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자 경재석.
2021년부터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의 맏형 자리를 든든히 지키던 경재석(22)의 별명이다. 지난 4월 2일, 전주화산체육관빙상경기장에서 개최된 종별선수권에서 경재석은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아직도 시즌 끝나서 쉬는 것 같다”는 경재석을 비가 내리는 15일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피겨스케이터 경재석의 시작
일반적으로 피겨스케이팅은 만 9세 이전에 시작한다. 경재석은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 늦은 나이에 분당 올림픽 스포츠센터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신었다. 빠르게 성장한 그는 곧 2회전 악셀까지 성공했고, 국가대표를 다수 지도하고 있던 과천의 최형경 코칭 팀으로 이적했다.
더블 악셀은 업계에서 통칭 ‘선수로서의 척도’로 불린다. 늦은 나이에 피겨스케이팅의 입문한 경재석은 빠르게 점프를 체득하여 전문 선수로서의 꿈을 키웠지만, 늦깎이 선수만의 고충도 있었다.
“과천은 A/B/C팀으로 나뉘어 있거든요. 더블 악셀을 뛰면 그 이상은 A팀이고 그 이하는 B팀인데, 제가 되게 애매했죠. 급수는 2급인데, 더블 악셀을 좀 뛰려고 하고 있었고, 나이도 많으니까 (어느 팀에 들어갈지) 약간 애매한 거예요. 처음에는 A팀에서 훈련하다가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선생님께 ‘여기서 못 하겠다.’, ‘이 팀에서 좀 (빼달라고)…’. 너무 늦게 시작했으니까, 스케이팅이 아무래도 너무 부족하고, 기본적인 크로스도 자세가 똑바로 안 돼 있었어요. 최형경 선생님이 되게 집중적으로 봐주셨어요.”
경재석은 이때를 피겨스케이팅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는다. ‘새 시작’이라는 느낌이 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훈련이 거의 2배 이상이었어요. 제대로 된 훈련을 하는 게 처음이어서 정말 새로웠고,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또 과천에서 신 선생님 팀으로 옮겼을 때는 또 완전히 다른 분위기니까 거기서 그런 것도 있었고. 팀이 옮겨지면 분위기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 보니까, 그 순간이 저한테 많이 와 닿았던 것 같아요.”
2018년. 경재석은 신혜숙 코치와 새로운 훈련을 시작한다. 국내 피겨스케이팅계에서도 ‘경재석’이라는 뉴 페이스를 의식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프리스케이팅은 과감한 안무 수행과 연기로 마이클 부블레의 <Fever>와 <Sway>의 리믹스. 경재석은 이 프로그램과 함께 성장하며 처음으로 연습에서 트리플 악셀을 성공하기도 했고, 두 번의 주니어 그랑프리를 출전하기도 했다. 희노애락을 함께한 효자 같은 프로그램이지만, 경재석은 아직도 약간은 부끄럽다며 얼굴을 붉혔다.
“너무 부끄러워서. 그런 스타일 프로그램이 너무 처음이어서…. 그때 미야모토 겐지 안무가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지도해주셨어요. 모자 벗고, 옷 벗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해주셔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지금 보면 (스스로 봐도) ‘킹’ 받더라고요.”
코로나, 트라우마, 그리고 경재석의 극복법
2021년 3월, 경재석은 태극마크를 달았다. 지금까지 상비군이었던 그가 처음으로 태릉에 입성한 시즌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훈련은 물론, 경기장도 2년 동안 그 문을 굳게 닫았다. 국제빙상연맹(ISU)주관 대회들은 물론 국내 경기 역시 간신히 취소를 면했다. 2020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회장배 랭킹대회는 역설적으로 2021년 3월에야 막을 올렸다. 우여곡절을 넘기고 겨우 획득해 낸 국가대표 타이틀이었지만, 경재석은 이 시즌은 “후련하지 않다”고 회상했다.
