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 뮤지컬 <명성황후>는 한국 창작 뮤지컬의 위상을 새롭게 각인시키는 작품이다. 1896년 히로시마 법정을 배경으로,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라는 역사적 비극이 재판대에 오른다. 작품은 단지 한 인물의 서사가 아니라, 시대와 민족의 아픔을 함께 조명하며 관객에게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흥선대원군의 권력 아래, 어린 고종과 혼인한 민자영, 곧 명성황후. 고종과 함께 그녀는 격변하는 조선의 개화와 혼란을 이겨내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러나 외세의 계략과 내부의 분열은 백성들의 원망과 불안을 키웠고, ‘임오군란’이라는 폭풍 속에 왕비는 목숨을 걸고 청나라의 힘에 의지해 궁궐로 돌아온다.
뮤지컬은 당시 정치적 혼돈과 격렬한 당쟁을 무대 위에 생생히 재현하며, 명성황후가 겪은 권력과 배신, 사랑과 희생의 드라마를 깊이 있게 그려낸다. 특히 ‘여우사냥’이라는 암살 계획 아래 숨 가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관객을 긴장 속으로 몰아 넣으며, 명성황후의 용기와 인간적 고뇌를 섬세하게 조명한다.

이번 시즌에서 명성황후 역을 맡은 김소현 배우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섬세한 감정선을 넘나들며, 역사 속 ‘여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내면을 진실되게 표현한다. 고종과 흥선대원군 등 주요 인물들의 연기도 극의 무게감을 배가시키며, 각자의 욕망과 절망이 충돌하는 장면들은 몰입도를 한층 높인다.
무대는 고전과 현대의 미감을 조화롭게 융합하며, 궁궐의 화려함과 암울한 정치 풍경을 정교한 세트와 조명으로 완성한다.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도 인간 본연의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음악과 안무는 극적 긴장과 서정미를 동시에 전달하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웅장한 넘버와 디테일한 무대 연출은 30년간 이어진 작품의 내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운명에 맞서 싸운 한 여인의 불굴의 정신과 시대의 무게를 함께 품는다. 그녀가 남긴 흔적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도 삶과 정의, 그리고 희생의 의미를 묻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무대를 통해 시대를 관통한 감동은 여전히 유효하며, 앞으로도 뮤지컬 <명성황후>는 한국 창작 뮤지컬의 대표작으로서 그 존재감을 이어갈 것이다.
끝까지 관객을 몰입시키는 배우들의 열연과 완성도 높은 연출, 음악이 조화를 이루며, 초연부터 꾸준히 사랑받아 온 명작의 위상을 재확인시킨다. 한 시대의 그림자 속에 피어난 한 여인의 빛나는 이야기는, 오늘도 무대 위에서 강렬하게 살아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