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의 어느 주말 저녁, 캐나다 몬트리올. 인터뷰 당일에도 권예 선수는 어린 스케이터들을 지도하다 막 링크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피곤한 일정 속에서도 아이스댄스 국가대표 임해나 선수와 권예 선수를 화상으로 만났다. 시즌 이야기부터 귀화 과정, 그리고 세계적인 무대를 향한 포부까지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는 시간 관계상 사진 촬영과는 별도로 진행됐다.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움을 택하다, 임해나-권예의 결단
2024년 12월 랭킹 대회 이후, 임해나-권예 조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시즌 초반 사용하던 리듬 댄스 프로그램 <Reach Out I’ll Be There>와 <I Will Survive> 믹스곡에서, 단 3주 만에 <I Got You (I Feel Good)>, <Something’s Got a Hold on Me>, <Dance to the Music> 세 곡으로 구성된 새로운 프로그램을 들고 2025년 1월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에 나섰다.
문화포커스(이하 ‘문’): 시즌 중간에 프로그램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요. 어떤 계기로 결정을 내리셨나요?
임해나: 우선 시즌 중간에 프로그램을 바꾸는 것은 꽤 어려워요. 프로그램을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도 안무 자체는 많이 바꾸지 않았어요. 다만, 심판들이 꾸준히 ‘에너지나 춤이 부족하다’는 피드백을 주셔서 바꾸게 됐어요.
권예: 저희 헤드코치님께서도 다른 스타일의 춤을 시도해보자고 하셨어요. 그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셔서요.
권예는 ‘변경된 리듬 댄스는 이전보다 템포가 조금 느려, 동작을 더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전했다. 같은 디스코 스타일이지만 새로운 리듬 댄스는 ‘모타운 스타일’을 바탕으로, I Got You (I Feel Good)〉, 〈Something’s Got a Hold on Me〉, 〈Dance to the Music〉의 믹스였다. 기존 디스코 스타일의 빠른 템포에서 벗어나 보다 리드미컬하고 동작이 살아나는 구성으로 전환한 셈이다. 국제빙상연맹(ISU)이 제시한 리듬 댄스 규정인 ‘50~70년대 리듬 앤 블루스 및 디스코 스타일’ 중 기존 70년대 중심에서 벗어나 좀 더 독창적인 60년대 스타일을 택했다고.
한편, 프리 댄스 프로그램은 디즈니 영화 <크루엘라>를 모티브로 캐릭터와 서사를 입혀냈다. 당초 크루엘라의 시각에서 전체 스토리를 전개하려 했지만, 현재는 더 입체적이고 관계 중심의 해석으로 발전시켰다. 두 사람은 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자신들만의 해석을 덧붙여 캐릭터와 관계성을 새롭게 그려냈다. 그들의 <크루엘라>는 중독적인 사랑, 즉 ‘독성 있는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문: 프리 댄스는 명확한 캐릭터와 스토리가 있는 사운드트랙을 기반으로 하셨잖아요. 예전에 머리에 흰색 포인트를 주신 것도 있었는데, 이번에도 어떤 캐릭터성이나 스토리를 강조하려고 하셨나요?
임해나: 네, 코치님께서 머리에 흰색을 넣으라고 하셨어요. 영화 속 크루엘라처럼 반반은 너무 과하니까, 상징적인 느낌으로 한 부분만 하라고 하셨어요. 캐릭터를 더 잘 끌어올리기 위해서요. 그게 크루엘라의 상징적인 헤어피스라서, 저도 캐릭터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해 흰색을 조금이라도 꼭 넣고 싶었어요.
문: 그렇다면 이번 크루엘라 프로그램에서 어떤 캐릭터나 스토리를 담고 계신가요?
권예: 사실 크루엘라는 표현하기 참 어려운 프로그램이었어요. 영화도 거의 크루엘라 중심이고요. 음, 그래서 시즌 초반에는 저도 약간 크루엘라처럼 보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크루엘라는 여성 캐릭터다 보니 저랑은 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연기 선생님 도움을 받아서 새로운 스토리라인을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영화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임해나: 영화 그대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저희만의 해석으로 가고 있어요. 예가 크루엘라와 사랑에 빠지는데, 크루엘라는 좀 위험한 매력을 지닌 인물(toxic character)이라서 중독적인 사랑 같은 관계예요. 영화에서 그녀는 좀 미쳐있고, 속히 ‘나쁜 여자’잖아요. 예가 그런 점에 반하는 건데, 독성 있는 사랑 같은 거예요.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끌리는… 그런 느낌이에요.
