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메이트. 뮤즈. 대학로에서 두 사람을 표현하는 단어들은 하나같이 끈끈하며, 유일한 상대에게 쓸 수 있는 단어들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많은 작품을 함께한 배우 유승현과 음악감독 다미로. 어느새 대학로를 대표하는 콤비가 되어버린 두 사람이 함께한 9번째 작품은 음악감독 다미로의 첫 극작 작품인 ’22년 2개월’. 독립운동가 ‘박열’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다룬 이 뮤지컬은 다미로가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을 들인 작품이다. 유승현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박열’로 분했다.
성북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두 사람을 만난 자리.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사진 촬영에서도 두 사람은 쉬지 않고 새로운 작품, 앞으로 함께할 여행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는 내내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가득한 두 사람에게선 학창 시절의 소년들 같은 반짝임이 느껴졌다.
문화포커스(이하 ‘문’) : 얼마 전 유승현 배우님의 일본 콘서트에 다미로 감독님이 깜짝 등장하시기도 했어요. 사이가 정말 돈독하신 것 같은데 두 분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인연으로 처음에 알게 되셨나요.
유승현(이하 ‘유’) : 2013년인가 14년인가, 하여튼 그때 ‘홀연했던 사나이’ 쇼케이스로 처음 만났어요. 제가 그때 사나이 역으로 만나서 오세혁 작가님도 처음 뵙고, 그렇게 인사를 나눴죠.
이제 막 뮤지컬 작곡가로 커리어를 시작하던 다미로와, 방황하던 배우 유승현의 첫 만남이었다. 처음은 지금처럼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유 : 저는 이제 배우를 원래 그만두려고 방황할 때였고, 형은 이제 작곡가로 데뷔하려고 했던 때였어요. 비슷한 처지에 뭔가를 시작하려고 하면서 마음을 많이 나눴던 것 같아요. 이건 어디 콘서트에서 이야기했는데, 처음에 저를 별로 안 좋아했었어요. 저도 그때는 말수가 엄청 많을 때도 아니었고, 낯 가리고 막 이러니까.
문 : (웃음) 그랬던 두 분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좋아지셨을까요? 계기가 궁금해요.
유 : 14년 15년도쯤에 가끔 술 먹고 형한테서 전화 왔어요. 똑바로 좀 하라고. 근데 이게 형만의 챙겨주는 방식이었어요. 저도 그때 방황했을 때라, 형도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도와주고 싶은데 아직 자기도 일이 많지는 않았고, 저도 뭔가 하고 싶은데 계속 방황할 때여서 그렇게라도 연락을 한 번씩 했던 것 같아요. 형도.
다미로(이하 ‘다’) : 왜냐하면 분명히 장점이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이 친구의 장점을 사람들이 아직은 잘 모를 때였으니까. 그거를 좀 보여주고 싶었던 게 컸죠.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성실함, 그리고 작품을 대할 때 인간적인 따뜻함, 세 번째는 앞에 말했던 그 두 가지가 합쳐져서 본인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접근 방식이, 제가 그때 많은 배우를 알지 못했지만 저희 작품을 잘 이해해 주고 제가 원하는 것들을 잘 이행해 주는 것들을 봤어요. 그래서 이 친구가 저의 작품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계속 연락을 하고 ‘나 이런 작품 준비하고 있어’라고 하면서 대본도 좀 먼저 보내주고 약간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더 그렇게(친하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 : 그렇게 시작한 두 분이 이제는 정말 많은 작품을 같이 하셨어요. ‘홀연했던 사나이’ 쇼케이스부터 시작해서 리틀잭. 그리고 이번 ’22년 2개월’이 벌써 9번째 작품이더라고요.
유 : ‘어린 왕자’ 빼고는 다 했어요. 사실 어린왕자도 조금만 더 일찍 알았으면 할 수 있었는데 그때 아마 다른 작품 스케줄이 겹쳐 못했어요.
문 :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한 만큼 특별한 에피소드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다 : 너무 많죠. 너무 많아서 나쁜 에피소드도 많고.
