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West End와 미국 뉴욕의 Broadway는 세계 양대 뮤지컬/연극 중심지로서, 수많은 공연 애호가들에게 성지 같은 존재다. 두 지역 모두 정통성과 수준 높은 무대를 자랑하지만, 실제로 관객이 경험하는 극장 문화에는 꽤 흥미로운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단순히 공연의 퀄리티를 넘어, 공연 관람 방식, 극장 구조, 관객 문화 등 다양한 요소에서 드러나는 디테일한 차이를 알아보자.

프로그램북? 브로드웨이에서는 무료 Playbill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는 프로그램북을 구매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브로드웨이에서는 모든 관객에게 무료 Playbill이 제공된다. 노란색 테두리로 상징되는 이 소책자에는 출연진, 제작진, 인터뷰, 다른 공연 정보 등이 담겨 있어, 미국 관객들 사이에서는 수집품으로도 인기가 높다.
시작 시간의 차이
웨스트엔드 공연은 일반적으로 오후 7시 30분, 매티니(주간 공연)는 2시 30분에 시작된다. 반면 브로드웨이는 대부분 오후 8시에 시작하며, 매티니는 오후 2시로 조금 더 일찍 열린다. 덕분에 브로드웨이에서는 저녁 식사 후 천천히 극장을 찾아도 충분하다.
스타 등장에 쏟아지는 박수… 브로드웨이의 환호 문화
브로드웨이에서는 유명 배우가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자동적으로 엄청난 박수갈채와 환호가 쏟아진다. 일례로 The Music Man에 출연한 Hugh Jackman이 무대에 나타났을 때는 등장만으로도 거의 공연이 멈출 뻔했다고. 반면 웨스트엔드는 전통적으로 보다 조용하고 절제된 분위기였지만, 최근엔 점점 브로드웨이식 반응이 늘어나는 추세다.
좌석 번호 방식의 차이
웨스트엔드에서는 좌석 번호가 단순히 연속적인 숫자로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브로드웨이는 홀수 좌석은 왼쪽, 짝수 좌석은 오른쪽으로 나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D1과 D3을 예매했다면 두 좌석은 나란히 붙어 있는 구조다. 이는 안내원이 빠르게 좌석을 안내할 수 있도록 고안된 시스템이다.

나이와 전통
웨스트엔드에는 Theatre Royal Drury Lane처럼 미국보다 오래된 극장이 다수 존재한다. 실제로 해당 극장은 1660년대부터 극장이 있었던 장소다. 반면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인 Lyceum Theatre는 1903년에 문을 열었으며, 상대적으로 “젊은” 극장이다.
극장 좌석 수의 차이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큰 극장은 Gershwin Theatre로 1,933석을 보유하고 있다 (Wicked 공연 중). 가장 작은 극장은 597석의 Hayes Theater. 웨스트엔드에서는 London Coliseum이 2,359석으로 가장 크며, Fortune Theatre는 432석으로 가장 작다. 전반적으로 웨스트엔드의 극장 규모가 더 다양하고 극단적이다.
브로드웨이의 ‘500석 룰’
브로드웨이에서는 500석 이상이어야만 공식적으로 ‘Broadway Theatre’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Stage 42는 정확히 499석으로, 고의로 오프브로드웨이로 분류되도록 설계된 극장이다. 웨스트엔드에는 이러한 분류 기준이 없으며, 규모나 위치에 따라 다소 유연하게 해석된다.
시상식과 규정
브로드웨이는 매년 열리는 Tony Awards의 철저한 규정 아래 운영된다. 개막일, 초청 시기, 프리뷰 회차 등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후보 자격을 얻는다. 반면 웨스트엔드의 Olivier Awards는 후보 발표 시점까지 비교적 비공개적으로 운영되며, 이로 인해 예측 불가능한 재미가 있다.
흥행 수치 공개 여부
브로드웨이는 Broadway League가 모든 흥행 수익 데이터를 주 단위로 공개한다. 덕분에 어떤 작품이 성공 중인지, 혹은 조기 폐막 위기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반면 웨스트엔드는 제작사와 극장 측이 흥행 수치를 공개할 의무가 없으며, 대부분 자체적으로 발표한다.
언더스터디 공지의 차이
브로드웨이에서는 언더스터디 출연 시 반드시 공지해야 하며, 주요 스타가 빠진 경우 환불이 가능하다. 반면 웨스트엔드에서는 이러한 규정이 없고, 일반적으로 극장 내 디지털 캐스트보드나 인쇄물로 안내하는 경우가 많다.
극장 파트의 명칭 차이
웨스트엔드의 ‘Stalls’는 브로드웨이에서는 ‘Orchestra’에 해당하며, ‘Circle’은 ‘Mezzanine’으로 불린다. 브로드웨이 극장은 대체로 2층 이상 구조가 드물기 때문에, 명칭 또한 간단한 편이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는 똑같이 뛰어난 공연을 선보이지만, 각각 고유의 전통과 운영 방식, 관객 문화가 존재한다. 한 편의 공연이라도 두 무대에서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도시를 오가며 관람하는 ‘글로벌 관객’이 늘고 있는 지금, 이 차이점들을 아는 것은 단순한 정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극장을 더 깊이, 그리고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