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찾아 광활한 아프리카의 대자연을 헤매는 코뿔소와 펭귄. 식성도 생태도 전혀 다른 두 동물은 아름답지만 가혹한 대자연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또 성장해 나간다. 이 따뜻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는 활자를 넘어 무대 위에서도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동명의 소설 ‘긴긴밤(작가 | 루리, 문학동네 출판)’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긴긴밤’은 어려운 소재를 진정성 있게 풀어내며 뜨거운 감동과 진한 여운으로 2024년 대학로의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아쉬운 이별도 잠시, 2개월 만에 앵콜 공연으로 돌아와 여전한 울림으로 감동을 안기고 있는 뮤지컬 ‘긴긴밤’의 두 주인공, 코뿔소 ‘노든’ 역의 ‘강정우’와 ‘펭귄’ 역의 ‘설가은’을 만나 뮤지컬 ‘긴긴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문화포커스(이하 ‘문’) : 뮤지컬 ‘긴긴밤’에 처음 참여하게 된 계기와, 앵콜 공연에 함께하게 된 소감이 궁금해요.
강정우(이하 ‘정우’) : 처음에 아프리카 배경으로 동물들의 이야기로 소설이 굉장히 사랑을 받았고 그거를 뮤지컬로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다는 얘기를 듣고, 쉽지 않을 이야기 같으면서도 도전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에 초연에 참여하게 됐어요.
정말 쉽지는 않았어요. 소설은 독자가 읽으며 상상할 수 있는데, 저희는 무대에서 배우가 직접 등장하니까, 이 동물과 자연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대신 바닥 조명 등 여러 가지 조명으로 상상력을 잘 대체한 것 같아요. (덕분인지) 앵콜이 좀 빨리 오게 돼서 저희 입장에서는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설가은(이하 ‘가은’) : 저는 처음에 프로덕션 측에서 여러 작품을 보여주시고 이 중에서 하나 하자고 제안을 주셨는데 여러 작품을 보면서 ‘긴긴밤’ 대본을 받게 됐어요. 대본을 받고 읽었는데 ‘이 작품 꼭 해야겠다. 나는 이걸 꼭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어서 ‘저 ‘긴긴밤’하고 싶어요.’ 하고 말씀을 드렸어요.
사실 ‘긴긴밤’에 참여하고 너무 좋은 기억들과 추억이 많이 남아서, ‘얼른 재연이 왔으면 좋겠다. 앵콜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다시 돌아와서 정말 행복했던 것 같아요.
문 : 방금 전에 정우 배우님께서 언급해 주셨는데 작품의 배경이 아프리카 대자연인 데 비해 어쩔 수 없이 무대는 한정적이에요. 표현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LED 바닥 조명을 너무 활용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혹시 바닥 조명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을 수 있을까요?
정우 : 보통 바닥이 나무같이 굉장히 무게감이 느껴지는 바닥이에요. 그래서 배우들이 무대에서 이렇게 걷거나 해도, 특별히 춤이 많은 공연이 아닌 이상은 저항력도 있고 탄성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그래서 딱딱해 보이지만 넘어지거나 무릎을 꿇어도 무대가 쿠션이 되는데. LED는 거의 대리석 같은 느낌이어 가지고. 이 ‘펭귄’하는 친구들이 나올 때 보기에는 너무 좋은데 여기 의상이 여기(무릎)부터 노출을 시키니까.
문 : 그렇죠. 반바지.
정우 : 저희는 얇은 무릎 보호대를 차는데, (‘펭귄’들은) 찰 수가 없어서 (힘들어요.). 그리고 제가 제일 힘든 점은… 너무 부드러운 바닥이라 펭귄이 코뿔소를 끌 때 끌려와요.
문 : 아, 끌리면 안 되는데. 마찰이 너무 없어서(웃음).
정우 : 굴욕적이에요.
문 : (웃음)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럴 수 있네요.
정우 : 모르실 거예요. 근데 필사적으로 (버티거든요). 제가 가은이한테도 끌려가서. 장면이 굉장히 슬프고, 저희 공연에서만 특별히 만든 원작에 없는 장면인데, 거기서 끌려가게 되면. 저희가 약속했던, 그 환상을 믿기로 했던 관객이 갑자기 ‘맞다 나 공연장 왔지.’ 이렇게 생각이 들까 봐. 필사적으로 잘 버티고 있어요.
뜨거운 심장과 차가운 이성이 교차해야 되는데. 저희(노든)가 잘 생각을 하고, 부탁을 하고 있어요. 서로 호흡을 맞추면서 저희도 방법을 찾고 있고요.
문 : 근데 당기는 입장에서는 흥분하면 나도 모르게 더 세게 당기고 그러잖아요.
정우 : 당연하죠.
가은 : 흥분하면 이렇게 세게 당기게 되는데. 세게 당기면 팔도 아프실 거고 부상 위험이 있어서. (정우 : 우린 팔은 안 아파.) 진짜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걱정돼서 뭔가 점점 끌고 간다기 보다는 찰쌀찰싹 때리는 편이에요.
정우 : 왜냐하면 ‘노든’이 힘들고 정신을 잃어가니까. (가은 : 답답한 마음에) 그래서 이건 비밀이지만 LED 바닥 바로 밑에 잔디 풀이 있거든요. 거기에 저항력이 좀 있어서 거기에 도움을 좀 받고 있어요.
문 : 그건 몰랐네요.
정우 : 제가 그래서 좀 찾았어요. 알고 보시면 보이실 거예요.
문 : 다른 ‘노든’ 배우님들도 똑같이 하시나요?
정우 : 그건 아닐 거예요. 제가 약간 이렇게 옆으로 앉은 자세를 선택하고 있어서, 그렇게 했을 때 왼발로 잔디밭을 걸고 있어요. 그러면 펭귄들이 있는 힘껏 힘을 써도 (괜찮아요). 힘을 쓰는 게 관객들은 보이거든요.
