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세계 최고의 대회인 세계선수권에서 차준환과 이해인이 모두 2위에 올랐다. 이어진 세계 피겨스케이팅 최강 6개국이 참여할 수 있는 월드 팀 트로피에서도 이들이 주축이 되어 종합 2위라는 영예를 안았다. 세계가 놀란 이 결과가 나오기까지 두 선수 곁에는 늘 지현정 코치가 함께였다.
이러한 성장은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972년 대한민국 선수단의 세계선수권 첫 출전 이후 김연아라는 불세출의 천재가 우승하기까지 37년, 남녀 두 종목에서 성과를 얻기까지 51년의 세월이 있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이 궤도에 오르기까지, 긴 시간동안 밤낮없이 후진양성을 위해 힘쓴 지도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지현정 코치도 그중 한 명이다. 오랜 기간 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가르치며, 2014년 박소연과 올림픽 무대를 밟은 경험이 있다.
지현정 코치의 노련함은 지난 시즌 꽃을 피웠다. 2022년 ISU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를 시작으로, 주니어 ·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과 사대륙 피겨선수권대회, 세계선수권까지. 피겨스케이팅계를 휩쓴 이해인 · 차준환과, 장래가 촉망되는 유망주 김채연의 뒤에는 지현정 코치가 동행했다. 그 공로를 인정해,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지현정 코치에게 2023 피겨스케이팅 부문 최우수 지도자상을 수여했다.
수상의 기쁨도 잠시, 6월부터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는 지현정 코치를 제니스 아이스링크에서 만나 이야기 나눴다.
80년대, 전지훈련의 선구자
문화포커스(이하 ‘문’): 피겨스케이팅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지현정 코치(이하 ‘지’): 다섯, 여섯 살 때였어요. 피아노나 이것저것 시켜봤는데 다 싫어하고, 스케이트장 가서 잘 놀더래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여섯 살 때 조금 타다가 초등학교 1학년쯤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원래는 계성초등학교에 다녔다가, 2학년 올라가면서 스케이트 타느라고 리라초등학교로 옮겼죠.
지현정 코치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동대문 실내빙상장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85년 태릉선수촌 내 수영장이 빙상장으로 개축되며 훈련지를 옮겼지만, 상황은 여전히 여의찮았다. 태릉 아이스링크가 여름에는 시설 유지 명목으로 휴장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해외 출국이 자유롭지 않았던 80년대,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은 국가 지원, 혹은 사비를 들여 해외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지현정 코치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지: 저희 때는 그냥 스케이트를 타고 시합을 나간 거였지, 국제적으로 성적을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 당시에는 여름에 스케이트장이 쉬었거든요. 아이스가 없으니까 밖에서만 훈련한다든가, 실내에서 체력 훈련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조금 상황이 좋으면 전지훈련을 갔다 온다던가. 그래서 예전에는 타는 게 더 힘들었어요. 그때는 관중도, 팬도 없었어요. 지금은 (경기) 하면 꽉 차고, 시합 때도 응원을 해 주셔서 아이들에게 더 힘이 됩니다.
문: 선수 때부터 전지훈련 다녀오신 선구자이시잖아요. 지현정 코치님의 제자들도 거의 매 시즌 한 번씩 전지훈련을 하는데, 전지훈련이 코치님과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지: 저에 대한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아이들의 다음 시즌에 대한 준비도 있지만, 같은 말을 제가 계속 반복하다 보면 선수들도 ‘그냥 하는 말 또 하는구나,’ 이런 느낌도 들 수 있어요. 또 아이들이 다 똑같지는 않아서, 이런 아이들은 되는데 저런 아이들은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못 보는 어떤 한 가지를 그 사람이 찍어준다면, 저렇게 했을 때 좀 바꿔 갈 수 있겠다는 어드바이스가 되는 거죠. 저 또한 하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요. 어시스트를 듣는 입장에서 한 번씩은 갔다 오곤 했어요. 얘기를 할 때는 ‘내가 맞는구나’라는 확신도 가져야 하거든요. 근데 열 번 스무 번 이야기했는데 안 되면, ‘내가 잘못된 걸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잖아요. 저에 대한 어떤 확신, 그런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지현정 코치는 외국 코치와 유연하게 협업을 하며 선수들이 국내외 좋은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과거 미셸콴의 영원한 동반자로 활약한 프랭크 캐롤(미국)과 신예지 안무가를 코칭했고, 현재는 브라이언 오서(캐나다) 코치와 공동으로 차준환을 지도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문: 한국 코치 중 특별히 외국 코치랑 협업이 많으신데, 코칭 시 어려움이나 장단점이 있나요? 예를 들어 타 코치가 다른 형태의 가이드를 주게 되면 선수가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경우 어떻게 조율하시나요?
