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아트센터 서울, 그 중에서도 대극장인 LG SIGNATURE 홀에서 첫 연극의 막이 올랐다. 연극 ‘파우스트’다. 오랜만에 연극계로 복귀한 박해수의 강렬한 연기와 배우들간의 완벽한 호흡. 그리고 큰 무대를 가득 채우는 대형 디스플레이까지. 화제의 연극 ‘파우스트’를 만든 양정웅 연출을 만나 인터뷰의 시간을 가졌다.
연극 ‘파우스트의 공연이 한창이던 지난 4월,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만난 양정웅 연출은 공연이 이미 중반에 다다른 상황이지만 완성도 높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공연 전 런을 도는 데에 한창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잠깐 짬을 내었다는 그의 얼굴은 으례 생각하는 거장의 무거움 보다는, 젊은 에너지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극장을 보는 순간 떠오른 작품 ‘파우스트’
문화포커스(이하 ‘문’) : 공연이 시작하던 초기에 공연을 봤습니다. 정말 뜨거운 열기와 완벽한 공연에 감동했어요. 연출님께서는 대극작 연극을 연출하신 적이 있으시긴 하지만, 이번 ‘파우스트’의 경우 LG아트센터 서울이 개관한 이후 첫 대극장 연극이고 무대도 특히 큰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는지 그게 처음으로 궁금했습니다.
양정웅(이하 ‘양) : 여기 극장을 보고 ‘파우스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파우스트’는 60 넘어서 할까 생각하고 있었던 거거든요.(웃음) 근데 극장을 보니 극장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대작을 해야 된다. 그래서 ‘파우스트’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무대를 다 열어버렸어요. 완전히 다 열었어요. 이 큰 극장에 와이드를 다 열고 위도 다 열고 그래서, 사실 막상 하려니까 이게 처음이니까 낯설기도 했는데 그냥 이 ‘파우스트’라는 자체의 스케일이 크고 공간도 많이 바뀌고 그래서 충분히 이 극장에 잘 어울리게(했습니다.) 저도 대극 장 전문이다 보니, 그런 큰 스케일을 좋아해서 공간에 잘 녹아든 것 같아요.
문 : 그래서 그런지 대형극장에 잘 어울리는 대형 디스플레이 연출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무대 뒤에 ‘그레첸의 방’을 둔 것도 인상적이었구요. 방 안에서 ‘그레첸역의 원진아 배우의 연기도 좋았지만 이동을 하며 카메라를 바라보는 ‘메피스토’ 역의 박해수 배우의 연기도 인상적이었어요. 그 장면 하나로 메피스토가 이 무대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솔직히 국내 연극에서 이런 식의 화려한 연출은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요즘 뮤지컬에서는 LED를 많이 활용하긴 하지만, 연극무대에서 이런 연출을 시도한 의도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양 : 사실 연극은 아날로그잖아요. 이제 (LED를) 뮤지컬에서도 쓰기 시작했고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아날로그인 연극과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적극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뭐 제가 짊어질 필요는 없지만, 제가 올림픽 개회식도 연출하고 미디어 아트도 하면 그런 쪽에 관심이 많다 보니 연극도 빨리 미래를 위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만나려면 빨리 그런 시도와 접목들을 많이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은 고가의 장비로 너무 돈이 많이 들어서 못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제작사와 극장과 함께 할 때 이걸 꼭 좀 연극에서 최초로 시도를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우스트‘는 사유思惟와 질문의 연속, 사유의 시간을 가지길 바라며 만들어
문 : 그렇다면 왜 지금 시대에 ‘파우스트’ 였을까요?
양 : 이게 너무 상식적인 말일 수도 있겠지만, 현대 대한민국 사회가 ‘브레이크 없는 욕망의 스포츠카를 타고, 욕망의 아우토반을 달리는 느낌’이에요. 사실 가장 인간의 삶을 영유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에너지도 욕망이긴 하지만 그 욕망 때문에 많이 힘들고요. 그런 현대인들에게 파우스트가 갖고 있는 자아 성찰적인 어떤 것들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시대에 꼭 필요한 연극인 것 같습니다.
