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국 초연 이후 어느덧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이한 연극 ‘프라이드’. 1958년과 2008년, 서로 다른 시대의 런던을 배경으로 같은 이름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필립’과 ‘올리버’, ‘실비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연극은 여전히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고 있다.
이번 시즌에서 ‘실비아’ 역으로 활약 중인 배우 홍금비를 만나, 연극 ‘프라이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문화포커스(이하 ‘문’) : 연극 ‘프라이드’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참여하게 된 소감이 궁금해요
홍금비(이하 ‘금비’) : 저는 작품 선택할 때, 이 작품을 하고 난 다음의 저에 대해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 작품을 하고 나서, 이거를 마치고 난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했고, 그래서 ‘프라이드’를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문 : 그렇게 연습에 들어가고, 공연을 올리면서는 어땠나요?
금비 : 정말, 정말… 대사량 때문에…(웃음) 읽었을 땐 몰랐어요. 그냥 슥슥 읽혀서 몰랐는데, 정말 대사가 많은 거예요. 그래서 (참여) 소감이라고 하면 ‘진짜 땀 삐질삐질 이에요’ 였어요. 항상 대본 외우느라 정신이 없었을 정도로요.
그래도 ‘실비아’를 하면서 많이 공부하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결론은) 기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문 : 연극 ‘프라이드’가 오랜만에 돌아왔다 보니 작품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도, 처음 접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연극 ‘프라이드’가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금비 : 제가 소개를 잘할 수 있을까요?(웃음) 연극 ‘프라이드’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누구나 봐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에요.) ‘나를 찾아가는 과정’ 중 하나라는 건 결국 누구든 겪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누군가 [‘프라이드’는 어떤 작품이야?]라고 물어보면 ‘각기 다른 인물들이, 정말 세상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 저도 보면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참 와닿았던 거 같아요. 연극 ‘프라이드’는 2014년 초연 이래로 꾸준히 많은 사랑을 받아왔어요. 금비 배우님이 생각하시기에 연극 ‘프라이드’가 이렇게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나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금비 : 첫 번째로는 대본이 너무 짜임새 있고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고, (그다음으로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우리들이 풀어가야 할 숙제들이 남아 있다는 점이요. 그리고 그 문제들에 대해 공감하기도 하고, 같이 아파하기도 하고, 서로 위로해 줄 수 있는 작품이라서 많이 사랑받는 것 같아요.
그리고 대본을 볼 때도 그렇지만 모든 인물들이 연기할수록 더 입체적으로 느껴지거든요. 관객분들도 그래서 더 재미있게 보시는 것 같아요. 여러 번 봐도, 몇 년이 지나도요.
문 : 확실히 인물이 입체적인 거 같아요. 연극 ‘프라이드’는 1958년과 2008년, 두 시대를 오가잖아요. 그리고 각 배우가 연기하는 1958년과 2008년의 인물들 성격도 꽤 달라요. 이렇게 시간대에 따라 캐릭터가 바뀌는 것도 매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시간대에 따라 캐릭터 성격이 너무 다르다 보니까 연기하시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요.
금비 : 처음 연습했을 때 수연 언니랑 ‘아, 이거 어렵다’고 했어요. (한 장면에서) ‘잘 자요. 필립’하고 울어요. 슬퍼하는 감정이 아직 남아 있는데, 바로 08년도 실비아가 되어 올리버랑 만나서 ‘시발!’하고 감정을 다 털어내야 해요. 그때 관객들도 그렇고 배우들도 그렇고, 감정선이 같이 아래로 내려가 있을 때라 그걸 딱 끊어줘야 하는데, 저희가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연습할 때도 ‘안 돼, 템포 올려야 돼. 해보자! 해보자!’ 이러면서 연습했어요.
기뻤다가 슬퍼하는 건 오히려 빠르게 전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슬펐다가 기뻐히는 건 이 ‘슬픈 마음’이 금방 안 털어져요. 연습하면서 ‘땀 삐질삐질인데, 쉽지 않은 싸움이겠어’ 이러면서 했었죠.
문 : 이번 인터뷰의 메인 멘트가 ‘땀 삐질삐질’인 거 같네요(웃음). 실비아는 아예 2막 초반에 무대 위에서 바로 시대가 바뀌잖아요. 그 장면도 감정 잡는 게 꽤 힘들 것 같아 보였어요. 객석에서 봤을 때는, 그래도 무대 뒤에서 상황 체인지를 하는 게 무대 위에서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은데, 어떠세요?