지: 어려움이나 장단점은 없는 것 같아요. 어차피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고, 얘기하려는 결과물은 똑같은 건데 얘기하는 방향이 살짝 다른 거라서요. 가이드가 다른 경우에는 선수가 혼란스러울 수 있어서, 그런 경우에는 일단 얘기를 하죠. 그러니까 예를 들어, 브라이언(브라이언 오서 코치)과 제가 각자 영상을 보고 ‘이런 것 같지 않아?’ 하면, 하나로 이야기를 모아서 마지막을 준환 선수한테 전하는 거예요.
지현정 코치는 2022/2023 시즌 네 명의 국가대표를 배출했다. 특히 김현겸(한광고)과 이해인(세화여고), 김채연(수리고)은 대회를 거듭하며 놀라운 기술적 상승세와 안정감을 보였다. 제자들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 대해 차별화된 비법을 묻자, “없는 것 같다”며 웃었다. 한편, 자신의 코칭 방향성을 “신뢰”와 “선수에게 맞추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 차별화된 거는 없을 것 같고요(웃음). 일단 저는 일단 영상으로 본인의 모습을 보게 해 주고, ‘나는 이런 거 같아. 너는 느낌이 어때?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많이 의논하면서 갔던 거 같아요. 선수 스스로 깨달으면서, 그 의견을 조합해서 가는 거죠. 그리고 사실 (어느 정도 성장한 선수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돼요. 어린 선수들과는 달라요. 어린아이들은 그렇게 할 수 없죠. 어린 선수들은 ‘이렇게 해’라고 명확한 가이드를 줘요.
하지만 고등학생이 됐고, 대표 선수가 돼서 지금 그 위치에 있는 선수들은 서로 맞춰가야 신뢰가 쌓여요. 그 사람도 나를 믿어야 하고 나도 선수를 믿어야 하는 거라서.
제일 중요한 게 선수한테 맞춰가는 거죠. 이 아이에게 맞는 최선의 방법으로 최고를 끌어낼 수 있는 걸 해줘야, 제일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있으니까. 그 아이가 나한테 맞추면 저 같은거지, 그 사람은 아니잖아요.
멘탈 케어도 노하우나 방법은 사실 없어요. 제가 심리 상담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하지만 지나왔던 거를 생각해 보면, 선수마다 굉장히 달라요. 자극을 줘야 하는 아이들도 있고, 위로해야 하는 아이들도 있고, 자신감을 줘야 하는 아이들도 있더라고요. 예민한 선수는 건들지 않아야 되는 경우도 있고, 그냥 정말 할 말만 하고 안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그 선수에 맞게 상황을 풀어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소연 선수 같은 경우는 시합 때마다 굉장히 많이 긴장하는 케이스여서, 시합 기간 내내 시합 아닌 다른 얘기를 해요. 스케이트장에서 자세 얘기 이외에는 시합에 관한 얘기를 절대 하지 않아요.
문: 그래서인지 경기 시작하기 전에 뭔가 항상 많이 얘기해주시더라고요.
지: 어떤 경우는 정신 차리게 얘기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그냥 안심을 시켜줄 때도 있고. ‘할 수 있다’라고만 얘기를 해줄 때도 있어요. 조금 안 좋을 때는 그냥 자세 같은 거를 얘기해 줄 때도 있고.