문 : 전작인 ‘코리놀라우스’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시대적 배경이 현대에서 펼쳐지는 느낌으로 연출을 하셨어요. 이것도 일부러 시간적 설정을 옮기신 건지 궁금합니다.
양 : 모든 고전을 읽다 보면 몇천 년 전에 쓴 쓰여진 그리스 비극같은 작품도 인간 원형의 고민은 지금과 같아요. 나라와 언어와 국가를 넘어서 고전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거대한 힘, 이 힘이 갖고 있는 진리와 주제의식과 메시지가 현대인에게 자기를 돌아볼 수 있고, 자기한테 질문할 수 있고, 우리의 삶에 대해서 반문할 수 있는 그런 공간과 시간을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파우스트’ 역시도 우리가 자기를 돌이켜볼 시간조차도 없이 빠르게 퍼덕이면서 욕망 속에서 살고 있잖아요. 이 ‘파우스트’는 사실 답이 없거든요.다 질문이에요. ‘그 질문을 피하지 말고 직면하고 질문해라 너 자신에게’ 그런 시간을 마련해 주는 작품인 것 같거든요.
시간을 내서 책을 읽으시면 좋겠지만, 책을 못 읽으신다면 요즘 책 읽어주는 앱이 있는 것처럼, 연극을 보면서 책을 한 권 읽는 것 같은 사유의 시간을 갖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문 : 그래서 그런지 원래 ‘파우스트’가 20시간이 넘는 대작인데, 압축하시느라 굉장히 힘드셨다고 하더라구요. 박해수 배우님께서 인터뷰 때 몇번이나 언급을 하실 정도였어요. 이렇게 압축을 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어려웠던 부분이나, 아니면 뭔가 ‘이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잘했다’싶었던 특별한 순간이 있었을까요?
양 : ‘파우스트’가 원래 비극 1부 2부가 있는데 2부는 사실 이제 다음에 꼭 3부작으로 해서 하고 싶어요. 제 2부는 국가와 화폐와 권력 같은 것들이 나와 굉장히 길고 또 난해하기도 하고 어려워요. 언젠가는 꼭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저희는 지금 1부만 한 겁니다. 1부 학자 ‘파우스트’의 비극과 ‘그레첸’의 비극을 담은 비극 제1부만 한 거예요.
1부를 다 한다고 했을 때 한국말로 하면 한 여섯 일곱 시간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반 이상 줄인 거였어요. 우리 김미혜 프로듀서(샘 컴퍼니 대표)하고 2시간 반을 하기로 했는데 ,분명히 감안하고 읽었을 때는 2시간 반 안에 들어왔거든요. 막상 배우들하고 또 하다 보니까 이게 3시간 15분, 3시간 20분이 되어서 1시간 정도 오버된 거예요. 그래서 너무 그때 고민이 많이 됐죠. 근데 자르려고 하는데 잘라지지가 않는 거예요. 제가 아까워서. 햄릿의 경우에 햄릿 Q1 버전이 있거든요.
문 : Q1 버전이요?
양 : 햄릿이 섹스피어 작품 중에 제일 길어요. 근데 2시간짜리 버전이 있습니다. 그걸 이제 q1 버전이라고 하는데 진짜 액기스만 딱 들어가 있어서, 이제 학자들 사이에서는 그게 공연본이라는 설이 있어요. 그래서 그 유려하고 장대사가 많은 햄릿조차도 사실 이렇게 공연본이 있는데, 저희가 이제 큰 극장에서 사실 새롭게 연극 보시는 대중분들도 많이 만나니 더 압축해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김미혜 프로듀서가 그런 데서는 되게 천재적이셔서 잘 상의해서 그걸 줄이는데 그 과정에서 한 4번 줄였거든요.원래 원작을 3개월에 걸쳐서 4번을 줄였는데 한 번 더 줄였죠. 그때 가장 진짜 뼈를 깎고 살을 깎아내리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문 : 그렇게 노력하신 덕분인지 저는 보면서도 어려운 내용임에도 이해하기 쉽고 재밌었어요. 흐름같은 것도 빠르니까 몰입이 더 잘됐던 것 같습니다.