금비 : 무대 위에 있는 게, (감정 변화를) 체인지하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그 장면에서 08년도 ‘실비아’가 돼서 문 두드리는 소리에 바로 대답해야 되는데, 사실 감정 정리를 못 한 채라서 계속 빨리 털어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계속하다 보니까, 역시 연마하고 트레이닝하면 되긴 하는 것 같아요.
문 : 저는 그 장면에서 이전의 감정이 약하게 남아 있는 느낌이 58년의 ‘실비아’랑 08년도의 ‘실비아’의 연속성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사실 이러한 연속성이 단어나 대사로 장치가 되어 있긴 하죠.


전혀 다른 1958년과 2008년, 그리고 연속성이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
문 : 58년은 마치 흑백 영화 보고 있는 느낌이에요, 대사도 굉장히 고풍스럽고. 08년도로 넘어가면 이제 현대잖아요, 대사도 시원하게 얘기해요. 두 시대의 ‘실비아’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야 하는데 그런 대사의 뉘앙스 차이가 도와주는 부분들이 많은 거 같아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두 시대의 대사가 너무 차이 나기 때문에 연기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까 싶었어요.
금비 : 오히려 차이가 많이 나니까 (변화를) 주기에도 좋고 좀 편했던 것 같아요. 거기에서 힘든 점은 없었어요. 오히려 대사가 입에 붙으니까 오히려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58년도에는 고풍스럽게, 58년도에 있을 법한 말들을 하고, 08년도에는 정말 우리 곁에 있을 법한 말이 시원하게 하고. 차이가 너무 극명하니까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대사나 옷. 아니면 우리가 앉는 자세나 에티튜드에서 (차이점이) 바로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재밌어요.
문 : 작품의 설정상 각 시대의 인물들은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이라고 되어 있잖아요. 연기하실 때는 같은 인물이라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정말 다른 인물이라 생각하고 연기하는지 궁금해요.
금비 : 저는 둘 다인 것 같아요. 같으면서도 달라요. 공연 중에 ‘올리버’가 호수에서 ‘이제 50년 후 500년 후 누군가가…’ 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저는) 그 몇십 년 후에 ‘실비아’가 08년도의 ‘실비아’라고 생각해요. 환생 이런 것까지는 아니고요. 작가가 이렇게 같은 이름을 쓴 이유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실비아’가 같으면서도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연기를 하기도 했고.
문 : 앞에서 말한 설정(다른 시대에 존재하는 이름이 같은 다른 인물)과 달리, 작품 진행되다 보면 두 시대의 인물 간에 연속성이 느껴지도록 장치를 해놓으셨어요. 그런 부분이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약간 카타르시스도 느껴지고 재밌는데 배우분이 연기하시기에는 좀 까다로울 것 같아요.
금비 : 카타르시스라고 말해 주셨잖아요. 그런 것처럼 배우들도, 같이 하는 오빠들과 수연 언니도 아마 같은 걸 느끼고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실비아’와 다른 ‘인물들’인데 장치적으로 같은 말을 하잖아요. 근데 그게 어렵지 않게 되어 있더라고요. 갑자기 뜬금없이 ‘너보다 내가 먼저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런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성격과 ‘올리버’의 관계에 맞게 그 대사가 들어가 있어서, 오히려 퍼즐 찾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연습을 하면서도 ‘여기 갑자기 장치가 있네, 그럼 이렇게도 가능하겠구나, 이런 말로도 되겠구나’하면서, 그런 거에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관객분들도 그 장면을 보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 처럼요.
문 : ‘프라이드’가 인터미션 포함해서 3시간이에요. 관객의 입장에서는 사실 긴 시간이거든요. 중간에 인터미션이 있긴 해도. 배우 입장에서는 어떤지 궁금해요.
금비 : 제가 안에 들어가서 플레잉을 하는 거니까. 하루 1회일 때는 진짜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아요.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서 놀라곤 해요.
문 : (시간이 기니까) 배우 입장에서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을까 사실 생각했었거든요.
금비 : 아니에요. (문 : 괜찮아요?) 네, 그럼요. 사실 연기하고 있을 때는 체력이 떨어지는 걸 인지하지 못해요. 그냥 다 끝나고 나면 ‘어떻게 3시간이 지났네?’ 하는 거 같아요.
문 : 공연을 하면 몰입하시는 타입인가 봐요.