문 : 이거 여쭤봐도 될지 모르겠는데. 은영(최은영, ‘펭귄’ 중 최연소 배우)배우님이 당기실 때도 끌려가시나요?
정우 : 저희가 가만히 있으면 다 미끄러져요. 그냥 아이스링크 느낌이에요.
문 : 와, 진짜 생각지도 못한 어려운 부분이네요.






한정적인 무대지만 원작의 감동을 최대한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
문 : 원작 소설이 문학상 수상작인데, 심사평 중에 ‘코뿔소와 펭귄의 로드무비’라는 표현이 참 인상적이더라구요. 그만큼 뮤지컬도 쉼 없이 움직이는 것 같아요. 힘들지는 않으세요?
가은 : 로드무비라는 표현이 나오는 만큼 뮤지컬에서도 춤에 움직임, 감정 소모까지 심해서 정말 힘들었는데…. 다 분석을 하고 하나하나 생각해 나가면서 그 힘듦을 줄이는 방향도 택하고, 어디서 힘을 주고 어디서 또 힘을 빼고. 하이라이트를 위해서 그렇게 점점점 달려가는 방향을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사실 이렇게 감정 소모도 크고 춤도 많이 추고 하는 극이 처음이라서. 제가 그렇게 많은 작품을 했던 건 아니지만.
문 : 많이 했죠. 데뷔 10년 차인데(웃음).
가은 : 아이(웃음) 근데, 지금까지 했던 것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확실히 감정 소모가 훨씬 더 크고 보여줘야 하는 부분이 더 많아서. 더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던 것 같아요.)
문 : 혹시 이 장면은 조금 더 힘들다, 하는 장면이 있을까요?
가은 : 일단 저는 ‘노든’이랑 헤어지고, 마음 가득 뛴 다음에 바다에 도착해서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이 가장 고비 아닌 고비인 것 같아요.
문 : 객석에서 봐도 그 장면은 정말 힘들 것 같기는 해요.
가은 : 근데 또 ‘펭귄’이 힘들어야 관객분들이 그 힘듦을 느끼시고 ‘그 고난과 역경을 겪고 성장한 펭귄이 바다에 도착했다.’에서 오는 해방감과 성취감이 확실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배우가 힘든 만큼 관객분들은 더 전달받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문 : 와, 너무 (정우 : 대단하다. 정말.), 너무 좋네요. 그럼 두 분은 ‘노든’과 ‘펭귄’의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려고 했는지 특별히 중점을 두고 있는 포인트가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정우 : 요즘 관객들의 호흡이 더 빨라졌잖아요. 예전에는 공연 시간이 조금 더 길어도 괜찮았었는데, 관객분들의 체감이 요즘은 유튜브나 쇼츠의 영향으로 너무 빨라졌어요. 저희가 정성껏 준비한 이 상황과 연기를 잘 보여드리고 싶지만 (관객들의 호흡에 맞춰서) 물리적으로 줄여야 하니까요. 이렇게 줄이다 보니까 (원작에서는) 자율적으로 ‘펭귄’이 선택하게 되는걸, 물리적으로 갈등을 통해서 ‘노든’이 선택하게 되는 그런 부분들이 있어요.
저희 ‘긴긴밤’이 전부 16곡인데, 7번 노래가 호수에서 수영하는 장면이에요. 공연에서 이렇게 쫙 흥미롭게 올라가야 되는 부분인데, 사실 (원작에서) ‘노든’은 자기도 힘들고 수영할 줄 모르는 코뿔소가 수영하는 ‘펭귄’이 행복해하는 걸 따라갈 수가 없거든요. 오히려 원작에서는 자기도 어쩔 줄 몰라서 땅을 바라보고 있고. 그리고 ‘펭귄’은 자기는 너무 신나는 걸 얘기하는데 ‘노든’은 못 알아들어서 서운하다라고 표현하거든요. 저희 공연에서는 그대로 표현하면 (흥미롭게 올라가야 하는) 그 중간 분위기인데 공연의 형식에서 맞지 않아서 좀 즐거운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노든’은 ‘어설픔’. 제가 원작에서 느꼈던 건 ‘어설픔’이거든요. 숙련된 아빠가 아니라 어찌할 바 모르는 사람이 헤쳐 나가는? 우리가 가는 방향은 공연에서 따라가야겠지만 캐릭터의 어설픈 진심을 계속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걸 좀 어떻게 하면 분위기를 맞추면서 잘 챙겨 갈 수 있을까. 그걸 계속 생각하면서 (하는 것 같아요)
가은 : 저는 펭귄이라는 캐릭터가 아버지들의 사랑을 가득가득 받고, 그 사랑을 표현할 줄도 아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을 해서. ‘노든’과 헤어지거나, 고난이 있거나. 사막에서는 물을 찾지 못해 힘들거나, 혼자 바다를 가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스스로 용기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가장 크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노든’의 사랑을 잔뜩 받고 자란 ‘펭귄’이 나중에 그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저는 생각을 해서, 그 점을 좀 집중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문 : ‘펭귄의 성장’을 이야기하니까, 첫 등장에서 ‘펭귄’은 성장한 이후의 ‘펭귄’이잖아요. 화자의 역할일 때는 성장한 이후의 ‘펭귄’인데, 극 중에서는 성장 중인 ‘펭귄’이에요. ‘노든’도 그렇고 캐릭터들이 시간대에 따라 감정 변화가 큰데, 이게 어떻게 보면 또 한 장면 만에 바뀌거든요.
정우 : 특히 가은이가 하는 역할에서는 ‘펭귄’이 화자가 돼야 되니까. 그 감정 변화가 엄청 커야 되고 굉장히 어려웠을 거예요. 공연의 시작을 열면서 관객들한테 (이 공연의) 양식도 전해줘야 되고.
