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피겨계에서 이시형이라는 캐릭터가 특이하잖아요. 그렇게 잘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만 10세에 시작한 늦깎이 피겨스케이터,
한국에서 완성한 탄탄한 4회전 점프,
일곱 시즌 연속 국가대표,
186cm라는 장신,
올림피언.
8월의 무더운 어느 일요일, 인터뷰 전날에도 주니어 그랑프리를 전부 시청하고 왔다는 피겨스케이팅 팬이자 현역 선수. 피겨스케이팅에 누구보다 진심인 국가대표 맏형, 이시형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고난을 뚫고 시작한
피겨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직진남’ 이시형은 처음부터 남달랐다. 이시형은 2010년 4월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처음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체험이 아닌, 본격적으로 선수를 하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있었다. ‘선수 하려면 1년에 1억이 든다, 지원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도 굴하지 않았다. 1년의 시간 동안 여러 번 마주친 시련에도 꺾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반대로 링크장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목동을 거쳐 과천 실내빙상장의 최형경 코치에게 최종적으로 정착하기까지, 안정되지 않은 훈련 환경 속에서도 더블 점프를 마스터하며 유망주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하고는, 탈의실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이시형 모자는 피겨스케이팅 향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시형(이하 ‘시’):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힘들었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할 정도지?’ 싶을 정도로 훈련했어요.
일단 새벽 6시에 대관을 타요. 그리고 학교에 갔다가 점심시간 후에 와서 일반 시간에 들어가서 스핀을 연습해요. 그다음에 바로 발레학원에서 2시간 연습하고, 8시부터 10시까지 대관을 타요. 그리고 더 대관이 있는 날에는 12시부터 2시까지 타기도 했어요. 그때는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으니까, 3시에 끝나면 집에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과천 빙상장 탈의실에서 자기도 했죠.
그때 엄마는 근처 김밥집에 일을 하셨어요. 아침에 서로 각자 다른 곳으로 출근하는 거죠. 엄마는 일하시고, 저는 링크장에서 하루 종일 있고. 그런 생활을 보냈어요.
문화포커스(이하 ‘문’): 노비스 시절에 발 부상이 있어서, 양발 치수가 다르다는 말도 있던데요. 그때쯤이었나요?
시: 맞아요. 지금 생각해도 약간 어이없이 다쳤는데, 점프를 뛰다가 발목으로 넘어진 거예요. 그때 인대가 파열됐어요. 어영부영 랭킹하고 종합까지 치렀어요. 이미 치료 시기를 다 놓친 후에 왼발에 깁스했는데, 그래서 발이 짝짝이가 됐어요. 초반에 대처를 잘 못한 거죠. 지금도 그때 부상을 고질적으로 안고 가고 있어요. 아직도 훈련 많이 하고 나면 아파요. 그때 대처를 잘못한 게 후회가 많이 남죠. 지금도 주변에 초반 대처를 잘하라고 말하곤 해요.
문: 주니어와 시니어 시즌 얘기를 해볼게요. 2015년에 미국 대회로 첫 주니어 그랑프리에 참가했어요.
시: 콜로라도를 가기 전부터 고산지대라고 겁을 엄청나게 주는 거예요. 근데 너무 1차원적으로 생각했던 게, ‘고산지대면 체력을 좀 더 끌어올려야겠지? 고산지대니까 산에 한번 가보자!’ 해서 산을 탔어요. (콜로라도 스프링스가) 치악산에 버금가는 고도라고 하길래, 치악산에 다녀온 거예요. 직전에 다녀왔으니 기진맥진했죠.
그리고 처음 나갔을 때라 아무것도 모르니까, 겁 없이 그냥 했는데 다 뛰고 또 잘했어요. 10등 안에 드는 게 목표였는데, 9등 해서 좋았어요.
문: 치악산 훈련이 도움 되었나 봐요.
시: 안 됐어요. 그거 안 했으면 아마 8등 정도 하지 않을까요? 좀 더 힘을 비축해서(웃음).
물개박수 치는 마자용
이시형은 2017년 2월 강릉에서 열린 사대륙선수권 대회로 국제 시니어 선수권대회에 첫선을 보였다. 세 명의 한국 남자 싱글 중 최연소로 참여한 그의 순위가 되레 가장 높았다. 침착한 경기 운영으로 좋은 성적을 얻은 그는 환한 웃음으로 물개박수를 치던 키스앤크라이존에서의 모습으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다음 해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경기장에서, 빛나는 조명 아래 갈라쇼까지 펼쳤다.
