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 배우로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오승윤은 어느덧 연기 인생 30주년을 맞았다. 드라마 <여인천하>의 복성군과 <매직키드 마수리> 속 주인공으로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던 그는 긴 시간 동안 ‘잘 자란 아역 배우’라는 수식어와 함께 성장해왔다. 185cm의 훤칠한 체격과 안정적인 연기 스펙트럼으로 자연스럽게 성인 배우로 자리매김한 오승윤은 최근 방송을 넘어 연극과 뮤지컬 등 무대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며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카메라 앞에 서왔던 배우가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들기까지, 그의 시간은 화려한 순간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이미지의 벽을 넘어야 했던 시기와 배우로서 방향을 고민하던 시간, 그리고 다시 무대 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과정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오승윤을 만들었다. 꾸준함으로 30년을 지나온 배우 오승윤에게 연기라는 일,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화포커스(이하 ‘문’) : 이제 연기자로서 30주년을 맞이했어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오승윤(이하 ‘승윤’) : 30주년에 의미를 둘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크게 와닿지는 않아요. 그냥 매일, 매달, 매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지 하면서 지금 순간에 충실하다 보니까 이렇게 시간이 흐른 것 같아요.
문 : 그래도 연기가 적성에 맞아서 30년을 해온 것 아닐까요?
승윤 : 맞다기보다는 맞게 된 것 같아요. 기린처럼? 진화론이라고 해야 할까요. (웃음)
문 : 한가지 일을 오래 하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연기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요?
승윤 : 많았죠. 저 때문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연기가 불가능한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이거 왜 이러지?’ 했던 기억이 있어요.
문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연기를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승윤 : 결국은 연기가 주는 만족감인 것 같아요. 힘들어서 멀어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다시 연기를 하면 ‘아, 내가 이걸 좋아했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물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과정 자체가 저한테는 여전히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서,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연기하고 싶어요.
인물을 이해하는 속도, 배우 오승윤의 감각
브람스를 연기하며 그는 인물을 해석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연스럽게 배우로 살아온 시간과 그 안에서 얻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문 : 브람스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 음악가로 인정받았어요. 배우님도 오랜 시간 연기를 해왔는데, 스스로 타고났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을까요?
승윤 : 너무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하다 보니까 ‘내가 뭐가 뛰어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인물을 볼 때 감각적인 이해가 남들보다 조금 빠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이 인물은 이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면서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은 타고난 것 같아요.
문 : 인물의 감정에 조금 더 빠르게 이입하시는 편이군요?
승윤 : 맞아요. 그런 거죠.
문 : 브람스에게 로베르트는 존경할 만한 스승이잖아요. 배우님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을까요?
승윤 : 있는 것 같아요. ‘스승’이라는 존재가 제가 어려울 때, 정신적으로 힘이 들 때 갑자기 나타나는 것 같아요. 초등학생일수도 있고 후배일 수도 있고, 정말 어른일수도 있고요.
저에게 스승은 제가 배우고 싶고 듣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때, 부족함을 느낄 때 불현듯 생기는 존재인 것 같아요.
아역 이미지를 넘어, 배우로 다시 서기까지
오승윤의 이름을 떠올릴 때 아역 배우 시절의 기억을 빼놓기 어렵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이미지와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달라져 왔다. 배우로서의 변화를 지나온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문 : 승윤님하면 ‘마수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아역 배우 이미지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승윤 : 10대, 20대, 30대가 다 달랐던 것 같아요.
10대 때는 ‘이걸 벗어날 수 있을까’ 했고, 20살이 됐을 때는 막연한 공포가 있었어요. 20대에는 ‘나는 다르다, 충분히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30대가 되니까 크게 개의치 않게 됐어요. 지금의 나로 봐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이 안 되면 속상하겠지만, 인지도 덕분에 기회를 얻는 건 감사한 일이니까요.
문 : 드라마, 영화, 예능, 뮤지컬, 연극, 더빙까지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해왔어요.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을까요?
승윤 :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군대 전역하고 바로 참여했던 ‘클리닝업’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아요. 역할은 작았지만 전역 직후라 저에게 의미가 컸거든요.
그리고 <다시 동물원>은 악기도 배우고 곡을 직접 해석하면서 참여했는데, 모든 작품을 통틀어 이렇게까지 노력해본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작품이 끝나면 늘 아쉬움이 남는데, ‘다시 동물원’은 유일하게 절대 후회가 없는 작품이에요.
문 : 실제로 기타 연주까지 해야 했는데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 같아요.
승윤 : 기타를 조금 치긴 했지만 제대로 배운 건 아니었어요. 합주도 처음이었고요. 기타를 치면서 노래까지 하는 게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쓰는 느낌이라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서 머슬 메모리를 믿었어요. 눈을 감아도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 되는 경험을 처음 해봤던 것 같아요.
문 : 음악 예능에도 많이 출연했어요. 평소에도 음악에 대한 관심이 큰 것 같은데요?
승윤 : 아무래도 가족의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형도 학창 시절에 밴드 활동을 했고, 사촌 누나는 걸그룹 라니아 출신인데 지금은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음악이 늘 가까운 환경이었고, 유전적인 요인도 조금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연스럽게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
아직 꺼내지 않은 얼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는 또 다른 결의 연기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오승윤은 강한 서사를 지닌 장르물과 깊은 내면을 가진 인물에 대한 관심을 조심스럽게 언급하며, 아직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얼굴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문 :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을까요?