금비 : 몰입하지 않으면 대사를….!(웃음)
문: (웃음) 프로그램 북에서도 대사량 얘기를 하셨어요. 공연을 하시면서 어떠세요? 생각만큼 어려운지, 아니면은 그래도 이거 생각보다 할 만한데 싶은지.
금비 : 잘 모르겠어요. 이제 일주일을 막 지나기도 했었고. 사실 어떤 공연이든 ‘약간 할 만하다’라는 생각을 진짜 한 번쯤 해보고 싶어요.
모든 공연에서 소대에 들어가기 전에는 계속 중얼중얼하고 있거든요. 입에서 주술을 외우듯이 하고 있어요. (게다가) 전 뭔가에 잘 흔들리는 편인데 최근에는 대사할 때 집중해서 해내는 저의 모습 보면서 ‘금비 너도 이제 나이를 먹고 좀 많이 성장을 했구나, 네가 이만큼 집중을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문 : 그렇게 긴 시간은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부분이나 비결이 있다면?
금비 : 저는 사실 조금 느린 편이거든요. 대사 암기도 그렇고 뭐든지 조금 느린 편인데. 그래서 더 많이, 1.5배 아니면 1.7배는 더 봐야 하는 것 같아요. 집중을 하려고 하면 더 안되고…
근데 성현(박성현) 오빠가 호흡을 그냥 툭 떨어뜨리라고 그러더라구요. 그럴 때는 더 집중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숨 한 번 내쉬면 확 나을 거라고요. 더 집중하려고 하면 집중한 제 모습밖에 안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요즘은 그냥 호흡을 훅 떨어뜨리고 대사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어려웠던 ‘실비아’.. 지금은 안쓰럽지만 너무 사랑스러워
문 : 자신에게 ‘실비아’가 어떤 인물인지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요?
금비 : ‘실비아’는… 이렇게 말을 못 할 정도로 저한테 너무 어렵고, 이해하게 된다면 너무 가슴 아픈 인물이라서 너무 미웠어요.
08년도의 ‘실비아’는 자기 행복을 또 찾아가는 사람이고, 어떤 사랑의 결실도 책임도 질 수 있다고 말할 만큼 성장한 인물인데, 58년도의 ‘실비아’가 처음에는 정말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너무 사랑스럽고, 안쓰럽고, 조금 가슴 아픈 ‘실비아’인 것 같아요.
문 : 그런 58년도의 ‘실비아’랑 08년도의 ‘실비아’의 각각 매력을 꼽자면 뭐가 있을까요?
금비 : 58년도 ‘실비아’는 약한데 강한 부분이 있는 인물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게 힘들었어요. 분명히 약한 인물인데 숭고한 선택을 할 줄 아는 그런 인물인 거예요. 그래서 ‘실비아’의 ‘용기 있는 점’이 저는 제일 매력이라고 생각했어요. 08년도의 ‘실비아’는 지지대 같은, 그러니까 ‘곁에 있으면 정말 날 북돋아 줄 수 있는’ 그런 매력이 있는 친구인 것 같아요.
문 : 정말요. 08년도 ‘실비아’ 같은 친구가 정말 갖고 싶은 친구잖아요. 그런 ‘실비아’ 같은 친구가 있는 ‘올리버’가 ‘진짜 부럽다’ 싶어요.
금비 : 전 이런 친구를 바라서 그렇게 연기했던 거 같아요. 그 누가 집에 틀어박혀 있는데 좋아하는 과일이랑, 까탈스러운 유기농 취향도 다 맞춰서 가져다 주고, 남자 친구랑 데이트 가야 되는데 그것도 미뤄가면서 고민 들어주고 있을까요. 58년도랑 08년도의 따뜻함은 다르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은 정말 같은 인물들인 것 같아요.
문 : 그러면은 58년 ‘실비아’랑 08년 ‘실비아’의 차이점과 공통점은 뭘까요?
금비 : 공통점은 따스함. 차이점은 뚜렷하게 하나 있는 것 같아요. 58년도의 ‘실비아’는 ‘나보다 이 사람이 먼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래서 ‘이 사람이 행복함으로써 내 행복을 가져갈 수 있겠다’라고 느끼는 사람. 그리고 08년도의 ‘실비아’는 ‘내가 있어야 이 행복이 존재한 거야’라는 마음이 있고, 그래서 ‘너의 행복이 그래서 존재하고 내가 있기 때문에 너도 있는 것’처럼 이 행복의 위치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그게 차이점인 것 같아요.
문 : 그 차이점이 정말 크지만, 어떻게 보면 또 미묘한데 그걸 발견하는 순간이 재밌는 것 같아요. 58년 ‘실비아’랑 08년 ‘실비아’ 중, 연기할 때 좀 더 편한 쪽이 있을까요?
