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겨스케이팅은 스포츠인 동시에 예술이다. 차가운 은반 위에서 선수는 극한의 기술을 수행하지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결국 그 기술과 함께하는 음악과 몸짓의 조화다. 점프의 높이나 회전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프로그램에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이 바로 피겨스케이팅의 ‘안무’다.
피겨스케이팅에서 ‘안무(Choreography)’는 단순히 동작을 예쁘게 배열하는 작업이 아니다. 음악 위에 점프·스핀·스텝을 촘촘히 배치하고, 선수의 체력과 기술 수준, 경기 운영 흐름을 고려해 ‘성공 가능한 구성’을 설계하는 일이다. 동시에 선수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가려, 관객과 심판에게 전달될 이미지를 완성한다. 즉 안무가는 빙판 위에서 선수의 색을 만들고, 그 색이 경기력으로 이어지도록 돕는 전략가다.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하기까지 많은 이들의 헌신이 있었지만, 이 안무라는 보이지 않는 길을 묵묵히, 독창적으로 걸어온 인물이 있다. 국가대표 출신 17년차 안무가, 신예지다.
한때 국제무대를 누비던 한국 선수들에게 해외 안무가와의 작업은 필수 코스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흐름이 바뀌었다.국내 안무가들의 독창성과 완성도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며, 이제는 한국 안무가와의 협업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하는 시대가 됐다.
그 변화의 최전선에 ‘선구자’ 신예지가 있다. 그녀는 국내 유망주들의 든든한 조력자를 넘어, 해외 톱 스케이터들과 협업을 이어가며 ‘한국 안무’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유망주였던 선수에서, 이제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찾는 안무가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온 신예지를 만나 그간의 치열했던 여정과 뜨거운 열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피겨 선수 신예지, 두려움을 기회로 바꾼 시간들 ]
신예지 안무가의 피겨스케이팅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은 바로 세계적인 명장 프랭크 캐롤(Frank Carroll)이다. ‘피겨스케이팅 코칭의 교과서’로 불리는 그는 미셸 콴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에반 라이사첵 외 다수의 세계선수권 챔피언을 길러낸 미국 피겨스케이팅 역사의 전설이다.
2004년 4월, 신예지는 당시 스승인 정성일 코치와 한국 심판의 소개로 프랭크 캐롤 팀에 합류했다. 그녀는 영어 한마디 못 하는 상태에서 떠난 도전이었기에 “두려움의 연속이었지만 기회였던 것 같아 용기 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신예지는 2년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훈련했다. 미국에서는 LA에 위치한 프랭크 캐롤의 링크에서 미셸 콴 (1998 나가노·2002 솔트레이크 올림픽 메달리스트), 에반 라이사첵 (2010 벤쿠버 올림픽 챔피언), 티모시 괴벨 (2002 솔트레이크 올림픽 메달리스트)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 훈련하며 자양분을 쌓았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훈련은 이상보다는 선명한 ‘현실’이었다. ‘해외 코치는 다정할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은 금세 깨졌다. 프랭크 캐롤과의 훈련은 생각보다 엄격했다. 신예지는 “프랭크는 한없이 다정하실 때도 있지만 정말 아닌 부분에 있어서는 굉장히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레슨 기회조차 많지 않았다. 그녀에게 주어진 캐롤 코치와의 시간은 일주일에 단 한 번, 20분뿐이었다. 신예지에게는 가르침이 간절했지만,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신예지는 매일 아침 7시면 어김없이 링크장에 나타났다.
“선생님은 항상 아침 7시부터 링크에 나오셨는데, 저도 미리 몸을 풀고 7시부터 링크에서 훈련을 했어요. 그러면서 프랭크가 혹시 제 연습을 보고 있는지 기다렸어요.”
그 간절하고 묵직한 성실함은 결국 명장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프랭크 캐롤은 신예지에게 잊지 못할 진심을 건넸다.
“너는 정말 똑똑한 아이야.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성찰하고 그러다 보면 너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될거야. 어떤 실패로든 그걸 배워나가면서 신념을 잃지 않으면 된다.”