파우스트의 구심점은 두명의 파우스트와 메피스토가 만들어 내는 트라이앵글
문 : 그렇다면 주인공인 ‘늙은 파우스트’와 ‘젊은 파우스트’, 1막과 2막을 종횡무진하는 ‘메피스토’와 2부에서 큰 임팩트를 주는 ‘그레첸’ 중에서 연출님이 생각하시는 ‘파우스트’의 구심점은 누구일까요?
양 :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라, 어떻게 보면 약간 트라이 앵글 같은 거 같아요. 피라미드처럼. 늙은 파우스트 젊은 파우스트는 한 사람이지만 에너지도 그렇고, 저도 만약에 제가 3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사람일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 늙은 파우스트와 젊은 파우스트의 이 팽팽한 서로 다른 에너지 거기에 구심점으로 작용하면서, 늙은 파우스트의 이면일 수도 있고 젊은 파우스트의 이면일 수도 있는 메피스토. 이 삼위일체가 트라이앵글로 이렇게 굉장히 촘촘하게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처럼 이렇게 연결이 돼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사실 이 트라이앵글이 만들어내는 구심점이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 : ‘파우스트’의 매력으로, 주연 배우 네 분의 연기도 클 것 같은데요.전에 박해수 배우와의 인터뷰에서, 연출님께서 배우분들의 자유도를 굉장히 존중해주셨다고 이야기 하시더라구요. 좋은 부분은 피드백 해주시면서,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역이 완성되어 내 안이 있었다라고 이야기하셨는데, 혹시 이게 전적으로 배우분들을 믿고 그렇게 하신 건지 아니면 사실은 내 안에는 원하는 이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어긋나지 않게 유도를 좀 하셨던 것인지 좀 궁금해요.
양 : 제가 그냥 연극을 연출을 오래 하면서 느낀 건, 결과적으로는 변증법적으로 정반이 만나서 합이되는 것 같아요. 그런 그걸 시너지라고 그러죠 저희가. a와 b의 객체가 만나서 전혀 다른 c가 되는, 그게 이런 작업의 스파크인 것 같아요. 그게 희열이고 흥분이죠. 얼마 전에 돌아가신 피터 브룩(영국의 연출가)이라는 연출가가 한 말이 있었거든요. 어느 날 자기가 다 성냥개비로 다 그어서 (연출을) 만들어서 왔는데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그날 모두 준비한 것들을 다 지워버렸다는 되게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그런 것처럼 저는 연출가의 의도가 있고 콘셉트가 있지만, 실제로 연기하는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캐스팅이 중요하고요. 그 배우가 갖고 있는 가능성과 그 존재가 갖고 있는, 그 빛나는 빛을 결국은 배우 스스로 빛을 발하는 거고 어떻게 보면 연출가들은 배우가 잘 갈 수 있게 지도를 그려주고 그리고 길을 안내하고 그런 역할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당연히 배우의 크리에이티브한 에너지와 아이디어와 이런 것들을 많이 수용해서 함께해야 된다. 이런 연극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 : 저는 사실 반대로 연출가의 열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공연을 다양하게 보다보면 배우가 작품마다 연기의 완성도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구요. 저도 박해수 배우처럼 연출님의 가이드가 정말 중요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게 되네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캐스팅 이야기로 넘어가서, 저는 이번에 원진아 배우의 연기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첫 연극인데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셨거든요. 네 분을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유인촌 선생님이나 박해수 배우야 워낙 연극계에서 기라성 같은 분이시지만, 사실 박은석 배우는 저한테 이렇게 클래식한 연극보다는 좀 캐주얼한 연극에서 많이 뵀던 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그 네 분을 캐스팅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양 : 박은석 배우는 제가 펜트하우스에서 보고 ‘저 배우 누구지? 너무 매력 있고 잘한다. ‘했어요. 근데 알고 보니 연극 배우였고 제가 다만 못 봤을 뿐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래서 그냥 바로 선택을 했습니다. 매체를 하면서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연극 출신의 젊고 잘생긴, 멋있는 배우가 누굴까 이러다가 박은석 배우가 떠올랐습니다.