유 : 나쁜 에피소드도 나쁘다고 생각이 들지 않아요. 한두 번 세 번 있었어요. 형이랑 저랑도 한두 번 싸운 적이 있는데 그게 뭐 싸우는 게 이 사람이 너무 싫어가 아니라 그동안 일을 하면서 양보한 것들이 이렇게 터지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 순간이 이렇게 풀고 나니까 더 끈끈해져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싸운 거는 맞는데 오히려 그게 관계를 더욱더 돈독하게 해주는 역할을 잘 하지 않았나. 그래서 나쁜 에피소드는 아닌 것 같아요.
다 : 작품을 진행하다 보면 약간 혼란스럽긴 해요. 연습실에서 나가고 공연이 끝나고 나면 그냥 친한 형 동생 사이인데. 작품적으로 얘기를 하다 보면 부딪힐 때가 가끔 있어요. 당연히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을 노선을 잡고 있거나 아니면 승현이가 얘기했던 걸 제가 못 받아들인다거나. 이러면 당연히 서로 충돌을 할 수밖에 없겠죠. 근데 돌이켜보면 나쁜 쪽으로 충돌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감정적으로 소비를 하기보다는 서로 잘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걸 왜 이해 못 해’라고 얘기를 하면 이제 승현이는 ‘아니 난 이렇게 하고 싶어.’ 그렇게 얘기를 찬찬히 풀어가다 보면, 오히려 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향 아닌가(싶어요).
문 : 유승현 배우님이 생각하는 다미로 감독님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유 : 이건 정말 진심인데 자기만의 ‘훅(한방)’이 있어요. 저는 이제 음악을 잘 모르니까 그렇게는 설명을 잘 못하겠는데, 딱 들었을 때 음악도 그렇고, 이야기도 자기만의 ‘훅’이 확실하게 있어서 뭘 하고 싶은지가 명확해요. 그러니까 오히려 이걸 하기 위해서 반대로 이제 힘들 때도 있어요. 그 ‘훅’이 나랑 안 맞을 때도 있고, 다 맞을 수는 없어요. 그거는 이제 반대로 해내야 되는데 반대로 맞는 순간에는 이해하기가 빠르니까 진행하기가 굉장히 수월한 느낌이에요. (그렇게) 자기만의 ‘훅’이 확실히 있는 예술가이자 작곡가이지 않나라는 생각 저는 들어요.
문 : 그럼 다미로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유승현 배우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다 : 예전에는 제가 유승현 배우 딱 떠오르면 일단 첫 번째는 성실함이었거든요. 그 성실함은 지금도 갖고 있어요. 갖고 있는데, 제가 이번에 ’22년 2개월’ 작업하면서 느낀 건 이제 그 성실함을 조금 뛰어넘은 것 같아요. 성숙함이 묻어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번에 장난삼아 단체 카톡방에다 ‘난 오늘부터 유승현 팬이다’라고 남겼어요. 근데 정말 진심이었거든요. 이 친구의 성실함들이 계속 존재하면서 여러 작품을 통해서 연기가 정말 성숙해졌구나. 그래서 본인만의 ‘박열’이 되게 표현이 잘 된 것 같아서, 장점을 뽑으라고 얘기를 한다면 성실함 위에 더해진 이제 원숙함.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가됩니다. 이제 제가 10년을 넘게 봐왔잖아요. 그 10년 후에 어떻게 돼 있을까라고 한번 상상을 하게 되는 배우예요.
실화에 픽션을 더해, 신념을 지킨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존경을
문 : 이야기를 작품 쪽으로 넘어가 볼까요. 다미로 감독님께 여쭤볼게요. 이번 작품이 실화도 실화지만 처음에 공연을 시작할 때도 언급하듯이 픽션이 많이 섞여 있어요. 어떤 기준으로 실화를 그대로 담아내고, 또 어떤 픽션을 더할지 결정하셨는지 궁금해요.
다 : 일단은 그 지금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사실은 엄청난 고민을 했어요. 정말 자부심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모든 픽션 그러니까 모든 실화를 바탕으로 소스들을 면밀하게 검토를 일단 했고 큰 알맹이를 두고서는 재미적 요소를 어떻게 더해볼까를 끝없이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기준점들은 역사적 팩트를 놓고, 더해지는 살점들은 조금 관객의 입장으로 봤을 때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봤을 때 크게 훼손되지 말아야 한다. 이게 제일 첫 번째 큰 원칙이었어요. 그러면서 각자 갖고 있는 캐릭터들의 원래 알맹이들, 그 알맹이들은 되도록이면 무조건 지켜야 한다. 이런 것들을 가장 기반으로 두면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문 : 프로그램 북에서 보니까는 그 실화 원전을 아예 정리해서 가지고 다니셨다고요. 그만큼 이 작품을 7년이나 잡고 계셨어요. 사실 한 작품을 7년이나 잡고 있었다는 게 사실 말이 쉬운 거지 정말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 원동력이 있으셨을까요? 이 작품을 꼭 해야만 했다는 원동력.
