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위서영에게 스스로를 묘사하는 키워드를 꼽으라 했을 때, 가장 먼저 제시한 단어였다. ‘얼음을 타는 사람’과 ‘가만히 있으면 차가워 보인다는 말을 듣는다’는 중의적 의미. 아이돌 소속사로부터 길거리 캐스팅까지 제의 받은, 통칭 ‘위미인’. 하지만 “우리 팀 아기들”이라고 후배를 칭하는 위서영의 눈빛은 부드럽기만 하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얼음, 5회 연속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위서영.
그녀를 만나 그 투명함을 들여다봤다.
‘내년에 오세요’ 했지만…
잊지 않은 꿈
“제가 4살 때부터 타고 싶다고 했대요. 4살 때 엄마가 데리고 갔는데, 그때는 맞는 스케이트 사이즈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내년에 오세요’ 했대요. 그 이후에도 계속 얘기해서 6살 때 시작하게 됐어요.”
자기 주도적인 아이였다. 끈기 있고 뚝심 있다. 어린 위서영은 돌아서면 새로운 흥미에 푹 빠지는 유아들과는 사뭇 달랐다.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하고 싶다고 엄마를 조른 것도, 그렇게 시작한 운동의 새로운 막을 연 것도 위서영 자신이었다. 맞는 스케이트가 없어 2년이나 기다린 끝에 처음 신은 하얀 스케이트화. 위서영은 선수가 되리라는 막연한 꿈보다는 피겨스케이팅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6살에 화성 유앤아이센터에서 처음 그 부츠를 신었다. 12살에 본인의 의지로 과천 실내빙상장으로 옮긴 후 쭉 최형경 코치와 함께하고 있다.
“제가 과천으로 옮기고 싶다고 엄마한테 얘기했어요. 10살 때부터 더블 악셀을 연습했는데, 2년 동안 못 뛰었거든요. 그 전의 환경은 그러니까,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느낌. 보는 것도 없고, 작은 데서 우리끼리만 하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과천 가고 나서 느꼈어요. 아,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새로운 세계가 열린 거였어요.”
과천 실내빙상장에는 어른도 따라가기 어려운 엄격한 커리큘럼이 기다리고 있었다. 코치님과 오롯이 상호작용하던 작은 세계에서, 요소마다 세분된 강습을 쫓는 ‘선수의 길’이 시작된 것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진행되는 고강도의 훈련을 견딜 수 있었던 동력은 경쟁하는 또래의 존재. 새로운 시스템에서 만난 엘리트 동료들과 주고받는 선의의 경쟁은 어린 선수에게 효과적인 동기부여였다고.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죠. 시스템이 너무 달랐는데, 버틴 것 같아요. 제 또래 애들이 많았거든요. 저랑 동갑인 애들만 저 포함 네 명이어서 경쟁이 됐던 것 같아요. 한, 두 명이 먼저 더블 악셀 뛰고, 그다음에 제가 성공했거든요. 제가 더블 악셀이 오래 걸려서 그런지, 다음 트리플 점프는 오히려 빨리 뛰더라고요.”
결과보다 마음에 남는
‘4’라는 숫자
더블 악셀이 2년이나 걸렸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위서영은 2017/2018 시즌 국내 주니어 선수권을 석권하고, 이듬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에서 4위로 두 장의 출전권을 획득했다. 동갑내기 이해인과 함께 ‘연아키즈 2세대’로 불리며 2018년 ISU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를 4위로 데뷔했다.
“원래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가서 연습도 잘하고, 쇼트 프로그램도 잘했어요. 쇼트 프로그램할 때는 진짜 하나도 안 떨렸거든요. 제가 4등을 한 거예요. 그래서 ‘대박!’ 이랬는데, (프리에서) 컨트롤이 하나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넘어지고, 울고….