스스로의 잠재력을 믿지 못했던 꼬마 소녀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전설적인 스승이 스치듯 건넨 그 한마디는 단순한 칭찬 이상이었다. 지금까지도 힘을 주는, 신예지 삶의 이정표가 된 것이다. 신예지는 흔들리는 순간에도 이 말을 곱씹으며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 훗날 그녀가 코치이자 안무가로서 새로운 생을 시작할 때도, “굉장히 험난한 여정이 시작될거야. 그렇지만 그런 파도에 휩쓸려도 너라면 잘 해낼 것”이라며 변함없는 믿음을 보냈다.


하지만 ‘선수 신예지’의 시간이 마냥 화려했던 것만은 아니다. 2004년 입은 심각한 발등 부상은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혔고, 2006년에는 아버지의 부재라는 개인적인 시련까지 겹쳤다. 결국 2시즌 만에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신예지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는 저에게 정말 최악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녀가 이 깊은 시련 속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곁을 지킨 두 버팀목 덕분이었다. 어머니와 지현정 코치였다.
지현정 코치는 좌절하는 제자에게 “이겨낼 수 있고, 잘할 수 있어. 해낼 수 있어”라며 끊임없이 용기를 줬다. 훈련이 잘 되지 않는 날에는 “이 힘든 순간이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게 해주고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줄 거야. 이 시간들이 헛되지 않게 잘 이끌어 나가는게 중요하다.”는 스승의 위로는 흔들리던 신예지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어머니 역시 단호하면서도 따뜻하게 딸을 일으켜 세웠다. “끝까지 해보자”며 신예지의 손을 잡았고, 부상과 부진으로 괴로워할 때는 “남과 비교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로 딸의 시선을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돌렸다.
자신을 믿어주는 이들의 헌신 속에서 신예지는 다시 스케이트 끈을 졸라맸다.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땀방울을 쏟은 결과, 2006/2007 시즌 회장배 랭킹대회 우승과 유니버시아드 4위라는 값진 성과를 거둔다.
그리고 찾아온 그다음 시즌, 신예지 안에 잠재된 ‘안무가’로서의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현역 선수로 활동하던 2007년 12월, 온세 피겨 그랑프리의 시범 경기에서 신예지는 처음으로 직접 안무한 갈라 프로그램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를 선보였다. 파격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갈라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신예지는 그 별명에 대해 “너무 감사”하다며 당시의 벅찬 마음을 전했다.
이 무대는 그녀의 인생에 큰 변곡점이 되었다. 김세열 코치를 비롯한 여러 코치들이 그녀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봤다. “은퇴하면 우리 아이들 안무가로 와라”는 러브콜이 쇄도했고, 신예지는 현역 선수 신분으로 국내에서 열린 아이스쇼와 다른 선수들의 안무까지 창작하기 시작한다.
[ 차준환과의 만남, 그리고 ‘안무가’로의 도약 ]
인터뷰 내내 신예지는 본인을 도와주셨던 국내의 많은 코치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했다. 신예지는 “LA에서의 추억이 큰 영향을 끼쳤지만, 저를 도와주셨던 오지연, 변성진, 김세열, 방상아, 지현정 선생님, 그리고 많은 한국 코치님들 덕분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며 “또 어머니를 포함한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렇게까지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깊은 감사를 전했다.
신예지가 신인 안무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첫 ‘현장’도 코치들과의 인연에서 시작됐다. 그녀는 특히 이창주 코치와 최형경 코치에 대해 “잊히지 않는 두 분의 코치님”이라며 운을 뗐다.
‘안무가 신예지’로서 결정적인 첫 단추를 끼워준 은인은 이창주 코치였다. 당시 이창주 코치의 지도를 받던 ‘노비스 시절’ 차준환의 1급 프로그램으로 본격적인 안무가로서의 커리어가 시작된다.
“2008/2009 시즌, 준환 선수의 프로그램이 다른 선수에게 준 제 첫 작품이에요. 준환이를 처음 만났을 때를 정말 잊을 수가 없어요. ‘어머, 너무 예쁜 아이가 있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이 똘망똘망했거든요. 당시에 정말 감사하게, 편한 환경을 만들어주셔서 저도 안무를 더 자연스럽게 풀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첫 작업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마치 공책에 문장을 하나하나 적듯이, 동작을 순서대로 만들어갔다. “내가 직접 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의 차이를 몰랐던 것 같다”는 신예지는 그때 선수의 신체 구조와 몸의 움직임을 깊이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 깨달음과 집념이 응축되서 나온 다음 작품이 바로 그다음 시즌 차준환의 <쿵푸팬더>다.