권예: 이런 해석을 통해 프로그램 안에 두 명의 캐릭터를 모두 살릴 수 있도록 했어요.

고난에 고난을 넘은 귀화 과정
2025년 2월 열린 사대륙선수권에서 안정적인 연기로 역대 한국 아이스댄스 팀 중 가장 높은 6위를 기록하며 종전 7위에서 한 계단 상승한 임해나-권예 조는, 이어진 3월 세계선수권에서는 최종 18위에 올라 대한민국에 2026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대회에서 출전권을 확보한 팀 중 유일한 아시아 팀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성과로 남았다.
캐나다 국적이었던 ‘예콴’은 2024년 12월, 마침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며 ‘권예’라는 한국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반드시 대표하는 국가의 국적을 보유해야 한다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 규정에 따라, 기술적인 성장뿐 아니라 행정적인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국내 올림픽 선발전까지 불과 1여년이 남은 시점에 최종 통과된 귀화 절차에 대해 권예는 ‘정말 안도감이 들었다’며 소감을 밝혔다.
권예: 처음에는 구체적인 안내나 절차가 없어서 불확실한 점이 많아 스트레스가 컸거든요. 지금은 드디어 해나와 함께 한국을 올림픽에서 대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매우 기쁘고 안심이 됩니다.
문: 축하드려요. 귀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나요? 스포츠 국가대표 귀화는 일반 귀화와 다르잖아요.
권예: 네, 제 경우는 정말 빠르게 진행됐어요. 보통은 5~6년 걸리는데 저는 1년 반에서 2년 만에 끝냈죠. 처음에는 수원 출입국사무소에 신청했고, 빙상연맹에서 추천서를 받았어요. 2024년 여름엔 한국에 가서 올림픽위원회에 왜 한국을 대표하고 싶은지 설명도 했죠. 이후 학교, 직장, 소득 증명 등 여러 서류를 제출했는데, 제가 한국에서 일하지 않아서 소득 증명이 어려웠어요. 그리고 외국인등록증도 받았고, 면접도 봤습니다. 1~2년 안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정신없이 지나갔어요. ‘이거 해야 해’, ‘저거 해야 해’ 하면서 정말 빠르게 진행됐죠.
아마추어 스포츠인 피겨스케이팅의 특성상 소득 증명 절차 역시 까다로웠다. 권예는 한국에 거점을 둔 김완 코치의 도움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었다. 팬들과의 접점을 활용해 굿즈 판매를 기획했다. 머그컵, 티셔츠, 작은 현수막 등 다양한 팬 굿즈를 통해 ‘이 선수가 한국에 경제적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려는 시도였다. 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 덕분에 실제 소득 증명 자료로 활용할 수 있었고, 권예는 이 부분에 큰 감사를 전했다.
권예는 마지막 절차로 여권을 발급 받으며 귀화의 마지막 관문을 넘었다.
권예: 이제 한국 여권만 발급받으면 돼요. 2월 사대륙선수권 대회 때 신청할 계획이에요. 여권 신청하면 기존 여권으로는 출국할 수 없고, 한국 여권으로만 출국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일주일 안에 나온다니, 신청한 후 제때 받았으면 좋겠어요.
귀화 과정에서 혼자만의 노력이 전부였던 것은 아니다. 파트너 임해나의 조력도 큰 힘이 됐다. 특히 언어 장벽을 넘는 데 있어서 파트너 해나는 말 그대로 ‘가장 가까운 교사’였다. 훈련을 갈 때나 집에 데려다 줄 때 한국어로 끊임 없이 회화 연습을 했다. 빙상 훈련 도중에도 한국어로 소통을 시도했다가 싸우기도 했다는 후일담도 전했다. 그만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임해나는 물심양면 파트너를 도왔다.
임해나: 옆에서 예가 스트레스 받는 걸 계속 봤어요. 문제들이 계속 이어져서 정말 힘들었죠. ‘해냈다’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 반복이었어요. 정부 절차라 제가 직접 도와줄 수 있는 게 한정적이라 미안한 마음도 컸어요. 면접 준비할 때도 어려워서 예가 많이 힘들어했죠. 다행히 완 코치님과 예의 노력 덕분에 국적을 얻을 수 있었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권예는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까지 총 네 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지만, 귀화 절차를 위한 한국어 공부는 보다 도전적이었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임해나조차 면접 질문이 어렵다고 느껴 걱정했다는 후문이다. 한국어 발음은 특히 어려웠고, 면접 준비를 위해 한국사 공부까지 병행해야 했다고.