이를 기억한 기업과 팬들의 후원이 이어졌다. 이에 이시형은 2017/2018 시즌 시작 전,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어머니와 전지훈련을 떠났다. 소통부터 식사까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2개월이었다.
시: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너무 바보 같았어요. 이렇게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왔는데,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트리플 악셀을 꼭 뛰어야겠다는 마음이 너무 커서 진짜 한 3~4 타임 타면서 계속 악셀만 뛰었어요. 뛰긴 했어요. 근데 뛰는 거랑 꾸준히 유지하는 것, 또 음악에서 연습하는 게 다른데 계속 주구장창 연습만 한 거죠.
제가 왼발에 고질병이 있는데, 악셀이 왼발 점프예요. 계속 뛰다가 피로 골절이 온 거예요. 마지막 한 달은 굉장히 힘들었어요. 아파서 뭘 할 수 없는데, 여기까지 와서 또 안 탈 수는 없고. 오만 가지 생각이 교차하더라고요. 많은 분이 후원해 주셔서 왔는데, 어떻게 성과를 내야 하는데, 아픈데…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이 굉장히 아까웠어요.
문: 그 시즌에 평창 동계 올림픽이 있었죠. 자국 올림픽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요?
시: 평창 올림픽에 대한 욕심… 없었죠(웃음). 그래서 처음부터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에 나갔어요. 주니어 그랑프리 나가서 코피 터졌을 때도 그 시즌이었고… 사대륙선수권도 나갔고. 그사이에 계속 트리플 악셀을 연습했고, 주니어 월드에 나가서 성공했죠. 그래서 평창 올림픽 시즌 하면 힘들었던 그 콜로라도 전지훈련이랑 주니어 월드 나가서 악셀을 뛰었던 그 기억이 가장 남아요.
문: 그리고 그다음 시즌, 고3이 되었어요.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텐데요. 2018/2019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 4위로 주니어 그랑프리 출전도 포기했고,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프리 진출이 좌절되기도 했는데요. 부츠랑 부상 문제도 있었다고요. 그때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시: 그 시즌 내내 못 했어요. 계속 고전했죠. 연습은 잘했어요. (트리플) 악셀도 계속 잘 뛰었는데, 희한하게 대회 때만 가면 계속 못 했던 시즌이었죠. 또 저한테 맞는 스케이트를 찾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안 신어본 모델이 없었죠. 제가 준비가 안 됐었던 것도 있고, 스케이트를 계속 찾느라 왔다 갔다 한 것도 있는데,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도 떨어지고 그만둘 생각으로 한 일주일 동안 훈련에 안 가기도 했어요.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하자는 식으로 머리를 반삭하고, 그때 최형경 선생님이랑 다시 만나게 됐죠. 그런데 주니어 월드에 가서 프리 진출에 실패한 거예요. 정말 힘들었어요. 끝나자마자 그다음 비행기로 바로 와서, 각성해서 연습했어요. 아마 그다음 시즌에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나왔을 거예요.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메달도 따고.
슬럼프를 이기고
다시 초심으로
2020년은 스포츠 선수들에게 어려운 시기였다. 태릉을 주 훈련지로 삼은 국가대표들마저, 태릉이 생활치료센터로 지정되며 훈련지를 잃었다. 지상 훈련센터도, 헬스장도, 링크장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모두가 불안과 공포로 초조하던 시기, 이시형은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 충분한 휴식으로 남아 있던 부상을 회복하고, 맨몸운동으로 체력을 끌어올렸다. 마법처럼, 최상의 컨디션이 이어졌다. ‘혼자 한강 얼음 위에서 몰래 타고 왔느냐’라는 농담 아닌 농담까지 들었다.
시: 그 시기에 내가 내 걸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죠. 지상 훈련 센터도 닫아서 혼자 운동할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그때 지하철에 가서 막 뛰어다니고 그랬어요. 그때 집 근처 천마산에도 가고, 그리고 먹기도 안 먹었어요. 운동을 안 하니까 살찔까 봐, 안 먹거나 한 끼 먹고 계속 운동했어요.