원진아 배우 같은 경우에는, 김미혜 프로듀서님이 소개를 받았는데 너무 파이팅 넘치고 잘한다는 거예요. 박정민 배우의 ‘지옥’에 함께 나왔었는데, 지금 박정민 배우가 김미혜 프로듀서 소속사에 있잖아요. 너무 파이팅 넘치고 너무 열심히 한다고 소개를 받고 다 찾아봤죠. 저 심지어 안 보는 예능까지 봤어요. ‘전참시(전지적 참견 시점)’인가? 그것도 보고, 영화도 다 보고 다른 것도 찾아봤는데 되게 매력이 있더라고요 ‘파이팅이 넘치면 됐다.’싶어서 만났는데 진짜 파이팅이 넘쳐요. 정말 단 하루도 안 빠지고 연습실에 제일 일찍 오고 정말 자기 신 아닌데도 한명이 남아서 진짜 개인 사적인 그런 스케줄 하나 없이 거의 올인을 해서 했어요. 아마 그 열정의 결과물 아닌가(싶습니다)
문 : 원진아 배우 이야기가 나와서, 원진아 배우의 연기도 놀라웠지만, 놀이동산 크루들처럼 손인사를 하는 것도 너무 귀여웠어요.
양 : 처음에는 예배를 드리러 우산을 쓰고 성당을 가는 이렇게 멋진 스타일리시한 장면으로 해봤는데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냥 그럴 법하고, 젊은이들이 만나면 어디 어디서 만날까 제가 놀이동산을 많이 가지는 않았지만 ‘무서운 이야기’라던가 제가 좋아하는 영화에 놀이동산들이 나와요.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놀이동산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손인사는 이제 진아배우가 이것저것 하다가 손인사를 하는 거예요. ‘너무 재밌다. 그거 하자’.하니 ‘진짜 이거 이거 해도 돼요?’ ‘관객분들이 좋아할 것 같아, 하자.’해서 한 거죠.
문 : 그 장면에서 관객분들이 빵빵 터지더라구요. 마지막 커튼콜 나오실 때 또 손인사를 하는데 너무 귀엽더라고요. 진아배우의 아이디어 였군요. 확실히 연출님께서 딱 포인트 잡아주시니까 진아 배우도 밀고 나가셨던 거죠. 아까 얘기하실 때는 배우분들이 믿고 하신다라고 했는데 또 연출 님께서 길을 열어주시는 것도 많으신 것 같아요.
양 : 그게 연출 역할이니요. 이제 배우들의 달란트를 계속 끌어내고, 응원해 주고, 제시해주고요. 안되면 이렇게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고.
벗어날 수 없는 종교관, 그 자체가 괴테
문 : ‘파우스트’가 독일 문학이고 서구권 문학이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종교에 대한 종교관이 깔려 있는데요. 서구권에선 기본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저희같은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거든요. 결국 ‘파우스트’ 안에서도 신의 구원이라든가 신의 믿음이라든가 이런 게 어쩔 수 없이 핵심 요소로 작용하는데, 그걸 설득시키는데 조금 고민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해결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양 : 저는 근데 그냥 기본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뭐 피해갈 수 있는 게 아니다고,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피할 필요도 없고 가릴 필요도 없다. ‘이거 자체가 괴테’다. 저도 독실한 신자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카톨릭 신자거든요. 그래서 이걸 하면서 더 많이 이해한 것 같아요. 괴테는 이걸 쓰는 당시에 범신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종교적인 메시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그가 보고 듣고 자란 세계관에 아주 깊숙이 연결 되어 있었으니까요.
