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①에 이어서
가장 애정이 가는 넘버는 ‘안부(Rep)’
문 : 지금까지 작품에 대해 깊은 얘기들 많이 했는데 이제 조금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로 넘어가 볼게요. 배우들을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는지 좀 궁금해요. 한스 역의 배우분들은 그래도 많은 작품에서 뵀던 분들인데, 하일러나 다른 배우들 같은 경우는 이런 보물 같은 배우들이 있었나 싶은 배우들 좀 많이 만나게 된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보물 같은 배우들을 캐스팅하게 되셨는지.
박 : 다 제작 PD님께서 모셔 오셨습니다. 사실 새힘이 같은 경우는 진짜 제 원픽이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한스가 그냥 딱 새힘이었어요. 그래서 새힘이를 제가 데리고 왔고, 부탁을 했죠. 근데 너무 잘해줬고. 심지어 그 쇼케이스 이후로 이제 새힘이가 전성기예요. 새힘이가 맨날 그래요. 내 인생 구한 거 박한근이라고. 진짜로. 왜냐하면 그 전에 새힘이가 고민이 많았대요. 배우를 그만해야 되나, 그만하려고 막 고민하는 찰나에 쉬고 있는데 오빠가 전화 와서, ‘그래 쇼케이스니까 한 번 하지 뭐.’하고 했는데. 그 이후로 아주 그냥 쭉쭉쭉쭉쭉쭉 되니까 되게 아빠의 마음 같은 거 있잖아요. 아 걔가 잘되니까 너무 좋고 뿌듯하고 박수 쳐주고 싶고.
다른 배우분들은 제가 잘 모르는 배우가 많았어요. 어린 친구들은 사실 저도 이제 나이가 있다 보니까 잘 모르는데, 우리 제작 PD이신 이예지PD님께서 ‘연출님 이 배우 어때요? 되게 잘해요. 믿어보세요.'(하고 모셔왔죠.) 보통 그랬어요. 어디서 이런 보물들을 데려왔는지. 정말 고마워요.
문 : 너무 좋은 배우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박 : 그 배우들이 앞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문 : 그럴 거 같습니다(웃음).
문 : 다음 질문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이 가는 넘버가 뭔지 궁금합니다.
박 : 와 진짜 이런 게 제일 힘들어요. 배우분 중에 누가 제일인지 이런 거랑 똑같거든요(웃음). 사실 이 작품의 가장 좋은 노래는 ‘새장을 벗어나’가 맞아요. 근데 진짜 박한근으로서 진짜 좋아하는 넘버는 아까 그 ‘안부 리프라이즈’. 하일러 독방에서 혼자 부르는 그 노래가 가장 가슴 아파요. 가장 와닿구요. 저는 그래서 항상 그 씬만 되면 자꾸 눈물이 나요. 불쌍해라. 불쌍한 건 한스인데 왜 이렇게 하일러가 더 불쌍할까 약간 이런 느낌.
문 : 어떤 부분에서 특히 공감이 되시는 걸까요?
박 : 그러니까 하일러가 무너지는 모습이 가슴이 아픈 게 큰 것 같아요. 사실 관객의 입장으로서 보면은 하일러가 해방구거든요. 자유를 찾아 떠나가는 탈출구이자 해방구란 말이죠. 그런데 나는 너를 해방구로 생각하고 지금껏 보고 있는데, 너 때문에 한스가 변해, 변하고 있어서 너무 기쁘게 보고 있는데 네가 무너진다고? 이게 너무 저 같았어요. 그 모습이.
나는 이렇게 오랜 시간 이렇게 몸과 마음을 다 투자해서 연기를 하고. 관객분들은 점점 미쳐가는 나를 보고 점점 좋아해 주시고. 점점 울고 있는 나를 보고 같이 슬퍼해 주시고. 같이 카타르시스도 느끼고 해방 탈출구를 찾아가시고. 그게 좋으시니까 또 보러 오시고. 너무 감사하게도 정말 감사하게도 (그랬죠.)
근데 정작 이 마음 안에 무너지고 있던, 깨져버리고 부서지고 있던 나를 못 봤던 예전의 과거, 나의 불안감. 그래서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너무 힘들었했던 저의 그 모습이 약간 보이는 (것 같아요). 남들에게 행복을 찾아가라고 말하고 있고, 결국 행복을 주는 사람인데. 본인은 불행해지고 있는 그런 느낌.
그리고 노래 자체가 멜로디가 너무 슬퍼요. 일단 멜로디가 슬프고, 그 노래가 첫 노래잖아요. 첫 번째 1번 노래란 말이에요. 근데 1번 노래할 때는 둘이 같이 듀엣으로 부르고. 서로 화음도 쌓는데. (리프라이즈에선) 혼자 외롭게 감당하고 있는 그 모습이 슬퍼요.
문 : 사실 한소절 부탁드려 볼까 했는데 안 되겠네요.
박 : 그 노래는 눈물 없이 부를 수 없는 노래예요.