근데 제가 다시 생각해 봐도 좀 신기했던 건, 그 시즌이 굉장히 좋았거든요. 컨디션도 굉장히 좋고, 점프도 굉장히 잘 뛰었고. 제가 링크장 훈련을 적게 하고, 밖에서 지상 훈련을 늘려서 몇 주 만에 들어갔는데도 별로 어색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점프가 더 잘 됐어요. 힘이 남으니까 도움이 되어서 그때 그 시기에 타노를 넣어서 (쿼드러플) 살코를 뛰었죠. 사실 선생님께서 무서우니까 쿼드러플에 타노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회전 자체가 안되던 쿼드러플 살코가 타노 자세를 했는데 딱 된 거예요. 뛰어야겠다는 생각도 아니었고, 한번 올려보자 하고 손을 올렸는데 탁 뛰었어요. 선생님이 ‘지금 뭐 한 거야? 지금 뭐 했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잖니.’ 했는데 되니까 그러면 그걸로 하자고 된 거죠.
그리고 쿼드를 성공하면서 랭킹 대회에서 제가 1등이 됐어요. ‘내가 1등을 다 해보네’ 이런 생각을 했죠. 1등을 해서 좋은 것보다, 코로나 시즌에 너무 힘들기도 했는데 발전했다는 모습을 보여드려서 더 좋았어요.
문: 그 랭킹 대회 키스앤크라이존에서 세계선수권 출전 선수들을 응원하기도 했죠. 그 해 세계선수권도 이시형 선수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베이징 올림픽 쿼터가 정해지는 대회였어요. 본인한테도 중요한 대회였잖아요. 그때 실시간으로 열심히 봤나요?
시: 쇼트는 못 봤어요. 그리고 안 보고 싶었어요. 당연히 응원은 했죠. 근데 뭔가 내가 보면 못할 것 같고, 이런 거 있잖아요.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그냥 잤는데, 일어나니까 준환이가 쇼트 프로그램을 잘했더라고요. 프리 때도 불안해서 보고 싶지 않더라고요. 잠도 안 오는데 일단 누웠어요. 누웠는데 잠은 안 오고, 계속 떨리고. ‘자야 해 자야 해.’ 그러다가 딱 시간을 봤는데 준환이가 할 시간인 거죠. 그래서 준환이 하는 것만 봤는데, 잘했더라고요. 너무너무 고맙기도 했고, 너무 안쓰러웠어요. 그때 준환이 상태가 많이 안 좋았거든요. 출국하기 전날 지상 훈련하다가 만났는데, 저한테 ‘형이 갈래?’라고 할 정도로요. 그래서 끝나고 ‘준환이 진짜 애썼다.’ 그랬죠. 그러고 나서 네벨혼 트로피 가서 추가 티켓 따오려고 열심히 했죠.
2021년 세계선수권에서 차준환의 극적인 선전으로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최초 올림픽 남자 싱글 두 명 파견의 기회를 획득했다. 단, 당시 규정 개편으로 인해 이시형이 2021 네벨혼 트로피에서 추가 출전권을 획득해야 하는 상황. 이시형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최종 5위에 올라 스스로를 증명했다.
시: 사실 가기 전까지도 (컨디션이) 안 좋았었어요. 그냥 사는 게 너무 불편했어요. 숨 쉬는 것도 힘들고, 무슨 진짜 죽을 날 받아 둔 소처럼 너무 힘든 거예요. 운동도 힘들었고, 연습도 잘 안됐어요. 나한테 기회가 왔는데, 올림픽을 나가고 싶으니까. 엄청나게 예민해지더라고요.
출국했는데도 좋지는 않았어요. 살코도 잘 안되고, 악셀도 잘 안됐어요. 다른 것도 막 흔들리고, 떨려서 못 하겠고…. ‘나 죽을 것 같은데 어떡해?’ 하다가 웜업 딱 들어갔는데, 어? 안 떨리는 거예요. 딱 링크로 들어가니까 안 떨려요. (쿼드러플) 살코도 잘 뛰었어요. 그때가 지금까지 다 합쳐도 제일 잘 뛴 것 같아요. 또 국가 순위 안에 들어왔대요. 그래서 ‘오케이, 프리는 내가 엄청나게 연습했으니까 자신 있어!’ 하고, 프리 스케이팅을 했어요. 떨리긴 했는데, 왠지 모르겠는데 잘할 것 같았어요.