“약간 턱걸이로 (국가대표가) 된 느낌이라 후련하지 않았어요. 21/22 시즌은 처음으로 랭킹대회와 종합선수권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포디움에 들기도 하고, 사대륙 선수권에 출전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뭔가 이룬 것도 많고, 트리플 악셀을 처음 제대로 보여준 시즌이기도 해서 (21/22 시즌이)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2021년, 경재석은 피겨스케이터로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지만, 고난도 함께 찾아왔다. 당초 2021년 1월 21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되기로 했던 루체른 동계 유니버시아드가 코로나19 이슈도 12월로 연기되었고, 결국 최종 취소되었다. ‘대학생들의 축제’, ‘미니 올림픽’으로 불리는 유니버시아드 출전에 대한 기대감에 차 있던 경재석이었다. 경재석은 포기하지 않고 2023년 레이크플래시드 대회를 위해 두 번째 선발전을 치렀다. 결과는 3위. 평소 국가별 쿼터를 고려하면 충분한 순위였으나, 그는 ‘찜찜한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저는 사실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진짜 너무 나가고 싶었어요. 정말 나가고 싶었는데… 특히 이번 회차에는 그 전에 이미 두 장으로 줄어서 약간 트라우마같이 남아 있는 거예요. 선발전에서 3등을 했고 당시에는 티켓이 3장이라 사람들은 ‘축하한다.’ 그러는데…. 속으로 ‘찜찜한데’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2장으로 줄게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때 좀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제 그다음 기회는 더 이상 없는 거니까…”
출전이 무산된 12월 당시, 경재석은 대학교 4학년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세계대학 경기대회는 대학생만 참여할 수 있고, 홀수 해마다 격년으로 열리는 대회이다. 꿈에 그리던 무대를 다시 도전할 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런 청천벽력이 떨어진 건 국가대표 선발전인 2022 회장배 랭킹대회 불과 며칠 전. 이 순간을 선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으로 꼽은 경재석은 ‘정말 힘들었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것부터 집중하자’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고 전했다.
“일단 랭킹 때 나름 만족할 만한 경기를 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힘들었지만) 그냥…, 시간이 해결해 준 것 같은 느낌이에요. 힘들었다가도 일단 바로 내일 또 훈련이니까. 계속 그냥 정신없이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저도 약간 자연스럽게 잊힌 느낌인 것 같기도 해요. 집착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런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을까. 경재석은 ISU 주관대회인 2023 사대륙 선수권 출전권을 당당하게 거머쥐었다. 두 번째 나간 사대륙 선수권에서 경재석은 트리플 악셀을 깔끔하게 성공한 클린 쇼트 프로그램에 이어, 개인 최고점까지 달성한다. 경재석은 선수 생활 가장 뜻깊은 경험으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이 대회를 지목했다.
“정말 처음으로 관중이 보였어요. 원래는 무조건 심판만 보고 (좁게 봤는데)…. 쇼트 프로그램 전부터 자꾸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긴장도 안 되고, 이왕 하는 거 그냥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즐기면서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들어갔어요. 관중들도 보이고 뭔가 더 여유롭고, 시작하기 전부터 그랬어요.”
경재석이 이번 시즌 선택한 프리 프로그램은 영화 <싱 스트리트> OST였다. 2017년, 신예지 안무가가 처음 추천했지만, 어린 나이에 어려운 프로그램이라 한 차례 고사한 바 있다. 긴 시간이 지난 후 새로운 프로그램을 구상 중 떠올라 요청했고, 신예지 안무가가 흔쾌히 수락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서정적인 음악으로 시작해, 분위기가 반전되며 환호를 이끄는 이 프로그램은 ‘관중이 보인다’는 22살의 경재석에게 맞춤 선곡이 되었다. 의상 역시 국내 최고의 의상 제작가인 안규미 디자이너가 보내준 세 개의 스케치 중 한눈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코로나19가 끝나고 처음으로 팬들과 대면한 시즌에 <싱 스트리트>는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 부모님께서도 ‘우리 아들한테 팬이 이렇게 많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농담할 정도로, 경재석은 이 프로그램으로 국내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응원해 주는 분들의 존재에 대한 감사와 행복을 전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팬과 선물로 은퇴 경기에서 받은 메시지 북을 언급했다.
“이번 시즌 유관중 경기가 처음 가능해졌어요. 이렇게 선물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진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고, 되게 행복했거든요. 그중에서도 이번에 마지막에 어떤 분이 이렇게 메시지 북을 만들어주셔서 응원 글과 다음 시즌 추천곡을 적어서 주셨는데, 진짜 너무 소중했어요. 이런 걸 (제가) 받아도 되나 싶었고.”
경재석과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
경재석은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이시형(22, 고려대)과 일본에서 진행된 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대회를 관람했다. 평소 고민과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는 동갑내기 동료이다. 처음 국가대표로 태릉에서 훈련을 시작했을 때, ‘선배’인 이시형 선수에게 많이 물어보고 의지하며 더 가까워졌다고.