“이 작품 하나 만드는 데 거의 9시간이 걸렸을 정도로 정성을 쏟았어요. 제가 단호하게 지적하면 준환이는 ‘무안함’에 숨거나 멀어지는게 아니라,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눈’으로 다가와 애교를 부렸어요. 너무 귀여워서 그 순간 마음이 무너질 뻔했지만,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단호함을 유지했어요(웃음). 준환이는 그때부터 성공하는 사람들의 궤도를 그대로 밟고 있던 것 같아요. 지치지 않고 누군가에게 배우려는 자세가 너무 예뻐요.”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차준환의 <쿵푸팬더>를 본 최형경 코치가 “프로그램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자신의 제자들의 프로그램을 의뢰했다. 이호정의 <불새>, 조경아의 <와호장룡>, 김진서의 <전우치>, <아이리스> 등 굵직한 수작들로 이어졌고, 신예지는 안무가로서 확실한 입지를 다졌다.
고민의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신예지는 심판과 코치, 안무가의 갈림길에서 치열하게 방황했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이 가리키는 곳은 결국 은반 위의 예술, 안무였다.
“이제는 안무하는 아이들이 굉장히 많으니까, 다른 쪽으로 가야 할지 방황했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하고 연구하는 쪽으로 가야 할지, 계속 안무를 할지, 그게 아니라면 코치를 해봐야 할지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안무에 집중해야겠다라고 결정했던 것이 2011년에서 2012년 사이였던 것 같아요.”
[ 영감을 만든 경험의 뿌리, ‘어머니’ ]
신예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장르의 한계가 없는 다양성’과 ‘독창적인 선곡’이다. 클래식부터 영화 음악, 현대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녀의 안무는 늘 신선한 충격을 준다.
이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은 어디일까? 신예지는 망설임 없이 그 뿌리를 ‘어머니’에게서 찾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문화생활을 진짜 많이 했어요. 미술관도 다니고, 뮤지컬도 보고, 안 해본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열어준 세상은 넓었다. 어머니가 직접 작업한 집안 곳곳의 감각적인 인테리어 조차 신예지에게 풍부한 문학적 토양이 됐다. 영화, 음악, 공연, 그리고 공간을 채우는 미적 감각까지. 이 다양한 경험은 어린 신예지의 오감을 깨웠고, 끊이지 않는 영감이 됐다. 신예지의 선곡 감각을 설명할 때 사람들은 종종 ‘천재성’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 근간에는 어머니와 함께 했던 청각적 경험들이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훈련 시절, 다른 선수들의 프로그램을 보며 ‘이런 노래들을 어디에서 찾는 걸까’라고 늘 생각했어요. 그래서 훈련이 끝나면 어머니와 함께 오프라인 음악 매장인 ‘버진 메가 스토어’를 찾아갔어요. 클래식, OST, 팝송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CD를 사 모았죠. 그때 샀던 CD 플레이어가 아직도 제 애정템이에요. 고장 났지만 여전히 소장하고 있어요.”
차곡차곡 쌓인 예술적 경험들은 이제 신예지의 머릿속에 거대한 ‘라이브러리’로 저장됐다. 신예지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머릿속에서 하나의 저장소가 되었다”고 말한다. 천재적인 감각처럼 보이는 ‘음악을 적재적소에 꺼내 쓰는 신예지의 능력’은 사실 어머니와 함께 쌓아 올린 성실한 시간의 두께였던 셈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은 취향이 되어 그녀 안에 쌓였고, 이는 곧 ‘라이브러리’가 됐다.


하지만 신예지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지금도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유명 안무 크루 ‘저스트 절크’ 등에서 스트리트 댄스를 배우고 있다. 안무의 완급 조절과 디테일을 끊임없이 연구하기 위해서다.
“영감은 늘 가까운 곳에 있어요.”
어머니가 열어준 감각의 세계, 그리고 그 위에서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현재의 열정이 만나 신예지의 세계는 오늘도 한 뼘 더 넓어지고 있다.
[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피겨 안무가, 스포츠와 예술 사이의 설계자 ]
이제 신예지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피겨스케이팅 안무가다. “그런 명칭에 감사하면서도, 아직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생각한다”는 그녀는 되레 이끌어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건네며, 먼저 길을 걸어간 사람으로서 겪어야 했던 성장통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처음 무언가를 하게 되면 어려움이 많아요. 비관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계셨고, 저 역시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 많았어요.”