가은 : 그 사랑을 잔뜩 받은 ‘펭귄’이 바다에 도착한 시점에서 맨 처음 ‘나는 펭귄이다’를 했을 때. 저는 원작 책을 다 읽고 다시 한번 책을 펼쳤을 때, 책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나는 펭귄이다.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면서 쭉 적혀 있는 글이 있는데, 그 글을 다시 읽으면서 바다에 도착한 ‘펭귄’이 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고 보니까 너무 슬픈 거예요.
그래서 이 슬픔이 제가 하는 ‘펭귄’을 보신 관객분들에게 전달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노든’을 보는 ‘펭귄’이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어떤 애틋함을 가지고 이 이야기를 얘기했을까. 를 좀 생각하면서 열심히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문 : 고민한 만큼 너무 잘 느껴지는 것 같아요.





문 : ‘긴긴밤’의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동물이에요. 동물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몸짓이나 목소리 표현 등에서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썼는지 궁금해요.
정우 : 처음에 초연할 때 ‘각자 악기를 가지고 한번 상징적으로 보여주자’라고 해서 저희가 지금 공연 때 쓰는 가방보다 더 큰 북을 무대에서 이용해 보려고 했어요. 그리고 나머지 펭귄들은 굉장히 귀여운 소리 나는 잼블럭이라고 하는 거를 치면서 해보고. 도전이었죠. 근데 연습을 좀 해보다가 관객들한테 오히려 난해할 수도 있겠더라구요. 그래서 다른 걸 빼고 캐스터네츠를 남기고, 코끼리는 이 코를 돌리면서 나오는 소리를 남겼어요.
그럼 ‘노든’한테 뭐를 줄까 해서, 작은 가방도 생각하다가 큰 가방으로 가서, 거기다 뿔을 달아서 상징적으로 표현했어요. 저희들도 좀 동물의 움직임을 좀 써보기도 했는데 이게 그 정도의 차이 때문에 오히려 공연 양식을 해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서. 오히려 동물 연기를 조금 배제하고 가방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어요.
‘펭귄’이랑 같이 있을 때는 나란히 이렇게 쪼그려 앉아서 얘기하는 것도 귀여울 수 있는데, 제가 일부러 저 가방 위에 앉아서 물리적인 크기를 조금 보여주려고 (했어요.) 사람이 가방 위에 앉은 것 같기도 하면서도, 저 사람 코뿔소 연기하고 있지 같은 느낌으로요. 동물 연기라던가, ‘노든’은 특히 악기인 북이 없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걸 좀 빼려고 노력을 한 거 같아요.
문 : 제가 찾아보니까 강정우 배우님께서 이전에도 동물 캐릭터를 연기하신 적이 있으세요. 뮤지컬 ‘알렉산더’의 ‘고우트’랑 ‘동물농장’ ‘스퀼러’도 하셨고.
정우 : ‘알렉산더’가 2인극인데 제가 사람(빌리)이랑 염소(고우트)를 했고 제 상대 배역은 사람(대니)이랑 말(알렉산더)을 했거든요. 특별히 다른 어떤 거를 하면 오히려 관객의 집중력을 더 빼앗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그때도 포인트 동작으로만 (표현했던 것 같아요.)
문 : 그럼 그때의 연기가 ‘노든’을 연기할 때 도움이 된 게 있을까요?
정우 : 네, 있어요. 처음에는 너무 두려웠어요. 내가 코뿔소? 사람들이 보기에 이게 캐스팅이 잘못됐나? (생각할 것 같은 거예요.)
아, 그렇게 1차원적으로 갔다가는 오히려 한도 끝도 없겠다. 그래서 오히려 심플하게 생각해서 가방에 대한 걸 더 담아보자. 그래서 관객들이 코뿔소 이야기인 줄 알고 왔다가, 사람인데 뿔을 들고 있네 코뿔소를 저걸로 표현하는구나. 하고 더 상상력을 더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원작처럼.




복수마저 잊게 만드는 ‘내리사랑’과, 그 ‘내리사랑’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문 : 분장이나 소품 얘기도 하고 싶었는데, 다른 공연에 비해 뮤지컬 ‘긴긴밤’은 의상이나 소품에서 동물의 특징이 많이 드러나지 않아요. 관객의 입장에서는 세련되고 멋지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의상이나 소품의 힘을 받을 수 없어 조금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은 배우님은 어떠셨어요?
가은 : 저는 의상을 맨 처음 봤을 때 좋은 방향의 의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펭귄’이 너무 펭귄 옷같이 보여지는 게 아니라, 관객분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서. 이 펭귄은 이럴 것 같고, 이 펭귄 여기에 어떤 무늬가 있을 것 같고. 이렇게 생겼을 것 같다라는 그런? 관객분들만의 ‘펭귄’을 그려낼 수 있는 요소들인 것 같아서 저는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 같아서 좋았고, 사실 의상이 ‘긴긴밤’의 극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긴긴밤’ 무대가 간결하고 세련됐는데 상상할 수 있는 그 수많은 요소가 계속 남겨져 있으니까 좋았던 것 (같아요).
문 : 그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아까 이야기한 캐스터네츠도 그래요. 다른 장치 없이 캐스터네츠를 울리면서 등장하는 데, 그것만으로도 ‘진짜 펭귄 같다’라는 느낌이 딱 그때 들었거든요.
가은 : 캐스터네츠도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용하려고 했었다가 여러 어려움이 있어서 잔재처럼 남아 있거든요. 그 캐스터네츠를 들고 등장할 때 ‘나는 펭귄이다’라고 하지 않아도 쟤는 펭귄 같다라는 생각이 드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같이 펭귄 역할을 맡고 있는 배우분들이랑 엄청 연구를 많이 했어요. 거울 보면서 펭귄 걸음걸이를 연습하고 했었는데 그런 에피소드들 그런 연습들이 좀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문 : 두 분은 초연에 이어서 두 번째 호흡을 맞추시잖아요. 함께 연습하거나 공연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혹시 있으세요?
