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는 분들이 제 경기를 보면서 행복하고, 감동을 받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얼마나 곧바르고 단단한가.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나이가 무색했다. 혼자만의 일기장에 “감정을 저장해 둔다”는 사색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독파했다는 그녀.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민채. 5월의 비 오는 어느 날, 담담하고 차분한 말투 사이에 숨긴 그녀의 따뜻한 눈빛을 담았다.
꽃을 줍는 꿈나무
2014년, 김민채는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아이스링크 가운데 고깔 안에서 화려하게 스핀을 도는 선수들을 보며 ‘나도 해보고 싶다’는 동경에서 시작되었다. 피겨스케이팅과 가까워진 지 1년 후, 3학년에 목동에서 이보람 코치와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아직 어린 선수였지만, 2015년 목동에서 열린 ISU 사대륙선수권 대회를 비롯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등 최고의 국제 대회를 화동으로 경험했다. 어릴 적부터 주변을 따뜻하게 챙기던 김민채는, 자신이 오롯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갈라 무대에서도 동고동락한 화동 동료들을 잊지 않았다.
“화동했을 때는 제가 인형을 줍기도 하고, 시상식에서 도우미도 했어요. 언니들을 보면서 ‘나도 시상식에 설 수 있을까?’ 하다가, 그런 언니들이랑 같이 타니까 기뻤어요. 올림픽에서는 관중석보다 더 가까이 볼 수가 있어서 너무 좋은 경험이 됐었어요.
2019년 종합선수권 때는 2위를 해서 갈라를 하게 됐어요. 그때 해진 선생님께서 유튜브를 하셔서, 저희한테 트와이스의 <Yes Or Yes> 커버 영상을 찍어준다고 하셔서 애들이 단체로 외웠는데요. 제가 메달을 따게 됐는데 갈라 프로그램이 없는 거예요. 근데 쇼트 프로그램을 하자니 조금 재미가 없을 것 같고. 그래서 애들도 안무를 다 알고 있으니까, 하루 만에 연습하고 하게 됐어요. (웃음)”
2019년 여름, 김민채는 첫 주니어 시즌을 맞았다. 같은 해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에서는 아쉬움을 남기며 선발되지 못했지만, 곧 신예지 안무가와 새 프리 프로그램 <불새>를 준비했다. 프라하 아이스 컵에서 2위를 차지하고, 시즌 말미 전국 동계체육대회에서는 이 기록에서 30여 점 가량 올리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주니어 그랑프리 출전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런 그녀를 막은 것은 코로나 팬데믹. 열심히 준비했던 시즌이 전면 취소된 것은 개막을 고작 한 달 앞둔 7월 20일이었다. 국내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연이어 대회가 무산되며, 첫 대회였던 종합선수권 역시 지난한 진통 끝에 열릴 수 있었다. 많은 선수가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간 이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항상 김민채를 응원해 준 팬들 덕분이라고.
“당시에는 무관중이기도 하고, 대회도 많이 취소돼서 선수들이 굉장히 많이 힘들어하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팬 분들 덕분이에요. 응원의 메시지도 많이 보내주시면서 항상 느껴지기도 했고, 또 팬 분들을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게끔 준비하려고 했어요.”
응원의 힘 덕분이었을까. 김민채는 1년 사이 더욱 만반의 준비를 했다. 비로소 세계의 막이 열린 2021년, 주니어 그랑프리의 출전권을 두 장 거머쥐었다.
오랫동안 고대하던 김민채의 데뷔는 화려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선수 사상 최초로 주니어 그랑프리 데뷔 경기에서 쇼트 프로그램 70점을 돌파했고, 개인 최고점도 가뿐하게 경신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꼽은 김연아와 일본의 히구치 와카바가 사용했던 <007 제임스 본드> OST에 맞추어 강렬한 연기를 펼쳤다. 중계 카메라를 향해 손짓하는, 과감한 모습도 보였다.
“카메라를 피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좋아해요. 그리고 보통 심판을 봐야 하는데 그때 제 앞에 카메라가 있어서 이거라도 봐야지 했어요.”