서러움에 눈물짓던 그녀를 지탱한 것은 옛 스승 프랭크 캐롤의 가르침이었다. “파도가 밀려오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꿋꿋하게 방향을 잡고 나간다면, 언젠가 다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녀는 처음 손을 내밀어준 이창주, 최형경 코치의 신뢰를 나침반 삼아 한 걸음씩 나아갔다. 가장 큰 산은 내부의 갈등이었다. 평생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선수’에서, 무대 뒤 어둠 속에 서야 하는 ‘스태프’로의 전환. 주인공이었던 삶을 내려놓고 누군가를 서포트하는 역할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때 그녀의 마음을 잡아준 것은 역시 어머니였다.
“‘세상의 중심이 네가 아니라는 것을 느껴봐야 한다’고. 정말 냉정하지만 꼭 필요한 말씀이었어요.”
이제 신예지는 안무가로서 선수들이 빛날 수 있도록 무대 뒤에서 듬직하게 받쳐주는 사람이 되는 것에서 더 큰 보람을 찾는다. 스스로를 ‘생계형 안무가’라 칭하면서도, 그녀는 항상 돈보다 선수가 우선이다. 선수 시절 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열정을 쏟고 있다.



신예지가 정의하는 피겨 안무가는 단순한 예술가를 넘어선 ‘전략가’다. 그녀는 예술가로서의 이상과 스포츠 안무가로서의 현실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규정과 제한이 많은 피겨스케이팅의의 특성상 “기계처럼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라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바로 ‘선수 중심’이다.
“선수의 역량 안에서 프로그램을 얼마나 소화할 수 있는지, 어떤 이미지를 설계할 것인지가 중요해요. 프로그램을 잘 이끌어 나가 클린 경기를 통해 우승하는 프로그램이 인상에 남죠.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에서 선수는 더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연기를 잘 해낼 수 있어요. 선수를 중심에 놓고, 선수가 좋은 성적과 역량을 보이게 해야 해요. 그것이 안무가가 해야 할 일이죠.”
신예지의 이러한 철학은 탁월한 관찰력에서 빛을 발한다. 국내외 관계자들이 “선생님의 작업 과정이 다른 분들에 비해 훨씬 디테일 했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녀의 프로세스는 체계적이고 꼼꼼하다. 이 꼼꼼함은 신예지표 ‘선수 맞춤 안무’의 핵심이자, 곧 ‘관찰’의 결과물이다. 그녀는 기술적인 요소를 넘어 선수의 성장 배경과 고유한 특성까지 작품에 섬세하게 녹여낸다. 선수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영감을 제안하고, 코칭 스태프 및 선수·학부모와의 긴 조율 과정을 거쳐 안무를 확정한다.
신지아의 2022/2023 시즌 프리 스케이팅인 <Tree of Life Suite>가 대표적이다.
“지아가 부산 출신이잖아요. 거기서 ‘바다’의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지아의 인생에서 바다의 의미를 생각했고, ‘바다가 지아를 인도해 세계로 뻗어 나가게 해준다’, ‘바다가 거대한 파도를 휩쓸어 지아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주목받게, 더 빛나게 해준다’라는 상상을 더해 웅장한 파도의 움직임을 안무에 담았어요. 지아는 모를 수도 있지만(웃음).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도 꿋꿋하게 나아가는 지아의 이미지를 담아낸 제가 만든 시나리오에요.”
“지아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할 거예요”라고 덧붙였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선수의 개인적 배경에 상상력을 덧 대어서 전체적인 큰 스토리를 만들고 선수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신예지만의 특별한 방법론이라는 점이다.
어린 선수와의 소통 방식도 남다르다. 소통의 비법으로는 같은 ‘눈높이’로 대화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신지아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사용한 프리 스케이팅 <Love Me If You Dare> 작업 때는 어린 선수가 이해하기 힘든 ‘사랑’이라는 감정을 신지아의 반려견 ‘릴리’에 투영했다.
