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겸(한광고, 17)이 새 역사를 썼다.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스케이터로는 최초로 청소년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것. 유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여자 싱글의 유영을 이어 두 번째다.
이번 김현겸의 금메달이 더욱 짜릿한 것은 김현겸이 스스로 이룩해낸 대역전극이기 때문이었다. 27일 쇼트 프로그램에서는 국제대회에서 성공률 100퍼센트를 기록하던 트리플 악셀에서 실수를 하며 3위에 머물렀지만, 프리 프로그램에서는 완벽한 연기로 2등의 아담 하가라(슬로바키아)를 0.5차로 제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프리 프로그램을 연기한 직후, 모든 것을 쏟아낸 듯 김현겸은 후련한 얼굴이었다.
당일의 경기 소감을 물어보자 김현겸은 “되게 긴장을 많이 했던 경기였는데 그래도 차분하게 끝까지 잘해서 정말 뿌듯한 것 같고 지금까지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해외 해설진들이 ‘어메이징’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의 경기력이었다.
쇼트프로그램의 실수를 극복해 만들어낸 결과이기에, 쇼트프로그램의 실수를 이야기하는 데에도 지난 실수의 아쉬움보다는 앞으로를 바라보는 향상심이 느껴졌다. “작년에 제가 처음으로 트리플 악셀을 뛰었고 그 뒤로부터 쇼트에서 악셀 실수는 한 번도 하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나와가지고 그때 당시에 되게 당황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라고 담담하게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뒤이어지는 대답에서 실수를 딛고 프리프로그램에서 완벽한 연기를 보일 수 있던 저력을 엿볼 수 있었다. “제가 항상 넘어질 때마다 바로 드는 생각이 다음 거라도 잘 살리자 이런 마인드여서 나머지를 깔끔하게 (수행)해서 이렇게 잘 된 것 같습니다.”라고.
이런 김현겸의 모습은 시상식 이후로도 이어졌다. 시상식이 끝난 후 몰린 수많은 취재진들의 질문 속에서도 김현겸은 미소를 띤 얼굴로 단단하게 대답했다. 금메달을 획득한 소감에 대해 질문하자 김현겸은 “처음부터 메달을 목표로 한 건 아니었었는데 이렇게 또 따고 나니까 그래도 솔직히 말해서 정말 좋은 것 같고 너무 감격스러운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본인의 차례가 끝난 뒤 다음 두 선수의 경기를 기다리며 떨리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메달 생각은 계속 없었어요.”라며 “그냥 제가 클린 경기를 했다는 거에 정말 만족을 하고 있었고, 경기 결과야 이제 크게 중요치 않고 했던 대로 해와서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고 대답했다.
홈경기의 장점이지만, 선수들에게는 부담이 되기도 하는 큰 환호와 응원에 대해 질문하자 “사실 쇼트 날에는 처음으로 그렇게 받아보는 환호였어서 더 긴장도 많이 되고 그랬었던 것 같아요.”하고 대답한 김현겸은 “그래도 프리 날에는 이제 적응이 되고 하니까 더 응원처럼 느껴지고, 덕분에 힘이 많이 됐었던 것 같아요.”라며 응원을 해준 관중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김현겸의 국가대표 동료이자 롤모델인 차준환의 조언도 도움이 되었다고, “웜업 같은 거 끝나고 나면 관중석을 좀 마인드 컨트롤하라고, 이런 식으로 조언도 많이 해줬었고.”라며 “이번에 경기 뛰면서 준환이 형이 평창 올림픽 때 얼마나 큰 부담을 가지고 했을지 한번 생각해 보게 됐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피겨스케이팅 대회의 무대이기도 했던 강릉 올림픽파크 아이스 아레나가 차준환이 평창올림픽에서 섰던 무대라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했다는 김현겸. “준환이 형이 하는 점프들이랑 (제) 점프는 좀 결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을 해서 준환이 형처럼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은 하지만, 준환이 형의 마인드 적인 면에서 정말 배울 게 많고, 본받아서 열심히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청소년 선수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기도 한 유스 올림픽. 선수촌에서 특별한 추억은 없는지 질문하자 김현겸은 게임센터를 꼽았다. “게임센터 365에서 여러 가지 경험들 하면서 배지들도 타국 선수들이랑 많이 교환하고 이런 게 정말 큰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웃은 김현겸. 절친인 아이스 댄스의 이나무 선수와도 게임센터에서 함께 놀았다고.
이번 유스 올림픽 참가를 위해 첫 시니어 챔피언십인 사대륙선수권을 포기한 것에 대해서는 “유스 올림픽은 이제 인생에서 딱 한 번만 할 수 있는 경기이기 때문에 이 선택은 전혀 후회가 없고, 다음 시즌에 다다음 시즌에도 4대륙 같은 대회에서 큰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사대륙선수권을 포기하며 첫 시니어 챔피언십이 된 2024 세계 선수권에 대해선 “시니어 대회이기 때문에 큰형들이 많이 나오는 만큼 아직까지는 부담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좀 편한 마음가짐으로 한번 또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라며 전략가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경기장에서 제 손으로 애국가를 올릴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것 같아요.”라는 김현겸. 2월 1일 열리는 팀전에서 그가 다시 한번 애국가를 울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 팀이벤트는 부담 안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또 해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한 김현겸. 금메달을 획득한다면 이번 유스올림픽에서는 한국 선수 중에 유일한 2관왕이 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애국가만큼이나 값진 경험과 뜨거운 성원이리라 생각한다. 오늘과같이 뜨거운 성원이 쏟아진다면 애국가도 함께 울려 퍼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