승윤 : 느와르 장르를 꼭 해보고 싶어요. 장르물도 좋고요. 내면에 숨겨진 가시 같은 것들을 꺼내서 남자다운 영화, 피비린내 나는 작품도 해보고 싶어요.
문 : 악역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승윤 : 악역을 해보긴 했는데 정말 농도 짙은 캐릭터는 아직 못 만난 것 같아요.
문 : 작품을 선택할 때 승윤님만의 기준이 있을까요?
승윤 : 써주시면 가리지 않고 다 하는 편이죠. (웃음)
제가 이해하기 쉽고 제가 가진 이미지와 맞는 캐릭터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예전에 봉준호 감독님 인터뷰에서 외형적인 설득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신 걸 인상 깊게 봤는데, 저도 이미지가 캐릭터와 잘 맞을 때 보시는 분들이 훨씬 편하게 받아들이고, 저 역시 자신감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관객과 함께 이어가는 배우의 시간
관객과 직접 만나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활동과 연기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는 지금 주어진 무대와 작품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문 : 무대는 관객을 직접 마주하는 자리인데, 승윤님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을까요?
승윤 : 초반에는 함께하는 배우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생각이 컸어요. 작품에 오점이 되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요.
‘다시 동물원’에서도 음악을 정말 잘하는 배우들과 함께하다 보니 민폐가 되지 않도록 잘 묻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문 : 관객에게 듣고 싶은 말이나 들었을 때 기분 좋았던 말이 있을까요?
승윤 : ‘무대 계속 해주세요’라는 말이 가장 좋았어요. ‘나 때문에 와주시는구나’하는 느낌이 들고, 무대를 계속하는 게 관객분들께 드릴 수 있는 보답이라고 생각해요.
문 : 무대에서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슈만> 이후에 또 어떤 계획이 있을까요?
승윤 : 최대한 무대를 하나라도 더 하고 싶어요. 지금은 무대 쪽에 더 포커싱이 가 있는 것 같아요. 이 기회에 조금 더 자리 잡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문 : 연극이나 뮤지컬 중에 특히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을까요?
승윤 : 다 욕심나요. 요즘 하는 ‘비틀주스’ 같은 작품도 해보고 싶고요. 제가 처음 뮤지컬을 하고 싶다고 느꼈던 작품이 ‘레미제라블’이에요. 중학생 때 ‘Empty Chairs at Empty Tables’를 처음 배웠거든요. ‘황태자 루돌프’, ‘모차르트’ 같은 작품들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어요.
간절함과 여유 사이에서
30년을 지나온 배우에게 앞으로의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오랜 시간을 지나온 그는 앞으로의 연기에 대한 생각도 함께 들려줬다.



문 : 30년동안 연기를 계속 해왔는데 30년 후에도 연기를 하고 있을까요?
승윤 : 아마 계속 연기를 하게 될 것 같아요. 다만 이제는 조금 더 여유롭게 하고 싶어요. 20대까지는 늘 쫓기듯 살아왔던 것 같은데, 앞으로는 간절함은 그대로 두면서도 마음의 여유를 함께 가지고 연기하고 싶어요.
문 : 그런 부분에서 승윤님의 롤모델이 있다면요?
승윤 : 그때그때 다른데 요즘은 유해진 선배님의 연기를 많이 봐요. 관찰력이나 편안함,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많이 배우게 되더라고요. 힘이 들어가 있는 장면인데도 전혀 과해 보이지 않는 여유가 정말 부러워요.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연스럽게 나오는 편안함이 있잖아요.
특히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오셨을 때 인터뷰를 인상 깊게 봤는데, 연기뿐 아니라 배우로서 살아가는 태도 자체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그런 자연스러움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문 : 지금까지 오승윤의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승윤 : 저는 오랫동안 ‘배우’라기보다 ‘탤런트’로 살아온 것 같아요. 요즘에는 조금 구시대적인 단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저한테는 가장 오래 붙어 있던 수식어였거든요. 다양한 작품과 매체 안에서 활동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문 : 마지막으로 승윤님을 사랑해주시는 관객분들과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승윤 : 감사합니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공연을 보러 오는 게 사실 쉽지 않잖아요. 시간도 내야 하고, 마음을 내서 찾아와 주시는 거니까요. 공연 준비하면서 지치고 피곤할 때도 있는데, 공연 시작 전에 객석에서 들리는 관객분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어요. 그 감사한 마음 때문에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온 배우에게 연기는 특별한 목표라기보다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삶의 일부에 가깝다. 아역 배우로 시작해 방송과 무대,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해온 오승윤은 지금 또 다른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
최근 그는 카메라 앞을 넘어 관객과 직접 호흡하는 무대에서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새롭게 확장하고 있다. 작품마다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며 스스로의 영역을 넓혀온 시간 끝에서, 그는 이제 간절함만으로 달려가기보다 여유를 품은 배우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익숙함을 벗어나 첫 연극 무대에 선 지금, 오승윤의 연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 않는 속도로, 그는 앞으로도 무대와 화면 사이를 오가며 배우로서의 시간을 차곡차곡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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