시즌을 함께 보내며 더욱 돈독해진 둘은 일본 여행을 겸하며 이번 세계선수권 관람을 함께 출국했다. 연맹 관계자를 통해 직접 구매했다고 해 인터뷰어를 놀라게 한 것은 덤. 매번 선수로서 경기에 참석했던 경재석과 이시형은 이 기간에 국가대표 선수들을 응원하며 ‘과호흡’도 하며, ‘피겨 팬 체험’을 했다고 한다.
“이번 월드 티켓이 일일권 티켓이라 경기를 하루 안에 다 보는 거여서, 아이스댄스/페어도 처음 봤거든요. 거의 다 갔었는데, 그래서 처음으로 저도 직관하면서 5~6시간씩 앉아 있는 적이 처음이었는데… 팬분들 너무 대단하시다…. 선수일 때는 저만 하니까 오히려 그게 편한 것 같은 거예요. 밥도 중간에 정빙할 때 15분씩 있는 시간에 먹는데, 그 뒤가 궁금하니까 삼각김밥 먹고 “빨리 가자, 가자” 이러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랬어요. (피겨스케이팅 팬이) ‘진짜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진짜.”
경재석과 이시형의 응원을 받은 대한민국 국가대표 팀은 최고의 성적을 냈다. 이해인이 2위에 오른데 이어, 25일 저녁에는 차준환(21, 고려대) 역시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로 인해 한국 선수들은 다음 연도 몬트리올 세계선수권에 세 명의 남자 선수를 파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 경재석의 은퇴가 더욱 아쉬운 이유이다. 경재석에게 늘어난 출전권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는지 질문했다. 개인의 진로에 관해 복잡하면서도, 경재석은 차준환에 대한 축하를 잊지 않았다.
“준환이가 워낙 너무 잘하는 선수지만 세계적으로 워낙 잘하는 선수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세계선수권에서 저는 어느 정도 성적이 낼지 상상이 안 갔어요. 그런데 쇼트를 끝나고 그렇게 좋은 성적을 받고, 시형이랑 ‘준환이가 진짜 사고 치는거 아니야?’, ‘진짜 내일 난리 나는 거 아니야?’ 이랬어요. 진짜 우스갯소리로, 시형이한테 ‘내가 진짜 준환이가 티켓 3장 획득하면 내가 진짜 다음 시즌 더 생각해 본다.’ 이렇게 말했거든요. 실시간으로 보면서 ‘진짜 이게 현실인가’ 싶은 거예요. 솔직히 그때는 은퇴를 정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그런 일이 일어나니까 진짜 미묘하더라고요. 축하해 주는데, 내년이 정말 좋은 기회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걸 도전도 못 해본다는 게 아쉽기도 하고. 또 근데 너무 축하하고.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세계선수권 관람 후 아이스댄스와 페어스케이팅에 깊은 인상을 받고 왔다는 경재석. 국내에 귀한 남자 선수로서 혼성 종목에서의 제2의 커리어에 대한 질문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아이스댄스는 어릴 적부터 “솔직히 제안을 여러 번 받았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하지만 곧 손사래를 쳤다.
“페어스케이팅은 이번에 처음 본 건데 리프트도 실제로 보니까 더 높이 올라가더라고요. (페어스케이팅) 어떨 거 같으세요? 키도 커야 하고, 몸도 커야 하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스댄스는 진짜…, 솔직히 제안도 몇 번 받았었는데, 아무래도 남자가 귀하니까… 그런데 진짜 못하겠다고 했어요. 아이스댄스는 실제로 처음 봤는데, (스케이트) 엣지가 완전히 누워있던데요. 저게 스텝이구나. 아이스댄스는 스케이팅이 엄청 좋아야 하니까요. 만약에 고르라고 하면 차라리 아이스댄스보다는 페어가 나을 것 같아요. 스케이팅 스킬이야말로 재능인 것 같아요.”
경재석에게는 같은 팀에서 훈련하던 또 다른 우상이 있다. 바로 은퇴한 전 국가대표 이준형(26)이다. 2020년부터 국가대표 기간 내내 사용하며 최고의 기억을 안겨준 쇼트 프로그램은 이준형이 안무했다. 원래부터 이준형의 팬이었다는 경재석은, 선망하는 대상에게 받은 작품이어서 더 열심히 하려고 했다고. 이런 경재석에게 ‘뮤지컬 배우 이준우’에 관해 묻자, “준형이 형, 너무 멋있지 않아요?”라고 눈을 반짝이며 그에 대한 팬심을 숨기지 않았다.