보통 선생님들 보면 항상 같은 기본자세들이 있는데, 저는 그것보다는 그때 상황에 맞게 이야기해요. 시합 날 선수가 컨디션이 좋아서 너무 업 돼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 안 그러면 이상한 데서 실수를 해버리니까. 끝까지 방심하지 말라고, 네가 좋아도. 그런 멘트를 해요.
문: 선수마다 특성이 다르다고 하셨는데, 준환 선수와 해인 선수는 어떤 식으로 지도해 주시는지 궁금합니다.
지: 준환 선수 같은 경우는 본인에 대한 확신을 계속 주거든요. 영상을 보면서 ‘너 괜찮잖아.’라고 말해요. 자신에 대한 확신을 계속 심어주고, 잘하고 있는 걸 다시 알려주고 있어요. 정말 아닌 거는 이야기를 하겠지만, 안 좋은 영상은 되도록 제가 보여주지 않아요. 좋은 거를 계속 기억에 남겨요.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인거죠. 그 외에 체력적인 부분도 계속, 계속 늘리면서 끌어올려 줬던 것 같아요.
해인 선수는 스케이트 아메리카 당시 컨디션 자체가 나쁘거나 그러진 않았는데, 가서 딱 독감이 걸려서 침대에서 아예 일어나지 못하더라고요. 아프기도 많이 아팠고, ‘기권해야 하나, 타야 하나’ 몇 날 며칠 그러다가 겨우 시합을 뛰었어요. 그게 프랑스 대회까지 한 3주 정도 가서 체력도 더 떨어지고, 좀 힘들었죠.
갔다 와서 차근차근 랭킹, 종합 거치면서 하나씩 올렸어요. 본인도 하려는 의지가 있었으니까. 월드도 가고 싶고, 사대륙도 가고 싶고. 그게 잘 맞아떨어진 거죠.
사춘기와 피겨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은 일반적으로 만 7세에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는다. 전성기가 10대에서 20대 초반으로 형성된 젊은 종목으로, 코치진의 연령층 역시 타 종목에 비해 어리다.
그렇기에 분명한 단점이 있다. 전문 선수 반을 시작하고 난 후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학교생활의 부재가 바로 그것. 이것은 곧 학생 신분에서 얻을 수 있는 첫 사회생활과, 바른길로 이끌어 줄 은사의 공백을 의미한다. 지현정 코치는 이 시기의 청소년을 바르게 인도하는 ‘어른’이었다.
문: 선수 생활과 코치 생활할 때,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지: 선수로서는 아무래도 계속 잘하고 있다가 후배들이 올라온다거나 했을 때 오는 스트레스가 좀 많았었던 것 같아요.
코치로서도 마찬가지죠.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할 때 어떤 도움이 돼야 하는데, 겪어도 봤지만, 그렇게 계속 뭔가 피드백을 해줘도 (역량이) 올라오지 않을 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잘할 수 있는 선수가 심리적인 이유나, 스트레스로 안 될 때.
문: 남자 선수들 같은 경우는 뒤늦게 성적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 사이에 슬럼프나 사춘기를 겪게 돼서 스트레스가 있을 것 같아요. 도약을 기다리는 이 시기에 제자들 케어를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지: 남자 선수들은 그렇게까지 사춘기의 변화가 크게 많이 오지 않아요. 있기는 있지만, 그렇게 심하게 와닿지는 않아요. 그리고 ‘좋아요, 싫어요’가 명확해요. 그래서 기분을 맞춰준다거나, 얘기를 일단 들어주고 ‘맞아, 근데 난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 이렇게 얘기를 해주는 편이에요.