7차 대회는 쇼트도 별로였고, 프리도 못했어요. 그때 제가 실수를 두 개 했을 거예요. 그런데 실수 한 개 이상은 용납이 안 되는 거예요. 연습은 잘했는데 정작 대회 때 하던 걸 못 하고, 실수하면 저한테 확 실망하는 거죠. 아예 연습부터 못 했으면 기대하는 마음도 없었을 텐데, 연습은 잘했는데 대회 때 그러면 아쉬움이 남아요. 그래서 초반에 실수가 나오면 ‘이제 진짜 절대 안 된다’라는 마음으로 임해요.”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는 이 원칙으로, 위서영은 절치부심했다. 노력은 곧 빛을 봤다. 다음 해 출전한 ISU 주니어 그랑프리 1차 프랑스 대회에서 마침내 은메달을 차지했다.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 스케이팅 모두 깔끔한 연기를 펼치며 당당히 단상에 올랐지만, 숨겨진 고충도 있었다. 스케이트 부츠가 대회 직전 무너진 것이다.
“하필 첫 공식 연습 때 스케이트가 무너졌어요. 울면서 타고 나와서, 그다음 날 아침부터 스케이트에 테이프를 감고 탔어요. 그래서 쇼트는 나쁘지 않았는데, 프리 때 스핀을 돌고 러츠로 들어가야 하는데 다리가 너무 후들거리는 거예요. ‘못하겠는데 어떡하지? 포기할 수도 없는데….’”
그러나 위서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우려와는 달리 완벽한 수행으로 당시 프리 스케이팅과 총점까지 개인 최고점을 갱신했다. 위기를 극복하고 얻은 더욱 값진 입상이었지만, 시상식과 관련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주최 측의 섣부른 판단으로 태극기를 뒤집어 게양한 것.
“제 앞, 뒤 순서가 러시아 선수였어요. 발리예바 선수가 1등에 올라가고, 제 다음 순번인 마이아 크로미크 선수 경기 중에 태극기를 3등 자리에 걸고 있더라고요. 근데 제가 최종 2위가 된 거예요. 갑자기 국기 자리를 바꿔야 하잖아요. 그래서 태극기가 이렇게 뒤집혀서 올라갔어요.”
기쁘게 은메달을 따고 참가한 5차 대회. 위서영은 이번에도 역시 큰 기복 없이 말끔한 경기를 이어 나갔다. 당시 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 가시권이었기에 결과가 더욱 기대되었던 상황. 하지만 결과는 4위였다. 큰 실수 없이 마무리했음에도 지난 대회보다 10점 이상 떨어진 수치가 눈에 띄었다. 위서영은 당시 판정에 대한 아쉬움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남겼다.
“저는 파이널 생각을 하나도 안 했어요. 쇼트 프로그램 점수 보고 그냥 ‘아, 많이 안 주겠구나’ 해서요. 전 등수가 아쉬웠어요. 자꾸 4등만 하는 거예요, 아깝게. 그대로 딱 한 칸만 올라가면 되는데. 저는 파이널보다는, 4등 한 게 너무 아쉬웠어요.”
2019년 12월, 위서영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꿈만 같은 주니어 그랑프리 은메달을 따고 꼭 4개월만이었다. 원인도 알 수 없었다. ‘감각 운동’인 피겨스케이팅 선수에서 달갑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호흡조차 부자연스러웠고, 프로그램 전체를 소화할 수 없어 체력도 급격히 저하됐다. 이런 증상은 1월 종합선수권 이후 마법처럼 사라졌지만,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을 앞두고 내내 눈물을 쏟았다.
“랭킹 대회 전에, 김해에서 팀 대관이 있었어요. 그 대관부터 갑자기 안 되는 거예요. 점프도 그렇고, 갑자기 숨이 턱턱 막힌다고 해야 하나? 그때는 그냥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은가 보다’ 했죠. 그런데 다음 날에도, 대회 때까지도 계속 그러는 거예요. 너무 힘들었어요. 대회 하러 가는 당일까지 진짜 못하겠다고 엄청 울었어요. 숨 쉬는 것도 의식하면 잘 안 쉬어지잖아요. 정말 그랬어요. 쇼트는 어느 정도 버티겠는데, 프리는 딱 그런 느낌인 거예요. 언제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할지 몰랐어요. 그래서 속으로 계속 ‘밀어, 끝까지 가야 돼!’ 그랬죠.”