권예: 처음엔 중국어와 비슷할 줄 알았어요. 한국어 단어가 한자에서 유래한 게 많으니까요. 그런데 배우면서 한국어 쓰기는 중국어보다 쉬웠어요. 하지만 발음이 정말 어려웠죠. 사람들이 제게 중국어 억양이 있다고 했고, ‘문’ 발음을 못 해 ‘물’로 자꾸 잘못 말하곤 했어요.
문: 한국어 공부는 어떻게 했나요?
권예: 처음에는 대학교에서 한국 문화와 언어 수업을 들으려고 했어요. 근데 코칭이랑 훈련 일정이랑 안 맞아서, 나중엔 한국 튜터랑 온라인 개인 수업을 들었어요. 모두 한국 튜터였어요. 그래서 시간 맞추기도 더 쉬웠고요. 주 1~2회는 꼭 하려고 했고, 해나가 종종 선생님도 추천해줬어요.
귀화 면접에 가까워졌을 땐 거의 매일 수업하면서 최대한 연습하려고 노력했어요. 한국어도 공부해야 했고, 한국사도 공부해야 했거든요. 그때는 튜터가 두 명이었어요. 한 명은 한국어, 한 명은 한국사. 무조건 통과하고 싶었어요.
면접에선 말하기와 듣기가 그렇게 좋지 않아서 빨리 말씀하시면 ‘다시 말해 주세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어떤 질문은 ‘만원권 지폐에 누가 있는지 아세요?’ 였는데, 저는 ‘오, 세종대왕!’이라고 했어요. 운이 좋았던 게, 면접관 분들이 정말 친절했어요. 질문도 여러 번 반복해주시고, 말도 천천히 해주시고, 예시까지 들어주시면서 도와주시더라고요. 저에게 정말 친절하셨어요.

결과보다 과정을… 임해나-권예의 훈련 철학
임해나-권예 조는 시니어 2년 차를 넘기며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루고 있다. 특히 약점으로 꼽혔던 트위즐이 꾸준히 개선되어 더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선수들은 속도를 높이고 얼음 위에서 넓게 이동하며 회전력을 극대화하는 훈련을 통해 기술력을 향상시켰다. 패턴 댄스 또한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며 연기력을 다진다.
문: 분명히 트위즐과 같은 기술 요소에서 매 시즌 정말 많이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트위즐이 약점이라고 하셨는데, 이번 시즌과 지난 시즌 모두 더 좋은 점수를 받고 계시잖아요. 특히 프리 댄스에서요. 이런 기술적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연습을 더 하셨나요?
임해나: 트위즐에서는 특히 속도를 높이려고 많이 신경 쓰고 있어요. 좋은 트위즐은 얼음 위를 넓게 이동하면서 회전이 잘 돼야 하거든요. 링크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가도록 하는 거예요. 그래서 트위즐 진입 시 속도를 높이고, 회전 중에도 서로 완벽하게 맞춰서 움직이려 해요. 그런 부분이 점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문: 작년에도 말씀하셨듯이 패턴 댄스가 어렵다고 하셨는데, 이번 시즌에도 여전히 그런가요? 그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계신가요?
권예: 트위즐도 그렇지만 패턴 댄스에서도 좀 더 속도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턴에 너무 회전에 힘들일 필요가 없도록요. 특히 시즌 전반기에는 예를 들어 저희 패턴 스텝이 초반에는 좀 작았고 그래서 엣지의 퀄리티도 낮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더 크게, 더 스케이팅을 할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코치님들도 최근엔 턴과 에지가 훨씬 더 정교하고 깨끗해졌다고 말씀해 주세요. 그래서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프리 댄스와 리듬 댄스의 스텝 시퀀스도 마찬가지로 더 정확하고 빠르게, 더 역동적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임해나: 네, 특히 엣지를 더 깊게 사용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자주 영상으로 찍으면서 에지가 제대로 나오고 있는지 확인해요. 선명하지 않으면 다시 하고, 또 다시 찍으면서 연습해요.