보통 경기 2분 정도 지나면, 힘들고 체력이 점점 소멸하니까 안 떨려요. 근데 모든 점프가 끝날 때까지 계속 떨리는 거예요. 그래도 혼신의 연기를 쏟아붓고 ‘됐다, 딴 것 같다.’이랬어요. 점수는 아쉬웠지만, 일단 티켓을 확보했어요. 그때 호텔에 수영장이 있었는데 저 혼자 갔거든요. 끝나고 수영하러 딱 들어갔는데, 그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온 세상이 제 것 같은 기분.
문: 그리고 꿈에 그리던 올림픽에 출전했어요. 베이징 올림픽 얘기를 좀 해주세요. 쇼트에서 아쉬운 점수를 받기도 했지만, 올림픽 기간과 그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합니다.
시: 너무 설레고 좋았죠. 연습도 다 좋았어요. 엄청 열심히 연습하고, 집중도 엄청 많이 했죠. 그런데 (쇼트 프로그램을) 못 한 거죠. 너무 떨어서. 사실 그전까지는 무난했는데, 컴비네이션 점프를 못 뛴 게 가장 컸어요.
우울했죠. 당연히 힘들었어요. 그래서 사실 그 시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안 나요. 맨날 ‘그만해야 하나?’ 이런 말 하고. 물론 잘해서 프리까지 가고 잘했으면 좋았겠지만, 못한 것도 어쩔 수 없는 게 그런 아쉬움이 조금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원동력이 됐던 것 같아요. 만약에 프리까지 해서 좀 괜찮게 했으면 (피겨스케이팅을) 그만할 생각을 하고 있었었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근데 너무 아쉽잖아요. 또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사실 올림픽을 출전할 거라는 생각을 안 했어요. 왜냐하면 한국 남자 싱글 출전권은 항상 한 장이었잖아요. 그래서 저는 기대치가 진짜 하나도 없었단 말이에요. 저는 정말, 올림픽 나가든 못 나가든 상관이 없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완전 상승세를 타는 바람에 잠깐 제 주제 파악을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힘들어했을 때 생각이 또 들더라고요.
‘물론 올림픽이든 뭐든 대회를 못 했으니까 아쉽고 힘든 건 맞는데, 내가 왜 그만할 생각까지 하고 있을까? 언제는 내가 더 타고 싶은데 못 타서 힘들어할 때도 있었는데. 물론 큰 대회고, 내가 못 하고 아쉽게 끝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이거를 또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차피 올림픽이 내가 잘했다고 금메달 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최종 목표라고 하기도 좀 뭐했거든요. ‘스케이트를 좋아하니까, 스케이트를 할 수 있을 때만큼 해보자.’ 저는 이런 마음으로 열심히 했던 거였으니까요.
무너진 부츠와 독감…
힘들었던 지난 시즌
이시형은 바쁜 2022년을 보냈다. 베이징 올림픽 전후로 3월 말까지 빼곡히 차 있던 국내외 경기들에, 7월의 세계대학 경기대회 선발전. 9월 챌린저 시리즈를 시작으로 8개의 대회를 거쳤다. 특히 1월에는 연달아 종합선수권, 세계대학 경기대회, 동계체육대회가 빽빽하게 이어지는 극한의 스케줄이었다.
숨찬 일정에, 비시즌 동안 골치를 썩인 부츠 문제가 시즌까지 이어졌다. 줄곧 착용하던 부츠가 베이징 올림픽 직전 단종되었고, 리뉴얼된 모델은 발목을 지지하는 부츠의 높이가 낮아 4회전 점프를 뛰는 이시형에게 부상 위험 부담이 커졌다. 과거 쓰던 부츠들까지 꺼내왔지만, 첩첩산중으로 연달아 무너지는 상황. 감각이 예민한 엣지 점프들에 특히 영향이 갔고, 결국 성공률이 100%에 가깝던 살코 점프를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이슈에도 불구하고 9월 네벨혼 트로피에서는 살코를 토루프로 교체해 처음으로 시니어 메달을 획득했고, 시니어 그랑프리 데뷔전이었던 프랑스 대회도 깔끔한 프리스케이팅 연기로 호재를 올렸다.
