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일라이’는 주인공 일라이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법조인을 꿈꾸며 모의 법정 대회 준비에 한창인 브릭스턴 고등학교의 엘리트반 학생들. 순조롭게 대회 준비가 한창이던 그 때 전학생 소피가 등장하면서 학생들 사이 리온과 일라이를 둘러싼 소문이 퍼지게 되고 일라이가 알고 있는 진짜 진실은 묻히고 만다.
자극적인 소재와 직설적인 대사
뮤지컬 ‘일라이’는 마약, 동성애 등 다소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다. 주요 넘버의 가사 속에서도 이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때문에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처음에는 이러한 소재들이 스토리의 중심이 되어 뻔한 전개로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핵심적인 메세지를 전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라는 판단이 드는 순간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또 상황적으로 설명이 필요한 부분들은 일라이의 독백이 더해지기 때문에 처음 보는 관객들도 쉽게 극을 따라갈 수 있었다.
러시안 룰렛을 연상케 하는 무대 장치와 강렬한 사운드
장면과 장면 사이 무대의 큰 변화는 없었지만 러시안 룰렛 같은 원형 무대가 돌아갈 때는 일라이의 대사 속에 등장하는 ‘누가 죽고 누가 살지’에 대한 궁금증을 고조시켰다.
또한 고등학교라는 배경과 잘 어울리는 강렬한 밴드 사운드와 넘버들이 귀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대사보다 넘버의 비중이 높은 탓에 뮤지컬이 아닌 콘서트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해 다소 아쉬웠다.
개성이 뚜렷한 브릭스턴의 학생들
뮤지컬 ‘일라이’는 극의 메세지를 스토리보다는 캐릭터에 반영하여 영리하게 풀어냈다. 모두에게 친절한 브릭스턴 재단의 아들인 일라이,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일라이를 만나 성공한 법조인의 모습을 꿈꾸는 리온, 일라이를 자신보다 먼저 챙기는 리온과 일라이 사이를 질투하는 앨리스, 리온을 좋아하다 못해 리온을 곤경에 빠뜨리게 되는 율리아, 리온과 라이벌 관계인 저스틴, 이들 사이에 갑자기 나타나 모든 사건의 키를 쥐게 된 전학생 소피까지 뚜렷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 사이의 관계성이 자연스럽게 극을 이끈다.
이야기의 첫 화자는 일라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캐릭터들 각각이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누구 한 명에게 집중되는 이야기가 아닌 캐릭터 간 밸런스를 잘 맞춘 느낌이 들었다.
‘일라이’가 주는 메세지는 명확했다. 결국 작은 오해들이 소문을 만들고 거짓말이 진실이 되어 진짜 진실을 죽게 한다는 것.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로 진한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