임해나–권예 조는 올림픽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그 여정을 작고 현실적인 소목표들로 나누어 하나씩 달성해 나가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결과를 좇기보다는 기술적 완성도와 표현력 향상 같은 구체적인 과제에 집중하며, 그 과정 안에서 스스로를 다듬고 단단해졌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실제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2024년 세계선수권에서는 목표였던 15위를 넘어 14위를 기록했고, 2025년 대회에서는 올림픽 출전권 확보를 위한 기준인 19위 안에 들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도 18위에 오르며 또 한 번 자신들의 페이스로 목표를 달성했다. 성적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간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일상의 루틴과 훈련 속에서 끊임없이 조정하고 집중하는 방식이다. 과정 중심의 훈련인 것이다.
임해나: 큰 결과 목표는 설정해두지만, 훈련 중에는 오히려 그걸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요. 때로는 스트레스를 많이 주기 때문이죠. ‘내가 1등을 해야 해’ 또는 ‘톱 10에 들어야 해’라고 생각할 때마다 훈련 중에 더 스트레스를 받고 스케이팅에 방해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의식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최종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줄 목표를 설정합니다.
문: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방식이군요.
임해나: 네, 그냥 ‘우리는 무엇이 되길 원한다’가 아니라,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중간 소목표들을 세워요.
문: 다가오는 세계선수권은 동계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 있어서 정말 중요하잖아요. 이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나 세계 선수권 대회를 위한 궁극적인 목표가 있나요?
임해나: 당연히 있어요. 목표는 19위 안에 드는 거예요. 그게 올림픽에 가는 조건이니까요. 그게 우리의 주요 목표예요. 확실히요. 그리고 그 과정에 몇 가지 중간 목표들이 있어요.
권예: 두 프로그램 모두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게 중간 목표예요. 또 올해는 올림픽을 위한 19위 안에 드는 것이 목표예요. 하지만 해나가 말했듯이, 최종 결과와 목표를 생각하고 있지만 중간 소목표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저희의 스토리텔링과 교감을 무대 위에서 최대한 많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이 스케이트를 탈 때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강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선수이자 코치, 그리고 학생으로서의 삶
임해나-권예 조는 바쁜 훈련 일정 속에서도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간다. 권예 선수는 스케이팅 코치로서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며 시간을 관리하는 노하우를 익힌다. 임해나 선수 또한 코칭을 병행하다가 2025년 9월 맥길 대학으로의 편입을 앞두고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코칭을 줄인다. 두 선수 모두 바쁜 와중에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에너지를 얻고, 팀으로서의 유대감을 돈독히 한다.
문: 다음 주제는 시간 관리와 코칭 관련이에요. 예 선수가 시간 관리를 잘한다고 하셨는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권예: 코치님이 시간 관리를 많이 도와주세요. 저는 가족이 스케이팅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고 있어서, 최대한 일을 많이 하려고 해요. 때로는 과로할 때도 많아요. 그래서 종종 코치님이 ‘예, 너도 쉬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훈련이 안 좋아질 거야,’ 라고 말씀하세요. 덕분에 지금은 시간 관리를 더 잘하게 되었어요. 이제는 어떤 날은 좀 쉬어야 하고, 어떤 날은 더 많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요. 때로는 ‘이번 주는 안 돼요’ 하고 거절하는 법도 배우는 중이에요. 코치로서 저는 종종 제 학생들을 돕고 싶어 하거든요. 어린 학생들이 많아서 항상 ‘예, 왜 대회에만 가요? 코칭 좀 해주세요’라고 물어요. 그러면 저는 ‘죄송해요, 바빠요’라고 말하고, 가끔은 대회에서 돌아오자마자 저는 그냥 ‘아니요, 이번 주에는 코치할 수 없어요. 쉬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훈련이 잘 안 될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그게 쉬운 건 아니에요. 몸이 힘들어도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하지만 때로는 몸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니까요.
문: 그거 정말 중요한 얘기네요. 다들 예가 코치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해나도 코치 일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
임해나: 네, 저도 코치해요. 예보다는 훨씬 덜 하지만요. 사실 요즘은 더 줄였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세 번씩 했는데, 올해는 일주일에 두 번만 하고 있어요. 너무 피곤하고 부담이 되어서요. 그래도 여전히 몇몇 스케이터들을 가르치지만, 어린 친구들을 가르치는 건 꽤 힘들어요. 학교는 지금은 온라인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올해 9월에 맥길 대학으로 편입하려고 해요. 그 그땐 대면 수업이라서 아마 코칭은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온라인은 제가 원할 때만 하면 되니까 좀 더 자유롭거든요. 그런데 대면 수업이면 아무래도 학교랑 스케이팅에 집중해야 하니까요. 코칭은 못 할 것 같아요.