시: 네벨혼 트로피는 한 번 다녀온 데라 편하더라고요. 진천에서 막 나온 때라 몸 상태도 최상이었고요. 왜인지 모르게 자신감이 들었어요. 메달을 딸 수 있을 것 같은 엔트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준비가 잘 되어있어서 자신감 있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챌린지 메달을, 그것도 은메달을 딸 수 있어서 좋았죠!
갈라에 연기한 <All of Me>는 처음으로 직접 만들었던 프로그램이에요. 김연아 선배님의 <All of Me> 갈라를 좋아하기도 해서, 오마주해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천에 있을 때부터 생각해서 음악 편집은 이미 해놓은 상태였고, 마침 슈트도 있어서 현장에서 직접 만들게 되었죠. 그런데 제가 직접 프로그램을 짜본 적이 없다 보니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최형경 선생님이 꽃을 주는 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주셔서, 네벨혼 트로피에 같이 갔던 영현이랑 서영이가 모자 주고 꽃 주는 갈라를 하게 됐죠.
시니어 그랑프리는 처음이라 좀 설렜는데, 출국 당일 제가 여권을 안 가지고 온 거예요. 그래서 결국 일회용 여권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출발했어요.
그때 컨디션이 굉장히 좋았어요. 연습에서 계속 점프를 다 뛰었거든요. 그래서 네벨혼 트로피 쇼트 같은 결과를 약간 기대하고 있었죠. 그런데 끝나고 나니까 항상 받는 그 점수. 하나 넘어지고 75점, 76점. 그래서 나는 항상 왜 그럴까, 하고 저에게 실망했죠. 그런데 프리는 연습한 만큼 했어요. 너무 좋았죠. 후반 트리플 악셀을 처음 시도했는데 성공했고, 기술점도 90점 나오고. 결국 최종 4등이 됐어요. 갈라를 하게 돼서 그때는 해인이랑 예림이가 도와줬어요.
네벨혼 트로피 때부터 프랑스 그랑프리까지 정말 좋았고, 랭킹 대회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문제는 종합선수권 전에 독감이 조금 심하게 왔죠. 쇼트는 어떻게 했는데, 프리는 완전히 망쳤어요. 근데 하루 있다가 바로 유니버시아드 대회 출국이었어요. 비행기에서 15시간 내내 기침을 했어요. 그렇게 며칠째 계속 기침을 하니까 가슴 쪽이 너무 아픈 거예요. 갈비뼈가 끊어지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개막식 때 기수였는데, 대기하다가 너무 아파서 화장실 가서 토하고…. 숙소에 누워 있는데 숨 쉴 때마다 틱틱 소리 나면서 너무 아프더라고요. 진통제 먹고 유대회를 끝내고 한국에 와서 검사를 해보니까 티체 증후군(Tietze Syndrome)이라고. 갈비뼈와 연골 사이에 뭐가 떨어지면서 그게 부딪혀서 나는 건데, 기침을 정말 많이 하면 나올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하더라고요. 가끔 호흡이 많이 차게 운동하면 아직도 여기가 아프긴 해요. 사대륙선수권 준비할 때는 굉장히 힘들었었죠. 제가 지금 72kg인데, 그때 살이 쪽 빠져서 68kg까지 내려갔거든요. 기력이 쭉 빠졌죠. 진짜 프리 스케이팅 중간에 쓰러지지 않을까, 그게 제일 걱정이었어요.
문: 그런데도 프리 스케이팅에서 놀라운 저력을 보여줬군요. 특히 고산지대라 힘들었을 텐데 최종 6위까지 올랐어요. 그 후에 시니어 세계선수권을 경재석 선수와 직접 관람하러 갔었죠.
시: 세계선수권을 보면서 느낀 게 있어요. 남자 선수들을 1그룹부터 다 봤는데, 4회전 점프를 못 뛰는 선수는 아무도 없어요. 다 뛰어요. 결국에는 완성도 차이거든요. 쿼드를 두 개 뛰는데도 프리 스케이팅 탈락한 선수도 있고, 하나인데도 점수를 엄청나게 잘 받는 선수도 있잖아요. 그게 다 완성도 차이라는 걸 더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래서 ‘이게 쿼드 점프 하나가 무기가 아니구나. 남자는 기본 장착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선수들이 다 잘하니까 눈이 즐거웠어요.