금비 : 연기하기 편한 거는, 08년 때가 더 편하긴 한 것 같아요. 말도 더 현대적이기도 하고. 편한 상태에서 하는 씬들이 많아서 좀 더 재미있게 여러 시도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문 : 58년 ‘실비아’랑 08년도 실비아가 말투도 그런데 자세도 되게 다른 것 같아요. 자세부터 달라지는 느낌인데 그런 차이를 두기 위해서 생각하는 나만의 디테일 같은 게 있을까요?
금비 : 제가 원래 자세를 약간 편하게 하면 점점 앞으로 숙이게 되거든요. 그런데 예의 있어야 하거나 약간 차려진 공간에서는 허리를 세우게 되잖아요. 근데 이게 제 이미지에서 강점이 되더라고요. 안 좋은 자세가 제가 항상 해왔던 태도니까, 08년도 장면에서는 사람들이 봤을 때 좀 더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보이고.
반대로 허리를 세우면 자세가 고르니까 좀 더 그 시대(58년도) 사람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58년도 장면에서는 등장하자마자 척추 피고 허리 꼿꼿이 하고 자세를 교정하고 나가요. 그리고 과거 ‘실비아’를 할 때는 조금 더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겉이 아니라 내면이 좀 더 어른스러운 친구처럼 보이려고요, 그래서 자세부터 단정히 했던 것 같아요.
문 : 58년도 ‘실비아’는 약간 클래식한 느낌인데 08년도 ‘실비아’는 힙합 바이브가 느껴져서 재밌었어요.
금비 : 맞아요. 제가 손이 커서 손을 많이 사용하면 눈에 엄청 많이 띄고 되게 와일드해 보이거든요. 그래서 손을 08년도에는 많이 쓰고 58년도에는 좀 많이 숨겨요. 58년도 실비아가 우울증이 있다고 그랬잖아요. 근데 우울증이 있을 때 손에 땀이 많이 나거나 많이 비비게 되는 증상이 생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손을 숨기면서 비비거나 그러면서 이런 불안감을 여기다가 좀 담아보자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문 : 공연 전 인터뷰에서 실비아의 매력으로 ‘용기’를 꼽으면서 ‘용기 있는 선택’을 얘기했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실비아의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요?
금비 : 제가 생각을 해봤거든요. 근데 ‘실비아’가 용기 있는 선택을 정말 자잘하게 정말 많이 했어요. 너무 유약한 사람인데, 정말 힘들었을 것 같은데.
공원 벤치에서 ‘전 필립을 정말 많이 사랑해요.’라는 이 말이 저는 되게 마음이 아픈 말이거든요. 그때 ‘실비아’의 용기는 인정하는 용기. 내가 너무 사랑하고 너무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 너무 인정하기 싫잖아요. 내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고, 잡을 수 있는 행복인데. 근데 이 사람은 아니라니까. 그러면 ‘난 놔줘야지, 인정해야지.’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필립’을 정말 많이 사랑하니까.
그때 ‘실비아’가 모든 걸 인정한 것 같았어요. ‘맞아요. 난 줄 수 없거든요. 하지만 난 ‘필립’을 너무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행복하길 원해’ 그래서 그게 용기 있는 선택인 것 같아요. 인정하고 놔줄 수 있는 그런 용기.
문 : 말씀하신 대로 그런 것 같아요. 저도 그 장면 보면서 너무 슬프고 안타깝고…
금비 : ‘필립’이 잘해주겠죠. 행복해야지
문 : 사실 그 뒤에 (58년도의) ‘필립’이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
금비 : 맞아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1막 1장 때 그래서 ‘올리버’가 그러잖아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실수들, 이 모든 것들이 50년 500년을 그 누군가는 계속 쌓아올 거다.’ 그래서 지금의 08년의 ‘필립’은 그걸 이겨내고, 자신을 알아가려고 하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요. 그래서 참 많은 장치가 있구나 생각 했어요.
문 : 프라이드’가 생각할 지점들이 너무 많아서, 약간 퍼즐 푸는 재미처럼 보게 돼요.
금비 : 머리 아파요(웃음)
문 : 원래 만드는 게 더 어렵잖아요. 푸는 것보다(웃음)
금비 : 대사하다가 ‘근데 왜 이렇게 하지’하다가 ‘아! 이런 이거였나 봐’ 하면서 공부하고.