다 : 일단 제가 빨리 성공을 해야겠다. 빨리 좀 더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곡가와 음악 감독이 돼서, 이 작품에 그래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첫 번째 원동력이었어요. 사실 중간에 뮤지컬 박열이라는 작품도 나왔고, 그 작품을 통해서 대중들한테 계속해서 조금 더 많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영화도 나왔고 예능도 나왔고 그리고 뮤지컬도 나왔으니까. 사실 많은 분들이 같은 내용의 컨텐츠가 많이 쏟아져 나왔으니까 방향을 바꿔서 작업을 한 게 아니냐라고 질문을 해 주시는데 아니에요.거의 비슷해요. 초반부터 저는 어떤 이 작품의 핵심 줄기를 지금 작품하고 크게 변동되지 않은 상태에서 잡았고 7년 동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언젠가는 올라간다. 언젠가는 올라간다니까.’ 가끔은 이 공연을 접어야 하나 아니면 혹은 포기해야 하나. 어쩌면 낡은 소재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은 있었지만 그걸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이들은 22년 2개월을 버텼는데 겨우 7년 갖고 징징거리면 안 된다.’ 그런 생각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문 : 너무 멋진 말씀이시네요.
다 : 아닙니다
문 : 사실 여쭤보고 싶은 내용이었어요. 기존에 뮤지컬도 있었고, 영화도 성공을 했고. 예능에서도 의미 있게 다뤄졌고 하다 보니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다 : 고민 엄청 했죠. 그 작품들을, 영화도 그렇고 뮤지컬 봤을 때 걱정되는 부분이 딱 하나였어요. 어쨌든 다 창작자들이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들어 낸 캐릭터들인데, 그게 너무 이미지적으로 굳어서 혹시 ’22년 2개월’을 봤을 때 좀 낯설어하지는 않으실까. 그 부분을 제일 걱정했어요. 저희는 저희만의 또 새로운 ‘박열’과 ‘가네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계속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는데 (앞선 캐릭터들과) 조금 다를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문 : 안 그래도 가네코 후미코라는 인물의 변주가 되게 많이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특히 가네코 후미코가 ‘나비야’를 부르는 장면에서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볼 때는 무척이나 감동적이고 아름답지만, 마지막 장면으로 가네코 후미코의 어떤 면모를 강조하고 싶으셨는지 그것도 좀 궁금해요.
다 : ‘나비야’를 부르는 장면은 일단 이중적인 의미를 띠고 있어요. (가네코 후미코의 죽음은) 역사적으로는 죽음을 선택했다라고 규정되어 있는 곳도 있지만
문 : 아닌 곳도 있죠.
다 : 네, 그 두 가지를 놓고서 어떤 선택을 할까를 했을 때 무대적으로 표현했을 때 죽음을 그래서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유로움을 찾아 떠났다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좀 표현을 해보자.’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을 했고, 그것이 죽음인지, 아니면 자유로움인지는 보는 관객들이 판단하도록 좀 열어두고 표현을 해보자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 같아요.
문 :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가네코 후미코의 특징 중의 하나가 가네코 후미코가 한복을 입는 다거나, 한국식 이름을 짓는 장면이 주요 장면으로 사용되는 등, 오히려 박열보다는 가네코미코한테 좀 더 한국적인 요소나 소재의 쓰임이 많은 것 같아요. 어떤 생각으로 의도를 하셨는지 좀 궁금해요.