문: 팀 코리아 최초로 세계 팀 트로피에 참여했어요. 어떤 심정이었나요? 선수들이랑 매우 친해진 것 같은데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시: 팀 트로피를 준비하는데, 주최 측에서 소개 영상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어요. 선수당 30초 이상 넘지 않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릴스 같은 걸로 하자는 의견으로 모였어요. 많은 릴스 후보들이 있었는데, 르세라핌의 <The Hydra>가 좋아 보이더라고요. 일본어도 있고요. 어떻게 구도를 잡을지도 같이 논의하고, 어떻게 특색 있게 하는 게 좋을까 하다가 준환이가 한 명씩 템포에 맞춰서 시그니처 동작을 하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어요. 편집도 직접 하고 제출했는데 기한을 넘겼어요. 주최 측에서 재촉하는데 하루만 더 달라. 후회 안 할 거다. 그러면서 만드는 데 일주일이나 걸렸어요. 각자 시간도 안 맞았거든요.
그리고 ‘키크존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했죠. 저희는 메달을 바라고 간 게 아니고, 응원상을 노리고 간 거거든요. 그래서 응원상을 노리려면 특별한 게 있어야겠다 했죠. 처음에는 준환이가 송혜교 님을 닮았으니까 <더 글로리> 문동은 분장을 해라, 내가 하도영을 하겠다. 이런 별의별 아이디어도 나왔어요. 그러다가 결국 각자 특색 있는 걸 해보자 했죠. 준환이가 ‘형은 타노가 시그니처니까 하루 종일 손을 들고 있는 거야.’ 이러는 거예요. 그러다가 하루 종일 팔을 들고 있는 패널을 만든 거예요. 저희가 제일 파격적일 줄 알았는데, 프랑스 팀에 에이모즈 선수가 미스 프랑스를 하고 나온 거예요. ‘아, 우리도 <더 글로리> 할 걸. 그거 해야 했다.’이랬죠. 그리고 그 키크존에서 하는 퍼포먼스도 저녁마다 아이디어 회의를 12시 넘게까지 했어요. 근데 솔직히, 회의가 안 돼요. 딴 데로 새고, 그냥 서로 웃다가 그냥 끝나는 거예요.
새 시즌 목표는
페이스 유지하기
이시형은 2023/2024 시즌 두 번의 시니어 그랑프리에 초청받았다. 진천선수촌 훈련 당시 소식을 들었다는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아울러, 새로운 시즌에는 차근차근 컨디션을 끌어올려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는 포부를 남겼다. 이를 위한 첫 관문으로 10월 1주 차에 열리는 핀란디아 트로피에 출전한다. 연이어 부다페스트 트로피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두 프로그램 모두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쇼트 프로그램은 지난 시즌의 작품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시: 쇼트 프로그램은 작년에 썼던 <Feeling Good>을 다시 쓸 거예요. 사실 쇼트 프로그램은 바꿀 생각이 없었는데,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전지훈련을 가면서 안무가 선생님 추천으로 <Bittersweet Symphony>를 받은 거였어요. 프로그램은 좋은데, 두 개를 바꾸다 보니 습득하는 데 부담도 있었어요. 그래서 짜온 건 아깝지만, 다음에 쓰기로 하기로 했어요. 갈라에 초청되면 갈라 프로그램으로 쓸까, 생각하고 있어요.
프리 프로그램은 조슈아 패리스 코치님이 추천해 준 <Cloud>라는 노래로 작품으로 짰어요. 조슈아 느낌이 굉장히 많이 나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어요. 조슈아는 이렇게만 해도 느낌 있는데, 저는 그 느낌이 안 나는 거예요. 또 스텝이 좀 길게 짜였어요. 제가 점프를 뛰고, 중간에 쉬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이번에는 그런 시간이 좀 없어요. 제가 전에 했던 프로그램들보다 체력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조금 더 난도가 높은 것 같아요. 그래도 더 발전해야 하니까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문: 새로운 시즌 목표가 있을까요?
시: 시즌 끝까지 컨디션 관리를 잘하는 게 목표예요. 초반에는 컨디션이 너무 좋았지만, 후반에 떨어지는 그런 경향이 있었고, 제가 나이도 좀 있으니까 그 컨디션을 계속 유지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끝까지 체력을 잘 유지하고, 아픈 곳 없이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남자 주니어 선수들이나 시니어 선수들이 너무 잘해줘서 더 자극도 느껴요. 고마운 마음이 있어요. 왜냐하면 경쟁이 붙으면서 더 (실력이) 올라가거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도 생기고, 내가 더 발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시즌 끝까지 컨디션 지키고, 프로그램에 쿼드러플 두 개 넣어서 잘하는 게 목표입니다.
