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이 날아올랐다. 2013년 캐나다 런던 세계선수권 김연아의 마지막 금메달 이후, 꼭 10년 만이다.
24일 저녁 일본 도쿄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에서 피겨 요정 이해인(17, 세화여고)이 프리스케이팅 부문 1위, 최종 합산 2위에 올라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사상 역대 두 번째로 포디움에 올랐다. 함께 출전한 김채연 또한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연기로 프리스케이팅 3위를 기록, 스몰 메달을 획득했다.
이해인은 쇼트프로그램 73.12점에 이어 프리스케이팅 기술 점수(TES) 75.53점, 구성 점수(PCS) 71.79점으로 147.32점, 총합 220.94점을 받았다. 1위인 일본의 사카모토 카오리(23)와는 불과 3.67점이었다.
이해인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OST에 맞추어 여주인공 크리스틴으로 분했다. 모든 요소를 자신감 있게 수행해내며 무결점 연기를 선보인 가운데, 특히 강점인 스텝시퀀스가 빛났다. 최고 레벨인 레벨4에, 1.56점이라는 대회 최고 가산점까지 받았다.
이해인은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도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시즌 초반에 잘 풀리지 않아 매우 힘들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다. 정말 와보고 싶었던 사이타마 세계선수권에 와서 기쁘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쁘다.”고 밝게 웃었다.
다음 질문에서는 “이번 시즌을 겪으며 아플 때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경험했고, 잘 못했을 때 딛고 일어나는 법을 배웠다. 덕분에 사대륙선수권과 세계선수권에서도 잘 할 수 있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이번 시즌 장점”이라고 시즌을 돌이키고, “다음 시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좋은 모습 많이 보여드리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함께 출전한 김채연 또한 선전을 이어갔다. 3그룹 첫 번째 선수로 빙판에 올랐지만, 완벽한 연기로 기술 점수(TES) 76.78점, 구성 점수(PCS) 62.67점으로 139.45점, 총합 203.51점을 받아 마지막 그룹까지 선두를 지켰다. 쇼트 프로그램에서의 점수 차로 최종 6위에 올랐지만 김채연의 기술점은 전체 선수 중 가장 높았다. 프리스케이팅 순위는 무려 3위이다. 이번이 생애 첫 세계선수권 출전이다. 앞으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Poeta>의 강렬한 음악에 맞춰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펼치는 김채연. 그러나 얼음을 떠나면 “사고뭉치” 두 강아지의 반려인이자, 부끄러움 많은 고등학생이었다.
“어제 솔직히 결과가 그렇게 좋진 않아서, 조금 마음을 조금 편하게 하고 탔더니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준비했던 걸 다 보여드릴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며 수줍게 웃었다. “세계선수권은 아무래도 유튜브에서 봤던 세계적인 선수들과 같이 하는 대회여서, 이번 시즌에서 가장 의미 있던 대회가 아니었나 싶다.”
7월부터 긴 시즌을 이어간 김채연에게 주니어와 시니어 무대의 차이점을 물었다. 잠시 생각한 김채연은 “관중”이라고 답했다. “주니어 대회는 관중도 아무래도 조금 적다. 또 다른 선수들이 저보다 많이 안 크다(웃음). 그래서 마음이 편한데, 여기(시니어)는 다 언니들이고 관중도 많다 보니, ‘나도 크게 보여야 하겠다.’고 조금 생각했다.”며 대표단 최연소의 매력을 보였다.
“이번 시즌 프리 프로그램이 조금 더 좋다. 특히 마지막에 코레오 시퀀스에서 세 번 연속 점프하는 부분이 가장 좋다. 안무가 선생님께서 옛날에 이 동작을 했던 선수를 보고 해보지 않겠냐? 제안하셨는데, 괜찮아서 들어갔다. 제가 조금 소극적이어서 표정 연기를 못했었는데,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언니들이 다 표정이 풍부하고 표현도 잘해서…, 조금 더 신경 써서 연습했다.”며 한 시즌 동안 함께한 프로그램에 대한 노력도 비췄다.
김예림은 2그룹 첫 번째로 경기에 나섰다.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영화 <42년의 여름>의 서정적인 OST에 맞춰 연기를 시작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의 첫 점프에서 회전이 풀려 두 바퀴로 처리했고, 세 번째 요소인 루프에서도 실수가 나왔다. 이어진 후반부에서는 시니어 5년 차의 경험으로 침착하게 연기를 이어 나가 큰 실수 없이 경기를 마무리했다.
김예림은 믹스드존에서 스스로 경기력에 아쉬움을 표했다. “오늘 두 번의 큰 실수가 나왔고, 그 외에 기술에서도 제가 만족스럽지 못한 수행이 나와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많이 아쉽고 또 실망도 크다”고 자평하며, 자신의 시즌에 대해 “75점”이라는 점수를 줬다.
시즌 초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던 김예림이었기에, 조금 더 점수를 줘도 되지 않냐고 반문했다. 이에 김예림은 “우선, 제가 여태 그랑프리 메달이 하나도 없어서, 그랑프리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싶었다. 시즌 초반부터 조금 열심히 달려서, 계획한 대로 시즌 초반에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확실히 시니어 선수들이 한 시즌을 통으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이번 시즌에 조금 크게 느끼게 됐다. 다음 시즌에는 필요한 부분에 대해 계획을 잘 세워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김연아의 마지막 세계선수권 이후 10년, 대한민국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은 꾸준히 성장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김예림은, 어느덧 “어린 후배 선수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약간은 외로운 마음도 있는거 같다.”라고 말하는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맏언니가 되었다. 주니어 여자 싱글 선수단은 2022/2023 시즌에 참가한 모든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했다. 주니어를 넘어, 어렵게만 여겨지던 시니어의 허들도 훌쩍 뛰어넘었다. 그랑프리, 사대륙선수권, 세계선수권의 장벽을 허물었다. 이해인, 김채연을 비롯하여 꺾이지 않는 선수들의 열정이, 대한민국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매년 괄목할만한 발전과 성과에, 끝없는 관심과 응원이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