문 : 그러면 대본에 메모 같은 게 많겠어요
금비 : 네, 많아요. 그래서 메모도 쓰고 막 이미지화 해서 낙서로 그리고… ‘올리버’도 그리고… 그런 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문 : 연극 ‘프라이드’의 모든 시작은 ‘실비아’가 ‘올리버’를 불렀기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58년도 ‘실비아’의 첫 장면이 본인도 어느 정도 이렇게 될 거라고 알고 있으면서, 의도는 숨긴 채 복선으로도 작용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봤을 때는. 그런 ‘실비아’의 감정을 느껴지게 하고 싶었는지, 아니면은 그 장면 자체는 순수하게 만나는 장면처럼 보이고 싶었는지 그것도 좀 궁금해요.
금비 : 이거에 대해서 연출님이랑 연습실에서 되게 많이 얘기했던 걸로 기억이 나요.
근데 연출님이랑 다 같이 얘기하길 이어주려고 했던 시작은 아니었고 ‘필립이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라고. 그리고 우리의 침묵은 점점 쌓여가고 ‘이거’에 대한 갈증이 심해져 가는데, ‘올리버’라는 이름으로 또 만나게 된 거야. 근데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숨기지 않고 그 애답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이고 너무 멋있어 보이는 거야. 필립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멋있는 사람도 있어, 필립. 우리 용기 낼 수 있어.’를 보여주자는 그런 시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나중에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된 거죠. 그래서 처음에는 의도를 갖고 만나게 해줬다는 아니었던 거예요.
문 : 객석에서 봤을 때는 실비아가 두 사람이 끌릴 걸 알고 있는 줄 알았어요.
금비 : 알지 않을까요? 근데 가끔 그런 선택할 때 있잖아요. 결과를 아는데 나도 모르게 그 선택을 하고 있을 때. ‘실비아’도 그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문 : 그런 ‘실비아’ 선택 때문에 이 작품이 그렇게 흘러가고, 저는 ‘실비아’의 마지막 선택이 되게 옳았다고 생각해요.
금비 : 그게 옳은 게 너무 가슴이 너무 아파요.


가장 좋아하는 위로의 말 ‘괜찮아’… 관객들에게 직접 전할 수 있어 기뻐
문 : 08년도 ‘실비아’가 연인과의 약속도 뒤로 할 정도로 ‘올리버’랑 우정에 충실한 편이잖아요. 둘의 우정이 그만큼 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반대로 58년도 ‘실비아’가 ‘올리버’에게 가진 감정이 뭘까 많이 궁금했어요. 어떻게 보면 연적이 되기도 한 거잖아요, ‘올리버’의 존재가.
금비 : 그래서 저도 연출님께 ‘정말 일말의 미움도 없어요?’하고 물어봤어요 ‘정말 요만큼의 원망도 없나요? 1% 아니 0.1%의 비난도 없나요?’ 그랬더니 연출님이 ‘없어’ 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럼 그 마음이 뭘까, 정말 안 미울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어제 글을 봤는데 누군가를 너무 미친 듯이 사랑하면 이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서, 이 사람의 행복을 바란다는 거예요, 내 행복 말고.
그걸 보고 ‘실비아’의 마음이라고 생각했어요. ‘올리버’를 다른 의미로, 정말 사람으로서 사랑하고 이들의 존재를 정말 응원해 주는 조력자 같은 인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어떤 다른 사랑의 모양새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올리버’를 볼 때 ‘동질의 영혼’이라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정말 나랑 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는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문 : 마지막 장면에서 58년에 ‘실비아’가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을 하잖아요. 그 장면이 저는 정말 너무 좋거든요. 그때 주는 울림도 크고요. 연기할 때는 어떤 마음으로 누구에게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요.
금비 : 이 장면이 제가 계단에 두 칸 올라가서, 거의 중앙에서 관객석을 보고 하거든요. ‘필립’과 ‘올리버’도 관객석을 보고. 그래서 마지막에 ‘모두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하는 게 누구가 아니라 정말 모두에게 전하는 말이에요. ‘올리버’랑 ‘필립’과 ‘실비아’, ‘남자’… 무대에 있는 사람들이 모든 여러분에게 말하는 말인 것 같아요. 저는 최고의 위로가 ‘괜찮아’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인생에서 최고의 위로였었어요. 괜찮다는 말을 우리가 되게 박하게 쓰잖아요. 특히 자신에게 제일.