“지난 시즌,
내 점수는 60점.”
위서영은 2022년 9월 챌린저 시리즈 네벨혼 트로피에서 시니어 첫 메달을 목에 걸었다. 독감 기운을 이겨내고 무결점 ‘클린’ 경기를 펼쳐 프리 스케이팅 개인 최고점을 다시 한번 새로 썼다. 한여름에도 부지런히 훈련하여, 열감 시달리면서도 최고의 성과를 일군 것이다.
“네벨혼 트로피는 준비가 잘 돼 있어서 크게 떨리지 않았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어요. 진천에 있다가 바로 출전한 거라, 준비가 조금 더 잘 돼 있었거든요. 가서도 계속 클린해서, 잘할 것 같은 거예요. 한 번도 실수 안 했으니까, 그 느낌으로 쇼트를 더 자신감 있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프리 때는 제가 아팠어요. 전날부터 살짝 감기 기운이 있었거든요. 그게 더 심해진 거예요. 머리도 아프고, 코는 계속 막혀 있고, 열도 좀 났어요. 너무 아파서 쉬고, 다음 날 현지에서 감기약 사와서 먹고 해롱해롱한 상태로 대회 했어요.”
감기도 이겨냈지만, 연이은 감염에는 도리가 없었다. 독감으로 약해진 면역체계에, 코로나 감염까지 겹쳤다. 시즌 두 번째 국제대회였던 ISU 시니어 그랑프리 NHK트로피를 앞두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바로 직전 대회에서 만족스러운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임한 대회가 더욱 아쉬웠을 터.
“저는 솔직히 독일에서 들어왔을 때 코로나에 걸린 줄 알았어요. 그런데 PCR 검사에서 아니라는 거예요. 병원에서도 독감이라고 해서 감기약을 먹었는데, 일주일 뒤까지 안 낫더라고요. ‘그냥 한번 사서 해볼까?’하고 코로나 자가진단키트를 했는데, 그때 두 줄이 나온 거예요.
그렇게 일주일을 또 쉬게 됐어요. 저는 독감 때 앓고 코로나 때는 아프지 않았는데, 후유증이 좀 심했어요. 기초 체력이 훅훅 떨어지고, 진짜 안 돌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NHK트로피 갈 때까지 힘들더라고요. 뭔가 몸이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진짜 힘이 계속 축축 빠지고, 무기력이 심했어요.”
일본 믹스드존에서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다음을 다짐하던 위서영은 점차 단단해졌다. 12월 회장배 랭킹대회에서는 프리 스케이팅 4위에 올랐고, 1월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에서도 투지를 불태우며 국가대표 자리를 사수했다. 무려 5시즌 연속이라는 대기록이었다. 이어진 제104회 전국 동계체육대회에서도 인생 처음으로 200점의 벽을 뚫으며 성공적으로 시즌을 갈무리했다.
“지난 시즌 저에게 점수를 준다면, 60점. 처음 시작은 좋았는데, 중간에 좀 안 좋았잖아요. 200점 돌파랑 국제 챔피언십 대회 나가는 것을 목표로 했어요.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200점 넘어서 반은 달성했다고 하고 싶어요. 그리고 끝에는 좋았으니까, 초반이랑 끝에 각각 30점 30점씩. 60점 주겠습니다.”
입시도 운동도,
열심히!
위서영은 이번 오프시즌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냈다. 등교도, 훈련도 성실히 임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더욱이 동계 스포츠인 피겨스케이팅의 시즌이 한창인 하반기에는 대학교 입시까지 병행한다. 면접 일자가 겹쳐 당초 계획했던 대회 일정까지 조정할 정도였다.
“4월에 캐나다 갔다 오고, 5월에는 태릉 대관이 한 달 쉬어서 학교를 매일 갔어요. 고등학교 3학년이기도 하고, 태릉이 쉬면서 공문이 안 나오니까 훈련해도 지각, 결석 처리가 다 되는 거예요. 아침에 대관 두 타임 타고, 학교에 가서 수업 전부를 듣지는 못해도 열심히 출석했어요. 덕분에 반 친구들이랑 많이 친해졌어요.