문: 처음으로 지난 시즌에 진천선수촌에서 훈련하게 됐죠. 진천만이 갖고 있는 시스템을 소개해 줄 수 있나요?
시: 작년에 진천 갔을 때는, 선수촌 쪽에 영상 분석해 주시는 선생님 매일 와서 찍어주셨어요. 각도 이런 것도 나오고, 빠르게 피드백이 되는 게 좋았죠. 보통 선생님들이 찍고 보는 동안 다른 애들은 못 찍잖아요. 근데 그걸로 찍으면 바로 옆에 큰 태블릿이 있어요. 음악 끝나고 가면 바로 볼 수 있어요. 그럼, 제가 한 걸 보고, 다시 연습하고, 다시 맞추고. 그게 굉장히 좋았었어요.
다른 부가적인 치료도 많아요. 시중에서는 돈을 비싸게 주고받아야 하는 크라이오테라피나 충격파 치료가 전부 무료니까 굉장히 좋았어요. 제일 좋은 건 사우나. 그리고 체조가 마음에 들어요. 아침에 일어나는 건 너무 힘든데, 또 체조하면 몸이 풀리니까. 5시, 6시에 시작하거든요. 5시 40분쯤 일어나서 다 좀비처럼 끌려가듯이 운동장에 가요. ‘나 오늘은 너무 힘들다, 나 오늘 체조 대충 할 거다.’ 그러고 가도 노래 딱 나오면 몸이 반응해요(웃음). 열심히 한다고 피겨 선수들을 좋아하셨어요. 피겨 자리 여기 빼놨다고, 맨날 센터로 주셨죠.
방이 1인실이었는데, 민규 옆방을 썼어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얘기하면 민규가 뭐라 할 것 같은데…
아침에 체조하러 나가야 하는데 민규가 안 나오는 거예요. 방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요. 그래서 얘가 왜 안 나오지, 하고 방을 보니까 못 일어난 거죠. 그래서 나가야 하는데 어쩌지 하다가, 베란다가 연결돼 있어서 베란다로 나가서 깨웠어요. 민규가 자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민규야, 민규야. 나가야 해.’ 하니까, ‘벌써 그렇게 됐어요? 빨리 갈게요.’ 이러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학교 시험 보러 가는 날이어서 오전에 못 탔는데, 아영 쌤이 왔다 가셨더라고요. ‘시형이 형이 잘 챙겨주고 있냐, 시형이 형 말 잘 듣고 있어라.’ 그러셨대요. 하필 그날에요.
애들이랑 엄청 재밌고 좋았어요. 민규도 처음에는 많이 쑥스러워했는데 같이 있다 보니까 엄청나게 장난도 많이 치더라고요. 근데 다시 태릉 오니까 리셋이 되더라고요. 다시 수줍어졌어요.
문: 국내에서 4회전 점프를 완성해서 ‘국산 쿼드’라고 알려져 있어요. 점프 각각의 성공률과 안정화 정도가 어떤가요?
시: 네, 맞아요. 국내에서 완성했죠. 사실 지금은 (쿼드러플) 살코를 주력으로 연습하고 있어요. 살코는 연습에서 랜딩률이 한 70%는 돼요. 올림픽 시즌 때는 연습에서 100%였는데 스케이트를 바꾸고 적응하면서, 자세가 예전같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모 아니면 도’예요. 랜딩 아니면 팝(공중에서 회전하지 못함). 일단 그렇게 많이 뛰지 않아요. 체력 소모가 무척 심하거든요. 점프를 처음에 뛰고, 음악에 맞춰서 하나 뛰고, 다른 트리플 점프 8개. 이런 루틴으로 뛰어요. 이번 시즌에는 프리에 쿼드를 두 개 넣으려고 살코랑 토를 연습하고 있는데, 살코가 안 좋으면 루프로 바꾸려고 연습하고 있어요. 살코와 토를 가져가면서, 룹이 괜찮으면 넣고. 이런 식이요.
문: 그럼 토루프와 루프는요?