장면의 장면들이 다 성경 얘기예요. 거의 다. 서양 문화가 다 그렇지만 특히 유난히 그런 걸 많이 느꼈고요. 그래서 그 자체가 이 작품의 본질이다. 그가 범신론자였던 곳도 그 당시 교회의 비리와, 그런 인간이 설정한 형식과 그런 거에 반기를 든 거지 기본적으로 그는 ‘범신론자’로서 그래서 우주와 신과 인간과 구원과 성과 악과 사랑과 희생과 그런 것들을 빛과 어둠과 이런 거에 대해서 너무 첨착해서 그 질문을 너무 치열하게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걸 종교적으로 볼 것인가 뭐 그런 우려를 전혀 하지 않았어요. ‘파우스트’를 보고자 한다면 그걸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거를 제가 더 강조하지도 않고 더 가리지도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괴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무신론자가 많은 편인데, 그건 서양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현대인들은. 실존주의 이후로 결과적으로는 인간이 중심이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종교적으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인간 자체로 볼 수도 있고 그게 되게 열린 구조로 되어 있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파우스트’를 완벽하게 만들어준 LG아트센터와의 각별한 인연
문 : LG 아트센터랑 작업을 많이 하셨잖아요. 말씀하셨다시피 역삼동에 있던 LG아트센터의 마지막 연극이 코리올라누스였고, 이번파우스트는 LG 아트센터의 대극장 연극으론 처음이구요. LG아트센터와의 인연이 정말 특별하신 거 같아요.
양 : 한국 연극계에서 해외에서 제대로 된 상을 받은 게, 제가 이집트 카이로 연극제에서 받은 게 처음일 거예요. 이집트 카이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떠오르는 새싹이었는데 그때 LG에서 저를 픽업해서 작품을 맡겼죠. 그때 정말 진짜 맨날 지하실에서 연습하고 라면 먹고 그러던 시절인데, 역삼동의 좋은 극장에서 연습실에서, 정말 거의 밤새면서 진짜 미친 듯이 만들었어요. 그때 그 감사함과 그걸 잊을 수가 없었고요 그런 기회를 주신 그걸 기회로 또 더 많이 세계로 많이 뻗어나갔죠.
나중에 이제 바비칸 센터(영국 런던에 위치한 문화, 예술 복합 센터로 양정웅 연출은 이곳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출했다.) 초청됐을 때도 기념으로 ‘한여름 밤의 꿈’ 먼저 하고 갔거든요. 연극 대관을 안 해줬었는데 그때도 대관해줬어요. 그런 시간과 의리들이 쌓여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그래서 국립오페라단에서 보첵을 제가 연출할 때도 보이네 보이책을 할 때도LG에서 올렸습니다. 그런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마음속에 1순위죠.
문 : 그렇게 쌓여서 좋은 시너지가 계속 나고 있으신 것 같아요. 솔직히 이 무대가 이렇게 꽉 찰 수 있나 생각을 했었거든요.연극으로 이렇게 꽉 채워지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양 : 그 바탕에 샘 컴퍼니의 엄청난 기획력과 홍보와 마케팅 실력이 있었어요. 이게 다 맞아야지 되는 거 같아요. 작품만 좋다고 그럴 수도 없고 . 그게 다 맞았을 때 이게 이렇게 시너지가 나는데 이거는 진짜 극장 제작사 창작진들이 이렇게 ‘파우스트’로 똘똘 뭉치다 보니, 극단 ‘파우스트’라고 그래요.(웃음)
문 : 그 시너지 덕분에 말씀하신 것처럼 대극장 연극이 이렇게까지 흥행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흥행 가도를 달리고 계시잖아요. 이런 열광적인 성원과 응원과 그리고 이제 찬사를 듣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기분은 어떠실까요.
양 : 이런 고전이고 그 어려운 ‘파우스트’인데 이렇게 사랑받는 것 자체가 그냥 너무 감사할 따름이고요. 그리고 놀라운 점은 관객들이 그래도 괴테의 ‘파우스트’를 이 시대에, 이렇게 숏폼이 난무하는 미디어 시대의 세상에서 이렇게 아날로그 연극을 그것도 어려운 고전 ‘파우스트’를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매일 객석을 채워준 다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운 것 같습니다. 그 ‘경이로운 소문’이라는 드라마가 있던데 ‘경이로운 파우스트’ 인 것 같습니다. 진짜 너무 감사할 따름이에요.