다 : 가네코 후미코의 별명이 무적자라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무적자가 무적이다. 이게 아니라 호적 없어서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요. 가네코 후미코의 일대기를 좀 살펴보면 일본 쪽보다는 조선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조선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만약에 내가 가네코 후미코였다면 어떻게 자라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좀 고민을 해보자면 일본 편도 아니고 조선 편도 아닌 어떤 스스로에 대한 탐닉과 어떻게 어떻게 살아가야 될 건지를 되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철학 서적들을 보면서 인생에 관해서 고민들을 많이 했던 건 아닐까라고 저는 좀 상상을 해봤어요. 그래서 이 ‘가네코 후미코’라는 인물이 무언가를 입고 어떤 사상 쪽으로 속해 있을까 하는 건 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말 그대로 무적자다. 어디에도 속해져 있지 않지만, 박열이라는 거대한 세상을 만나서 (그의 세상이) 나의 세상과 일치를 한다는 걸 깨닫고. 그 둘만의 세상을 만드는 거(에 집중했어요.)
문 : 마지막 공연이나 공연 시작 전 안내 방송 등을 들면 되게 독립운동하신 분들에 대한 존경이나 진심이 되게 많이 느껴졌어요. 배우분들이 무대위에서 묵념하실 때는 좀 약간 뭉클하기도 했었고요. 이 작품을 통해서 그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다 : 관객분들에게는 사실 딱 하나예요. 그러니까 어떤 독립운동가니까 저희가 사실은 1945년대 광복이 된 이후부터 저희가 계속 어렸을 때부터 독립운동가 존경해야 되고 그들이 행한 행적들을 기억해야 하고 이런 교육들을 정말 많이 받았잖아요. 근데 과연 그게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평생 살면서 존경해야지라는 교육을 받았을 뿐이지 왜 존경해야 되는가를 생각해 보고 되게 고민을 정말 많이 해봤거든요. 골똘히 생각을 해봤는데 이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저희가 똑같은 20대와 30대, 40대를 다 살아내고 있잖아요. 굉장히 전쟁 같은 환경 속에서 가만히 살펴보면 신념을 지키는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 신념은 뭐냐면 휩쓸려 가지 않는 거죠. 예를 들어서 불행한 어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일어났을 때 이 사회는 항상 저희한테 종용을 해요. 그냥 ‘남들이 하는 거니까 너도 웬만하면 좀 이렇게 해.’
독립운동가분들도 전부 다 아니라고 얘기를 하고. 일본이 이미 사회를 점령했으니까 우리도 이쪽에 서서 편을 드는 게 맞아라고 무수히 얘기를 들었을 거예요. 다들 맞다고 99명이 얘기하는데 이건 내가 봤을 때 틀린 얘기인데라고 손들고 얘기할 수 있는 신념을 갖고 있는 자가 얼마나 있을까요? 근데 그런 부분들을 독립운동가분들을 좀 보면서 배워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좀 들었던 거고요.
그렇게 해서 저희가 공연 시작 때 안내 멘트나, 마지막 묵념을 꼭 했으면 좋겠다라고 의견을 냈고, 전체적으로 스태프분들도 다 동의를 해주셨어요.
플룻으로 형상화한 가네코 후미코의 나비, 넘버 ‘나는 개로소이다’는 작품의 관통선
문 : 이번엔 음악 이야기를 해볼까해요. ’22년 2개월’ 공연에 5인조 오케스트라가 함께 올라가는데, 그중에 바이올린의 현과 플룻의 소리가 꼭 가야금이랑 해금 소리 같이 와닿을 때가 중간중간 있었어요. 저희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국악적 요소가 좀 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혹시 작곡하실 때 염두에 두고 짜셨는지 궁금해요.
다 : 국악적인 느낌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해봤는데, 그렇게 느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때 제 음악을 보면은 약간 ‘한’이 있어요. 약간 구슬프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는데 플룻이 부는 악기다 보니까 약간 그런 느낌이 나지 않았나 싶어요. 전체적인 음악 컨셉은 일단 플룻이 가네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1막부터 2막까지 계속해서 영상으로 첫 장면에 나비가 나왔잖아요. 그 나비가 사라지고 난 다음부터는 그 플룻이 계속해서 관객의 귀에는 나비처럼 들리길 원했어요. 나머지 바이올린, 첼로랑 스텀프들은 우직한 신념들을 계속 표현하고자 처음부터 편곡 방향을 잡았어요.
문 : 그렇다면 ’22년 2개월’의 메세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넘버는 무엇일까요? 역시 ‘나는 개로소이다’일까요?