문 : 만약에 연출님이 극 중에 한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다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신가요?
박 : 며칠 전에 태유(문태유)가 공연을 보러 와서 영미와 함께 술을 마시는데, 영미가 딱 그러더라고요. ‘와, 태유 오빠 이거 하면 진짜 하일러다. 한근 오빠도 한스다. 한스 하일러. 둘이 같이해.’하고(웃음). 근데 사실 저도 (둘의 연기 성향을 봤을 때) 저는 한스 같고, 태유는 하일러인 거 같아요.
문 : 어떤 분들께 특히 이 공연을 추천해 주고 싶으세요?
박 : 사실은 모두예요. 우리. 학생들의 이야기니 학생들도 많이 봤으면 좋겠지만, 저는 성인들이 더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이미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잖아요. 어린 시절의 꿈을 잊은 채. 그 꿈과는 다른 길. 혹은 그냥 살다 보니 (주변 상황에 맞춰서 포기를 한). 그런 우리네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이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성인들이. 물론 학생들도. 그냥 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웃음). 맨날 매진 사례 받았으면 좋겠다. 만원(웃음)
문 :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만원사례를 받으셨죠?
박 : 한 번 했는데 그 때 전 배우 전 스태프에게 주더라고요. 그날 없던 사람들도 줘서 저도 며칠 있다 갔더니 주시더라고요.
문 : 어디 쓰셨나요?
박 : 어떻게 쓰겠어요. 내 인생 첫 연출에 첫 매진 만원인데. 봉투에서 꺼내지도 않았어요. 봉투째 집에 딱 뒀어요.
문 : 액자에 넣어야겠네요.
박 : 그럴까요? (웃음)
문 : 20년 전 연출을 꿈꿨을 때와 지금 연출이 되었을 때 마음가짐이나 지향점에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박 : 처음에 하고 싶었던 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영화감독이었고, 장르 자체가 다르다 보니 메커니즘 자체가 달라서 비교는 잘 안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제가 처음 연출을 맡으며 모든 스태프들에게 공평하게 하려고 노력했는데도 되게 배우들을 위해서 하고 있더라고요. 무조건 배우가 돋보이게.
사실 이 작품이 배우가 돋보여야 작품도 돋보이거든요. 배우 하다가 연출이 처음이다 보니까 동선을 짤 때 제가 직접 연기를 다 해봤어요. 대사를 가지고 내가 여기서 눈물이 나면 이 동선은 해도 되는 동선이다. 내가 해봤는데 불편하면 배우들한테는 시키지 말자. 그래서 씬 나가기 전날 밤에 미리 다 연습실에서 제가 연기해 보고 동선을 만들었어요. 근데 또 남자가 하는 연기랑 여자가 하는 연기가 달라요. 그래서 배우들이 다르게 한다면 다 배우에게 맞춰서 바꿨어요.
20년 전에 연출하려고 했을 때 마음과 달라진 거? 더 배우를 위하고 있는 거? (웃음) 약간 어쩔 수 없나 봐요. 내가 배우여서 그런지. 왜냐하면 쟤네들이 왜 힘들어하는 지를 아니까 쟤네들 지금 뭐가 힘들구나, 아 쟤네들이 지금 뭐가 필요하구나. 눈빛만 봐도 아니까.
문 : 그렇게 편하게 해서 잘하면 스태프들도 더 편해지는 거잖아요.
박 : 그렇죠. 그러니까 이제 뭐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분들한테도 두루두루 잘하려고 노력했죠. 그런데 뭐 최대한 예민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어우, 엄청 예민해지잖아요?
문 : (연출은) 생각할 게 많으니까요.
박 : 너무 많으니까 잠도 못 자고 맨날 맨날 이게 다크서클 이렇게 (내려오고). 추리닝 입고 맨날 연습실에 가 이러고 있으면 또 끝났대요. 끝났구나. 가자. 가면 또 회의하고요.
문 : 준비하시는 동안 광염 소나타도 하지 않으셨어요?
박 : 그러니까 제 정신도 피폐해져 있죠.
문 : 피아노도 직접 치셔야 하잖아요.
박 : 응. 그것도 그러니까 맨날 피아노는 새벽에 연습하는 거죠. 10시,11시에 연출 끝나고 회의하고. 12시, 1시에 내 작업실 가서 2시 3시 4시까지 피아노 하다가 집에 와서 잠깐 눈 붙이고 그리고 또 나와서 거의 뭐 그렇게 살았죠. 한 몇 달을.
문 : 와, 저는 도저히 못 할 것 같네요.
박 : 그리고 광염 공연날은 막 애들 연습시키다가, 오 미안해. 나 공연 가야 돼. 그리고 공연가서 이제 막 미쳐가지고.
문 : 정신과 에너지를 진짜 많이 쓰는 것 같네요.
박 : 최강이에요 최강.
문 : 그래도 많은 팬분들이 참 좋아하셨어요.
