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 한 스푼, 체력 두 스푼, 그리고…이런, 너무 많이 부었네?!’ 수염이 긴, 하지만 어쩐지 귀여운 일러스트의 ‘신’이 손에 든 컵 속의 재료를 실수로 쏟아버리는 이 ‘짤’은 한동안 인터넷 세상에서 굉장히 화제였다.
사실 가벼운 심리테스트 등을 제공하는 콘텐츠 전문 업체에서 만들어낸 간단한 테스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짤은, 사람들이 가공에 가공을 거듭하며 급하게 퍼져 나갔다. 이 짤의 포인트는 신이 마지막에 실수로 왕창 붇거나, 쏟아버리는 재료. 그 재료가 대상에게 넘치거나 부족한 것이라 사람들을 웃프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 ‘밈(Meme)을 기반으로 만든 창작뮤지컬이 나타났다. 제목도 똑같은 ‘신이 나를 만들 때’. 지난 4월 18일 개막한 ‘신이 나를 만들 때’는 밈에서 출발한 만큼 코믹하지만 그 중심은 진지하고 단단하다.
맨 처음 무대 위에 등장한 ‘신’은 ‘사람’을 만들 재료를 조합한다. 그 모습은 어딘가 많이 어설프다. 가장 중요한 엑기스를 조심스렇게 넣는다더니 왕창 부어 버린다. 어색하게 웃어넘긴 ‘신’은 ‘신의 숨결’을 불어 넣어 ‘사람’을 완성한다.
그리고 이 ‘대충대충’에 분노하며 나탄난 것이 ‘악상’. 부모도 재력도, 체력도 아무 것도 타고나지 못했지만 악착같이 살아온 ‘악상’은 로또가 당첨된 날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이에 분노한 악상은 단 번에 신들의 세계인 ‘클라우드’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거부하고 계단으로 걸어 올라 와 신과 대면한 것.
인생을 환불해 달라는 ‘악상’과 환불은 절대로 없다는 ‘신’. 그 과정에서 ‘신’이 ‘악상’을 만들 때 원래 정한 수명보다 한참 모자란 수명을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신은 ‘악상’의 수명을 대신 가져 간 ‘호상’이 죽으면 그 사람이 가진 재료를 가져와 다시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렇게 50년 간 ‘호상’의 죽음을 기다린 ‘악상’. 드디어 ‘호상’의 죽음이 한 시간 남은 상황에서 ‘신’이 갑작스럽게 ‘클라우드’를 비우게 되는데?
과연 ‘악상’은 무사히 인생환불에 성공할까?
‘지금의 너도 괜찮아’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발랄한 소재와 탄탄한 스토리의 뮤지컬
마치 공무원 같은 ‘신’, 사람의 존재는 ‘데이터’로 취급되는 데다 신들의 세계는 무려 온라인 서버를 부르는 명칭인 ‘클라우드’라고 불린다. 창조하고, 파괴 되는 공간들도 ‘창조 드라이브’와 ‘파괴 드라이브’ 등, ‘드라이브’로 명명된다.
어떻게 보면 생소할 수도 있는 이 개념들을 돕는 것은 무대 장치와 연출. 스토리와 어울리게 무대 위를 빼곡하게 채운 구형 브라운관부터 최신형 모니터에는 장면에 맞춘 발랄한 이미지들은 관객들이 이 스토리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때문인지 ‘호상’이 ‘악상’과 만나 펼치는 복싱, 테니스 등의 대결 장면은 모니터를 빼곡하게 채운 픽셀 애니메이션들 덕에 옛날 패미콤 게임처럼 느껴져 추억에 젖게 만들기도 한다.
무대를 연출한 표상아 연출은 프레스콜에서 대극장에서 올려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며, “작은 공간에서 운영하기에는 필요한 장치가 많았다. 스토리가 아날로그적이면서도, 공간을 설명하는 모든 용어가 디지털 용어다. 모든 소재를 연결해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모니터에 영상을 출력하기 위해 조금 어두운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만큼 제 역할을 하는 모니터들과 ‘신’과 ‘악상’의 호출에 등장해 눈치 없이 정답만 말하는 AI ‘클라우드’의 존재도 관객의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요인.
작품의 소재와 전개 때문인지 픽사의 ‘소울’이 스쳐 가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픽사의 애니메이션 같다고 느끼는 것은 시종일관 웃게 만들다가도 그 안에 자리잡은 확실한 메세지와 휴머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정해진 ‘재료’로 정해지는 운명을 거슬러 이겨 내는 ‘악상’의 여정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이 뮤지컬은 관객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선사한다.
밴드 음악, 록, 팝 등 친숙한 장르들로 선보이는 독특한 소재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노래하는 것은 친숙한 장르의 음악들이다. 흔히 생각하는 뮤지컬 장르의 노래가 아닌, 4인조 밴드 연주를 기반으로 팝과 록, 밴드 음악을 선보이는 이 뮤지컬은 공연에 어울리기도 하지만 공연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장치.
반대로 뮤지컬스럽지 않은 넘버이기에 뮤지컬 팬의 입장에서는 다소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공을 들인 편곡이 귀를 즐겁게 한다. 이 편곡을 살려주는 4인조의 밴드도 모두 신으로 무대 위에 등장한다. 기신(기타신), 드신(드럼신), 피신(피아노신), 베신(베이스신) 등으로 불리는 4명의 신은 공연내내 무대 위에서 함께 한다.
태어날 때 부여 받은 재료로 만들어지는 내 ‘운명’이란, 요즘 유난히 많이 퍼져 있는 금수저, 아니 유전자수저에 대한 자조와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타고난 것은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대중의 시류를 마주한 이 뮤지컬은 말한다. 모든 것에는 ‘앞면과 뒷면’이 있다고.
내가 가지고 있는 ‘나쁜 것’들의 뒤에 있는 ‘좋은 것’을 마주하는 시간이 될 ‘신이 나를 만들 때’는 6월 11일까지 예그린씨어터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