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인이 2026 ISU 피겨 스케이팅 그랑프리 컵 오브 차이나에서 생애 첫 그랑프리 동메달을 획득했다.
11월 7일 중국 선전 유니버시아드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여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에서 기술 점수(TES) 76.77점, 구성 점수(PCS) 66.53점으로 총점 143.30점을 기록하며 프리 스케이팅 3위에 올랐다. 쇼트 프로그램 6위로 출발한 이해인은 최종 총점 210.79점으로 종합 3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특히 기술 점수 76.77점은 이해인의 역대 프리 스케이팅 기술 점수 최고 기록이다. 프리 스케이팅 총점 역시 개인 최고점에 약 5점 차이로 다가섰다. 쇼트 프로그램에서의 아쉬움을 털어내고 프리 스케이팅에서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한 결과였다.
무엇보다 이날 연기에서 가장 빛난 순간은 첫 점프 과제인 트리플 악셀이었다. 자신 있게 도약한 이해인은 트리플 악셀을 실전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깨끗하게 착지했고, 심판진으로부터 회전수를 인정받으며 1.60점의 가산점까지 챙겼다. 이어진 트리플 럿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서는 후속 점프에 회전수 부족(q) 판정을 받았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요소에서 가산점을 받으며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다. 경기 후 믹스존과 기자회견에서 만난 이해인은 예상하지 못했던 메달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에서 메달을 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정말 놀랐고, 너무 행복해요. 이곳에서 트리플 악셀을 착지할 수 있어서 기쁘고, 이렇게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 메달을 딸 수 있어 정말 영광이에요.”
이번 메달의 의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 것은 실전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트리플 악셀이었다. 이해인은 올림픽 당시 연습에서 해당 점프를 착지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후 한동안 연습을 중단했다가 지난 7월 다시 도전에 나섰다. “올림픽 때 연습에서 트리플 악셀을 시도해 착지한 적은 있었지만, 이후에는 시도하지도 않았고 연습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7월에 다시 연습을 시작했는데, 저에게는 꽤 큰 도전이었어요. 대회에서 트리플 악셀이 익숙한 점프처럼 느껴지도록 프로그램 안에서 계속 연습하고 싶었어요. 그래야 경기에서도 부담을 덜 느끼고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오늘 깨끗하게 착지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잘할 수 있기를 바라요.”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올림픽 시즌 이후 처음 트리플 악셀에 도전했을 때는 회전이 충분하지 않아 사실상 더블 악셀에 가까운 수준에 머물렀고, 스스로도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처음 트리플 악셀을 시도했을 때는 정말 좋지 않았어요. 거의 더블 악셀이었지만 회전이 조금 더 들어간 정도였죠. 그래서 부담도 느꼈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도 열심히 노력했고, 지금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스스로에게 도전하기로 한 선택은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도전을 이어가는 동안 이해인은 점프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바꿨다. 이번 시즌 매 대회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는 것이 처음인 만큼 부담이 따를 수 있었지만, 오히려 새로운 점프라고 의식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이번 시즌은 모든 대회에서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는 첫 시즌이지만, 저는 항상 트리플 악셀을 뛰어 왔던 것처럼 생각하려고 했어요. ‘이번이 첫 트리플 악셀이야’라고 생각하면 더 긴장하고 부담을 느낄 테니까요. 그래서 익숙하게 해왔던 점프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할 수 있어’라고 마음먹으려고 했어요.”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자신에게 건네는 말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실수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부담을 덜어내려 했다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성공할 수 있다고 믿기로 했다. “부담스럽게 생각하기보다는 언제나 ‘나는 해낼 수 있어, 잘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부담이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예전에는 ‘못해도 괜찮아’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무조건 된다고 생각했어요. 실수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처음부터 ‘나는 무조건 할 수 있다’고 믿는 게 저 자신을 위한 길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만큼 지난 시간은 쉽지 않았다. “정말 아픈 날도 많았고, 연습하면서 울었던 날도 참 많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쇼트 프로그램에서의 실수에 계속 빠져 있지 않고, 저만의 길을 다시 찾아서 오늘은 저만의 춤을 춘 것 같아요. 그 점이 정말 기쁩니다.”