6월에는 진천선수촌에서 훈련했어요. 저는 (진천선수촌이) 항상 좋아요. 일단 전 원래 훈련지랑 집이 머니까 이동 시간이 길거든요. 그래서 훈련이 일찍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에요. 평소에는 4시에 끝나도 집에 오면 6시니까, 그제야 끝나는 느낌인 거예요. 그리고 아침에 타면 더 일찍 나가야 하잖아요. 진천에서는 4시에 끝나면 이동 없이 그냥 4시에 끝나는 거잖아요. 또 아침에 일찍 일어나긴 하지만 이동 시간이 없으니까, 쉬었다가 나갈 수 있어요. 진짜 운동만 하는 시스템이어서 좋아요. 또 웨이트장이 너무 좋아요. 기구들도 다 새것이고, 시설이 엄청 많고 쾌적해요. 그리고 의무실. 아플 때 바로 갈 수 있어요.”
위서영은 전지훈련과 진천 합숙을 통해 그랑프리 시리즈를 단단히 준비하고 있다. 이에 앞서 다가오는 10월, ISU 챌린저 시리즈 핀란디아 트로피로 시즌의 포문을 연다. 쇼트 프로그램은 직전 시즌의 <오만과 편견 OST>를 사용하며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프리 프로그램은 지난 4월 캐나다 전지훈련에서 안무가 제프리 버틀과 호흡을 맞췄다. 영국 록 밴드 Muse의 음악 <Exogenesis: Symphony>다. 직접 고른 Part III에, 안무가가 추천한 Part I을 합쳐 작품을 완성했다.
“원래는 준형이 오빠(배우 이준우)한테 안무 의뢰를 부탁했어요. 준형이 오빠 잘하잖아요. 엄마가 준형이 오빠 안무를 좋아하고, 캐나다까지 가는 게 부담이기도 해서 먼저 연락했어요. 그런데 당시에 오빠가 한참 뮤지컬을 하고 있을 때라, 바빠서 시간이 안 맞았어요.
캐나다에 가기 전에는 되게 긴장했어요. 제가 원하는 걸 영어로 어떻게 자세하게 말해야 할지 걱정했거든요. 정작 만나보니 안무가 선생님이 되게 편하게, 큰 어려움 없이 잘 짜 주셨던 것 같아요. 노래도 제가 골라서 마음에 들고, 안무에 디테일이 많아요. 음악적인 디테일을 엄청 많이 살리시더라고요. 이 동작이 이 부분에서 딱 맞고, 스핀과 음악이 맞는. 스텝에서도 음악의 이 부분에서 이렇게 손이 올라가야 하는 것까지 다 정해주더라고요. 그런 디테일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동생, 후배들이
본받고 싶어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2013년 종합선수권에서 우상 김연아를 보고 콩콩 뛰던 작은 선수, 위서영. 어느덧 태극마크를 단 지 햇수로 4년이 되었고, 다섯 시즌 연속 국가대표 타이틀을 거머쥔 ‘큰 선수’가 되었다. 간혹 얼음을 공유하는 “아기” 선수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 자상한 선배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의 꿈은 “동생, 후배들의 본이 되고 싶은 선수”. 아이를 예뻐하고, 타인을 위하는 위서영과 어울리는 일관성 있는 답변이었다.
타인에게는 다정하지만, 자신에게는 두 개의 실수도 견디지 못하는 승부사. 새로운 시즌의 목표 역시 ‘자신이 하던 것을 보여주는 것’. 그 투명하고 뚜렷한 지향점이 그녀가 가진 강한 힘 중 하나가 아닐까.
얼음처럼 차가워 보이지만 봄볕처럼 따뜻한 위서영. 그녀의 한 해가 사랑과 환희로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인터뷰 진행 김현진
촬영 및 사진 편집 박지민
영상 편집 이민정
사진 및 영상 지원 김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