문 : 하지만 그 숏폼 시대에 맞춰서 현대적인 연출도 많이 하셨어요.계속 언급되는 대형 LED나, ‘그레첸의 방’ 같은거요. 특히 ‘그레첸의 방’이 굉장히 독특한 기획인데, 어떻게 구상하시게 됐는지 너무 궁긍합니다.
양 : 이게 시네마틱 씨어터라는 개념들이 있어요. 10여 년 전에 그런 시도들을 많이 했었고요 근데 돈도 많이 들고, 영세하게 하려니까 ‘안 해’ 이랬는데, 이번 프로덕션은 샘컴퍼니와 함께 하니까, 그런 거를 더 본격적으로 시도할 수 있었죠. 어쨌든 제가 LED월을 하려고 하니, 자연스럽게 CG 중심이지만 실시간 촬영을 넣어야 되겠다 싶었어요. 제가 영화도 찍었고 또 평창 올림픽 개회식 할 때도, 개회식이 공연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수십억이 보는 tv 쇼거든요. 영상 쇼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쪽에 특화돼 있고 또 할 수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장면들을 넣은 것 같아요.
문 : 대형 LED와 ‘그레첸의 방’의 상성이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면서 느꼈던 것 중에 하나가, ‘파우스트’가 노년일 때는 뒷쪽 LED가 흑백이다가 젊어진 순간부터는 컬러로 바뀌더라구요. 그런 것도 의도하신 부분이시구요.
양 : 1막은 서재에 갇혀 있는 그 파우스트의 삶과 시선은 흑백, 빛과 어둠의 흑백이고요 이제 ‘메피스토’를 따라서 세속으로 와서 현실을 만날 때는 빛이 가득한 총천연색(으로 했습니다)
문 : 보고 있으면 특히 노년의 파우스트가 마을에 나갔을 때라던가, 시대 배경이 1960년대 50년대? 아니면 약간 시카고의 30년대 밀주 시대 이런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혹시 일부러 시대를 그레첸에 맞춰서 조금 당기신 건가? 왜냐면 그레첸이 보수적인 여자여야 하니까? 제 생각이 너무 나갔을까요?
양 : 아니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제가 잘 구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괴테 ‘파우스트’의 가장 중점 되는 게 시간이에요. 시간. 이 안에서 시간이 무엇인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다 섞여 있는 그런 판타지가 있는 시간인데, 요즘 또 뉴트로 그러잖아요. 현대지만 또 과거가 숨어 있고, 현대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이렇게 섞여 있는.
문 : 노년의 파우스트는 조금 과거라고 따지면, ‘그레첸’과 만나는 놀이동산은 조금 더 현대적인 느낌이네요. 약간 그런 느낌도 드네요. ‘메피스토’의 인도에 따라서 ‘파우스트’가 좀 더 현대로 끌어당겨지는? 그러면서 좀 더 쾌락을 보게 되는 느낌도 좀 드네요.
양 : 마지막엔 미래로 가는 거죠(웃음) 연극이 주로 하고 있는 게 공간과 시간을 알 수 없는 어느 곳. 쉽게 얘기하면 사무엘 베퀘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라든지. 많은 부분들이 연극에서는 이 그런 특정할 수 없는 어떤 현대를 가리키죠. 국가도 모르겠고, 언어도 모르겠고, 그 시간도 모르겠고.
문 : 관객들은 또 그걸 즐기러 가는 것 같아요. 내가 모르는 어느 가상의 공간, 가상의 시간을 가서 그 사람들이 느끼는 여러 가지 번민이나 고통, 즐거움. 이런 걸 보면서 지금의 순간을 잊게 만드는 게 연극의 매력인 것 같다고 저는 생각 하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그런 식으로 배경 자체가 특정되지 않게 하신 거였다.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네요. 저희가.