권예: 저도 예전에 선택을 해야 했어요. 학교를 계속 다닐지, 코칭을 더 집중해서 할지. 결국 돈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코칭에 집중하게 됐어요. 학교는 잠깐 쉬었고요. 저는 스케이팅을 마친 후에 학교로 돌아갈 거예요.
임해나: 예는 원래 학교보다 코칭을 더 좋아했잖아요. 그래서 당연히 자기가 좋아하는 걸 선택한 거죠.
권예: 맞아요. 학교에서는 뭘 공부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느낌이었어요. 근데 코칭은 정말 좋아했고, 나중에 제 직업으로 삼고 싶어서 더 집중했어요.
임해나: 저는 코칭할 때, 특히 어린 친구들 가르칠 때 어려움이 많아요. 말을 잘해서 설명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감으로 ‘이렇게 해봐’ 하는 편인데, 아이들은 잘 이해 못하거든요. 그래서 자주 예한테 ‘이걸 학생한테 어떻게 말해야 하지?’라고 물어봐요. 예가 코칭 경험이 많아서 조언을 많이 해줘요. 제가 아직 초보 코치라서요.
문: 그럼 둘 다 같은 링크에서 코칭하고 있는건가요?
권예: 저는 두 군데서 가르치는데, 그중 하나는 해나와 함께 코치합니다.
임해나: 예랑 코칭하는 건 항상 재미있어요. 댄스팀을 코칭할 때 제가 어려움을 겪으면 예한테 ‘이 리프트나 스텝 같이 해줄 수 있어?’라고 부탁할 수 있고, 그럼 같이 해줘요. 그럼 학생들은 항상 ‘우와, 코치들이 같이 스케이팅하네!’하면서 정말 좋아해요.
권예: 네, 그것도 즐거워요. 저도 아이스 댄스 팀을 코치할 때 코칭할 때 그래요. 어떤 동작을 학생한테 보여주려고 해도 상대방이 잘 이해 못하거나, 제가 여자 스텝을 잘 모를 때가 있어요. 그러면 해나에게 ‘여기 와서 이거 해줄 수 있어?’라고 하고 같이 해요.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함께’의 힘
시니어 2~3년 차는 아이스댄스 선수에게 가장 힘든 시기다. 임해나-권예 조도 이 시기를 ‘정신적으로 가장 혼란스럽고 부담이 큰 시기’로 꼽았다. 기대 없이 진출한 시니어 무대에서 뜻밖의 성과가 이어지며 성장에도 불이 붙었다. 어느덧 더 높은 성과를 기대 받는 현실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임해나는 “기대가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큰 부담이 되어 성장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권예 역시 “작년에는 기대치가 없어서 결과에 만족했지만, 올해는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배우는 과정”이라면서도 “저희가 배우고 극복해야 할 일”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 시기 힘든 감정을 극복하고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두 사람만의 시그니처 루틴, ‘서로를 포옹하며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다.
문: 경기 전, 두 분만의 시그니처 루틴이 있잖아요. 서로를 안아주고 호흡을 맞추는 거요. 요즘 들어 그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은데, 경기 중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나요?
권예: 네, 확실히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돼요. 서로의 호흡을 맞추는 연습이기도 해서 서로 더 연결감을 느끼고 더 동기화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예를 들어 우리 중 한 명이 더 스트레스를 받거나 정신이 없을 때, 함께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진정하는 그 순간이 우리 둘의 컨디션을 맞추는 데 정말 도움이 돼요. 그렇게 서로의 상태를 맞추면 함께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게 되죠.
임해나: 처음 했던 때가 기억나요. 작년 4대륙 선수권 때였던 것 같아요. 얼음 위는 아니고, 경기장에 가기 전에 얼음 밖에서요. 예가 ‘한 번 안아줄 수 있어?’라고 묻는 거예요. 제가 ‘뭐?’라고 했던 게 기억나요. 그리고 ‘알았어’라고 말하고 1, 2초 정도 안아줬던 게 기억나요. 좀 어색했는데 예가 그게 자신에게 진정에 도움이 된다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해보자’ 하고 저도 하게 됐고, 지금은 저에게도 큰 도움이 돼서 루틴이 되었어요.