오히려 여자 선수들의 사춘기 시기가 어려워요. 아예 말을 안 듣는 아이들도 있고, 마음을 닫고 얘기를 안 하는 선수도 있고, 여러 가지 미묘해요. 근데 그 시기에 신체 변화도 겪으면서 다이어트도 해야 하니까 스트레스가 너무 많은 거죠. 남자애들은 체형 변화가 와도 힘이 붙잖아요. (남자 선수들은) 파워가 붙으니까 넘길 수 있다면, 여자 선수들은 파워는 죽어버리고 지방은 늘어나요. 그건 여자가 갖고 있는 특성이니까 어쩔 수 없는데, 그거를 버텨나가는 게 쉽지 않은 거죠. 그런데 그러다 보면 부상이 오는 거고, 부상이 오면 버텨내는 게 더 힘든 거죠.
문: 그래서인지 한국 국가대표의 연령은 굉장히 어려요. 국제 대회에서 시니어 나이는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정작 시니어 대회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주요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아닌 경우도 있고요. 이런 상황들과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코치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지: 이미 연맹과 얘기하고 있었거든요. 회의도 하고. ‘주니어는 주니어대로 이 아이들은 발전시키고 대우를 해주고, 일단 시니어 아이들을 조금 더 길게 갈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하지 않겠냐.’고. 국제 시합 나갈 수 있는 게 대표라고 생각해서 주니어 그랑프리 나갈 수 있는 아이들로 국가대표 구성은 했는데, 그러다 보니 또 큰 아이들은 큰 아이 나름대로 심리적으로 버틸 수가 없는 상황도 만들어지잖아요. 선수들이 길게 훈련하고 길게 생명을 유지해서 가야 되는데, 딱 9등, 10등 하면 참 이게 계속 가라고 하기도 그렇고. 정말 한 끗 차이 같은 건데. 그래서 주니어 대표 시니어 대표를 분리하는 게 어떻겠냐 했는데, 바뀌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 인사이트
지난 2022/2023 시즌은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한 해였다. 김연아 홀로 지나온 척박한 땅 위에 마침내 과실이 맺은 것이다.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은 2014년만 해도 시니어 세계선수권 여자 싱글에서마저 최소기술점을 맞춘 선수가 없어 출전권 한 장을 포기해야 했다. 2023년, 이젠 페어 스케이팅과 아이스 댄스까지 갖추어 완벽한 ‘팀 코리아’가 되었다. 여자 싱글과 남자 싱글도 연이어 기록을 써 내렸다. 자연스레, 역대 최초로 진출한 ‘올 스타전’ 월드 팀 트로피에 대한 언론의 주목 역시 높아졌다. 선수단은 즐기는 마음으로 임했지만, 코치의 시선은 약간 달랐다.
지: (팀 트로피는) 처음이죠. 즐기려고는 하지만, 제 생각에는 어쨌든 경기더라고요. 보기에는 애들이 막 응원전도 하니까 재밌지만, 1등이냐 2등이냐 3등이냐를 결과적으로는 가려야 하잖아요. 저 나름대로는 걸린 게 없으니까 조금 편하지만, 시합이라는 스트레스는 그래도 있던 것 같아요. 그거를 무시하고 그냥 즐겁게만 있을 수는 없더라고요.
저희는 그냥 ‘꼴등은 하지 말자.’ 시작은 그랬거든요.
‘나갔어? 좋아. 근데 댄스도 주니어에서 처음 바로 올라왔고, 페어도 이제 첫 대회였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최대한 꼴등만 하지 말자, 우리’.
문: 시니어뿐만 아니라 주니어도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많이 올렸어요. 국제 무대에서 한국 선수들이 통하는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 아이들의 수준이 정말 많이 올라왔어요. 전체적으로 주니어 대회를 나가보면 우리 애들이 잘 타요. 우리 아이들이 전체적으로 올라갔지만, 딱 한 번에 올라간 건 아니죠. 밑에서부터 4등, 5등, 그다음에 이제는 1~3등을 다투는 거예요. 그런 상황이 계속 연결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이 기본 스케이팅 스킬은 조금 부족해요. 안무적으로 정말 잘하고 있지만, 기술(점프)을 빨리 성장시키는 대신 스케이팅 스킬을 조금 버리고 가는 경향이 있어요. 같이 가져간다면 더 좋은 성적이 나오겠죠.
문: 기술적으로, 특히 점프의 완성을 높이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시는 걸까요?
