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개봉한 영화 《Wicked》는 단순한 뮤지컬 영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뮤지컬 원작과 1939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향한 오마주로 가득한 이 작품은, 팬들에게 숨은 그림 찾기와도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감독 Jon M. Chu는 장면마다 촘촘히 디테일을 심어두며, 뮤지컬 팬들을 위한 진정한 ‘선물 상자’를 완성했다.

아래는 영화의 주요 시퀀스를 중심으로 정리한 뮤지컬 및 오즈 세계관 이스터에그들이다. (스포일러 주의)
오프닝 – 엘파바의 모자와 토네이도
첫 장면은 엘파바(Cynthia Erivo)의 뾰족한 모자 클로즈업으로 시작된다. 웅덩이에 비친 모자의 실루엣은 1939년 영화에서 도로시를 오즈로 데려간 토네이도를 연상시킨다. 이는 뮤지컬 초연 당시 무대에서 거대한 모자 소품이 열리며 군무진이 등장하던 연출을 직접적으로 오마주한 장면이다.
이후 먼치킨랜드로 향하는 길에서는 도로시와 친구들, 즉 토토, 허수아비, 양철인간, 겁쟁이 사자가 빗자루를 들고 돌아오는 짧은 장면이 포착된다. 배경음악으로는 “Ding Dong the Witch Is Dead”와 “Over the Rainbow”의 선율이 미묘하게 섞여 나온다. 또한 원작 무대의 엘파바 배우 Vicki Noon이 카메오로 등장해 팬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시즈 대학 입학 – 1939년 영화와의 연결 고리
‘To Shiz’ 시퀀스에서는 영화 타이틀의 서체가 1939년 원작과 동일하게 디자인되어 시선을 끈다. 글린다(Ariana Grande)의 어머니 역은 전직 엘파바 배우 Alice Fearn이 맡았으며, 엘파바의 마법이 폭발하는 장면에서 벽화 뒤로 드러나는 동물 교수진은 이후 전개를 암시한다. 또한 ‘Time Dragon Clock’이 셋업 장면 중 짧게 등장하며 원작 팬들에게 반가움을 안긴다.
네사로즈의 슬리퍼는 무지개와 토네이도 문양이 새겨져 있고, 그녀의 줄무늬 양말은 동쪽 마녀의 양말과 동일한 디자인으로 설정됐다. 엘파바가 마법을 연습할 때 생기는 벽 그림자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마녀를 연기한 Margaret Hamilton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오즈더스트 무도회 – 노래와 퍼포먼스의 향연
‘Ozdust Ballroom’ 시퀀스에서는 뮤지컬 배우 Cherida Strallen이 Fiyero에게 책을 건네는 사서 역으로 출연한다. 이 장면의 핵심은 “Dancing Through Life”와 “For Good”의 멜로디를 절묘하게 섞은 새로운 테마곡 “Ozdust Duet”으로, 팬들에게는 또 하나의 감동 포인트다.
마담 모리블의 의상은 디즈니의 《겨울왕국》 엘사를 떠올리게 하며, “Popular” 넘버에서 글린다가 루비 슬리퍼를 신어보려다 내려놓는 짧은 동작은 상징적인 패러디로 해석된다. 노래가 끝날 무렵 거울을 들어 올리는 장면은 무대 프로덕션 포스터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한 장면이다.

사자, 양귀비, 자전거 – 오마주의 연속
어린 사자 새끼를 구출하는 장면에서 엘파바는 수면 양귀비 마법을 사용한다. 이는 원작 영화에서 도로시와 일행이 양귀비 들판을 지나며 잠드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Fiyero가 양귀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설정으로, 허수아비와 같은 논리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엘파바가 자전거 바구니에 사자 새끼를 태워 도망치는 장면은 Miss Gulch가 토토를 데리고 자전거를 타는 장면을 패러디한 것으로, 오마주의 연출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다.

에메랄드 시티 – 스크린으로 구현된 무대 연출
‘One Short Day’ 장면부터 인물들이 초록색 의상을 착용하며 에메랄드 시티의 분위기가 본격화된다. 이 시퀀스의 하이라이트인 ‘Wizomania’ 장면은 무대 연출과 조명을 거의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온 것으로, 뮤지컬 팬들에게 깊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작곡가 Stephen Schwartz와 대본 작가 Winnie Holzman이 카메오로 등장하고, 무대 출신 배우 Michael McCorry Rose는 오즈 세계의 창시자인 L. Frank Baum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고 등장해 팬 서비스의 진수를 보여준다.
마법사의 정체 – 디즈니와의 교차
‘A Sentimental Man’에서 마법사가 만든 오즈의 미니어처 디오라마는 마치 디즈니랜드의 초기 설계도를 연상시키며, 상업적 유토피아에 대한 은유를 암시한다. 벽 뒤에 숨은 마법사의 장면은 무대 피날레의 실루엣 연출을 스크린에 옮긴 대표적인 예시로 꼽힌다. 마법사가 던지는 작은 나무집은 원작 영화에서 하늘을 나는 집 장면을 암시한다.

하늘로 떠나는 엘파바 – ‘Defying Gravity’ 클라이맥스
열차 장면에서는 마법사의 본명인 ‘Oscar Diggs’가 적힌 포스터가 잠시 등장한다. “Can’t I Make You Understand”는 “Follow the Yellow Brick Road”와 유사한 선율을 차용하며 원작 팬들에게 익숙한 감정을 자극한다.
열기구에 오르려다 실패하는 장면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상징적인 순간이며, 마지막으로 엘파바가 떠오르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그녀가 서쪽 하늘로 향한다는 암시로 마무리된다. 엔딩 크레딧에는 전직 위키드 무대 배우들이 보컬리스트로 참여해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숨은 보석으로 가득한 ‘Wicked’
영화 《Wicked》는 오마주, 패러디, 팬 서비스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뮤지컬 영화다. 단순한 각색을 넘어서, 원작을 향한 깊은 애정과 리스펙트가 느껴지는 연출은 반복 관람의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이스터에그를 찾는 그 자체가 하나의 놀이이며, 이 영화의 진정한 감상법이기도 하다.
뮤지컬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필견의 작품이자, 장르 팬을 위한 정성 가득한 ‘러브레터’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