첫 대회 쇼트 프로그램 2위.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큰 점프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바로 다음 주 이어진 김민채의 두 번째 경기에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돌연 그녀의 기권 소식이 들려온다. 건강상의 사유였다. 막연히 등 부상으로 알려졌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때 첫 번째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좋은 쇼트 프로그램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었고, 프리 스케이팅에서도 점프로는 만족하는 경기였지만 좀 아쉽게 메달을 놓쳐서 다음에는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두 번째 대회에) 가서 공식 연습을 하다가 갑자기 허리에 통증이 느껴졌어요. 그래도 시합은 해야 하니까 계속 참고 하다가, 좀 심해져서 염증 주사 같은 마취제를 맞으면서 병원도 갔는데 통증이 나아지지 않았어요. 서 있을 수 조차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기권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자가 격리 때문에 병원을 못 갔어요.
2주 격리를 하고 병원에 가서 검사받았는데 병원에서 ‘운동을 그만두고 수술하라’고. 디스크가 터진 거예요.”
“엄마가 저한테 ‘쉬고 다시 재활하고 탈 수 있겠냐?’ 해서 ‘당연히 탈 수 있다’ 했는데 좀 많이 힘들더라고요.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종목이 조금 쉬면 감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쉰다는 건 한 번도 생각을 못 해봤어요. 좀 오래 쉬어야 하다 보니까 좀 많이 힘들었고. 일단 수술보다는 주사 치료를 병행하면서 했는데 처음에는 잘 안 낫더라고요. 그때가 한 10월쯤이었는데 12월에 대표 선발전이 있으니까 쉴 수가 없어서 다시 탔는데, 부상도 있었고 하다 보니까 컨디션이 많이 안 올라오더라고요. 그래도 운동선수를 하다 보면 부상은 어쩔 수 없이 있는 거니까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것 때문에 스케이트를 못 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보다는, 아파도 참고 타면 괜찮으니까.”
허리 통증은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의 고질적인 부상이다. 하지만 디스크까지 이어지는 것은 흔치 않다. “여전히 조금 불편하다”고 밝히면서도, 다시 운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는 김민채. 간절한 마음으로 임한 두 번의 국가대표 선발전. 한 등수 차이로 대표 명단에는 아깝게 승선하지 못했다. 연달아 닥쳐오는 시련을 딛고 일어선 데는 현재 함께하고 있는 신혜숙 코치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신혜숙 선생님께서 ‘네가 하던 대로만 하면 잘할 수 있다. 꼭 대표가 이번에 되지 않아도 다음에 되면 되니까.’ 그렇게 말씀 많이 해주셨어요. 심적으로 정말 많이 안정됐고, 선생님이 부담을 항상 덜어주셔서 저도 스케이트에 대한 애정도 더 커진 것 같아요.
원래는 점프에 대한 공포가 정말 많아서 연습할 때 점프를 많이 못 뛰었던 적도 있고 선생님께 많이 혼났던 적도 있어요. 그게 좀 오래 가다 보니까 저 스스로도 좀 안 고쳐지는 게 답답하긴 했었는데, 신혜숙 선생님이랑 같이 훈련하면서 선생님이 굉장히 편안하게 해 주시고 부담을 안 주셔서 져서 지금은 없어요.”
신혜숙 코치는 김연아의 마지막 올림픽을 함께한 지도자이다. 원로 코치로서 최다빈 등 국내 저명한 선수들을 다수 배출했다.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로 김민채를 북돋아 주는 최고의 스승이다. 지난 2022년 이탈리아 주니어 그랑프리에서도 김민채만을 위한 독특한 솔루션을 제시해 주었다.
“제가 시합 트라우마, 이런 게 좀 심했을 때였어요. 이탈리아 대회를 나가면서 시작 전에 부담이 심해서 긴장도 너무 많이 되고, 눈물이 날 정도로 좀 많이 무서웠어요.
제가 선발전을 하고 티켓을 따면서 한국을 대표해서 나온 거잖아요. 이 티켓을 다른 선수보다 한 장을 더 얻어서 나간 거니까, 더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쇼트 프로그램에서도 웜업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제 순서가 될 때까지 조금 많이 힘들었어요.
프리 날 공식 연습을 할 때 선생님이 ‘그러면 차라리 네가 더 편하게 웜업을 나가지 말고 해보자’ 하셨어요. 처음에는 ‘웜업을 안 한다고?’ 하니까 걱정이 많이 됐거든요. 그래도 아무래도 몸을 풀고 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선생님이 저를 믿어주셔서, 저도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 같아요.”
신혜숙 코치와 쌓은 신뢰는 첫 시니어 대회에서 곧 결실을 보았다. 첫 시니어 대회였던 ISU 챌린저 시리즈 데니스 텐 메모리얼 챌린지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 김민채에게 인생 첫 시니어 국제 대회 메달이었지만, 이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대회 기간 중 할머니가 위독해진 것. 어머니 박수미 씨는 급히 조기 귀국했지만, 김민채는 되레 ‘나는 신경 쓰지 말라’며 의연함을 보였다.