다 : 그런 것 같아요. 이 극을 봤을 때 사람들이 ‘나는 개로소이다’가 어떻게 차츰차츰 업그레이드 돼가는지 그거를 보는 하나의 관통선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가네코가 실제로 그 시 한 편으로 박열한테 매료됐듯이. 그 한 편으로 인해서 ‘나는 개로소이다 개새끼로소이다 나는 나비로소이다.’ 이 상층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이, 박열의 어떻게 신념이 점점 굳어가는지 그리고 가네코 후미코는 어떻게 변화돼 가는지 관통선을 통해 보시면 이 극을 조금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겠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찬스 한 번 써’ 다미로의 위기에 나타나 도와준 배우 유승현
문 :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벌써 9작품째 유승현 배우와 함께 작업 중이세요. 유승현 배우의 ‘박열’이 가진 매력은 무엇일까요?
다 : 일단 이 앞에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사실 이번에는 제가 큰 빚을 졌어요. 유승현 배우한테. 배우한테 굉장히 실례가 되는 일이었어요. 유승현 배우가 애초부터 스케줄이 안됐었어요. 휴식기를 가진다고 팬들에게도 다 이야기한 상태였죠.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까 주연 배우가 한 명이 부족하게 됐어요. 난리가 난 거죠. 그래서 전화를 걸어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상황을 설명하고 ‘지금 상황에서 내가 부를 수 있는 배우는 없을 것 같아. 혹시 네가 괜찮다면 대본을 읽어보고 선택을 생각해 보겠니?’ 그런데 승현이가 정말 그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딱했어요. ‘언젠가 형이 나한테 부탁을 한 번 하면 내가 그걸 꼭 들어줘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혹시 형이 생각할 때 지금이 그 타임인 것 같아?’ 제가 그럴 것 같다고 대답하니까 가만히 딱 3초정도 멈추더니 ‘그럼 나 할게’라고 대답을 해줬어요. 저는 솔직히 너무 깜짝 놀랐거든요. 팬들에게도 공공연하게 얘기를 했고 본인의 스케줄도 있었을 텐데 그걸 취소하고 온다는 건 정말 큰 일인데. 저한테는 되게 감동적인 미담이고, 이 에피소드가 널리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문 : 널리 알려질 수 있게 꼭 남겨야겠네요(웃음)
다 : 근데 웃긴 건 그러면서 얘기를 또 한참 하다가 ‘형 그러면 내가 형 거 하나 들어줬으니까 형도 들어줘야지.’ ‘뭔데?’ 그러니까 ’12월에 나랑 여행 가.’ 그래서 ‘오케이 나 무조건 간다.’ 이렇게 해서 여행이 성사됐어요.
문 : 여행메이트를 얻는 과정이었군요.(웃음)
다 :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면, 승현이의 박열은 거칠어요. 후반부로 갈수록 한 마리에 뛰어다니는 야생마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 야생마가 마지막에 미쳐 날뛰는 그 재판장에서 살아있는 에너지를 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문 : 저는 사실 그 거친 면모와 함께 가네코 후미코랑 있을 때는 되게 애틋하시잖아요. 특히 베나 아모리스 장면은 너무 예쁘고 감동적이었어요.
다 : 야생마가 24시간 야생마면 재미없죠. 본인이 원하는 곳 본인이 정말 사랑하는 곳을 만났을 때는 다시 원래의 본인으로 돌아가는. 거칠다는 것도 전반적으로 거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빌드업이 되어서 마지막 재판장에서 정말 손도 댈 수 없는 터프함과 에너지가 분출되는 그 신에서 압도되는 유승현만의 느낌이 센 것 같아요.
문 : 말씀하시는게 많이 공감이 되는 것 같아요. 전 첫 번째 재판장 신에서 나올 때 2층에서 나오시는데도 되게 박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유 : 박력이라기보다는 이제 조선을 대표해서 하다 보니까, 밀리지 않는 기세를 생각하다보니 걸음걸이 달라지고 태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한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니까. 그 장면에서는 일본 판사나 배심원들이 있겠지만 거의 다 일본 사람일 텐데. 저는 사실 그래서 박스를, 관객들을 약간 일본 사람처럼 지금 대하거든요. (관객을) 일본 사람이라 생각하고 나오니까 약하게 나올 수가 없는 거죠.
