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장군” 김예림(19, 단국대)이 19일 오후 일본 홋카이도현 삿포로 마코마나이 아이스 아레나에서 2022-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시니어 그랑프리 5차 대회 NHK 트로피에서 쇼트 프로그램 72.22점, 프리 스케이팅 132.27점, 합계 204.49점을 받아 “세계 랭킹 1위” 사카모토 카오리(22, 일본)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김예림은 12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리는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권 또한 거머쥐었다.
김예림은 지난 그랑프리 3차 대회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연아(32) 이후 한국 여자 싱글 선수들이 ISU 시니어 그랑프리에서 거둔 최고 성적이었다. “포스트 김연아” 삼인방 중 가장 늦게 꽃 핀 김예림은 금번 대회 금메달 획득으로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경신했다.
그랑프리 파이널은 한 시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6명의 선수가 경쟁하는 대회다. 한국 여자 선수가 그랑프리 파이널 시니어 여자 싱글 무대에 출전한 건 2009년 김연아가 마지막이었다. 김예림은 2018-2019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출전하여 6위를 한 경험은 있지만,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은 처음이다.
김예림은 쇼트 프로그램 직후 “(그랑프리) 파이널 욕심이 나긴 하지만, 제 시합에 집중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최대한 욕심이나 부담감을 덜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라며 프리스케이팅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이전 프랑스 대회에서 비점프인 스텝과 스핀의 기술에서 점수를 잃었기에 이번에는 스텝과 스핀을 향상시키기 위해 집중적으로 훈련했다.”라고 훈련 과정을 밝힌 그녀는 “쇼트 프로그램은 옛날 피난민들의 슬픔을 테마로 담았다.”라며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수줍게 드러내기도 했다.
이어진 프리 스케이팅에서도 필살기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완벽히 성공하며 기본 점수 10.10점과 수행점수(GOE) 1.43점을 챙겼다. 이후 두 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완벽한 플랜비로 순위를 지켜냈다.
김예림은 기자회견에서도 “아직도 1위가 믿기지 않는다. 매우 행복하다.”라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쇼트 프로그램 후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해서, 마지막 순서로 타는 것이 특별하지는 않았다. 훈련에서 트리플 살코-더블 악셀 시퀀스를 연습해서, 그대로 수행했다.”라고 소회를 드러냈다.
함께 “왕중왕전”에 진출하는 주니어 선수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언급을 잊지 않았다.
“저도 그랬지만, 연아 언니를 보고 시작한 어린아이들이 많다. 함께 훈련하면서 경쟁도 많이 하고, 좋은 선배님이 있었기 때문에 본받아서 잘 성장할 수 있었다. (후배들 덕분에) 매 순간 방심할 수 없고, 한곳에 머물지 않고 성장해나가는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동메달리스트이자 세계 랭킹 1위인 일본의 사카모토 가오리(201.87)가 2위에 올랐고, 일본의 스미요시 리온(193.12)이 3위를 차지했다.
생애 첫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한 신예 지서연(16, 수리고) 또한 선전을 이어나갔다. 실수 없는 쇼트 프로그램으로 6위로 대회를 시작한 지서연은 19일에도 마찬가지로 큰 실수 없이 대회를 마쳤다. 총점 184.14점으로 최종 6위에 오른 지서연은 프리스케이팅에서 여자 싱글 전체 점프 총점 1위에 오르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경기 직후 믹스드존에서 지서연은 “첫 시니어 그랑프리여서 조금 떨렸다. 그래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저 스스로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고 했더니, 긴장도 덜 됐다. 오히려 잘 경기가 풀렸다.”고 경기를 복기했다.
경기 비결에 대해 묻자 “비시즌 동안 살도 좀 빼고, 엄마 말을 잘 들어서….”라고 웃으며 여고생다운 모습도 보여주는 한편, “안 보이는 데에서도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이번에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매트릭스를 직접 골랐다. 정말 좀 큰 목표이지만, 이번 시즌을 ‘올클린’으로 마치고 싶다.”라며 신인의 패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출전한 위서영(17, 수리고)은 176.72로 최종 8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지서연과 위서영은 상위 8위까지 주어지는 ISU 시니어 그랑프리 랭킹 포인트를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실수가 있었던 프리 스케이팅에 대해 “평소에 연습했던 것보다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12월 국내에 있는 회장배 랭킹 대회에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더 확실하게 연습을 하겠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한편 같은 날 남자 싱글에서는 남자 피겨의 희망 차준환(22, 고려대)이 총점 254.76으로 3위에 올랐다. 차준환은 “(쇼트 프로그램은)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웠지만, (프리 스케이팅은) 모든 것을 쏟아냈다.”고 자평했다.
“오늘 경기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잘 싸워낸 것 같다. 연습한 대로 하려고 했고, 아직 100%은 아니지만 천천히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 대해서 만족스럽다.”라고 경기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지난 1차 그랑프리에서는 (이번에 비해) 쇼트 프로그램을 더 잘했지만, 이번 그랑프리 5차 쇼트 프로그램에서는 스텝과 풋워크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프리 스케이팅은 점프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두 그랑프리 사이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라고 지난 4주 간의 훈련에 대해 짧게 언급했다.
이어 차준환은 “영화 전체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영화를 봤는데 굉장히 재미 있었다. 기존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어서, 영화 자체보다는 제임스 본드의 인간적인 면, 일상적인 모습 모두 다루고 있다.”라고 프리 스케이팅의 연기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차준환은 1차에 이어 5차에서도 3위에 오르며 한국 남자 싱글의 저력을 보여줬지만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은 어려울 전망이다. 세계 최초로 쿼드러플 악셀을 성공한 1차 대회 우승자 일리아 말리닌(17, 미국)이 6차 대회에서 6위 이하를 기록하는 등, 주요 선수들이 메달권 밖의 결과를 내야 하는 희박한 경우의 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랑프리 파이널은 다음 달 8일부터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과 함께 열린다.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김예림이 출전하며,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는 아이스댄스 임해나(18)-예콴(21), 여자 싱글 김채연(16), 신지아(14), 권민솔(13)이 먼저 진출을 확정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