가은 : 저는 확실히 앵콜이 오니까 확실히 더 분위기도 편해지고 배우분들끼리 친해지고 말랑 따끈따끈한 분위기로 장난도 치고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근식(박근식) 배우님이랑 우진(홍우진) 배우님이 제 자켓을 가져가셔서 한 번씩 입어 보셨던(웃음)
정우 : 연습할 때 입고 온 옷인데, 너무 귀여워 가지고 자꾸 보고 두리번거리다가 ‘이게, 이게.’ 하면서 팔을 이렇게 넣어서 다 입었어요.
문 : (깜짝) 정말요?
가은 : 늘어난 상태로 집 구석에 있어요.
문 : 늘어났어요?
정우 : 우진이 형이 입고 아예 지퍼까지 잠갔는데요.
가은 : 브이로그 영상이 있어요(웃음)
문 : 브이로그를 다시 봐야겠네요.
정우 : 그리고 저희가 초연을 할 때는 좀 괜찮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우리가 원작을 읽고 상상했던 걸 (원작과) 다른 양식으로 풀었잖아요. 이거를 처음으로 선보였을 때 관객들과 이 감동을 같이 교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됐는데, 그게 초연을 딱 마치고 나서 피드백을 받고, 앵콜이 빨리 잡힐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 가지로 더 확신을 가지게 된 것 같아서 오히려 배우들하고 더 믿음이 굳건해졌어요. 그래서 연기할 때 좀 더 편했다고 할까요?
문 : 그럼 공연 막바지 즈음에는 앵콜이 예상된 상황이었던 건가요?
정우 : 진짜 막바지에 소식을 들었어요. 그럴 가능성도 있다구요. 근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요즘 같은 때에
문 : 쉬운 일이 아니죠. 요즘은 극장 잡기도 어려운데, 정말 다들 대단하신 것 같아요. 다들 바쁘신데 이렇게 앵콜로 돌아와 주셔서 팬분들도 좋아하시는 거 같고요. 이제 작품으로는 마지막 질문인데, ‘노든’과 ‘펭귄’의 관계에서 두 분이 각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가은 : 저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맨 처음에 ‘펭귄’이 어린 아기 펭귄일 때는 자기만 생각하고 난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거야. 너도 몰라 저리가 하는데 ‘노든’은 ‘펭귄’을 지극 정성으로 돌봐 주고 챙겨주고 ‘펭귄’을 위한 마음이 처음엔 ‘노든’의 혼자만의 일방통행이었고, ‘펭귄’은 아직 그것까지는 잘 모르는 그런 상태였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펭귄’이 점점 성장을 하면서 ‘노든’을 위하고, ‘노든’을 생각하고. 결국에 마지막엔 인간들이 와도 ‘노든’을 끝까지 지켜주려는 그런 마음이 생기면서 ‘노든’과 ‘펭귄’이 일방통행이 아닌 서로 같은 감정. 같은 마음이 생겼을 때 오는 그 시너지를 저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건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이겠죠.
문 : 너무 좋은 말이네요. 강정우 배우님은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고 연기하시나요?
정우 : 저는 부성애 같은 느낌이에요. 제가 맡은 이 ‘노든’이라는 코뿔소가 처음에 태어났을 때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당연한 곳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코끼리들 사이에 끼어 있었고.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처음으로 야생에서 아내 코뿔소를 만나서 가족을 얻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안전하게만, 배고픈 게 뭔지도 모르는 감정으로 지냈다 보니까 지키지 못하고 다 잃어버렸어요. 그다음에 ‘앙가부’도 잃어버리고 ‘치쿠’도 다 놓쳐버리고. 자기가 지키지 못했는데 이제 지킬 존재가 하나 남은 거예요.
제가 지키지 못했던 아이와 아내를 모든 그 부성애의 마음으로 지키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오히려 인간한테 복수하고 싶었던 마음까지도 잊었던 것 같아요. 다 잊고 지내다가 불현듯 ‘펭귄’이 너는 뭘 하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 ‘맞다. 나 복수하고 싶었지.’ 그냥 바다로 데려가야 된다고만, 거기에 그것만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데려가야 된다고만. (‘펭귄’의 질문을 받은) 그제서야 ‘맞다. 내가 못 한 일이 있지.’라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일 큰 건 부성애가 아닐까 싶어요.







‘노든’의 큰 감정의 변화를 위해 강하게 집중해… 관객들이 무대에 잘 몰입할 수 있도록
문 : 정우 배우님께, ‘노든’에 대한 질문인데요. 작품 내에서 ‘노든’의 굴곡이 굉장히 크잖아요. 현재 시점 과거를 오가는 과정에서 감정의 변화가 되게 큰데, 연기하시기에는 어떤지 궁금해요.
정우 : 일단 저희가 공연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제한이 있어요. 이게 촬영이면 노화나 그런 걸 보여줄 수 있는데, 공연은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다리의 아픔 정도, 그리고 목소리 그래서 지침 정도. 그래서 할 때 호흡을 되게 많이 이렇게(거칠게) 써요. 공연에서는 ‘노든’이 아파서 거의 죽었나 싶을 정도로 힘든 상황으로 가야 되니까. 그 가는 과정을 계산을 해서 조금씩 잘 쌓고 있어요. 저 사람이 아픈 건가, 지금 과거인가 현재인가, 그거를 잘 보여줄 수 있도록요. 그래서 현재인 것처럼 춤을 추다가 다시 다리가 아픈 것을 보여줘서, 지금 현재에 있는 거구나. 신나서 과거를 얘기했구나 (알 수 있도록요)
문 : 객석에서 봤을 때는 그래서 연기하기 힘드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방금 전까지는 밝게 연기했는데, 현재로 돌아오면 노쇠한 ‘노든’이 되어야 하니까.