“아직 어린 선수이기에 막연한 ‘사랑’이라는 이야기보다는, 반려견 ‘릴리’를 이야기 속 중심에 놓았어요. 이 프로그램 자체를 ‘릴리와 노는 지아’로 하자고 했어요. 마지막 스텝 시퀀스에서는 ‘나중에 먼저 무지개 다리를 건넌 릴리를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자’라고 했죠. 그랬더니 지아가 눈물을 흘릴 만큼 깊게 몰입하더라고요.”

프로그램을 완성한 후에는 발레, 스트로킹 코치 등 수많은 전문가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프로그램에 살을 입히는 과정이 이어진다.
“프로그램이 완성된 이후에는 무용 선생님들이 제 안무 영상을 보고 선수들이 최대한 그 안무를 똑같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발레 임혜지 선생님께 너무 감사드려요. 스텝에서도 양태화 선생님께서 레벨을 체크해주시고, 모자란 부분을 짚어주시면 그 부분을 조율해서 수정해요.”
2014/2015 시즌 김규은 선수의 <아티스트>가 ISU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처음으로 스텝 레벨 4를 받았던 순간은 그 협업의 힘을 증명한 쾌거였다. “제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스텝을 리듬에 맞게 잘 수정해 주신 건 양태화 선생님”이라며 감사의 말을 덧붙였다.
과거에는 자신의 안무가 수정되는 것에 속상해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선수를 위한 상호 존중과 협업’의 가치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긴다. 이러한 유연한 변화는 신예지가 오랫동안 결과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온 시간들이 밑바탕이 되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 데이터’가 쌓이며 협업이 원활해진 것이다. 또한, 이는 한국 피겨스케이팅이 시스템적으로 더욱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과정을 거치며 얻어낸 값진 결과물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다른 선생님들이 안무를 수정하면 ‘왜 이 부분을 바꾸셨지? 선수들이 조금만 훈련을 더 하면 잘 할 텐데’라며 속상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상호 존중과 협업이 당연해지면서 수정한 결과물들로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것 같아요.”
[ 스스로 뽑는 신예지의 대표작, 피나 바우쉬 & 파이어 댄스 ]
신예지에게 ‘대표작’을 묻자, 그녀는 두 작품을 꼽았다.
첫 번째는 김채연의 2023/2024 시즌 쇼트 프로그램 <피나 바우쉬>다. 신예지의 첫 <피나 바우쉬> 작업은 과거 김규은 선수와 작업하며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창작자인 본인은 원하는 그림을 온전히 구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김채연에게 이 곡을 추천했을 때, 신예지는 초심으로 돌아가 김채연과 함께 현대 무용을 배우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 탄츠 스테이션에 가서 마사 그라함 테크닉을 배우기도 하고, 책도 보면서 고민했어요. ‘특이하면서도 호감이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완성하기 위해 저의 집념이 정말 많이 들어갔던 작품이에요.”
신예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의 아이러니함과 감정적 소용돌이를 표현하고자 했다. “피나 바우쉬 영화에서 한 무용수가 이유 없이 물에 맞고 넘어질 듯 춤을 추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그 장면을 보며 표출하지 못하는 감정적 소용돌이와 그 안의 광기 같은 아이러니를 묘사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프로그램을 김채연에게 제안한 이유는 현대 무용에서 보여주는 정제되고 모던한 표현 방식이 선수와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라인을 남들과 다르게 활용하여 모든 선수가 똑같은 클래식 라인을 따라야 한다는 강박을 깨고자 했다.
“채연이가 스케이팅을 정말 너무 좋아하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에게 채연이 속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분출하고 싶어하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김채연과의 작업을 통해 신예지는 과거의 아쉬움을 완전히 해소했다. 그녀는 “몇 년 전에 해결되지 못했던 아쉬움이 해소된 경험처럼, 제가 좀 더 연구하고 몇 십 년 뒤에 다시 <피나 바우쉬>를 만들면 어떤 작품이 될까 라는 물음표도 남겨봤다”며 웃었다.

두 번째는 이해인의 2019/2020 시즌 프리 스케이팅 <파이어 댄스>다. 이 작품은 신예지가 선수 시절 주변의 만류로 시도하지 못했던 장르에 대한 ‘한(恨)’을 풀어준 선물 같은 프로그램이다. 2014년 아이스쇼에서 쉐린 본이 남편의 연주에 맞춰 춤추던 모습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품어왔던 영감을, 이해인이라는 ‘적임자’를 만나 비로소 터뜨렸다.