이날 이해인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점프의 성공만이 아니었다. 기술적인 완성도와 함께 프로그램에 담긴 감정까지 관중에게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오늘은 크게 긴장하지 않았어요. 그저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뮤지컬 배우처럼 제 프로그램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프로그램을 타면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고, 관중분들도 제가 느끼는 감정을 함께 느끼실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드디어 프로그램 안에서 트리플 악셀을 깨끗하게 성공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큰 무대인 만큼 약간의 부담도 있었지만, 오늘은 잘 해낸 것 같아요. 응원해 주신 팬분들께 정말 감사해요.”
영화 〈위대한 개츠비〉 OST에 맞춘 프리 프로그램 역시 이해인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완성했다. 자신이 가장 깊이 몰입하고 스케이팅을 통해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로 프로그램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 프로그램 모두 처음에 구상했던 이야기가 있었어요. 안무가 선생님들이 제안해 주신 스토리도 정말 좋았지만, 함께 고민해 보니 제가 직접 연기하면서 가장 몰입할 수 있고 스케이팅을 조금 더 풍부하게 보여드릴 수 있는 이야기가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제안받았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저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그 덕분에 프로그램이 조금 더 새롭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Experience>나 <위대한 개츠비>라는 작품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제 표현력과 제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관중에게 조금 더 잘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이해인은 프로그램의 감정선을 자신의 스케이팅 인생과도 연결했다. “처음에는 사랑에 빠진 이야기예요. 그래서 모든 것이 아름답고 예쁘게 보이죠. 하지만 프로그램 중반에는 슬픔을 느껴요. 사랑은 때로 아픔을 주기도 하니까요. 이 이야기는 제 스케이팅과도 연결돼 있어요. 저에게 피겨 스케이팅은 사랑이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때는 스케이팅이 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해요. 그래도 마지막에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을 여전히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돌아와요. 피겨 스케이팅과 사람들을 향한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춤추는 거죠.”






이번 여자 싱글에서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도 펼쳐졌다. 금메달은 일본의 치바 모네가 차지했다. 쇼트 프로그램에 이어 프리 스케이팅에서도 1위를 기록한 치바는 프리 스케이팅 148.40점, 최종 총점 224.48점으로 우승을 확정했다. 은메달은 중립국 개인 선수 자격으로 출전한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이그나토바에게 돌아갔다. 이그나토바는 프리 스케이팅에서 전체 선수 중 가장 높은 148.90점을 기록해 최종 총점 221.27점으로 2위에 올랐다. 특히 출산 후 선수 생활에 복귀한 이그나토바는 여자 싱글에서 보기 드문 고난도 점프인 쿼드러플 럿츠를 성공적으로 착지하며 경기장을 뜨겁게 달궜다. 그 뒤를 이해인이 최종 총점 210.79점으로 이으며 동메달을 획득했다. 조지아의 아나스타시아 구바노바는 208.58점으로 4위, 이탈리아의 라라 나키 구트만은 202.69점으로 5위를 기록했다. 높은 점수대 속에서 이해인의 동메달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



이해인의 다음 무대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그랑프리 대회다. 이번 대회에서 실전 트리플 악셀 성공과 첫 그랑프리 메달이라는 결실을 거둔 그는 다음 무대에서 한층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헬싱키에서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드리기보다는 조금 더 안정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어느덧 시니어 무대 7년 차. 기대와 부침이 교차했던 시간을 지나 자신만의 스케이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번 컵 오브 차이나는 새로운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첫 그랑프리 메달과 실전에서의 트리플 악셀 성공은 그동안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이어온 시간의 결실이기도 하다. 이제 자신을 믿는 마음으로 새로운 무대를 향하는 이해인에게, 이번 동메달은 또 다른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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