지: 그랬던 것 같아요. 일본이나 러시아는 ‘일단 기본 스킬이 돼야 테크닉도 좋은 거다. 편하게 갈 수 있는 거다’고 하지만, 저희는 ‘빨리빨리 뛰고 빨리빨리 하자!’ 해서 조금 순서가 바뀐 케이스? 빨리빨리 그러다 보니까 시니어 갔을 때 약간 차이가 나는 상황도 발생하는 거죠.
그래서 채연 선수 같은 경우는, 시즌 시작 전에 스케이팅 기본적인 거랑 프로그램 연결하는 법을 많이 연습했어요. 점프는 워낙 잘 뛰고 있었으니까, 그게 플러스가 돼서 좋은 성적이 나온 거죠. 점프만 있고 이 부분이 안 되면 점프를 뛰더라도 GOE(Grade of Execution, 수행점수)가 한 1, 2에서 끝나버리니까. 그게 3, 4가 돼야죠.
그걸 기본으로 두고, 저희 같은 경우는 점프를 넘어졌는데 볼 게 없으면 정말 별로잖아요. ‘점프는 넘어졌지만, 너무 안타까워. 너무 잘 탔는데.’ 이런 느낌을 주려고 해요. 점프는 실수할 수 있으니까, 언제나 100%가 아닐 수 있잖아요.
문: 트리플 악셀을 비롯한 고난도 점프 경쟁이 되고 있어요. 이 상황에서 코치님의 제자들이 점프에 올인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잘하고 있는 점프에 수행점수를 높이는 방향이나 비점프적인 부분에서 점수를 얻는 방향으로 가는 게 나을까요? 코치님이 가지고 계신 방향성이 궁금합니다.
지: 어린 선수들은 고난도를 하자고 얘기를 하는 편이에요. 어쨌든 러시아도 나올 거고, 일본도 트리플 악셀과 쿼드러플 점프를 하고 있죠. 초등학교 정도 아이들은 고난도를 가져가는 게 맞는 것 같고요.
올림픽을 보고 준비하는 선수들은 그러다 부상이 오면 정말 나쁜 상황이 되니까, 뛰는 선수는 어쩔 수 없지만 여자 선수들 같은 경우는 GOE와 구성, 완성도를 더 높이는 쪽이 옳지 않은가 생각해요. 아무래도 부상은 계속 싸워야 하는 문제고, 하다 보면 다칠 수밖에 없지 않을까도 싶고. 다치지 않더라도 같은 부위를 쓰니까.
문: 남자 선수들 같은 경우는 어떠세요?
지: 준환 선수는 지금 쿼드러플 플립을 하고 있어요. 이제 쿼드 하나를 더 늘리려고 하고 있죠. 2, 3년 동안 랜딩은 하고 있었어요. 일단 프로그램 완성도를 더 높이자는 의미에서 뺐던 거고, 올 시즌 그걸 준비하고 있거든요. 남자 선수들은 쿼드를 뛰지 않으면 안 되니까.
코치이자 어른으로서 지현정 코치의 가장 돋보이는 덕목은 신뢰와 경청이 아닐까. 지도자로서 그는 스포츠인의 꿈의 무대인 올림픽을 포함한 수많은 대회에 동행했다. 부츠가 무너져 부득이 경기를 포기할 때도, 쥐가 전선을 갉아 경기가 두 시간 지연된 상황에도 선수들을 다독여 일어나게 한 근원은 지현정 코치가 가진 소통의 힘이었다. 선수 주 연령층이 낮은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종목에 인격적으로 가장 필요한 ‘어른’이었다.
그런 그에게 코치로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이번 2023년 세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였다고. 이해인과 차준환이라는 차세대 퀸, 킹을 키워낸 지현정 코치가 앞으로 양성할 새로운 꿈나무와, 한국 피겨스케이팅에 아로새길 즐거운 역사를 기대해 본다.
인터뷰 진행 김현진
포토 디렉터 박지민
영상 디렉터 이민정
장소 제니스 얌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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