“저는 이제 혼자 할 수 있으니까, 저 신경 쓰지 말고 가라고 했어요. 쇼트 프로그램부터 조금 힘든 경기를 해서 속상해하고 있었는데, 신혜숙 선생님께서 ‘프리에서 네가 할 것만 한다면, 메달 딸 수 있을 것 같다. 네가 잘하기만 하면.’ 그러셨어요. 마음을 추스르고 연습부터 들어갔는데 컨디션이 괜찮더라고요. 콤비네이션 점프는 못 뛰었지만 다른 거는 그래도 깔끔하게 하고, 잘 끝냈던 것 같아요.”
김민채의 어머니 박수미 씨는 김민채를 ‘아들 같다’고 말했다. 말로는 채 표현할 수 없는 다정함을 손 편지로 남긴다.
“아기 때부터 이렇게 어버이날, 생일이나, 나랑 싸우거나 하면 장문의 편지를 남겨요. 근데 제가 보니까 너무 잘 쓴 거예요. 사진 찍어서 카톡에도 올리고. 말로 안 하고 글로 써주니까. 또, 거짓말을 안 해요. 다이어트할 때도, 안 먹었다고 거짓말할 수도 있는데 ‘먹었어. 운동할게. 솔직하게 다 얘기하잖아. 나는 엄마한테 절대 거짓말 안 해.’라고 해요.”
모전여전이라고 했던가. 어머니 박수미 씨와 김민채는 운동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느낀다고 했다. 선수 본인이 말하는 것보다 부상은 더 심각했다.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중증이었다.
“자가격리 할 때까지만 해도 저 정도 부상인지 몰랐어요. ‘그냥 삐끗한 거겠지’ 했는데, 자가격리 후에 MRI를 찍고 너무 심각해서 놀랐어요. 디스크가 터져서 흘러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이제 뭐 해야 하나, 이거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그랬죠. 지금은 민채가 이렇게 스케이트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진짜로.”
설상가상 입시도 다가오고 있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된 김민채는 내년 고등학교 3학년이 된다. 선수들이라도 입시는 피해 갈 수 없다. 특히 체육 특기자로서 빙상은 좁은 문이며,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손에 꼽힌다. 박수미 씨는 지난 1월 종합선수권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종합선수권 끝나고 민채가 내려놓을 줄 알았어요. 좀 걱정이었는데, 민채는 오히려 담담하게 ‘더 할 수 있어.’라고 하더라고요. 체전 종별 메달이 다 있으니까, 오래 열심히 해야죠.”
Shine Bright Like a Diamond
김민채는 다가오는 시즌 프로그램을 세계적인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과 함께 준비했다. 강렬한 탱고에 맞춘 쇼트 프로그램을, 서정적이고 시니어에 걸맞은 프리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역시 다시 배치하기 위해 땀 흘리고 있다. 주니어와 시니어가 모두 가능한 나이인 만큼 선택의 폭이 넓은 시즌이기에, 고민 역시 많다. 하지만 국가대표 발탁에 대한 목표 의식만큼은 확고했다.
“일단 다음 시즌 가장 큰 목표는 국가대표에 발탁이 되는 거예요. 사실 저번 시즌에는 제가 만족할 만한 경기를 많이 못 했어요. 이번 시즌은 제가 만족하고, 팬 분들도 선생님께서도 만족하는 경기를 좀 많이 해나가는 게 목표입니다.”
김민채가 2022/2023 시즌 초반 사용한 쇼트 프로그램은 영화 <물랑루즈!> OST 중 <Sparkling Diamonds>. 지난 2018년 김해진 안무가가 만들어 준 같은 프로그램의 리바이벌이었다. “어릴 때는 통통 튀고 발랄한 느낌이었다면, 작년에는 조금 더 성숙한 그런 느낌, 좀 더 사틴의 느낌”을 연출했다는 고등학교 2학년 김민채는 이제 인간으로서도, 선수로서도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다.
마지막으로 지난 2년간 수많은 부침과 우여곡절을 넘기며 정진하고 있는 김민채에게, 어머니의 응원 메시지를 남긴다.
“대표 선발이 안 돼도, 안 되면 어때? 네가 진짜 본인이 행복한 스케이팅을 했으면 좋겠어. 네가 원하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