파란색은 또 빨간색 억압을 상징하기도 하고. 이런 것들을 좀 색깔로 의미를 좀 많이 표현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인터뷰니까 제 입으로 제가 얘기하지만, 관객분들이 몰라주셔도 상관은 없어요. 사실은. 혹시나 알아주시면 너무 감사한 거고요. 어디 써 있지 않잖아요. 팜플릿 프로그램 북에 써있는 게 아니니까. 근데 우리(창작진)는 이제 만들 때 있어서 확고함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좀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스태프 쪽으로도 정말 모든 감독님들이 다 하나가 되어 도와주셨어요. 이현정 안무 감독님과 이진욱 음악 감독님 등. 대한민국 최고분들만 모신 상태에서 제가 감사하게 첫 연출을 했어요.
– 인터뷰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진행 김현진
포토 디렉터 이지윤
영상 디렉터 이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