권예: 그때 저는 정말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제 가족이 관중석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정말 정말 긴장하고 있었는데, 제가 ‘해나, 한번 안아줘서 진정시켜줄 수 있을까?’라고 했어요. 그리고 해나는 약간 ‘오, 그래, 원한다면’이라고 했죠. 그리고 그것이 루틴의 일부가 되면서 많은 도움이 된다고 느꼈어요.
필라테스 코치님께 얘기 했더니 ‘오, 그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정말 좋고 영리한 방법이야’라고 했어요. 그리고 포옹을 포함한 몇 가지 동작을 알려줬어요. 뒤로 기대서 서로의 등 호흡을 느끼는 것도 있어요. 그래서 그것이 저희에게 루틴이 되었죠.
임해나: 사실 필라테스 선생님이 처음에 권해주셨던 방법이에요. 많은 댄스 그룹들이 팀원 전체가 그렇게 한다고 말했어요. 한 줄로 서서 그렇게 한다고요. 댄스 팀들을 보면 정말 잘 맞잖아요. 그래서 ‘좋아, 우리도 이 동작을 하면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효과가 있었던 걸까? 임해나와 권예는 서로를 포옹하며 긴장을 풀고 마음을 맞추는 루틴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단순한 신체 접촉을 넘어 서로의 호흡과 감정을 공유하는 이 시간은 두 사람을 하나의 팀으로 더욱 굳건하게 이어주었다. 이러한 깊은 유대감은 경기 외 상황에서도 서로를 세심히 살피고 지지하는 태도로 이어져, 부상이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도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챙기고 응원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문: 조금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당신의 파트너가 부상을 입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할지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권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저희는 항상 서로의 상태를 체크하고 연락을 유지해요. 저희는 팀이니까요. 서로 없이는 스케이트를 탈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해나가 아프거나 다치거나 하면, 우리는 항상 문자로 상대방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서로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임해나: 맞아요. 만약 한 명이 다쳐서 스케이팅을 못 하더라도, 링크에 와서 다른 사람이 훈련하는 걸 지켜봐요. 그렇게 해서 계속 서로 소통하고, 함께 있다는 느낌을 유지하려고 해요. 둘 중 한 명이 다쳤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한 팀이니까요.


“심판이 아닌, 파트너를 위해”… 진심을 담은 스케이팅
임해나는 같은 링크에서 훈련했던 선배 아이스댄서 테사 버츄(2010·2018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의 만남에 대해 일화를 전하며, 그 순간이 자신들에게 초심을 다시 다잡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권예: 얼마 전이었는데, 한 1~2주 전쯤에 테사 버츄가 다른 팀을 지도하러 우리 링크에 왔어요. 그리고 해나가 ‘헐, 나 진짜 보고 싶어. 질문하고 싶어. 근데 혼자 못 가겠어. 같이 가자!’ 이러는 거예요.
임해나: 테사는 작년에도 우리 링크에 몇 번 왔었는데, 항상 뭔가 따뜻한 말을 해줬어요. 작년에는 ‘너희 프로그램(리듬 댄스: Prince 메들리, 프리 댄스: <쉘부르의 우산> OST) 둘 다 정말 좋았어’라고 말해줬는데, 저는 정말 감동받았어요. 테사 버츄-스캇 모이어 팀이 이전에 <쉘부르의 우산> 프로그램을 했었거든요. 테사가 그걸 좋게 봐줬다는 게 너무 감동이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다시 봤을 땐 꼭 말을 걸고 싶었는데, 제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건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아니면 안된다’ 하고 예한테 ‘같이 가자. 혼자서는 못 하겠어’라고 부탁했어요. 그렇게 해서 결국 용기 내서 가서 질문했어요. ‘테사,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동작을 크고 명확하게 만들 수 있나요?’ 하고 물었어요. 왜냐하면 그녀의 동작은 정말 크고 분명하며 예리하고, 억지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랬더니 테사가 ‘저는 항상 스캇(파트너)을 위해 연기했어요. 심판이나 관객을 위한 게 아니라, 항상 스캇을 위해, 또는 스캇에게 연기했어요. 그게 제 동작을 그렇게 분명하고 선명하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기게 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저는 그 조언에 정말 감동받았어요. 사실 알고는 있었는데, 잊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게 제가 저희 연기에서도 보여주고 싶은 부분이에요. 그래서 테사가 그것을 다시 상기시켜줘서 정말 기뻤어요. 그 조언이 없었다면 시즌 내내 길을 잃었을 것 같아요. 용기를 내서 물어봤다는 게 정말 잘한 일이었고, 좋은 기회였어요.