가장 통속적이지만 가장 철학적인 작품
문 : ‘파우스트’의 주제가 철학적 대상이나, ‘메피스토’ 존재나 이런 거는 시공간을 정말 넘어서도 통용되는 이야기인데, ‘그레첸’과의 관계가 사실은 성애적인 부분이라는 게 그게 약간 조금 아쉽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근데 또 반대로 생각하면 성애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좀 더 철학적인 주제를 담을 것인가 아니면 이 성애적인 부분, 쾌락에 좀 더 집중을 할 것인가.
양 : 가장 철학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문 : 오히려 그게 더 철학적인 거군요.
양 : 1막에서는 되게 현학적이고 그런 사회적인 얘기들을 다 주고받지만 그게 사실은 실체가 없는 거잖아요. 형이상학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근데 우리 철학이라는 게 사실은 결국은 형이하학적인 거죠. 내가 돈을 벌 건지, 돈을 쫓을 건지. 꿈을 쫓을 건지, 사람을 쫓을 건지. 라면을 먹을 건지, 채식을 할 건지, 고기를 먹을 건지. 그냥 모든 것이 인간이 살고 있는데, 어떤 가치관이 철학이라고 상정한다면 가장 중요한 게 사랑이죠. 그리고 사랑을 책임질 것인가 사랑에서 도피할 것인가. 그리고 사랑의 책임을 져서 희생을 할 것인가. 그래서 그 자기의 책임을 도피하지 않았을 때 ‘그레첸’은 구원을 받잖아요.
그래서 그 부분은 괴테가 되게 통속극으로 썼어요. 거기에 숨겨진 대사들을 보면 사랑을 통해서 ‘메피스토’가 ‘파우스트’랑 얘기하고 있는데, 이게 욕정이냐 진실한 사랑이냐. 나는 억누를 수 없는 이 불타는 감정 이걸 사랑이라고 이걸 뭐라고 표현을 해야 되냐. 그래서 이건 욕정이 아니냐.
이 형이상학적인 걸 형이하학적으로 끌어내려가지고, 난상으로 주고받는 숲과 동굴에서 진짜 하나님 천지 창조까지 끌어오면서 그때 이미 남녀의 사랑이 있는데, 그럼 이걸 왜 만들었냐 신이. 가장 위대한 거다. 빨리 가라.너의 입으로 거짓말하지 마라. 뭐가 진짜 진실이냐(이렇게 치고 받잖아요.)
파우스트가 진짜 통속극이잖아요. 오빠도 죽이고. 밀회를 위해 엄마에게 먹인 약 때문에 엄마도 죽고.
문 : 사실 최근 막장드라마보다 더 심각한 막장이거든요. 그 부분이.
양 : 고전은 다 막장이죠. 오이디푸스는 엄마랑 자고, 햄릿은 삼촌을 죽이고.
문 : 엄마도 죽고, 자기 애인은 미치고요.
양 : 그런 통속극, 막장극으로 들어 일부의 형이상학적인 얘기를 형이 학학적으로 만드는데 이 구조까지 똑같아요. 왜냐면 1막의 마지막 ‘마녀의 방’은 2막의 마지막 ‘발프루기스’고. 완전 다 리버스로 해놨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모든 것이 연결될 수 있다는 걸 밝히는 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술관이었다면, 괴테는 이거에 대한 리버스로 형이상학적인 얘기를 현실로 끌고 온다면 이렇게 된다라는 거를 그래서 저는 우리가 그렇게 그냥 사랑이고 통속극이기 때문에 이게 철학적이지 않은가라고 착각할 뿐이지 실제로는 어마어마하게 철학적이죠.
문 : 마지막으로 관객분들한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양 : 이렇게 온전히 사랑받을 수 있구나 이런 가능성을 느꼈고, 지금 표가 많이 거의 없지만, 보실 수 있다면, 아니면 다음에 재공연의 기회가 있다면, 이런 고전 속에는 사실 자기가 주제를 메시지를 찾을 수 있거든요.다의적이죠. 이건 뭐 이건 이거야라는 그게 아니라, 자기 입장에 따라서 바라볼 수 있는 메시지가 곳곳에 숨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작품 보시고 자신만의 메시지를 찾으셔서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자기한테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