“옛날부터 그냥 너무 멋있었어요. 그냥. 형을 예전부터 너무 좋아했어요. 같은 팀에 있을 때, 저는 팀 훈련하고 형은 거의 대표 훈련을 해서 거의 같이 못 탔었는데, 가끔가다 한번 타면 거의 그냥 벽에 붙어서 봤던 것 같아요. 형 대학로 가서 뮤지컬도 자주 보러 가고 그랬던 것 같아요. 데뷔작인 <라 레볼뤼시옹>, <V Ever After>도 보고 <스톤>도 봤어요. 그 이후로는 못 본 것 같아요. 안 그래도 형이 먼저 연락해 주셨거든요. “은퇴했다며?” 이러면서 한번 만나자고. 그래서 약간 서프라이즈처럼 가려고 바로 알아봤는데, 이미 다 매진이더라구요.”
마지막으로 이준우 배우에게 한마디를 전하라는 말에, 주먹을 불끈 쥐며 “앞으로도 화이팅.”이라는 수줍은 한 마디를 남겼다.
‘영혼을 울리는’ 경재석, 끝이라는 새로운 시작
피겨스케이팅은 아마추어 종목이다. 많은 아마추어 종목과는 달리 실업팀 역시 없다. 세계 대회에서 받는 상금을 제외하면 수입 구조가 없어, 대부분의 선수는 가정의 투자로 선수 생활을 지속한다. 이러한 점이 피겨스케이팅의 선수 생명 단축이라는 악순환으로 거듭되고 있다. 21/22, 22/23 국가대표를 연임한 경재석 역시 같은 고민에 빠졌다.
“(마지막 학기) 종강하고 나서, 갑자기 확 앞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들고, 훈련에 집중도 안 되는 거예요. 지금 선수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고, 그걸 앞으로 내가 어떤 진로로 살아야 하고, 군 문제도 있고…, 고민했었는데. 솔직히 랭킹, 종합 전까지도 정확한 생각이 없었는데 종합 끝나고 대표가 딱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 때, 마지막일 것 같다는 느낌이 갑자기 확 들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과 많이 얘기하고 신 선생님이랑도 많이 얘기했는데. 저는 솔직히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계속 돈을 더 써야 하는 아마추어 종목이잖아요, 실업팀도 없고. 제 나이도 그렇고, 부모님께 더 이상 손을 벌릴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보면 계획된 건 아닌데. 사대륙 선수권 전에는 마지막이라는 생각 안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사기가 좀 떨어질까 봐. 일부러 그런 생각 안 하고, 무조건 집중하자고 생각했어요. 원래는 체전을 마지막으로 그만두려고 했었거든요. 쉬다 보니 종별을 안 나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신 선생님께도 다시 가서 말씀드리고, 연습하면서 마지막을 준비했던 것 같아요.”
경재석에게 선수로서 혹시 본인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점과, 그런 것들을 이루고 은퇴하는 건지 질문했다. “모든 선수의 꿈의 무대인 올림픽 출전”에 대한 아쉬움을 짧게 마무리 지었다. 대신 경재석이, 경재석만이 할 수 있는 더 큰 목표를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다.
“저희 부모님이 항상 저한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영혼을 울리는 스케이터가 돼라.’ 이렇게 항상 말씀해 주셨거든요. 정말 제가 그런 사람이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고, 저는 그런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종별 끝나고 메시지를 많이 주셨는데, ‘보면서 힘도 많이 얻었고 위로도 많이 되었고 행복했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나 꽤 괜찮은 선수 생활을 했구나.’ 이런 느낌이었어요.”
아직은 은퇴가 실감이 나지 않아 쉬는 것 같다는 경재석. 앞서 ‘MBTI 마지막 글자가 P’라고 밝힌 그답게, 앞으로의 계획 역시 뚜렷하게 세우지는 않았다. 피겨스케이팅 관련이든 아니든, 기회가 되면 뭐든 닥치는 대로 하고 싶다고. 버킷리스트인 카페 아르바이트와, 대학원 진학 후 스포츠 심리전공 역시 고려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하든 ‘조심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마음에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런 걱정 역시 덜어낼 수 있다는 점에 가장 기뻐했다.
많은 팬과 선수들의 격려와 박수 속에 경재석이 아름답게 제1막을 마무리했다. 떠나는 마지막 길에 모인 수십 개의 편지는 “상남자”이지만 동시에 “영혼을 울리는 스케이터” 경재석의 따뜻한 진가를 알아본 마음이었다. “팀을 옮기면, 분위기도 달라진다.”고 말한 경재석은 태릉에서도, 코칭 팀에서도 그 자신이 만든 따뜻한 분위기의 주축이었다. 앞으로 그가 나아갈 매 걸음에 걱정 없이 매끄럽기를 응원해 본다.
This is your life. You can be any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