권예: 테사가 거기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영감을 주는 일이었어요. 우리가 질문한 이후에, 우리가 음악에 맞춰 동작할 때마다 테사가 우리를 지켜봤어요. 우리 둘 다 ‘세상에, 테사가 보고 있어’ 하고 순간 해나를 보니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어요. 그래서 ‘해나, 숨 쉬고 있니?’라고 물었더니 ‘숨 안 쉬고 있는 것 같아’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저희 프로그램 전체를 쭉 연기했는데, 테사가 뒤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어요. 정말 감동받았어요.
임해나-권예 조는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초심을 품고 있다. “관객과의 교감을 즐기며 스케이팅을 하는 팀”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다짐이다. 권예가 말했듯, “공연에서 어떤 캐릭터를 표현하든 그 감정은 진짜여야 한다”고 믿으며, 억지로 꾸미지 않고 진심으로 다가가려 노력한다. 임해나 역시 “우리 스토리는 우리 둘 사이의 교감에서 시작된다”며, 외부의 시선에 휘둘리기보다는 자신들만의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한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이러한 ‘초심’은 우연히 만난 피겨 레전드 테사 버츄와의 대화를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권예: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그게 우리가 가진 강점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거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저는 우리가 공연에서 진정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어떤 캐릭터를 표현하더라도, 그 감정은 항상 우리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진짜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억지로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요. 예를 들어, 사랑에 빠진 캐릭터를 연기한다면 정말 사랑에 빠진 감정을 느끼면서 표현해야 그게 잘 전달되는 것 같아요.
임해나: 네, 동의해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저희 스케이팅과 스토리는 저희 둘 사이의 교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보는 스토리라고 생각해요. 이번 시즌 초반엔 우리가 외부의 관심을 끌려고 애쓰다 보니까 ‘나 봐줘! 우리 잘해!’ 이런 식으로 너무 외향적으로만 애쓰다 보니 저희 사이의 교감을 잃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는 마법과 이야기가 우리 둘 사이의 교감에서 나온다는 것을 기억했어요. 그것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저희의 스케이팅을 더 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에요.


90년대 감성 가득한 윌 스미스 음악으로 리듬댄스와
전쟁과 이별의 감성 담은 프리댄스로 올림픽 준비 완료
임해나-권예 조는 오는 7월 30일부터 31일까지 미국에서 열리는 2025 Lake Placid International에 초청되어 이번 시즌의 첫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또한,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중국 충칭에서 열리는 시니어 그랑프리 2차 대회인 컵 오브 차이나(Cup of China) 출전도 확정되었다. 올림픽 시즌 완성도를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챌린저 대회도 준비하고 있다.
임해나-권예 조의 새로운 리듬 댄스 프로그램은 윌 스미스(Will Smith)의 대표 히트곡인 <Men in Black>, <Da Butta>, <Pump It Up>, <Gettin’ Jiggy wit It> 등 유쾌하고 개성 넘치는 분위기의 음악들로 구성되었다. 임해나는 “이번 시즌 테마가 90년대인 만큼, 그의 음악이 가진 유쾌하고 독특한 분위기가 저희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이 곡들을 선택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프리 댄스 프로그램은 ‘Adagio for Strings’와 Laura Bretan의 ‘Adagio’ 두 곡으로 구성된다. 1940~50년대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전쟁터로 떠나보내는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두 프로그램 모두 마리-프랑스 뒤브뤼유(Marie-France Dubreuil) 코치의 지휘 아래 완성되었으며, 리듬 댄스는 사무엘 쉬냐르(Samuel Chouinard) 와 함께, 프리 댄스는 마리-프랑스가 단독으로 작업했다.
2021년 8월, 주니어 국제 데뷔 시즌부터 매해 한국 아이스댄스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온 임해나-권예 조. 이제 이들이 오랜 시간 준비해온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시즌을 앞두고, 어떤 중단기 목표를 설정하며 차근차근 그 여정을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