“해인이는 거침없이 스케이팅을 타고 좋은 스피드로 빙판을 가로지르는 선수예요. 발랄하게 웃는 모습과 플라멩고 스타일이 어울릴 것이라 확신했어요.”
하지만 창작 과정은 “확신이 없다”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신예지는 이 작품을 만들며 “확신이 없다”는 불안을 여러 번 경험했다. 처음 프로그램을 만들면 ‘나 정말 잘 만들었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이야기한 신예지의 불안은 선수에게 많은 디테일을 줬다는 부담으로 이어졌다. “트랜지션이라던가, 라인이라던가… 정말 디테일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 되는 한편 미안했던 것 같아요.”라고 생각한 신예지는 시즌을 준비하는 초반(3-4월)에 선수가 연달아 실수하는 장면을 보며 더 자책했다.
그때 중심을 잡아준 사람은 선수 시절에도 그랬듯, 지현정 코치였다.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격려 덕분의 기다림의 시간을 견뎠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이해인의 주니어 전성기를 함께하며, 많은 팬들과 심판의 호평을 받는 걸작이 되었다.
신예지가 이 두 작품을 꼽은 이유는 명확하다. 단순히 결과가 좋아서가 아니다.
“저에게 ‘확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르쳐준 작품들이에요. 불안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결국 통한다는 것. 저를 한 뼘 더 성장시켜 준 고마운 프로그램들입니다.”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신예지가 위의 두 가지 프로그램을 꼽은 이유는 본인에게 ‘성장’을 줬던 프로그램이기 때문이었다. 신예지는 “확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주는 프로그램들 이었고,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게 해준 프로그램들”이라며 두 프로그램에 대한 기억을 갈무리했다.
[ “무섭기로 유명하죠”, 안무가, 그리고 스승으로서의 신예지 ]
신예지는 2009년 은퇴 후 스케이팅 코칭와 안무를 병행하고 있다. 2011년 부터는 과천도시공사 소속 코치로 활동 중이다. 과천시민회관 아이스링크는 대표적인 ‘피겨스케이팅 성지’로 변성진, 한성미, 최형경, 김혜민, 정보경 등 쟁쟁한 코치들의 거점 링크이며, 김연아, 김예림 등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이곳을 거쳤다.
과천 링크는 어린 선수부터 상급 선수까지 다양한 스케이터들이 오가는 공간인 만큼, 신예지는 이 현장에서 선수 개개인의 리듬과 속도, 성장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 촘촘히 호흡하며 지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천시민회관에 좋은 선생님들이 같이 계신 덕분에, 아이들의 경기력 향상을 서로 교류하며 깊게 고민할 있는 환경이어서 좋아요. 빙상장 사무실도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오프닝 공연을 계기로 신예지가 창단한 ‘아이스 타이거즈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 팀(이하 아이스 타이거즈)’의 운영 역시 과천 소속의 코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변성진 코치는 대관 시간을 확보해 아이스 타이거즈 팀이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핀란드 연수까지 계획할 만큼 열정을 쏟았다. 하지만 20명 내외의 인원이 한 팀을 이루는 종목 특성상 코로나19라는 불가항력 앞에 팀은 해체됐다.
신예지는 “평창 올림픽 무대를 계기로 어머님들이 팀을 만들면 안겠냐고 제안해 주셨고, 그렇게 만들어진게 아이스 타이거즈예요. 2020년에 코로나가 오게 되면서, 결국 아이스 타이거즈는 막을 내렸어요.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그 친구들에게 굉장히 미안하면서도 고마워요.”라며 함께했던 제자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안무가, 댄서 등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는 제자들의 빛나는 근황을 이야기하며, 남아 있던 아쉬움을 달랬다.

신예지는 ‘안무가’인 동시에 ‘코치’다. 이는 그녀가 프로그램을 창작하는 ‘만드는 사람’의 시선과, 매일 링크에서 선수의 컨디션과 성장 과정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지도자’의 시선까지 함께 가져간다는 의미다. 이 두 가지 시선은 상호보완적이다. 현장에서 쌓이는 코칭 경험은 현실적인 프로그램 설계로 이어지고, 반대로 안무가로서 그린 큰 그림은 훈련 과정에서 선수들이 체화할 수 있도록 돕는 구체적인 지도 방식으로 되돌아온다. 두 역할은 명확히 구분되는 듯하면서도, 결국 ‘경기에서 완벽한 수행’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코치와 안무가를 병행하는 그녀가 느끼는 차이는 무엇일까? 신예지는 이 두 역할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가능성의 확장’이라는 키워드로 명쾌하게 설명했다. 링크 위에서 두 역할이 바라보는 초점은 확연히 다르다. 코치는 ‘냉정한 현실’을 진단한다면, 안무가는 그 현실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를 설계한다. 안무가는 그 ‘이미 알고 있는 사실’ 바깥을 더듬는 것이다.
