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고전극장들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다. 수 세기 동안 수많은 배우와 관객, 그리고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들이 머무른 공간이다. 2025년,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연극 는 이러한 ‘귀신 들린’ 극장들을 순회하며 특별한 공포 체험을 선사한다. 제레미 다이슨과 앤디 나이먼이 공동 집필한 이 작품은 회의론자인 굿맨 교수가 세 가지 괴이한 사건을 조사하면서 겪는 심리적, 초자연적 충격을 다룬다. 그가 만나는 증언자는 야간 경비원, 10대 소년, 그리고 첫 아이를 기다리는 사업가. 이들의 체험은 굿맨의 이성과 믿음을 뒤흔든다.

연극의 주역은 댄 테첼, 데이비드 카디, 클라이브 맨틀, 에디 루드머-엘리엇 등 각기 다른 연기 색깔을 지닌 배우들로 구성돼 극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인다. 관객은 끊임없는 반전과 심리적 압박, 실제 무대 효과를 통해 단순한 연극 이상의 체험을 하게 된다. 연령제한(15세 이상)이 있는 것도 그 충격 강도를 방증한다.
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다. 공연이 펼쳐지는 극장 자체가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아래는 연극이 순회 중인 대표적인 극장들과, 그곳에 얽힌 섬뜩한 전설들이다.

Cheltenham Everyman Theatre
1983년 리노베이션을 앞둔 어느 날, 기술자 로저는 나선형 계단 아래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낀다. 그는 시대극 복장을 한 중년 남성을 만나게 되는데, 그 남성은 공연 여부를 묻고는 실망한 듯 사라진다. 하지만 잠시 뒤, 로저가 안전 금고에 깔릴 뻔한 사고를 겪으며 그 존재가 단순한 방문객이 아니었음을 실감한다. 해당 건물에서 유일한 출입문은 무대 문이었으며, 아무도 남자를 본 이가 없었다고 한다.
Liverpool Playhouse
1897년, 극장이 뮤직홀로 사용되던 시절, 청소부 엘리자베스는 무대 위에서 물로 작동되는 불도구에 맞아 오케스트라 피트로 추락해 즉사한다. 하지만 이 장비는 누군가의 조작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구조였다. 그녀의 영혼은 A5 좌석에 머무르며, 종종 갤러리 구역에서 냉기를 느낄 수 있다. 관객이나 스태프 중에는 실크 모자를 쓴 남성이 비상구로 달려가는 장면을 봤다고 증언하는 이들도 있다.

Edinburgh Festival Theatre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유령이 많기로 유명한 이 극장은 ‘라이언의 신부’ 공연 중 발생한 화재로 11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의 무대다. 마술사 ‘그레이트 라파예트’는 공연 도중 불길에 휩싸인 채 무대 아래에서 숨졌다. 이래서일까? 그의 반짝이는 반지와 사자의 포효 소리가 아직도 극장에 울려 퍼진다고 한다. 또한 나무다리를 끄는 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외다리 선원, 관객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노란 드레스를 입은 소녀 등 다양한 영혼의 존재가 보고되고 있다.
Wolverhampton Grand Theatre
퍼시 J. 퍼디는 20세기 초 이 극장을 관리하던 인물로, 은퇴 후에도 이곳 아파트에 머물며 매일 밤 구 지하 바에서 위스키 한 잔을 즐겼다고 한다. 지금도 그의 발소리가 건물 내를 순찰하는 듯 들린다는 증언이 있다. 또 다른 존재는 ‘라벤더 레이디’라 불리는 여성 유령으로,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짧고 강한 라벤더 향이 퍼진다. 그녀의 정체는 전 시장 부인이거나 열혈 관객이라는 설이 있다.

Theatre Royal Brighton
1960년, 회색 시폰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유령이 백스테이지와 1번 분장실에서 처음 목격되었다.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으며, 한 이론에 따르면 길을 잃은 수녀였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극장을 매입한 헨리 나이 차트와 그의 아내 엘렌의 영혼도 극장 내를 떠돈다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엘렌은 자신의 좌석인 로열 서클 G16에 앉아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그녀의 옛 저택이 현재의 로열 바 공간으로 바뀌면서, 그 방 안에서는 종종 시가 연기가 나는 듯한 냄새가 감지되기도 한다.
이처럼 는 단순한 연극 그 이상이다. 이야기 속의 공포와 실제 극장에 얽힌 전설이 중첩되며, 관객은 시공간을 초월한 긴장감과 마주한다. 이 공연을 관람할 계획이라면, 극장에 조금 일찍 도착해보자. 어쩌면 무대가 아닌 복도 어딘가에서 또 다른 ‘등장인물’을 마주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