시: 비슷비슷해요. 사실 토는 계속 랜딩하고, 괜찮아요. 하지만 토를 메인으로 가져가기보다는 안 됐을 때 넣을 수 있는 대체제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쇼트에서는 살코 아니면 룹을 뛰려고 하고 있어요.
룹은 랜딩은 하는데, 성공률만 따지면 한 60%? 그런데 이게 쿼드러플이다보니, 컨디션에 따라 달라요. 아예 안 되는 날에는 안 되고, 되는 날엔 되고. 근데 대회 때 못 넣을 정도는 아니라서 계속 연습하고 있어요. 아까 말했듯이 완성도냐, 쿼드러플 두 개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일단 두 개를 연습하고 있어요. 넘어지면 확실히 리스크가 크지만, 멀리 봤을 때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선수들이 쿼드러플 점프가 없는 것도 아니고, 다들 장착하고 있으니까, 제가 여기 머무르지 않고 더 성장하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그리고 오래 피는 꽃
시: 뒤에 꽃 피는 경우도 있지만, 피겨스케이팅은 거의 어릴 때부터 주목받으면서 올라오는 게 다반사잖아요. 국가대표 상위권의 잘 타는 선수들이 대부분 어릴 때부터 지원도 받고, 해외 안무가랑 작업도 하고, 해외에도 나갔다 오는 게 대부분이죠.
그런데 저는 좀 특이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잘한 것도 아닌데 한국에서 쿼드도 만들고, 올림픽도 나갔고, 아직도 타고 있어요.
그래서 일단 선수로서의 목표는, 저를 보고 다른 선수들도 오래 스케이트를 하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예요. 왜 오래 못하는지 느낀 점이 있는데… 일단 남자 선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군대 문제도 있고, 대표가 아닌 선수는 타는 데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힘든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또래가 점점 없어지고 아기들이 많아지니까 ‘그만해야 하나, 내가 지금 너무 약간 눈치 없이 오래 하고 있기도 하나. 내가 안 맞는 자리에 있나.’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제 나이 또래는 거의 다 코치하거나 은퇴했거든요.
그래도 저는 목표가 있고, 스케이트를 하고 싶어요. 주위 누나, 형들한테 물어보면 다들 ‘그만두고 싶어서 그만둔 게 아니다.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어서, 몸이 안 따라줘서 그만한 거다. 너는 지금 못하는 것도 아닌데 그만할 필요가 없다.’라고 해요. 다들 후회가 남는대요. 나중에는 ‘좀 더 할 걸’, 이런 후회가 남는대요. 저도 ‘왜 아직도 아직도 하고 있냐?’ 이런 소리는 듣기 싫으니까, 더 열심히 해서 큰형다운 그런 실력을 갖춰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제가 좋아서 타는 거지만, 그래도 저를 보고 다른 선수들이 더 오랫동안 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는 성찰과, “발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열심히 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라는 그의 소망에서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이시형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수식어만으로도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족적을 남기고 있는 이시형이지만, 그를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그의 단단한 마음가짐이었다.
여름꽃인 능소화는 봄에 피지 않는다. 비바람을 맞아 금세 져도, 다시 여름내 오랫동안 하늘 높이 고개를 치켜든다. 그런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
여름날 만난 이시형 역시 남들과 같은 계절에 피지 않았다. 천천히 벽을 타고 올라 지금까지도 한 단계 한 단계, 길게 성장하고 있다. 높은 이상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피어날, 이시형의 묵묵한 명예에 경외의 마음을 보낸다.
인터뷰 진행 김현진
촬영 및 사진 편집 박지민
영상 편집 이민정
정말 좋은 기사네요
시형선수를 오래 봐서 너무너무 좋앙ᆢ
국가대표 선수여도 각각의 나름 어려움이 많군요. 국내 완성이라는 말처럼 변변한 전지 훈련도 없이 외국 코치도 아닌 또 재일 맏형으로서 그 모든 어려움을 다 묵묵히 견뎌내며 오신 모습에 무한한 박수와 응원을 보냅니다. 네벨혼때가 제일 감격스런 순간이었습니다. 그 압박속에서(근데 당시 컨디션이 안좋으셨다니..) 당당히 5위로올림픽 출전을 확정했었던…
올 시즌 2번의 그랑프리 초청 너무 축하드리고 최다빈 선수처럼 시형님이 하고 싶으실 때 까지 오래 오래 선수생활 하셨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