박 :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요즘 대학로 프린스들과 함께 공연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그저 감사하죠.
연출 박한근이 본 배우 박한근은 빵점. 배우 박한근이 본 연출 박한근은 노력 점수 50점
문 :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는데 연출로서 배우 박한근을 평가한다면? 배우 박한근이 연출 박한근을 평가한다면 어떤지 양쪽의 측면에서 한번 얘기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연출을 하다 보니까 분명히 배우로서 봤을 때랑 다른 포인트 분들이 더 보였을 것 같거든요.
박 : 연출로서 봤을 때 배우 박한근은 빵점인 것 같아요. 실력을 떠나서
문 :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박할까요? 설마 점수가 마이너스 1점에서 0점까지인 건 아니죠?
박 : 아니에요. 뭐 빵점까지는 아니겠지만. 배우 할 때 연출하고 많이 싸웠거든요. 싸운다라는 게 긍정적인 싸움이긴 하지만 좋은 작품을 위해서 그만큼 연출쌤과 말을 많이 했어요. 제가 이렇게 열 몇 명의 배우를 이렇게 두고 보니까 아, 연출은 이 배우 저배우, 모든 배우들에게 한 명 한명 다 얘기해야 되잖아요. 또한 모든 스태프 분들들에게도. 너무 연출을 피곤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어요. 다음부터 혹시나 배우를 하면 나는 절대로 좋은 그림을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나대지 말아야지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배우 박한근이 봤을 때 연출 박한근은 별로. 왜냐면 공부를 좀 더 해야 될 것 같아요.
문 : 왜죠?
박 : 연출 박한근이 처음이니까 열심히 한다고 해봤는데 확실히 많은 벽에 부딪히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이 연출이다 보니까 배우 박한근이 보는 연출 박한근이 조금 점수는 높을 것 같아요. 왜냐면 고생했거든. 조금 더 주고 싶어. 지금까지 고생했으니까 점수를 50점 정도는 더 주고 싶어.
문 : 다음 배우 박한근이 되면 또 그때는 점수 좀 올라가지 않을까요? 연출을 경험했으니까요.
박 : 그럴 수 있죠.
문 : 점점 점수가 올라가서 만점까지 가겠네요.
박 : 그 전에 이 바닥에 없지 않을까요?(웃음)
문 : 전에 배우는 인간을 탐구하는 직업이라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그러면 연출은 어떤 사람일까요?
박 : 똑같지 않을까요? 배우가 인간을 탐구하고 인간을 표현하는 역할이잖아요. 그러면 그런 배우들을 모아서 무언가를 만들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런 역할이 아닐까요? 연출은.
근데 사실 꼭 모든 작품이 꼭 메시지가 있어야 된다라는 거는 좀 아닌 것 같아요. 굳이 이게 정말 사회적으로 꼭 메시지가 있어야만 하냐? 아뇨. 저는 그건 오히려 반대예요. 그건 관객이 판단해 줄 몫이죠.
문 : 배우로서의 차기작이나 연출로서의 차기작이 예정되어 있는 것들이 있나요?
박 : 아직은 없습니다. 올해는 없을 것 같아요. 올해는 음 일단 좀 더 재정비가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좀 자유를 찾아 떠나고 싶은? 그래서 올해는 저를 스스로를 내버려 두고 있어요. 너가 하고 싶은 거 좀 해봐라 라고. 작품적으로는 크게 지금 계획된 건 없고, 일본 콘서트가 있어요. 연말에도 일본 콘서트가 있을 것 같은데 정해지지 않아서. 이게 자꾸 한국 팬분들에게 미안한데 자꾸 일본에서 콘서트가 생기네요. 아무튼 올해는 백수(웃음)
문 : 나를 찾는 시간이나 자아 찾기일까요?
박 : 자아찾기 좋네요. 수레바퀴 아래서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자아 찾기’. ‘나의 목소리를 듣고 나를 찾는 것.’ 그게 아닐까 싶네요.
문 : 배우로도 20년인데 앞으로는 또 원년을 맞이하신, 박한근 연출님에게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빌겠습니다.
박 : 감사합니다. 오늘 너무 즐거운 인터뷰였습니다.
문 : 감사합니다.
2시간에 가까운 인터뷰 내내 작품의 이야기를 하는 박한근의 얼굴은, 진지하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이었다.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중에도 자연스럽게 작품과 스태프, 그리고 배우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숨길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영화학도에서 가수로, 뮤지컬 배우로, 이제는 연출로 돌아온 박한근. 무대 위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는 매번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얼마나 많은 노력이 그 안에 켜켜이 쌓여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이번 인터뷰는 그 노력을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다음의 박한근이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도 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안에는 그가 쌓은 열정과 노력이 또 한 번 나이테가 되어 남아있으리라는 것.
박한근의 다음 행보와 함께, 지금까지 박한근을 만들어온 그의 과거와 현재에 박수를 보내본다.
인터뷰 진행 김현진
포토 디렉터 이지윤
영상 디렉터 이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