“코치 선생님들은 선수가 이런 부분에 이런 점프를 잘하고, 또 다른 부분에서 있어서 어떤 것이 부족하고 하는 것들을 테크닉적으로 많이 보실 거에요. 그리고 스케이팅적으로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표현력이 어떤지 아시죠. 저는 그 안에서 가능성을 더 확인해보려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가능성을 극대화했을 때, 코치 선생님들도 ‘쟤가 저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어’라고 이야기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안무가는 코치의 진단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코치가 보는 ‘냉철한 현실’ 위에서, 선수의 한계를 조금 더 밀어 올릴 수 있는 선택지를 찾는 것이 안무가의 몫이다. 때문에 그 과정은 늘 치열한 설득과 조율이 함께한다.
“본인의 단계를 넘어서게 하는 것을 찾아야 하니 설득과 조율의 과정이 늘 필요한 것 같아요. 가끔은 그 선을 넘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설득을 통해 수행하다 보면 아이들이 더 좋아지니까 힘들지만 재밌었던 것 같아요. 힘들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지만요.”
현장에서 이 ‘조율’은 결국 시간과 신뢰가 해결해주기도 한다. 신예지는 최형경 코치와의 오랜 협업을 예로 들었다.
“최형경 선생님의 경우 이런 부분을 오랫동안 같이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서로 이해되지 않을까’라고 이야기 해주셨어요. 그런 부분들이 저한테는 너무 감사했던 것 같아요”

이러한 가능성의 확장을 위해 신예지는 기꺼이 무서운 사람이 되기를 자청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아이들한테 굉장히 무서운 존재”라고 소개한다. 그녀가 미움받을지언정 채찍질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절실함’ 때문이다. 선수 시절에 그렇게 하지 못했고, 필요로 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던 신예지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진 지금 더 열정을 쏟고 싶다”라고 말했다. 능력을 갖춘 지금은 제자들에게 사랑받기보다 프로그램이 잘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프로그램이 선수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발판이 되길 바라는 절실함이 있어요. 제가 미움받는 사람이 될지언정, 프로그램과 선수가 잘 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사람으로 남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안무가로 남고 싶어요. 속상할 지라도 진심을 다했을 때 경기에서 그 프로그램이 정말 빛난다는 것을 아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스타일을 이해하고 믿고 맡겨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까지 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늘 반성과 감사의 연속인 것 같아요. 지도자의 길은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그녀는 선수들에게 단순한 동작 전수를 넘어 피겨스케이팅 역사를 공부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찾을 것을 강조한다.
“최근 10년, 20년 동안 피겨스케이팅이 어떻게 발전하고 룰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에 대한 통찰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장 가장 성적을 잘 낸 누구, 가장 좋았던 점프, 이런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큰 맥락’을 보면 좋겠어요. 프로그램을 짤 때, ‘다른 선수들을 참고해 보라’고 이야기하면 보통 가장 성적이 좋은 선수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아이들에게는 각자 맞는 컬러가 있고, 본인만의 컬러를 입히려면 다양한 스케이팅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한국을 넘어 세계로, “흔들리지 않는 신예지”를 향해 ]
신예지는 올해도 많은 국내 선수들과 안무를 작업하며 전략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녀의 안무는 선수의 현재 상황과 목표를 철저히 계산하여, 개개인의 독자적인 세계관으로 연결한 결과물이다.





최하빈의 쇼트 프로그램인 <태극기를 휘날리며>가 대표적이다. 이번 시즌은 ‘쿼드러플(4회전) 점프’ 장착이라는 매우 중요한 성장 단계의 기로를 고려해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당초 계획했던 새로운 프로그램 대신, 선수의 의견을 존중해 지난 시즌 프리 스케이팅을 쇼트로 편곡해 익숙함 속에서 기술 안정화에 집중하도록 하는 전략적인 결단을 내렸다.
