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6일(수)부터 31일(일)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고 한국뮤지컬협회가 진행한 ‘New 뮤지컬 크리에이터 양성 프로젝트’의 쇼케이스가 개최됐다. 해당 쇼케이스를 통해 ‘New 뮤지컬 크리에이터 양성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선보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지난 기술 융합 뮤지컬 콘텐츠를 개발하고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한 대안과 가능성을 마련한다.
‘New 뮤지컬 크리에이터 양성 프로젝트’는 한국뮤지컬협회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창의인재동반사업’ 플랫폼 기관으로 선정되어 2019년에서 2022년까지 참여하는 프로젝트이다. 한국뮤지컬협회는 본 프로젝트를 통해 뮤지컬 및 융복합 콘텐츠 분야를 대표하는 13인의 현장 전문가들을 멘토로 구성하여 도제식 멘토링을 통해 창의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함으로써 청년 인재의 창작 능력 개발과 콘텐츠 사업 분야로의 진출을 지원하는 일을 돕고 있다.
이번 쇼케이스가 열리는 5일 동안, 하루에 한 편씩 총 5개 작품이 선보였다. 문화포커스에서는 뮤지컬 ‘인비져블 컴퍼니’, ‘가이드 러너’, ‘IN : 因 인할 인’, ‘STIGMA’, 그리고 ‘자명고가 울린다’을 소개하고자 한다.
뮤지컬 ‘인비져블 컴퍼니’ – 사라지고 싶은 당신에게
우울증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판타지라는 소재를 사용해 진솔하게 풀어낸 힐링 뮤지컬.
작가 지망생인 유영은 동생 근영과 단둘이 살아가고 있다. 깊은 우울증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유영과 유영의 몫까지 생계를 책임지는 근영. 두 사람 사이에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자책하는 유영의 앞에 ‘인비져블’이 나타난다. 유영에게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인비져블. 유영은 그의 제안을 수락하고 그를 따라간다.
갑작스레 사라진 유영을 찾는 근영. 그런 근영의 앞에 처음 보는 여자아이 ‘스마일리’가 나타나 유영을 찾아야 한다며 근영을 채근한다. 두 사람은 유영의 노트북에서 ‘인비져블 컴퍼니’로 향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되고, 그곳에서 유영과 재회하지만, 유영은 돌아가려 하지 않는데…
‘이 세상에서 나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준다.’ 이 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당신에게 인비져블 컴퍼니는 색다른 방식으로 다가간다. 차갑고 냉정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옮겨 놓은 것 같은 인비져블 컴퍼니 속, 따뜻한 스마일리의 존재가 미소처럼 잔잔하게 스며드는 것처럼 말이다. 자칫 무겁게만 전개될 수 있는 우울증이라는 소재에 판타지를 더해 무게를 덜어내는 대신 음악과 연출로 깊이감은 유지했다.
강렬한 원형의 구조물이 중심에 자리 잡은 무대는 인비져블 컴퍼니의 높다란 빌딩을 시각화한 것 같은 3단 무대 위에 자리 잡은 현악 4중주와 피아노가 객석을 조용히 잠식해 나간다. 가벼운 듯 무거운 음들은 마치 깊은 우울감에 빠진 유영의 심리를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게 대변하고 극이 고조되면서 점차 강렬해지며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소화한다.
리딩 쇼케이스인 만큼 배우들의 움직임은 크지 않았지만, 배우들이 앉는 의자에 높은 사각형의 구조물을 만들어 유영이 노트북을 올려 두거나, 자신의 기록을 없애는 세단기로 사용한 점 등 리딩 공연의 제한점을 재치 있게 살린 부분들에서 연출과 무대디자이너의 세심함을 엿볼 수 있었다.
뮤지컬 ‘가이드 러너’ – 함께 달리는 순간의 반짝임
시각장애를 가진 선수와 함께 달리는 가이드 러너. 전 육상선수인 우림은 사고로 시력을 잃은 육상선수 보라의 가이드 러너다.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는 우림과 달리 놀고 싶어 하는 보라. 처음엔 맞지 않던 두 사람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로를 의지해간다. 서로의 손목에 묶인 테더(끈)처럼.
그러나 대회를 일주일 앞둔 어느 날. 두 사람은 잊고 싶었던 사건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청춘의 반짝임과 위태로움을 사랑스럽게 그려낸 가이드 러너. 가이드 러너라는 생소한 소재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는 담담하면서도 과장 없이, 그렇지만 아름답게 풀어나간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선을 지키는 모습에서는 작가의 섬세한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리딩 공연임에도 달리는 액션과 안무까지 더해 상업 공연에 견줄 정도로 밀도 있게 채운 연출은 공연의 백미.
