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저녁, 도쿄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ISU 피겨스케이팅 선수권에서 피겨 요정 이해인(17, 세화여고)이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로써 이해인은 김연아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선수권 포디움에 오른 대한민국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터가 되었다.
세계선수권 상위 입상자들의 갈라쇼를 앞둔 26일 오전, 이해인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해인은 시종일관 밝은 얼굴로 인터뷰에 임했다.
아쉽게 시작했지만 멋지게 마무리한 시즌. 100점을 주고 싶어요.
시즌 초반 그랑프리 시리즈 2개 대회에서 아쉬운 4위로 포디움에 오르지 못했던 이해인은 “그랑프리 시리즈가 끝나고 많이 아쉬웠기에 세계선수권에 출전하고 싶었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해인은 시즌 후반부에 있는 2개의 챔피언십인 4대륙과 세계선수권을 1위와 2위로 멋지게 마무리했다. 이번 시즌 자신에게 점수를 주자면 몇 점을 주고 싶냐는 질문에 “끝까지 노력한 거를 점수 매기면 이번에는 100점을 주고 싶다.”라며 웃으며 대답했다. 시즌 마지막까지 얼마나 보이지 않은 많은 노력이 있었을지 조금은 짐작 가는 대답이었다.
이번 대회 결과로 한국 선수들은 사상 최초로 팀 트로피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팀 트로피는 국제빙상연맹이 주관하는 대회로 피겨스케이팅의 4가지 종목을 모두 겨루는 국가 대항 단체전이다. 한 시즌 동안의 성적을 바탕으로 상위 6개국의 나라만 참여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번 시즌 선수들의 선전으로 국가순위 4위로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해인은 “팀 트로피 갈 가능성이 생겼다고 했을 때, 너무 가보고 싶었다.”라며 “예전부터 다른 나라들 초청되는 것을 보면서 좀 부러웠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가게 돼서 너무 기쁘고 가서 많이 즐기다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동경하던 피겨퀸 김연아의 어드바이스와 메시지
대한민국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터들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게 된 시작에는 김연아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김연아 이후 수많은 김연아 키즈들이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해인 역시 김연아를 롤모델로 삼은 김연아 키즈. 무려 김연아에게 직접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해인은 “대회라고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똑같은 얼음판에서 똑같은 작품 연기하는 거니까, 자신감 있게 하라고 많이 말씀해 주셨어요.”라고 말했다. 대회 끝나고 김연아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며 이야기하는 이해인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가득했다.
솔직함이 매력, 해외까지 팬들을 몰고 다니는 사랑 받는 스케이터.
이해인은 통통 튀는 매력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니어 시절부터 국제대회까지 따라와 응원해주는 팬들도, 이른 아침 대회 출국을 마중하는 팬들도 있다. 아마도 특히 이해인의 솔직함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된 것이 아닐까 싶다.
프리 스케이팅 마지막에 외치는 기쁨의 환호 소리도 그런 매력 중 하나이다. 이번 프리 스케이팅 마지막에는 그 환호가 잘 들리지 않았기에 이와 관련한 질문을 하자, “마지막 악셀을 뛰고서 질렀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안 들렸 나봐요.”라며 그 순간 ‘잘했다, 다 뛰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대회할 때는 안무 같은 거에 집중을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서 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라며 환호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아쉬울 법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경기장 입장 시에 관중석을 한 번 훑어보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자 “링크장도 크고 관중들도 많아서”라며 “이해인 파이팅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그쪽을 쳐다봤던 것 같다”고 답했다. ‘내 팬들이 왔구나, 구경 차원에서 둘러보시는 거냐’ 장난스러운 질문에 이해인은 맞다며 방긋 웃음 지었다.
다음 시즌엔 트리플 악셀을 시도할 예정, 아이스쇼에도 초청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피겨스케이팅 종목은 점점 고난이도의 점프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비시즌,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이해인이 훈련할 때 프리 스케이팅에 트리플 악셀을 연습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원래 이번 시즌에 트리플 악셀에 대한 계획이 있었는지 질문하자, “대회에서 시도해 보려고 했는데 아직은 트리플-트리플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완벽하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 후에 천천히 트리플 악셀의 컨시를 올린 후에 넣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는 다시 시도해 보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덕분에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었으니 결과적으로 이해인의 선택이 옳았다.
K-Pop 전도사가 되어 다양한 케이팝 음악을 갈라로 사용 중인 이해인에게 다음 갈라로 골라 놓은 노래가 있을지 질문했다. “원래 이번에는 Hype Boy를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기존 갈라를 하기로 했어요. 아마 다음에는 신곡이 나오면 그걸 하지 않을까 싶어요.”라며 다음 갈라 프로그램을 예고했다. 이런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는 아이스쇼에 대한 계획을 물어보자, “시즌이 끝나면 아이스쇼가 여기저기에서 많이 열리는데, 아직 초청된 적이 없어서, 그래도 이번에는 잘했으니까 불러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지현정 코치님께 감사
오랜 시간 지현정 코치와 함께한 이해인에게 코치님과 대회 후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어봤다. “클린할 자신은 있었는데, (정말로) 클린할 줄은 몰랐다. 이런 말을 했던 거 같아요.”라며, “제가 연습할 때 섣불리 미래부터 걱정해서 스트레스 많이 받고 연습을 제대로 못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고 제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마음을 전했다. “대회 날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도 선생님이 잘 만들어 주신 것 같아서 너무 감사드리는 것 같아요.”라며 이야기하는 이해인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수험생활에 대한 걱정은 나중에 할래요.
3월부터 고3 생활을 시작한 이해인. 아무래도 대한민국에서 고3의 무게감은 만만치 않다. 혹시 걱정되지는 않을지에 대해 물어보자 “딱히 지금부터 걱정되지 않아요. 걱정을 해도 나중에 하지 않을까요?”라며 시원한 대답을 했다. 현재의 문제와 걱정에 매몰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는 원동력이 이런 마인드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싶었다.
시간이 맞지 않아 가지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만남과 좋아하는 뮤지컬 관람에 대한 오프시즌 계획을 말하는 이해인의 모습은 영락없는 고등학생 소녀였다. 한국에 가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은 고양이 제니와 노는 거라고.
다음 시즌엔 더 좋은 모습으로 나타날게요.
마지막으로 국내외에서 응원해 주시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어보자, “이번 시즌 초반에 조금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려서 저도 마음이 조금 아팠는데, 그래도 시즌 끝난 거 아니었으니까 열심히 끝까지 노력해서 좋은 모습으로 마무리하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제가 어떤 모습이든지 똑같이 많이 많이 응원해 주시고 힘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다음 시즌에도 더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