정우 : 그래서 집중을 짧지만 굉장히 강하게 해요. 배우들이라면 다 하는 로또에 걸렸다 같은 상황극이나 아니면 하면 안 되는 상상이지만 친구나 사랑하는 연인이 횡단보도에서 지금 차에 치였다. 내가 지금 방금 만나야 되는데 봤다. 같은 정도의 집중을 해야 돼요. (특히) 3번 노래에서 ‘펭귄’을 재운 뒤에 ‘노든’은 안 자고 이렇게 주변을 살펴보다 무섭다는 ‘펭귄’의 말에 옛날 얘기를 하다 ‘앙가부’를 만나는 장면으로 갑자기 들어가거든요. 그때는 아내랑 딸 아이가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기 때문에 발을 딛는 순간에 저도 빨리 집중해야 해요. 관객들 입장에서는 뒤늦게 따라오시는 중이니, 빨리 관객들을 끌고 와야 되니까요.
문 : 저는 잘 끌려 다녔습니다.(웃음) 작품을 보다 보면 ‘펭귄’ 성장 못지않게 ‘노든’의 성장과 변화도 되게 중요한 주제 같아요. 그 ‘노든’이 되게 많은 동물에게 도움을 받고 또 살아 나가는데 배우님께서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노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어떤 동물일까요?
정우 : 아무래도 가족인 것 같아요. 아내 코뿔소랑 아이 코뿔소요. 제가 처음 의지로… 선택당하는 느낌도 있지만, 제가 선택한 가족이 만들어져서, 아이도 생겼는데 지키지 못했잖아요. 처음으로 생긴 진짜 가족과, 지키지 못해서 죽음을 본 첫 가족이라서. 이게 너무 커서 그 다음의 ‘앙가부’의 죽음이나 ‘치쿠’의 죽음을 보면서 더 이상은 놓치고 싶지 않아서 내가 최선을 다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펭귄’한테 모든 에너지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동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아무것도 행동하지 못했던 그 에너지가 오히려 다른 쪽에서 발현이 더 되는 것 같아요.
문 : 그때의 경험이 ‘노든’이 ‘펭귄’에게 큰 사랑을 주는 원동력이 된 걸까요? 아내 코뿔소랑 딸 코뿔소를 ‘펭귄’에게 투영을 하는 건지. 아니면 그런 경험이 있어서 새롭게 생긴 ‘펭귄’이라는 소중한 존재를 더 지키고 싶은 건지 궁금해요.
정우 : 투영도 되는 것 같아요. 그때 내가 뭘 몰라서 제대로 해주지 못했는데. 친구든 가족이든 지금 다 떠나서 혼자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실은 그렇게 남고 싶지도 않았고 오히려 죽고 싶었을 것 같아요. 대사 중에도 ‘여기서 살아 남았어야 되는 건 내가 아니라 앙가부’라고, ‘앙가부 밖을 보지 못했으니까.’라고 말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이기 때문에 저도 이 알(펭귄)을 어떻게 해야겠다라는 계획이나 투영도. 오히려 투영이 돼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다가 먼저 무지개다리를 보낸 분들은 그 고통 때문에 다시 안 키우려고 하잖아요. 마치 그런 것처럼. 다시 (소중한 존재를)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만나면서 저도 치유가 되고. 그러면서 딸 코뿔소도 아내 코뿔소도 당연히 투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기도 하고.




문 : 뿔이 달린 가방 이야기가 아까도 나왔는데, 저는 이 가방이 노든의 페르소나 같다는 느낌도 좀 들어요. 무대에서 항상 가지고 다니시는데 그만큼 관련된 에피소드도 좀 있을 것 같아요.
정우 : 아무래도 이 가방이 코뿔소처럼 무겁고 크고 딱딱해 보여서. 오히려 그 위압감이나 에너지나. 거의 나오지 않지만 그 폭력적인 에너지도 나오잖아요. 그 인간들하고 싸울 때도. 그런 걸 잘 구현해야 되기 때문에 감정 표현도 그래서 예전 초연 때는 가방을 탁 떨어뜨려서 ‘펭귄’하고의 갈등을 좀 쌓는 부분이 있었어요. 이제 앵콜을 할 때는 떨어뜨리고 쾅 놓기보다는 좀 차분하게 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이게 자꾸 파손되고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이건 진지한 얘기고. 좀 재미있는 얘기로는 가방은 ‘쌤소나이트’예요.
문 : 브랜드였군요.(웃음)
정우 : 쌤소나이트라는 걸 확인하고. 이걸 어디서 구하셨지?(하고.) 그래서 연습할 때 손잡이 부분에 그 쌤소나이트 쇠 각인을 관객들이 알면 (안되니까) 너무 좋은 가방을 들어서
문 : 그래도 ‘노든’의 일생인데 좋은 가방이어야 되지 않을까요?(웃음)
정우 : 우리 코끼리 유치원 복지가 좋구나(웃음)
문 : 저는 가방 크기가 커서 무거울 것 같아서 (정우 : 굉장히 무거워요.) 계속 들고 다니시면 더 무거워질 것 같은데. 안에 또 들어가는 게 자꾸 있잖아요.
정우 : 정말 몰랐는데 오른손에만 굳은 살이 있어서, 내가 왜 이러지 요즘에 턱걸이 안 했는데? 내가 왜 그러지 하다가 이상하다 하다가 공연장 와서 제가 정말 놀랐어요. 이거 때문이었구나. 그래서 코뿔소 역할을 맡지 않은 다른 배우들이 가방 이렇게 들면 되게 놀랄 정도로 무거워요.