주니어 무대 데뷔를 앞둔 김민송에게는 <태양의 서커스>를 통해 예술적 역량을 넓혔다. 신예지는 작품의 타이틀이 ‘바람’과 연결된다는 인상에서, “태양의 서커스 레파토리 중 아이스쇼인 <크리스탈>처럼 원소 느낌”을 떠올렸고 픽사 영화 <엘리멘탈> 같은 이미지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선수와의 긴밀한 소통과 설득 과정도 빛났다. 김유재의 프리 스케이팅 <반지의 제왕>은 익숙한 영화 버전 대신, 아마존 드라마 시리즈의 사운드트랙 중 뉴메로스(Númenor)의 웅장한 사운드로 ‘항해’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김유재만의 <반지의 제왕>을 만든 것이다. 신예지는 “새로운 음악을 들으면서 제 얘기를 들어주고, 프로그램으로 잘 소화해 낸 유재에게 많이 감사하다”고 전했다. 김유성의 프리 스케이팅 <타이타닉> 역시 선수의 요청이었다. <타이타닉>은 신예지에게도 처음인 음악이었다. 작품이 대중적으로 많이 소비됐다고 생각했기에 주저했지만, 선수의 간절한 요청을 받아 편곡자 휴고와의 협업을 통해 친숙한 곡을 새로운 감각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이를 통해 <타이타닉>을 제3자의 시선에서 재해석한 명작으로 탄생시켰다.
마지막으로 이시형의 프리 스케이팅 <볼레로>는 오랜 기다림 끝에 맺은 결실이었다. 2022년 베이징 올림픽 직후부터 추천했으나 선수의 우려로 보류되었던 이 곡은, 선수가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다’며 비로소 성사됐다. 신예지는 “선수가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고, 경험치가 쌓이니 거침없이 시도를 받아들였다.”라며 “코치-안무가-선수의 협업이 정말 잘 되었기 때문에 ‘좋은 프로그램’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제 신예지의 무대는 국경을 넘어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가까운 일본, 중국을 넘어 유럽 선수들과의 작업도 활발하다. 그중 가장 강렬한 순간은 2022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다가오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의 강력한 메달 후보 카기야마 유마(일본)와의 만남이었다. 일본 연맹의 요청으로 성사된 첫 작업.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해외 작업은 국내보다 설득의 과정이 더 치열하고 제약 조건도 많았다.
“처음에 카기야마 아버님이 좀 지루해하시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긴장도 많이 하고 어려웠죠.”
하지만 작업이 끝난 후, 코치이자 아버지인 카기야마 마사카즈의 한마디가 그간의 긴장을 씻어내며 신예지에게 깊은 확신을 심어주었다.
“아들이 저렇게 타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이 극찬을 받은 프로그램은 카기야마 유마의 2024/2025 시즌 갈라 프로그램으로 낙점되었다.
신예지는 올해도 카와베 마나(일본) 등 부지런히 국제 무대에서 활약한 신예지는 글로벌 안무가로서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그녀는 “해외에서의 경험을 통해 ‘내가 정말 사람들에게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자기 확신의 계기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스스로를 “자신감이 많이 부족하다”고 평하던 신예지. “비판에 대해 좌절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그 힘든 순간을 피하고 싶었던 마음들이 오히려 “삶의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그녀는 다짐한다. 비판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확신을 가지고 꿋꿋이 나아가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앞으로 또 부딪힐 게 많겠지만, 이 길을 갈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다”는 그녀의 뒤로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의 더 밝은 미래가 펼쳐지고 있다.
어머니가 짜준 원목 책꽂이에서 시작된 선율은, 이제 거대한 ‘라이브러리’가 되어 전 세계의 빙판 위로 흐른다. 신예지가 빚어내는 것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한 선수의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증명하는 ‘단 하나의 빛나는 순간’이다. 세계와 호흡하는 창작자로서, 그녀가 써 내려갈 다음 페이지가 기대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녀는 단지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술자가 아니라, 선수의 가장 찬란한 계절을 함께 기록하는 ‘은반 위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기획 김현진 박지민 이민정
인터뷰 진행 김현진
인터뷰 감수 박지민
촬영 및 사진 편집 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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