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뮤지컬 <설공찬>, 고전의 저승에서 오늘의 평등을 외치다

석산 역의 윤석원은 이번 공연에서 중요한 매개체다. 그는 역사 선생님으로서 무대를 여는 해설자이며, 관객과 극 사이를 잇는 다리다. 설명적이면서도 극적 긴장을 유지하는 연기로, 원작의 역사적 맥락과 저승의 서사를 자연스럽게 연결해낸다.

염라대왕 역의 윤도영은 아역 배우임에도 무대 위에서 놀라운 존재감을 발휘한다. 귀엽지만 카리스마 있는 무대 매너와 안정적인 음색은 성인 배우 못지않은 기량을 보여주며, 저승의 질서를 지탱하는 권위와 동시에 신선한 활력을 전달한다. 이는 관객에게 예상치 못한 반전을 선사하며, 어린 배우의 잠재력을 확인케 한다.

설공찬의 누나 설초희는 어진 성품과 총명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꿈을 펼치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녀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 당시 여성들이 짊어져야 했던 부당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박시인 배우는 이러한 설초희의 서사를 단아하면서도 절제된 연기로 풀어내며 무대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특히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순간에도 내면의 울분과 슬픔을 섬세하게 드러내, 관객들로 하여금 설초희라는 인물이 지닌 아픔을 공감하게 만들었다.

연출과 음악, 현실과 환상의 교차

무대 연출은 역사 수업이라는 일상적 장면에서 저승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순간을 치밀하게 설계했다. 특히 사경대 장면에서는 조명과 영상 효과를 활용해 인간 존재를 낱낱이 드러내는 심판의 순간을 강렬하게 구현했다.

음악은 전통적 선율과 현대적 뮤지컬 넘버가 교차한다. 국악적 리듬과 서양 음악의 화성을 절묘하게 엮어, 고전의 이야기를 오늘의 감각으로 풀어내며 시대를 초월한 울림을 준다.

오늘을 비추는 저승의 거울

뮤지컬 <설공찬>은 단순한 귀신 이야기의 재현이 아니다.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한 청년의 목소리를 되살리고, 그것을 기록하고 전승하는 채수의 역할을 강조한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사회적 정의임을, 이 작품은 강렬하게 증명한다.

뮤지컬 <설공찬>은 관객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만약 당신이 사경대 앞에 선다면, 어떤 삶이 비춰질 것인가?”

저승은 단순히 사후의 세계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은유적 무대다. 뮤지컬 설공찬은 고전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며,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잇는 다리 위에서, 정의와 평등이라는 오래된 이상을 다시 묻는다. 그 질문은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에도 오랫동안 마음에 맴돈다.

한편, 뮤지컬 <설공찬>은 10월 26일까지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