문 : 진짜 무거워 보여서 저는 연기를 하시는 건가 했는데
정우 : 연기는 안 무거운 척 연기를 해요.
가은 : 진짜, 진짜 무거워요. ‘노든’ 배우분들이 이렇게 머리 위로 올리고 동작하시는 걸 볼 때마다 무거우시겠다 (걱정 되고). 한쪽 팔로만 계속 드니까 그쪽 어깨가 다들…
정우 : 괜찮아요. 그건 괜찮은데 안 무거운 척할 때가(웃음) 두 손으로 들고 이런 건 다 괜찮은데 한 손으로 들 때가요. 객석에 가까우니까 허벅지에 붙이자 하면 안 힘든데 이걸 띄워서 이렇게 드는 순간 손이 덜덜 떨리니까. 그래서 원래 ‘치쿠’도 ‘노든’한테 가방을 줄 때는 ‘자 너의 길을 가.’ 줘야 하는데, 손이 떨려서 바닥에 놓는 걸로 바뀌었어요. 최대한 빨리 잡아 줄게 했는데도 (시간이 걸려서). 바닥에 놓는 걸로 깔끔하게 바뀌었어요.
문 : 그래도 튼튼한 쌤소나이트 덕분에 오래 버티고 있다.
정우 : 그나마 쌤소나이트니까
문 : 브랜드가 기사에 노출되어도 되겠죠?
정우 : 이 정도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가방을 몇 달 동안 집어 던지고 해도 버티는데.
문 : 그렇죠.(웃음) 원작이 아니라 뮤지컬에만 있는 장면인데, ‘치쿠’한테는 원래 알을 넘겨받지 않고, 치쿠의 죽음을 깨달은 뒤 ‘노든’이 알을 품잖아요. 근데 이렇게 뮤지컬에서는 넘겨받는 걸로 나오는 만큼 이 공연에서는 ‘치쿠’한테 알을 넘겨받는 게 되게 중요한 의미가 담긴 것 같아요. 이때 ‘노든’이 느끼는 감정이라든가 ‘노든’의 생각은 어떤지 좀 궁금해요.
정우 : 그 장면에서 원래 ‘노든’의 능동적인 태도를 공연에서는 수동적으로 바꾼 거잖아요. ‘펭귄’의 선택도 원작에서는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는 비겁하지만, 너무 무섭고 그렇지만 ‘노든’이 저 트럭에 실려 가는 걸 끝까지 지켜보는 걸로 자신의 책임과 그걸 다 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지금 여기서는 제가 오히려 보낼 때는 능동적으로 ‘펭귄’을 보내고.
제가 알을 받을 때는 수동적으로 이렇게 받게 되는데. 그래서 그 감정이 굉장히 오히려 더 힘들어요. 정말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이 극 중에서는 ‘노든’이 마주하는 마지막 죽음을 보는 건데, ‘앙가부’의 죽음, 가족의 죽음, 그리고 ‘치쿠’의 죽음을 이렇게 또 맞닥뜨려서. 본능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공을 내미는 이거를 직면하기가… 연기하기가 좀 쉽지가 않아요. 너무 마음이 아파요.
근데 만약에 이게 (죽음이) 지나고 난 다음이면 좀 표현이 좀 달랐겠지만. 그것도 공연의 또 매력으로. 저희 공연이 이렇게 신랄하게 보여주지 않고 좀 절제하는 감정이 있어서, 마음은 힘들지만 빨리 추스르고 다음 장면을 가는데 아직도 여파가 많이 남아서요. 어쨌든 대화 중에 눈물이 안 흘러야 되는데 자꾸 흘러가지고. ‘펭귄’한테는 안 보이고 싶은데.





혼자서 이끌어 가는 장면들은 어렵지만, 뒤에서 응원해 주는 것을 알고 힘이 나… 좋은 극을 만드는 배우가 되고 싶어
문 : 가은 배우님은 그동안 정말 다양한 무대에 섰는데, 대학로 무대는 ‘긴긴밤’이 처음이에요. 당시 대학로 처음으로 공연하게 된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가은 : 처음 공연을 하고 무대에 딱 올랐을 때 그 객석이 너무 가깝다.
문 : 처음 공연한 곳이 대학로에서도 제일 가까운데 에요(웃음).
가은 : 진짜 가깝구나라고 느꼈고. 그래서 관객분들의 호흡이나 느끼고 계신 감정들이 다 전달이 되니까. 이게 바로 직접적으로 오는구나라는 느낌이 들었고. 관객분들이 저한테 잘 전달이 되는 만큼 저도 관객분들이 더 세세하게 제가 연기하는 ‘펭귄’의 감정선을 느끼시고 또 받으실 것 같아서. 표정이나 디테일이나 그런 걸 좀 더 자세히 분석해 가면서 포인트들을 살려야겠다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문 : ‘펭귄’ 혼자 남아서 바다를 찾아 나서는 장면에서 무대 뒤에서 다른 배우분들이 응원을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응원하는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가은 : ‘펭귄’은 무대 위에 있어서 잘 모르는데 대기실에서 세 아버지들(노든, 치쿠, 윔보)이 모니터를 보시면서 이렇게 (팔을 뻗어서) 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정우 : 공연 시작도 열고 마지막도 닫는데. 그 마지막 직전까지 에너지를 다 썼는데 또 하니까 너무 힘들잖아요. 그래서 모니터에다가. (기를 불어넣고 있어요)
가은 : 세 분이 이렇게 모니터 앞으로 가서 하면서 (기를) 주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모습을 생각하면 괜스레 더 용기가 나요. 또 노래가 깔끔하게 끝까지 (잘 나와서) 마지막에 극을 완성했을 때 아버지들이 박수도 쳐주시고, 좀 불안정했다 싶었을 때는 아버지들이 저 ‘펭귄’들보다 더 아쉬워해 주시고 신경 써주셔서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문 : (뒤에서 응원을 해주신다는 걸) 알고 난 다음에 더 기운도 많이 나고, 힘도 많이 났을 것 같아요.