한편의 청춘드라마를 옮겨 놓은 무대는 대도구를 최소한으로 줄인 대신 플로어를 스크린으로 활용했다. 플로어는 두 사람이 달리는 트랙이 되기도,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배경이 되기도 하며 생동감을 더했다. 작은 전구들이 빛나며 만들어내는 유원지의 모습은 작은 무대라는 것을 잊게 했다.
완성도 높은 음악과 어우러지는 클라리넷의 음색은 부드러우면서도 경쾌해 마치 달리는 중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 같이 느껴진다.
뮤지컬 ‘IN : 因 인할 인’ – 소리로 표현하는 인간의 모든 감정!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인간의 감정을 이루는 신들은 서로 짝을 이뤄 균형을 맞추고 있다. 태어나는 순간 쌍둥이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어둠 속에서 살게 된 연이. 자신의 생일 때마다 이상한 소리를 듣던 연이는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고 여러 감정의 신들을 만난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궁금해진 연이는 어둠의 동굴에 갇혀 있는 ‘버들’과 만나게 되고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신의 세계에 빗대어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 IN : 因 인할 인>은 다양한 감정들이 서로 균형을 맞추어 살아갈 때 한 인간의 주체로서 성장해 나간다는 점에서 영화 ‘인사이드아웃’을 보는 것 같았다. 즐거울 낙과 성낼 노가 짝을 이뤄 티격태격하는 장면과 분노를 통해 내면 속 진짜 자신을 찾게 되는 장면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다.
뮤지컬 ‘STIGMA’ – ‘당신의 MBTI는 무엇입니까?’
성격검사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셸 쇼크(전투 스트레스로 정상적인 사고나 행동에 장애가 발생하는 것)로 손실되는 병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처음 개발되었다. 평범한 두 모녀에 의해 개발된 MBTI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공작원에게 적합한 임무를 매칭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뮤지컬 ‘STIGMA’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MBTI를 모티브로 하는 작품.
제2차 세계 대전이 심화되자 독일은 여성 징집을 시작한다. 안나, 릴리, 소피는 이렇게 징병 된 여군이었다. 이들은 적합한 업무에 배치되기 위해 전혀 새로운 유형의 검사를 받게 된다. 그리고 검사 결과에 따라 최전방에서 군수 물품을 보급하는 업무에 배치된다. 한편 군사령관에서는 계속되는 패배를 뒤집기 위해 ‘인간의 성향을 16개로 분류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그리고 이 연구 결과에 따라 독일 승리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성향을 보인 인물들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창작진은 MBTI라는 친숙한 소재를 이용해 ‘어떤 틀에 맞춰 상대와 나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본 공연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배경을 차용해 메세지를 강조한다.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남을 재단하는 편견의 위험함’이 등장인물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한다. 주제와는 별개로 사람의 유형을 분류하는 테스트 장면이 매우 흥미롭다. 같은 유형의 사람들을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분류한다.
뮤지컬 ‘자명고가 울린다’ – 익숙한 고전의 새로운 변주
적국의 왕자와 사랑에 빠진 공주는 나라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던 영험한 북을 찢게 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다.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 (물론 이쪽이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는 천오백 년 정도 빠르긴 하지만) 이 익숙한 이야기에 상상력을 가미해 새롭게 해석한 것이 ‘자명고가 울린다’이다.
우리가 흔히 알던 이야기에 숨어있는 이야기가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력에서 출발한 자명고가 울린다는, 로맨스의 장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정치와 전쟁, 그리고 사상과 결핍이 엇갈리는 대서사시로 완성되었다. 나라와 가족을 잃고 복수만을 위해 달리는 자명, 여자이지만 사내로 키워져 전쟁에 나서야 했던 낙랑의 공주 최윤, 모든 것을 다 지닌 듯 보이지만 부왕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하는 호동. 세 사람은 서로의 결핍에 이끌리고 엇갈린다.
무대는 대형스크린과 낮은 2단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였지만, 대형 스크린의 애니메이션을 이용해 자명국과 고구려, 낙랑을 숨 가쁘게 오간다. 낮은 2단은 충분한 깊이감을 만들어주었다. 대서사시에 어울리는 장엄하면서도 서정적인 넘버는 극을 한층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장치였다. 최윤과 호동이 연서를 주고받을 때는 가볍게, 최윤이 전쟁의 후유증으로 괴로워할 때는 무겁고 강렬하게,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도 빠르게 변주되는 넘버들은 유기성이 느껴졌다.
짧은 시간에 모든 걸 보여주기에는 넘칠 수밖에 없는 공연이라는 것이 아쉽지만, 공연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려 보여주고자 하는 연출의 애정과 섬세함 역시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