타인에게는 괜찮다는 말을 참 많이 하는데, 저는 나한테 ‘괜찮다’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괜찮아’ 보다는 ‘왜 이렇게 했지, 나 진짜 바보인가?’ 이런 얘기를 많이 하고. ‘난 왜 이런 사람이지’ 항상 그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런데 어떤 친구가 ‘야 괜찮아’ 이랬는데, 괜찮다는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던 거예요. 눈물이 너무 났어요. ‘괜찮다는 말이 이렇게 최고의 위로다. 난 누구한테 위로를 한다면 그냥 괜찮다라는 말을 할래’라고 생각했는데.
공연의 마지막에 ‘괜찮아’라는 말을 했을 때 저도 이 말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정말 괜찮아질 거예요. 지금 너무 힘들지만 우리는 이걸로 모든 어떤 일이든. 나중에는 어떤 상처가 아물면서 또 다른 내가 나오기 때문에 다 괜찮아요. 우리는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있기 때문이죠.’처럼. 그냥 ‘괜찮아요’라는 말할 때 관객분들한테 그때 제가 받았던 인생 최고의 위로를, ‘괜찮아’라는 말을 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쁜 것 같아요.
‘정말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어떤 사연을 갖고 왔고 뭐 때문에 우는지 모르지만 그것 또한 괜찮아요’.
그분들에게 ‘괜찮아요’라는 말을 좀 할 수 있어서, 저한테도 감동적인 대사였어요.


‘넌 소중해’ 프라이드에서 가장 와 닿은 메시지
문 : ‘프라이드’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가 정말 많아요. 너무 많아요. 꼽을 수도 없을 정도로요. 그중 본인에게 가장 와 닿는 메시지는 뭘까요?
금비 : ‘당신은 소중해요, 올리버’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 대사가 처음에 정말 이해가 안 갔어요. 갑자기 ‘당신 소중해, 올리버’ 이 말이 툭 튀어나오는 느낌이 나는 거예요. 근데 그게 저한테 꽂히는 말 같았어요. 그러니까 누군가가 나한테 ‘넌 소중해’라며 내가 몰랐던 정말 부분을 꼬집어 주는 것 같았어요.
저는 ‘괜찮아’가 모든 걸 통괄적으로 말해주는 말인 것 같고, 저는 사실 ‘내가 먼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와닿아요.) ‘실비아’는 ‘내 행복이 있어야’라고 생각하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제 행복이 있어야 이제 남의 행복도 보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프라이드를 하면서 ‘내 행복’, ‘약간 이기적이어도 돼. 내가 먼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메시지가 제가 이 작품을 하면서 조금 크게 가져간 메시지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문 : 그런데 그게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기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금비 : 그래서 ‘프라이드’를 쓰신 작가님도 많은 걸 넣어주신 것 같아요.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그 누군가한테 ‘괜찮다’라는 위로와, 알려주고 싶어 하는 메시지들이요.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프라이드’가 08년도에 만들어졌는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은 문제를 우리는 겪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프라이드’는 ‘나 자신이 먼저 행복하자.’ 그리고 ‘괜찮아질 거다.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전하고 있네요.
문 :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러 오실 관객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금비 : 요즘 너무 생각할 게 많은 시대잖아요. 정말 정말 복잡하고 저는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복잡한 거예요. 공연 보시는 분들이 길지만 3시간 동안 공연장 안이라는 이 마법 같은 박스 안에 들어와서 그냥 위로받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난 아무런 상처가 없는데’ 하시는 분들도 오셔서 너무 복잡한 세상 속에서 ‘그냥 잠깐 3시간만 앉아 있다가 우리들끼리 이야기하고 그러고 헤어집시다’ 하고 싶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세 시간만 뺏을 수 있다면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자존심, 또는 자긍심, 자부심. 그리고 때로는 교만. 프라이드의 사전적 정의는 이 연극에서 해체되고, 또 재구성된다. 살아 남았기에, 그리고 살아가기에, 또는 그냥 ‘나’이기에.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프라이드.
1958년에도, 그리고 2008년을 지나 2025년인 지금도 우리는 똑같은 질문과 문제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소중하기에’ 이겨낼 수 있다고. 이 연극은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괜찮다.’는 실비아의 마지막 한마디가, 깊은 여운이 되어 남는 것은 아닐까.
깊은 울림으로 감동을 주는 연극 ‘프라이드’는 6월 25일까지 예스24아트원 2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기획 김현진, 이민정 , 이지윤
인터뷰 진행 이민정
촬영 및 사진 편집 전민영
촬영 및 영상 편집 이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