가은 : 끝까지 지켜봐 주고 있다 같은 느낌이 좀 강하게 들어서
문 : 그것까지도 ‘긴긴밤’ 내용 같은 느낌이 드네요(웃음). 한편으로는 펭귄 혼자 무대를 채울 시간이 너무, 좀 길어요. 그래서 부담이 될 것 같은데 어떠세요?
가은 : 사실 처음에 마지막에 ‘펭귄’이 극을 마무리하고 하이라이트까지 연결해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되게 막막하고, 사실 연습을 하면서도 쭉 계속 어렵고 좀 많이 부담이 됐었던 것 같은데. 아까 말했던 것처럼 아버지들이 지켜봐 주고 계시고. 제가 생각한 ‘펭귄’은 그런 것에 지지 않는 강한 ‘펭귄’이기 때문에 끝까지 어떻게든 이 에너지로 밀어붙여서 하는 것 같아요.
문 : 그렇게 많은 에너지도 받고 그만큼 발산도 할 수 있고. ‘펭귄’이 가방을 받는 장면이 완전한 홀로서기를 의미하는 것 같아요. 그 장면을 보면 객석에서 눈물이 엄청 나거든요. 그래서 그 장면에서 본인은 또 어떤 느낌으로 이제 그 가방을 메는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가은 : ‘펭귄’도 눈물이 엄청 나는데 되게 복합적인 것 같아요. 가방을 딱 봤을 때 속상하고, 이게 정말 이 관계에서 마지막으로 주고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도 아프고. 이걸 꺼냄으로써 계속 ‘헤어지는 거예요?’라고 말만 하다가 증명이 되는 순간이 있거든요. 진짜 헤어진다고, 그게 증명이 되는 순간 같아서 좀 속상하고.
근데 그걸 주면서까지의 ‘노든’의 마음 결심이 또 생각나서 되게 복합적인 감정이 드는 것 같은데…. 좀 웃픈 얘기긴 한데 뭔가 그 가방을 만들려고 ‘노든’이 이렇게, 이렇게 바느질해서 만들었을 걸 생각하면 또(정우 : (웃음)) 되게 웃긴데 눈물이 나요. 몰래 몰래 자는 사이에 이렇게 이렇게 만드셨을 것 같아서.
문 : (웃음) 사실은 이것도 여쭤보고 싶은데, ‘노든’의 가방 속에는 다양한 게 많이 담겨 있잖아요. ‘펭귄’의 가방에는 어떤 게 담겨 있을까요? 그리고 앞으로 어떤 게 담길까요?
가은 : 망고 열매도 담겨 있을 것 같고요. ‘노든’이랑 봤던 노을도 담겨 있을 것 같고. 정강이도 담겨 있을 것 같고. 정강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펭귄 친구들이 정어리래. 했던 것도 담겨 있을 것 같고. 뭔가 ‘노든’의 마음도 한가득 담겨 있을 것 같은데…. 가장 생각나는 건 ‘펭귄’이 바다에 도착하고 브이를 한 다음에 쫙 떨어지는 그 바다들을 잔뜩 담아서 갔을 거 같아요.






문 : 지금 초연 같은 경우에는 다른 ‘펭귄’들은 성인 배우들이었어요. 물론 연기 경력은 더 길지만(웃음) 청소년으로서 이 작품이 캐스팅됐을 때 부담감은 없었을까요? 부담감이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가은 : 말씀하셨듯이 초연했을 때 다른 언니들은 다 성인이셨고 저는 아직 청소년이었어서. 이거를 어떻게 잘 만들어 나가면 좋을까 (고민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고. 언니들은 언니들이기 때문에 더 훨씬 잘 표현하실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제가 부족했던 부분들은 언니들한테 많이 물어보고 ‘도와주세요.’ 해서, 그렇게 많은 조언을 받아서 ‘펭귄’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언니들이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문 : 그리고 이번에 앵콜 공연에서 다른 아역인 최은영 배우가 합류했어요. 성인과 아역이 연기하는 ‘펭귄’의 매력이 다르게 느껴질 것 같은데. 이 부분에서는 혹시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가은 : 확실히 은영이랑 저는 아직 어리니까, 그래서 ‘펭귄’의 성장 과정 안에서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나이대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은영이는 꼬꼬마 ‘펭귄’일 때를 더 잘할 수 있겠고, 저는 좀 사춘기 ‘펭귄’을 보여드릴 수 있겠고. 정화 언니는 성숙하고 멋진 ‘펭귄’이고, 지현 언니는 맨 처음에 ‘나는 펭귄이다’ 할 때 그 울림이 더 깊어지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아마 ‘펭귄’을 골라 보시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문 : 개인 질문으로는 마지막인데,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
가은 : 캐릭터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 캐릭터만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극 전체를 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배우. 제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극의 흐름, 관객석의 반응, 상대방 배우분의 연기까지 다 통합하고 봐서 좋은 극을 만드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문 : 너무 멋지네요.





‘긴긴밤’에서 가장 와닿은 메시지는 ‘희망’ 관객분들도 ‘희망’과 ‘용기’를 얻어 가시길
문 : 극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우 : 저는 ‘넌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문 : 그리고 이유가 있다면?
정우 : 그게 사실 투머치거든요. 근데 그게 부모 마음인 것 같아요. 이미 다 챙겨 놓고, 노래 부르면서 이미 다 했고.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진짜 잘될 거야. 안아주고. 손도 잡아주고. 못내 아쉬움에 가방이랑 다 줘서 보냈는데도. 괜히 또 한마디 더 하는 거예요.