다 : 말 한 마리가 천천히 걸어 내려오고, 뒤에는 이제 날뛰는 거죠.
기존에 잘 그려지지 않았던 청년 박열의 ‘사랑’을 더 표현하고 싶어
문 : 아까도 감독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유승현 배우님은 역할을 만드실 때 한층 더 진지하게 접근하신다고 알려져 있어요. 특히 이번 작품 같은 경우에는 워낙 여러 매체로 다뤄지고 하다 보니까 오히려 더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 박열이라는 인물이 이제 만드실 때 참고하신 게 있을까요.
유 : 저는 사실 모든 작품 할 때 작가, 작곡가한테 물어봐요. ‘이 작품은 어떤 작품이야?’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어?’ 왜냐면 그걸 해치면 안 되니까요. 형한테 물어봤을 때 ’20대 청년’이 일단 첫 번째 센턴스였고 그다음에 ‘사랑’. 이들도 결국엔 청년이었고 사랑이 있었고, 근데 이거를 이제 곱씹어서 ’22년 2개월’에서 어떻게 표현을 할까 생각해 보면. 지금의 우리도 해내야 될 것들도 많고 인간으로서 해야만 하는 것들도 많아요. 그렇게 되면 내가 하고 싶은 선택보다는 하기 싫은 선택도 굉장히 많이 하며 살아간단 말이죠. 이런 사회 소사이어티에서 사실 사랑이라는 건 굉장히 인간이 해야만 하는 숭고한 감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박열은 23살이라는 아직은 더 부모님 곁에 있어도 될 나이에 누구보다 빨리 알을 깨고 나와서 사상을 외치던 분이에요. 그런 그가 가네코를 만났을 때 이 사랑을 어떻게 했을까 우리가 지금 놓치고 가는 것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표현을 했어요.
유 : 박열의 책을 보면 어머니랑 손잡고 가다가 되게 추워하는 할머니를 보면 할머니한테 그 옷을 전해주고 맛있는 거 있으면 나눠 먹는, 친절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아나키즘은, 그런 박열이 생각했을 땐 오히려 지금 정부가 전쟁과 이런 걸로 인해서 사람들을 괴롭히죠. 이런 정부만 좀 없으면 우리가 모두가 행복해지 않을까. 그래서 아마 베나 아모리스나 이런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때나, 불령사들과 첫 장면 때도 분위기가 쳐져 있으니까 오히려 이렇게 장난도 치고 와일드하게 하는 거지. 이런 와중에도 사랑을 할 수 있는 박열. 다정하고 여린 마음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그런 박열들을 좀 같이 표현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다 : 그 얘기는 했어요. 영화는 너무 많이 보지 마라. 되도록이면 보지 마라. 왜냐하면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이 사실 너무 굳어져 있는 이미지가 있을 수도 있을 테니 영화는 되도록 보지 마라. 보지 말고 대본만 읽어라 라고 얘기를 했어요.
유 : (근데) 이미 많이 봐버린 거예요. 너무 잘된 영화니까.
문 : 말씀 하신 것처럼 박열의 이야기가 참 많은 작품으로 나왔어요. 그러면 이제 배우로서 ’22년 2개월’만의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유 : 아까 형이 얘기했던 거랑 거의 비슷한데, 여태까지 나와 있는 박열이랑은 좀 다른 결의 박열을 보실 수 있을 것이고. 결국에 그들도 23살이었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동경에 21살 때 넘어와서 23살에 잡혀갔는데, 22년 2개월 하니까 거의 반절을 감옥에서 다 사셨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되게 묘해요. 아주 어릴 적을 빼고 우리가 자아를 가지는 게 보통 고등학생쯤이라고 치면, 옛날에 좀 빨랐으니까 한 13세 14세라고 쳐도 한 10년 정도 자신의 의지를 갖고 살다가 22년을 감옥에서 살다가 다시 나왔을 때 기분이 어떠셨을까? 뭐 이런. 여태까지의 작품들에서 나와 있지 않은 것들을 강조를 많이 해서 그런 면모들을 좀 많이 보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봐요.
인터뷰②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진행 | 이민정
사진 촬영 | 이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