부모 마음이. 그렇게 다 해줘 놓고도. 그냥 못내, 이제 진짜 떠나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냥 한마디 더 해주고 싶은 거예요. 너 잘하고 있다. 잘할 거야. 이미 다 했던 말을 또 하고 싶은 그런. 60, 70이 넘어도 부모한테는 애라고 하잖아요. 그런 것도 더해서 더 챙겨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노든’의 마음이 아닐까?
가은 : 저는 누누이 얘기하는 거지만 7번 ‘수영’ 넘버를 가장 좋아하는데. 거기에서 ‘너의 날개 물을 가르고. 나의 다린 땅을 구르고. 넌 숨을 참고 난 물장구치고. 그렇게 함께’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 가사가 너무 좋은 거예요. 물론 ‘긴긴밤’의 모든 넘버들이 다 가사가 너무 좋고 의미도 너무 깊고 뜻도 있는데. 그 가사가 유난히 더 깊게 다가와서. 왜 그런가 생각을 해봤더니 ‘노든’이랑 ‘펭귄’이 종이 다르고 서로 너무나 다르잖아요. ‘펭귄’은 요만한데, 코뿔소는 엄청 크고. ‘펭귄’은 바다에 사는데 코뿔소는 초원에 살고. 그런 서로 너무나도 다른 두 동물이 같은 기억을 가지고 이 행복한 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문 : ‘긴긴밤’이 가족, 성장, 이별. 그리고 희망을 다루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떤 메시지가 가장 와닿았을까요?
정우 : ‘희망’. 물론 그 안에 수많은 아픔을 겪으면서 이 ‘긴긴밤’을 지내오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잃은 것들이 많은 ‘노든’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바라보고 ‘펭귄’을 바다로 보내주겠다는 ‘희망’을 안고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가은 : 저도 약간 그렇게 느꼈는데. ‘펭귄’이 ‘노든’과 이별을 하고. 사실 ‘펭귄’이 인생에선 그게 가장 큰 포인트이자 분기점이라고 생각해요. ‘노든’이랑 헤어지고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지만. 그럼에도 ‘노든’이 준 가방을 다시 힘차게 메고 끝까지 달려가서. 결국에는 바다에 도착한 펭귄이 너무나도 용기가 넘치고, 강하고. 아버지들의 사랑과, 상처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빛났던 사랑을 가득 안고 나가는 그 모습이 정말 ‘희망’을 상징한다는 느낌을 좀 받았던 것 같아요.
문 :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뮤지컬 ‘긴긴밤’을 보러 오실 분들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정우 : 사실 공연을 보기가 쉽진 않아요. 여러 가지 죽음이 나오기 때문에. 그래서 많은 아픔과 슬픔들이 있지만, 그걸 캐릭터들이 이겨내고. 저희가 지금 쉽게 쓰는 ‘힐링’이라는 말처럼 상처를 치유해 나가면서 서로에게 힘을 주고 성장해 나가고. 그리고 희망을 안고 나가는 내용이라서. 관객분들도 눈물도 나고 마음이 아파서 어떤 장면은 힘들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이겨내고 희망으로, 앞으로 걸어 나간다는 그런 내용이니까. 힘을 드릴 테니까 공연을 보시고 그렇게 치유를 하시면서 희망을 얻어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은 :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씩 ‘긴긴밤’이 찾아오고. 아픈 순간들이 찾아오지만. 반드시, 반드시 주변에 ‘노든’ 같은 동반자가 있다는 것과. ‘치쿠’와 ‘윔보’ 같은, 그런 사랑을 주는 사람들이 반드시 한 명씩은 있다는 걸 꼭, 꼭 기억하시고. 자신의 바다, 자신의 가장 반짝이는 곳을 찾아서 나아가는 ‘펭귄’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나도 나아갈 수 있다’라는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품 속의 ‘긴긴밤’은 슬픔과 외로움에 잠들 수 없는 긴 밤을 의미한다. ‘노든’이 불면과 악몽에 시달릴 때, ‘앙가부’는 기분 좋은 이야기를 하다 잠들면 된다고 알려준다.
뮤지컬 ‘긴긴밤’은 그런 ‘앙가부’의 말처럼 기분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힘들고 괴로운 불면의 밤을 이야기하고, 그 밤을 이기는 희망과 용기를 들려준다. ‘펭귄’과 함께 바다에 당도했을 때, 관객들에게 이 이야기는 슬프고 괴로운 이야기가 아닌, 행복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변모한다.
‘노든’과 ‘펭귄’이 건네준 희망과 용기가 한 조각 마음에 닿았음이리라.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뮤지컬 ‘긴긴밤’은 인터파크 서경스퀘어 스콘 2관에서 5월 25일까지 공연된다.
기획 김현진, 이민정 , 이지윤
인터뷰 진행 김현진, 이민정, 이지윤
촬영 및 사진 편집 김현진, 이지윤
촬영 및 영상 편집 이민정
인터뷰 너무 잘 봤습니다. 결국 그 옷은 건조기로도 돌아오지 않았나보네요. ㅋㅋㅋ
인터뷰어가 극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게 잘 느껴져서 관객의 한 사람으로 더 잘 이입하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배우님들께 궁금한 것도 많이 해소되고 디테일한 에피소드들에 웃음도 많이 난 인터뷰였습니다.
가은 배우님 너무 사랑스러워요 ㅜㅡㅜ ㅋ
개인적으로 긴긴밤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 노든과의 이별 마지막에 ‘노든은 훌륭한 펭귄이에요!’ 라고 외치는 부분인데
가은배우님께서 직전에 출연하셨던 바닷마을 다이어리 엔딩 장면인 아빠를 보내주는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왈칵 눈물이 나는 제 눈물버튼이예요,, 가은님 사진 귀한데 사진도 많이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긴긴밤 배우님들 막공까지 힘내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